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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들이, 청소년들이 책을 읽는 때는 언제일까. 이 질문은 오래 전에 아이들의 놀이 행태를 관찰한 어떤 텔레비전 프로를 생각나게 한다.

한 유치원의 놀이 공간에 몰래 카메라를 설치해두고, 아이들이 유치원에 오기 전에, 그 곳에 있었던 장난감을 모두 치워서, 장난감이 하나도 없는 곳에서 아이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며, 어떻게 노는지를 관찰하였다.

어제까지만 해도 장난감을 이것저것 가지고 놀던 아이들은 장난감이 깨끗하게 치워진 유치원 교실을 매우 어색해했고 낯설어 하였다. 심지어 어찌할 바를 몰라 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교실은 다시 왁자지껄 시끄러워졌고, 아이들은 서로 뛰고 달리며 소리치고, 장난을 치며 재미있게 놀았다. 제법 창의적인 놀이를 개발하며 어울리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아이들은 장난감이 없어야 더 잘 어울려서 논다는 것이 결론이었다.

아이들이 책을 읽는 것도 사실 책을 읽을 수밖에 없을 때 읽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심심할 때, 할 일이 없을 때 책을 읽기 시작한다는 말이다. 아이들이 바쁘거나 다른 '장난감'이 있으면 책을 가까이 할 수 없다. 지금 아이들에게 '장난감'은 스마트폰이고 컴퓨터이며, 텔레비전이고 닌텐도이며 시각적인 자극을 주는 모든 것들이다.

그러므로 아이들은 심심할 틈이 없다. 곧 책을 읽을 마음의 빈 공간이 없다는 말이다. 스마트폰은 아이들에게 엄청난 유혹이고, 엄청난 장난감이며, 엄청난 놀이동산이다. 세상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독보적인 존재 앞에서 독서는 단지 실낱같은 생명줄만 잡고 있는 모습으로 보일 뿐인데, 아이들을 심심하게 만들고 장난감을 치우는 문제는 우리 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할 과제임을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고 있다.

최첨단의 시대일수록 고전의 가치는 빛나는 법

고전이 건네는 말 1.
▲ 수유너머R의 <너는 네가 되어야 한다> 고전이 건네는 말 1.
ⓒ 너머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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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스마트폰의 시대, 자극의 시대에 인문학 연구공동체를 표방하는 '수유너머R'에서 '10대를 위한 고전 읽기' 강좌의 결실로 내놓은 책 시리즈 <너는 네가 되어야 한다>와 <나를 위해 공부하라>는 자칫 무모한 시도같이 보이기도 한다. 이런 최첨단의 시대에 고전이라니. 그러나 이 책들은 이러한 시대일수록 고전의 가치는 빛나는 법이라고, 스마트폰 대신 고전을 청소년들의 손에 쥐여주자고 한다. 기획자는 고전의 소중함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고전은 오래되었으나 절대 나이 들지 않는 책입니다. 그 속에는 시대를 넘어온 물음이 담겨 있기 때문이지요. 오랜 시간 사람들은 고전이 던지는 물음을 읽어내며 자신의 삶을 가꾸어 왔습니다. 그런 점에서 고전은 한 권의 책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의 삶이 연결된 질문의 덩어리, 생각의 교차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고전 속에 담긴 물음을 읽으며 오랜 시간 이어져 온 배움의 과정에 동참하게 됩니다.(기획자의 말 : 5쪽)

이렇게 이 책들은 청소년들에게 고전의 묘한 맛과 향기를 조근조근 알아듣기 쉽게 건네고자 한다. 그리고 그 고전 속에 담긴 물음을 읽어내는 방식은 '문장'을 통해서이다. 고전을 읽다보면 유독 눈이 머물고 가슴을 뛰게 하는 문장이 있을 때, 그 문장을 붙잡고 생각을 이끌어가라는 것이다. 그러면 사유의 물꼬가 트이고 삶을 보는 새로운 눈이 열리게 된다고 했는데, 이 책들이 전개되어 나가는 과정 또한 그런 방식이다.

이를테면, 책의 제목인 '너는 네가 되어야 한다'는 말은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가 종종 했던 말인데, 당연해 보이는 이 문장은 우리가 정작 우리 자신을 제대로 잘 모른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문장이다. 그래서 니체는 <도덕의 계보>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필연적으로 우리 자신에게 이방인이다.

이 한 문장은 우리에게 많은 질문을 던진다. '나는 정말 나를 가장 모르는 사람일까.' '나를 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나는 나를 어떻게 진정한 나로 만들 수 있을까.'

'나를 위해 공부하라'는 제목도 그러하다. 이는 공자의 논어 문장에서 가져왔다.

古之學者爲己 今之學者爲人(고지학자위기 금지학자위인)
옛날 사람들은 자기를 위해 배웠는데, 지금 사람들은 남을 위해 배우는구나.

공자는 부모의 칭찬이나 주변의 평가, 남에게 보여주는 외형적인 성공을 위해서 공부하기보다, 군자가 되는 공부, 더 나은 나, 성숙한 인격을 위해서 공부하라고 한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말라'는 말과도 통한다. 니체와 공자의 사상을 옮긴 두 제목은 그러므로 같은 말임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이 책은 어려운 고전의 문턱에서 주춤거리고 있는 청소년들에게 '문장'이 열어 보여주는 길로 들어서게 한다. 이런 방식을 고전 공부의 요긴한 방식의 하나로 제시하고 있다. 한 장이 끝날 때마다 '다시 읽는 씨앗 문장'을 실어놓은 것도 그런 시도일 것이다. 청소년들이 고전을 통째로 다 해석하고 이해하기에는 접근하기 어려운 간극이 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에 속박된 청소년들에게 고전은 '자유의 균형추'

고전이 건네는 말 2.
▲ 수유너머R의 <나를 위해 공부하라> 고전이 건네는 말 2.
ⓒ 너머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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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와 공자 외에, 이 책에는 '영혼의 램프에 불꽃이 붙는 순간을 맞이했던' 철학자와 작가, 사상가들을 소개하고, 그들의 사상을 풀어낸 문장을 통해 생각의 중심으로 가만히 다가가게 한다.

동양의 사상가로는 공자와 장자라는 두 줄기와 근대의 선구자 루쉰을 소개하고 있으며, 서양의 사상가로는 니체를 비롯하여 르네상스 시대 인문학자이며 소설가인 프랑수아 라블레 그리스 비극 시인 아이스킬로스,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 <변신>의 작가 프란츠 카프카, 자연주의 사상가 루소 그리고 철학자 플라톤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통념을 깨고 넘어서기를 촉구하며 쓸모없는 것들의 쓸모 있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기도 하고(장자), 내 속에는 착한 나도 있고 악한 나도 있으며, 이성적인 나도 있지만 충동적인 나도 있으므로, 이런 다양한 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하나의 생각에 사로잡혀 다른 생각을 억압해 왔던 나를 돌아보게도 한다(프로이트).

또한 인간의 진정한 모습은 외면이 아니라 내면에 있고, 인간의 가치는 본연의 모습을 잘 간직하는데 있다며, 방황하고 번민하는 사람들이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내면'이라는 자리를 마련해주기도 하고(루소), 우리가 어떤 직업을 가지고 어떤 활동에 종사하더라도, 그 모든 것을 넘어서서 언제나 철학을 하고, 맑은 정신으로 사고할 수 있는 생활양식을 지켜, 우리 삶이 곧 우리의 철학이 되도록 하라며 이끌어주기도 한다(플라톤).

고전은 결국 '나에게 이르는 길'이다. 내게 깊이 이르지 못하고는 세상에도 다가갈 수 없다. 그래서 루쉰이 진보와 개혁의 이념에 도취되었다가 지친 청년에게 해준 말을 소개하며 느끼는 저자의 감동은 한 줄기 맑은 진정성으로 다가온다.

숨 가쁜 개혁의 길에서 지친 청년에게 루쉰은 잠시 쉬라고 말합니다. 희망을 잃지 말라고 말하는 대신 잠시 쉬라고 합니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영원히 몰락하지 말고, 잠시 쉬면서 어둠의 모든 것을 보라고 합니다. 그러다 지금의 절망도 희망만큼이나 허망하다는 걸 깨닫고, 발걸음을 다시 떼길 바란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애인을 위로하라는 말이 제일 와 닿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민중을 위로하기 전에 우선 내 옆의 애인을 위로하고, 민중의 굶주림을 타개하기 전에 우선 내 옆의 애인을 굶기지 말라는 겁니다. 억압받는 민중에 대한 사랑도 내 옆에서 울고 있는 애인에 대한 사랑에서 생긴다는 말이겠죠. 참, 감동적이지 않습니까?(<나를 위해 공부하라> 151쪽)

이런 감동이 바로 고전이 주는 기쁨이고, 우리가 성숙한 인격에 다다르는 길이며, 우리 영혼의 두드림일 것이다.

청소년들에게는 균형이 필요하다. 물질과 정신의 균형 말이다. 스마트폰에 속박된 청소년들에게 고전은 자유의 균형추이다. 아이들이 생각하는 힘을 기르지 못하고, 균형에 대한 깊은 통찰이 없다면 우리의 건강한 미래는 어디에도 찾기 어려울 거다.

신에게서 불을 가져와 인간에게 주었지만, 제우스의 노여움으로 절벽에 묶여,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 먹히는 형벌을 받은 프로메테우스처럼, 고전을 청소년에게 안겨주는 일은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나 불이 인간을 밝게 하였듯이 고전은 청소년들을 밝게 하는 '영혼의 램프'이기에 여전히 '너머'의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이 고전을 만지고 읽고 질문하며 희망을 '만들어가고' 있는 게 아닐까.

덧붙이는 글 | <너는 네가 되어야 한다>, 수유너머R, 너머학교, 2013년 7월 15일, 1만 5천 원
<나를 위해 공부하라>, 수유너머R, 너머학교, 2013년 7월 15일, 1만 5천 원



너는 네가 되어야 한다

수유너머 R 지음, 김진화 그림, 너머학교(2013)


태그:#고전교실, #수유너머, #스마트폰, #루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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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합천의 작은 대안고등학교에서 아이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시집 <느티나무 그늘 아래로>(내일을 여는 책), <너를 놓치다>(푸른사상사)을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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