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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자료사진).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자료사진).
ⓒ 조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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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천~7천만 원 계층이 월 1만 원 더 내는 게 세금 폭탄인가?"

지난 8일 박근혜 정부 세법 개정안에 맞선 민주당의 '세금폭탄론'이 역풍을 맞았다. 정부가 중산층의 조세 저항을 의식해 한발 물러서긴 했지만, 주말 사이 진보 진영은 '복지 증세'에 힘을 싣기 시작했다. 급기야 12일에는 내가만드는복지국가, 복지국가소사이어티 등 시민사회단체들이 오히려 민주당이 '세금 폭탄'을 앞세워 조세 저항을 부추기고 있다며 비판하기에 이르렀다.

이렇듯 '주말 반전'의 기폭제 가운데 하나였던 오건호(49)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을 지난 12일 오후 서울 마포구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사무실에서 만났다. 오 위원장은 지난 대선 당시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한 대선 후보들의 '증세 없는 복지 공약'을 비판했다. 불과 1년도 안 돼 오 위원장의 우려가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관련기사: "증세하면 대선 필패? '복지 선거'로 가야 승산").

"국민이 그렇게 엉성하지 않아요. 박근혜 대통령은 직접 세율을 올리거나 세목을 신설해야 증세라고 생각하는데 국민 입장에선 세금을 더 내는 게 증세예요. 이번처럼 과세표준구간과 소득공제 부분만 건드려도 증세 효과가 있는 거죠. 처음부터 국민에게 투명하고 솔직하게 밝혔어야 해요. 증세는 아니다, 증세 없이 재원 마련하겠다, 해놓고 세금 부담이 느니까 국민들이 더 열 받는 거예요."

"월 1만 원 더 내면 세금 폭탄? 30만~40만원 복지 혜택도 같이 봐야"

이번 세제 개편안에 따르면 고소득층에 유리한 기존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전환하면서 연간 총급여 3450만~7000만원 사이의 중산층 부담 역시 연간 1만~16만 원 정도 늘어나게 된다. 이에 민주당에선 정작 법인세 인상 등 대기업 과세는 빠진 상태에서 '서민 증세'만 한다며 세금폭탄론을 들고 나왔다. 이에 박근혜 대통령도 12일 뒤늦게 "서민과 중산층의 가벼운 지갑을 다시 얇게 해서는 안 된다"며 증세 기준 소득을 더 높이겠다는 뜻을 밝혔다. 13일에는 기재부가 세 부담 기준선을 연 소득 3450만원에서 5500만원으로 올리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오 위원장은 오히려 복지 재원 마련을 위해서라면 이들 중간 계층의 소득세 인상은 받아들일 수 있다는 입장이다. 오히려 이를 세금 폭탄으로 몰아붙인 민주당과 일부 진보 언론을 강하게 비판했다.

"세금 폭탄? 말도 안돼요. 이들 계층 월 세금 증가가 1만 3000원 정도예요. 그게 가계를 부술 만큼 '폭탄'인가요. 형평성이나 심리적 박탈감으로는 폭탄이 되겠지만 금액 크기 자체를 폭탄으로 보기엔 무리예요. 보수정당이라면 '폭탄'이라고 과장할 수도 있지만 보편복지를 지향하는 정당이라면 달라야죠."

오 위원장은 늘어나는 세금뿐 아니라 돌아오는 복지 혜택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세금이 느는 건 재정지출이 늘기 때문인데, 우리도 아이가 둘인데 무상보육에 양육수당으로 매달 40만 원 이상 혜택을 보고 있어요. 기초노령연금도 차등지급하겠지만 대부분 노인이 2배 이상 받게 돼요. 무상급식도 하고 있어요. 1만3000원만 내라고 하면 무조건 저항하겠지만 중간계층은 30만~40만 원 복지 혜택이 들어오고 있어요. 이 둘을 같이 봐야죠. 세금은 거두는 게 끝이 아니라 거둬서 쓰는 것으로 연계하는 것, 복지 확대 과정 속에서 우리가 일정한 부담을 해야 한다는 것, 이걸 계기로 상위층이 세금을 더 내게 하고 대기업에게 더 책임을 묻게 해야 하는데, 보수정당이 갈 길을 민주당이 가고 있는 게 문제예요."

그 연장선에서 이 위원장은 박근혜 정부의 소득세 개편안 '후퇴'에 우려를 나타냈다.

"민주당에선 승리로 받아들이고 환영하겠지만 진보진영 입장에서 오히려 중간계층이 세금을 더 내는 대신 고소득층과 대기업 과세를 더 요구하는 게 실익이 있어요. '서민 증세'라고 해서 세금폭탄 공세를 펼치는데 박근혜 대통령이 막상 그 폭탄을 거둬내면 대기업-고소득층 과세를 요구하는 에너지가 약해질 수밖에 없어요."

"복지 증세 논쟁에 전화위복... 사회복지세 공론화 계기될 것"

12일 정부의 세제개편안에 대해 "중산층과 서민을 벼랑으로 내모는 증세이기 때문에 세금폭탄"이라고 비판한 김한길 민주당 대표가 서울 여의도백화점 앞에서 정부의 세제개편안에 반대하는 서명운동을 펼치고 있다.
▲ '세금폭탄저지' 서명 받는 김한길 12일 정부의 세제개편안에 대해 "중산층과 서민을 벼랑으로 내모는 증세이기 때문에 세금폭탄"이라고 비판한 김한길 민주당 대표가 서울 여의도백화점 앞에서 정부의 세제개편안에 반대하는 서명운동을 펼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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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초기부터 비판의 초점을 '서민 증세'가 아닌 '대기업 과세'로 갔다면 이처럼 큰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을까? 오 위원장도 이런 현실은 인정했다.

"(대기업 과세 문제가) 이슈가 되긴 어려웠을 거예요. 오히려 전화위복이죠. 세금 폭탄으로 밀어붙이니 국민들 조세 저항이 일어났어요. 앞으로는 이 부정적이고 과거지향적인 조세 저항 열기를 복지에 대한 긍정적이고 미래지향적 열기로 바꾸는 게 중요해요. 비로소 국민들도 세금에 진지한 관심을 갖게 됐고 언론에서도 증세 요구가 나오고 있어요. 민주당도 세금폭탄론 때문에 앞으로 증세 논쟁에서 멍에를 지게 됐지만 시민사회와 잘 연대해 조세개혁, 복지증대 에너지로 밀면 전화위복이 될 수 있어요."

사실 이번 논쟁에는 박근혜 정부에 대한 진보 진영의 뿌리 깊은 불신도 한몫했다. 이번 증세로 늘어난 세금이 복지예산으로 쓰일 거란 보장이 없었기 때문이다.

"소득세, 법인세는 일반세이기 때문에 박근혜 대통령이 복지에 쓴다고 한들 국민들이 믿기 어렵죠. 정부 지출에 대한 불신 때문에 복지증세는 '복지목적세'로 가야 해요. 소득세, 법인세, 종합부동산세, 상속증여세 세목에다 지금 내는 것에 1/5씩만 더 내서 연 20조 원 받아 그걸 다 복지에 쓰자는 거죠. 그렇게 하는 게 지금 열기를 좀 더 미래지향적으로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거예요. 그게 바로 사회복지세죠."

복지시민단체가 주장하는 '사회복지세'는 모두 복지에만 쓸 수 있는 목적세로 소득세, 상속증여세, 종합부동산세, 법인세에 20%를 더 부가해 연 20조 원을 조성하자는 것이다. 일반 개인도 지금 소득세 20%를 더 부담해야 하지만 그만큼 복지 혜택으로 돌아오기 때문에 일부 고소득층을 제외한 대다수 가계는 이득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대선이 있는) 2017년이 목표예요. 보편복지 세력이 집권하려면 많은 재정이 필요한데 지금 정부처럼 지하경제 양성화하고 세율 좀 올리는 걸로 돈이 마련되지 않아요. 이때 사회복지세 도입을 놓고 복지 의제 전선을 만들어야 해요. 지난 총선과 대선 때도 보편복지를 얘기했지만 의제 전선을 하나로 모으지 못했어요. 2010년 무상급식은 월 5만 원짜리니까 큰 건 아니었지만 민생 의제였고 논점이 정확해 폭발성은 컸어요. 대한민국에서 20조 원짜리 복지목적세 도입이 중요한 논점이 되면 선거에서 전선을 가르는 효과가 있을 거예요."

오 위원장은 이번 세법개정안 논란을 계기로 복지목적세가 공론화되기 시작해 내년쯤 본격화 될 것으로 전망했다. 아울러 복지목적세에 맞설 보수진영의 카드로 부가가치세 인상 가능성을 제시했다.

"내년 정도 되면 '지출 합리화'니 '지하경제 양성화'니 하는 박근혜 정부의 공약 가계부 견적들이 나와요. '지하경제'에 석유가 묻혀 있는데 너무 깊어 파는 데 10년 정도 걸린다든지, 파봤자 얼마 안 나온다든지 결론이 날 텐데 이미 내놓은 복지 정책은 외통수라 돌이킬 수 없어요. 그러면 증세로 넘어갈 수밖에 없는데 정부 입장에서는 상대적으로 위험이 낮은 게 부가가치세죠. 부가세는 지금도 연 60조 원 규모라 10~20%만 올려도 6조~12조 원이 들어와요."

오 위원장은 복지 재원 마련을 위해 증세는 불가피하기 때문에 결국 보수세력과 진보세력간에 부가세 대 사회복지세, 간접세 대 직접세 구도가 이뤄질 것으로 내심 기대했다. 지금 민주당의 세금폭탄론을 자충수로 보는 것도 그 때문이다.

"저쪽에서도 부가세 인상분을 복지 목적에 쓰겠다고 하겠지만 간접세냐 기존 직접세에 한방 더 매길 거냐가 싸움이 될 거예요. 그런데 지금 민주당처럼 세금 폭탄이라고 주장하면 저쪽에선 세금을 늘릴래, 세금 늘리지 않고 복지를 점진적으로 할래 묻게 될 테고 국민들이 저쪽으로 가겠죠. 민주당도 비판할 명분이 없어지는 거죠."

한편으로 오 위원장은 이번 주말 반전을 계기로 세금폭탄론의 위력이 한풀 꺾이길 기대했다.

"세금 폭탄이라는 게 사실 중간 계층에 큰 게 아니라는 실체를 알게 됐어요. 세금 폭탄은 서민들에게 터지지 않고 부자들에게만 터진다는 사실을 좀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거예요. 그런 점에서 이번 주말 반전은 의미가 있어요."


태그:#세금폭탄,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사회복지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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