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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교육.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이 말을 "도덕적 의식의 계발과 함양을 목적으로 하는 교육. 특히 의지의 단련, 덕성의 함양 따위를 목적으로 한다"로 풀이해 놓았다. 감동적이지 않은가. 뜻풀이만 보고 말하건대, 정신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기만 한다면 대한민국은 세계 최강국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어떻게 정신 교육을 시키나. 우리가 교육해야 하는 '정신'은 또 어떤 것일까. 뜻풀이 속에서 휘황하게 빛나는 "도덕적 의식의 계발과 함양"은 어떤 교육 방법을 써야 가능할까. "의지의 단련, 덕성의 함양" 여부를 우리는 대체 무엇으로 판단하고 평가할까. 좀 더 근본적인 의문도 있다. 우리가 정신 교육을 통해 계발하고 함양해야 하는 도덕적 의식은 과연 어떤 것일까.

이 모든 질문에 제대로 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40여 년 전에 이 질문들에 답할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이 한 명 있었던 것 같다. 박정희 독재 정권의 유신 체제를 통치 이데올로기의 차원에서 이론적으로 뒷받침해준 이선근(1905~1983)이 그 주인공이다.

일제 시대 일본 와세다 대학에서 역사학을 공부한 이선근은 해방 후 신라의 '화랑도'에서 민족 정신의 기원을 찾는 신라중심사관을 주창한다. 이 신라중심사관은 이데올로기적인 차원에서 확고한 민족 사관을 통해 국내 통치 시스템을 강화하려는 박정희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박정희는 이선근을 중용했다. 그뒤 이선근은 박정희에게 국사를 진강하고 국무위원들에게도 국사를 강론하였다. 이를 통해 이선근은 민족적 주체사관에 입각하여 국사 교육을 강화하는 국책을 수립하는 데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인다.

정신교육을 통해 기르는 것은 체제에 순응하고 명령에 복종하는 태도다.
 정신교육을 통해 기르는 것은 체제에 순응하고 명령에 복종하는 태도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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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압적인 유신 시대를 가져온 박정희 정권

이선근이 박정희 유신 체제의 이데올로그로 활약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는 유신 체제를 확립하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이 역사상 둘도 없는 위기에 직면하여 그 존립마저 위협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신 체제의 확립은 민족 전체가 짊어진 사명이라고도 했다. 1976년 6월 22일 전국교육회장대회에서 '유신정신의 심화와 주체적 민족사관의 정립'이라는 제목으로 행한 특별 강연에서였다.

훗날 이선근은 박정희 정권이 체제 보위를 위한 이념적 싱크탱크로 출범시킨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이하 정문연, 현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초대 원장이 된다. 정문연은 '민족혼의 진작과 지도 이념의 정립', '유신이념의 사상적 체계화', '국가지도이념(유신, 새마을, 통일, 안보)의 확립' 등을 표방하며 출범하였다. 정문연은 그 이름이 가리키는 바 그대로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 문화'를 연구하여 이를 체제 유지에 활용하겠다는 박정희 정권의 의도가 그대로 반영된 기관이었다.

폭압적인 유신 시대를 가져온 박정희 정권에게 정신 교육은 아주 중요하였다. 1977년, 박정희의 지시에 따라 국군정신전력학교가 설립된 것도 이 때문이었다. 국군정신전력학교(이후 국방정신교육원으로 개칭됨)는, 시대 조류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1998년에 폐지될 때까지 공산주의나 진보적인 정치이론에 대한 비판이나 '고토수복론(故土修復論)'과 같은 국수주의적인 역사교육을 펼쳤다.

국방부에 제2의 이선근이라도 나타난 것일까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2월 22일 오전 서울 용산 합동참모본부를 방문해 정승조 합참의장, 김관진 국방장관의 영접을 받고 있다
▲ "충성" 군 수뇌부 경례받는 박근혜 당선인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2월 22일 오전 서울 용산 합동참모본부를 방문해 정승조 합참의장, 김관진 국방장관의 영접을 받고 있다
ⓒ 인수위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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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최근 국방부가 그 국군정신전력학교와 같은 장병 정신교육 기관인 국방정신전력원을 연내에 설립하기로 했다고 한다. 국방부는 2012년 천안함 사건 이후 꾸준히 제기된 정신교육 강화 필요성을 추진 근거로 들고 있다. 장병 정신교육을 한 기관에서 체계적으로 진행함으로써 전문성과 일관성을 갖추겠다는 나름의 포부(?)도 덧붙였다.

국방부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새로 설립되는 국방정신전력원은 교수진 등 40여명의 인력으로 꾸려진다고 한다. 나는 그 40여명의 교수진이 과연 어떤 사람들로 꾸려질지 자못 궁금하다. 그들이 어떤 교육과정을 통해 전문적이고 일관되게 장병 정신교육을 펼칠 것인지도 무척 궁금하다. 국방부에 제2의 이선근이라도 나타난 것일까. 시대착오적인 장병 정신교육을 호기롭게 외치게 하는 그들의 뒷배경에 박정희 시대의 유산을 그리워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의중이 깔려 있다고 말하면 지나칠까.

정신교육의 대상인 '정신'이 무엇인가. 물정 모르는 사전 편찬자들이 풀이해 놓은 도덕 의식이나 의지, 덕성일까. 나는 결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만약 정말 그런 종류의 정신을 기르고 싶다면 수동적인 교육이 아니라 직접 체험이나 활동을 통해야 하지 않을까.

실상 정신교육을 통해 기르는 것은 체제에 순응하고 명령에 복종하는 태도다. 권위에 순응하고 권력에 대한 비판을 스스로 삼가는 고분고분한 자세다. "정신교육 좀 받아야겠구나." 군대와 학교에서 '삐딱한' 사병이나 학생들을 향해 지휘관이나 교사가 자주 내뱉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잘 알고 있다. 이 말 끝에는 '정신' 교육이 아니라 '육체' 교육이 뒤따른다는 것을. 얼차려나 물리적 체벌이 정신교육을 빙자한 육체 교육의 내용과 형식을 차지했음을.

국방정신전력원 설립은 즉각 중지돼야

장병 정신교육을 위한 기관 설립 추진은 시대착오적이다. 천안함 사건이 그곳에 탄 군인들의 '정신(?)'이 약해서 터졌나. 국방정신전력원 설립 추진이 혹여 천안함 사건에 대한 정부 발표를 믿지 못했던 당시의 사회적인 분위기 같은 것을 염두에 둔 것이라면 더욱 문제다. 뻔한 정신교육을 통해 시민들(군인은 군복 입은 시민이다!)의 합리적인 의심이나 비판, 정당한 문제 제기를 제어할 수 있다고 보는가. 이야말로 대한민국의 60만 군인들에 대한 치욕스러운 모욕이다.

그러므로 국방정신전력원 설립 추진은 즉각 중지되어야 한다. 대신 그 설립, 운용에 소요되는 비용은 차라리 장병 독서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데 투입하라. 장병들이 자유롭게 소통하면서 이야기할 수 있는 격조 있는 토론 대회나 글쓰기 대회를 여는 데 써도 좋다. 자유로운 독서와 토론으로 비판적 사고력을 기를 수 있는 병영 문화야말로 진정한 정신교육을 가능케 하는 가장 근본적인 토대가 아닐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정신교육, #국방정신전력원, #이선근, #박정희,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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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살림터, 2017)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살림터, 2016) "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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