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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우에 떨어진 꽃들이 땅에 기대어 쉬고 있다.
▲ 낙화 폭우에 떨어진 꽃들이 땅에 기대어 쉬고 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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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내린 폭우에 떨어진 꽃의 빛은 아직도 빛깔을 잃지 않았다. 하루나 이틀 뒤면 시들고, 며칠 지나면 자기가 기댄 흙의 빛깔을 닮아가다 흙이 될 것이다. 자기를 키워준 흙, 떨어져 이젠 흙이 되어 또 누군가를 키워낼 것이다. "흙에서 온 몸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라는 말의 현실을 본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기에 흙으로 돌아간다. 흙으로 돌아갈 존재, 그것은 허무한 것이 아니라 끝없는 윤회의 삶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흙으로 돌아가 누군가의 일부로 다시 태어나는 것, 부활이라고 해도 좋겠다.

그런 삶인데, 인간은 끊임없이 추억하는 존재다. 추억에 머물지 않고 다시 살려내고 싶어하는 것이 인간 내면에는 깊이 자리하고 있다. 어떤 개인에 대해 다시 살려낸다는 것은 그 삶을 대신 살아간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예수를 살고, 부처로 사는 것처럼, 그 누군가를 추억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마음 깊이 사무치면 그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폭우에 떨어진 고염이 땅에 기대어 쉬고 있다.
▲ 고염 폭우에 떨어진 고염이 땅에 기대어 쉬고 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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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쉼을 허하라."

그들은 그렇게 말하는 듯했다. 다 익지 않고 떨어졌다고 해도, 그것까지가 나의 삶의 몫이었으니 이젠 편안히 땅에 기대어 쉬고 싶다고 말하는 듯하다.

어차피 흙으로 돌아갈 터인데 그 시기가 조금 일찍 찾아왔을 뿐이다. 슬퍼하지 마라. 그들에 대한 애도는 어디까지가 좋을까 문득 생각해 본다. 그저 잠시라도 눈길을 주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충분하다 여기지 않을까 싶다. 아니, 누가 눈여겨 보지 않아도 자신을 키워준 그 땅, 아버지의 땅에 기대어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할 것 같다.

주술일까? 다시 유신의 망령이 부활하는 듯한 현실, 다시 추억되는 현실, 다 끝난 줄 알았던 이들의 부활, 이런 것들이 내 삶의 현실에 어떻게 다가올 것인가?

때이른 낙엽, 나무에 붙어있을 때에도 이파리 뒷면에 빗방울을 맺었을까?
▲ 낙엽 때이른 낙엽, 나무에 붙어있을 때에도 이파리 뒷면에 빗방울을 맺었을까?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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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의 때를 살아가는 삶이 아름답다. 동시에 자기의 때를 다 살지 못한 것들은 슬프다. 자기의 때가 아닌데 설치는 것들은 추잡하다. 추잡함을 감추는 것도 모자라 미화시키는 것은 토악질 난다. 오로지 자기의 이기적인 욕심만 채우기 위해 살았던 것들이 이웃을 위한다고 하고, 나라와 민족을 위한다고 떠들어 대면 구역질이 난다.

그런데, 그런 시대가 우리 앞에 펼쳐지고 있다. 그것은 아니라고 한 사람 두 사람 외치지만, 그 외침은 묻혀버린다. 마치 생매장하는 돼지나 소나 가금류처럼 인정사정없이 파묻어 버린다. 그리고 기껏 한다는 말이, 먹기 위해서 키우는 것들이니 전염병에 걸렸으니 당연한 조치라고 한다. 인간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고, 그들에게 모든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다.

마치 국민을 위한다면서 모든 희생을 오로지 국민들에게만 강요하는 정치인들처럼 말이다. 그들이 구걸할 때는 오로지 선거철 뿐이다. 그 시간만 지나면, 국민 위에 군림하고 재선을 위해서만 일한다.

지난해 가을 떨어진 고염의 꼭지만 남아 땅의 빛깔을 닮아가고 있다.
▲ 고염 지난해 가을 떨어진 고염의 꼭지만 남아 땅의 빛깔을 닮아가고 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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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가 되면 이렇게 놓고 쉼의 시간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름다운 것이다. 행여 누가 그것을 아름답게 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순리요, 자신을 키워준 땅에 대한 보답이다.

지난 가을에 떨어진 고염의 꼭지가 점점 땅의 빛깔을 닮아가고 있다. 머지않아 땅의 빛깔만 닮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보듬고 피어나는 흙이 될 것이다. 생명을 보듬고 피워내는 땅은 어머니의 땅, 그 생명의 쉼을 주고 흙으로 돌아가게 하는 땅은 아버지의 땅이다.

누구나 어머니의 땅으로부터 와서 아버지의 땅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결국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인생이건만 허무하지 않은 것이다. 허무한 것은 흙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떠도는 망령이요, 자기의 때가 다한 줄 모르고 살아가는 것일 터이다. 그리고 그런 것을 기대는 삶이 허무한 삶일 터이다.

흙으로부터 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때에는 그 빛을 닮을 일이다.
▲ 돌아감 흙으로부터 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때에는 그 빛을 닮을 일이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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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일까? 아니면 더 오랜 세월이 지난 것일까? 느티나무의 이파리가 잎맥만 흔적으로 남아 새 생명을 보듬고 있다. 아마도 저 초록생명의 몸 어딘가에는 느티나무 이파리의 흔적을 품고 있을 것이다. 그를 품고 있으되 전혀 다른 존재. 이것이 부활 혹은 윤회의 본질이 아닐까?

저도의 추억, 그에게는 아련하고 간직하고 싶은 추억일지 모르겠으나 그 시대를 살았던 누군가에게 그 추억은 폭력적인 것이다. 개인의 추억이 아니라, 한 나라의 대통령과 관련된 추억이기에 그 추억의 의미가 자뭇 궁금해지는 것이다. 단순한 추억인지 아니면, 유신독재에 대한 추억인지. 그리고 휴가를 마치자 마자 유신헌법의 골자를 만드는데 참여했으며, 역사적으로 국가를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수많은 이들에게 아픔을 준 일들을 기획했던 이가 비서실장으로 임명했다.

다 끝난 줄 알았던, 이젠 역사의 한 켠에서 조용히 사라질 것이라 여겨졌던 망령이 다시금 부활하는 듯하여 섬뜩하다. 마치 떨어졌던 꽃들과 이파리와 그 모든 것들이 아버지의 땅으로 절대로 돌아갈 수 없다고 항변하는 듯하여 안타깝기도 하고.


태그:#인생, #아버지의 땅, #낙엽, #고염, #저도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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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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