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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능선의 원추리꽃과 초원
 지리산 능선의 원추리꽃과 초원
ⓒ 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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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능선 비비추꽃과 초원
 지리산 능선 비비추꽃과 초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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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지리산은 천상의 화원을 이루고 있다. 지리산이 온통 산꽃으로 가득하다. 앙증맞게 작은 산꽃으로 보랏빛을 띠는 이질풀부터 여름 지리산을 대표하는 노란 원추리의 군무가 화려하다. 종모양의 보랏빛 잔대꽃이 하늘거리고, 잎에서 느끼는 생명력을 그대로 꽃으로 밀어올리는 비비추, 주황빛 나래를 펼치며 하늘로 오르려는 나리꽃, 늘 그리움으로 다가오는 주황빛 동자꽃, 가장 신선한 신사의 꽃 산수국 등 지리산은 온통 천상의 화원을 이루고 있다.

8월의 지리산 종주는 보통 하늘의 별따기라고 말한다. 지리산을 종주하기 위해서는 지리산 능선의 대피소를 예약해야 하는데, 대피소 예약이 그만큼 어렵다는 말이다. 국립공원 대피소는 시설이용일로부터 15일 전 오전 10시 정각부터 국립공원관리공단 홈페이지를 통해서만 예약이 가능하다. 지리산 이용자 정원은 648명, 설악산은 249명, 덕유산은 45명으로, 여름 성수기는 하루 평균 최대 접속자수가 약 4만6000여 명으로 탐방객 대비 시설 정원은 약 0.4%만 가능하기 때문에 힘들다는 것이다.  

8월 1일의 종주산행을 위하여 7월 17일(수) 오전 10시 1초에 지리산 홈페이지를 열어 예약클릭을 했는데, 즉시 홈페이지가 마비되고 접속자가 많아 다시 접속해달라는 안내만 30분간 떴다. 그래서 포기하고 있었는데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한 시간 후에 접속해 보니 다행히 세석대피소에 예약이 되어 있었다.

지리산 종주길에 핀 잔대꽃
 지리산 종주길에 핀 잔대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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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원추리
 지리산 원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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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목) 오전 6시 35분 광주버스터미널에서 구례행 버스를 탔다. 풀꽃산행 회장 윤영조 선생과 동행했다. 구례에서 오전 8시 20분 노고단(성삼재)행 버스에 올랐다. 언제나 그렇듯이 천은사 입구 매표소에서 실랑이가 벌어졌다. 버스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천은사문화재 관람료 1600원 징수에 항의하는 것이다. 버스 안의 어떤 사람이 순전히 도둑 심보라고 항의하자 징수원은 화를 내면서 자기 나이가 60인데 내가 왜 도둑이냐고 위압적으로 악을 쓰며 옥신각신 다투었다.

오전 9시 성삼재에서 노고단으로 출발했다. 2.7km 오르는 길은 포장이 되어 있는 길이어서 순탄하다. 오전 9시 40분 노고단에 도착했다. 노고단 정상은 매시간 정시에 160명의 신청을 받은 사람에게만 오르게 한다. 노고단의 자연환경을 보호하기 위하여 출입시간을 통제하는 것이다.

1박 2일 35km 정도의 지리산 종주 일정으로 노고단 정상 탐방을 하지 못하고 노고단 정상 옆으로 도는 길을 따라 반야봉으로 가는 길에 올랐다. 요즈음 지리산 산행이 예전처럼 자유롭지 않다. 예전에는 대피소를 예약하지 않고 무조건 올라 대피소의 잠자리가 없으면 대피소 주변에서 비박을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지금은 대피소를 예약하지 않으면 지리산에서 밤을 보낼 수가 없다. 따라서 대피소 예약을 하지 않은 사람은 종주가 불가능하다.

지리산국립공원에서는 2013년 6월부터 탐방객의 안전사고 예방과 공원자연자원 보호를 위하여 탐방로 별로 산행가능 입산시간 및 통제시간을 지정하여 실시하고 있다. 1일 밤 세석대피소를 예약하였는데, 세석대피소 앞에 있는 벽소령대피소를 오후 2시에 통과여야 한다.

그러나 대피소를 예약한 사람은 통제시간의 2시간의 연장이 가능하여서 적어도 오후 4시 이전에는 벽소령 대피소를 통과하여야 한다. 이 입산시간제가 1박 2일 지리산 종주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많은 부담이 된다. 오전 9시에 성삼재를 출발하여 16.8km를 오후 4시 이전에 통과하여야 한다. 보통의 산행은 2km를 한 시간 이내에 주파하는데, 점심까지 먹어야 하니 너무 벅차다.

여름 산행은 더워서 체력에 무리가 많기 때문에 더 힘들다. 그래서 지리산 종주는 2박 3일 정도로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요즈음 대피소 예약이 어렵기 때문에 1박 2일로 하는 경우가 많다. 어려운 지리산 종주이지만 그래도 푸른 초목이 있고, 맑은 하늘과 아름다운 꽃들이 가득하여 언제나 그립다.

지리산 산수국
 지리산 산수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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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고단에서 반야봉 입구 노루목에 이르는 길엔 진홍색 이질꽃이 가득하다. 꽃은 지름이 1mm 내외로 앙증맞은 꽃잎 5개가 붙어 있다. 이질 설사 복통에 효과가 좋다고 하여 이질풀이라는 이름이 붙었고, 잎의 모양이 쥐의 모습과 닮았다고 하여 서장초라고도 한단다.    

지리산의 여름을 대표하는 꽃은 단연 원추리꽃이다. 특히 임걸령에 약간의 초원이 있는데, 초원과 함게 어우러진 노란 원추리꽃이 너무 아름답고 시원하다. 원추리꽃은 우리나라 어느 산에나 많지만 특히 지리산 능선에 가득하여 지리산 여름꽃의 대명사가 되어 있다. 풀은 약 1m 정도로 크게 자라지만 노란꽃들이 녹색의 잎과 함께 어우러져 강한 생명력을 주는 꽃이다.

지리산 종주 산행의 가장 좋은 점 중 하나는 곳곳에 샘이 있다는 것이다. 임걸령, 화개재에 샘이 있고, 연하천대피소에 또 샘이 있다. 오후 1시 30분에 연하천대피소에서 점심을 먹었다. 연하천대피소를 출발하는 순간 갑자기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여름 지리산 종주 중에는 흔히 있는 일이기 때문에 대피소에 모인 사람들이 모두 비옷을 입었다.

빗길을 걷는 산행은 더 힘들다. 비옷 때문에 땀이 배출되지 않기 때문에 몸에 열이 높아지고 땀이 더 많이 난다. 쏟아지는 빗줄기 때문에 신발이 젖고, 안경마저 빗물에 보이지 않는다. 여러 가지 불편한 것이 많지만 오후 4시까지 벽소령대피소를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발걸음을 재촉한다.

내내 빗속을 뚫고 오후 3시 30분에 벽소령대피소에 도착했다. 벽소령대피소 옆 초원에도 노란 원추리꽃들이 가득하다. 빗물을 머금은 원추리는 더욱 싱그럽다. 벽소령대피소에서 세석대피소까지 6.3km, 만만치 않은 거리다. 비는 조금 멈추었다가 다시 내린다. 오후 산행은 빗속을 뚫고 가는 길이다.

지리산 나리꽃
 지리산 나리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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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름 잘 몰라 죄송해요. 아시는 분 꼬리말에 올려 주세요.
 꽃이름 잘 몰라 죄송해요. 아시는 분 꼬리말에 올려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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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를 맞고 있는 꽃들은 약간 눌려 있는 모습이다. 잔대꽃은 꽃줄기에 보랏빛 종모양의 꽃들이 앙증맞게 걸려 있다. 어느 시골학교에서 울려오는 종소리 퍼지듯 빛방울을 떨어뜨리고 있다. 비비추꽃도 보랏빛이다. 비비추는 잎이 널찍하여 생명력을 느낄 수 있는 풀이다. 비를 머금은 꽃은 약간 처져 있다. 그러나 풀잎들이 너무 싱그럽다. 주변의 나무들도 그 싱그러움을 마음껏 뽐내고 있다. 빗속에서도 휘파람새가 계속 울어 무거운 발걸음을 가볍게 해 준다.

여름 지리산 능선을 계속 따라오는 눈망울이 있다. 주황빛 동자꽃이다. 동자꽃은 지름이 4cm 정도이다. 꽃받침 긴 곤봉 모양이고 끝이 5개로 갈라진 꽃잎이 있다. 특유의 주황빛을 띤다. 동자꽃도 우리나라 높은 산에는 대부분 피어 있지만 지리산 능선에는 계속 길을 따라 무더기져 피어 있다.

강원도 어느 산골짜기 암자에는 스님과 부모가 없는 어린 동자가 함께 살고 있었단다. 겨울 어느 날 스님은 겨울 준비를 하기 위해 어린 동자를 암자에 홀로 남겨두고 마을로 내려갔는데, 산에 많은 눈이 내려 한길이나 쌓였고, 스님은 절에 돌아 갈 수가 없었단다. 눈이 녹을 무렵 스님이 절에 도착했을 때에는 어린 동자는 마당 끝에 앉아서 죽어 있었단다.

그 이듬해 여름이 되자 동자의 무덤가에는 꼭 동자의 얼굴 같은 붉은 빛의 꽃들이 마을로 가는 길을 향해 피어나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죽은 동자를 생각해 이 꽃을 '동자꽃'이라고 불렀단다.

지리산 동자꽃
 지리산 동자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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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6시 30분 세석대피소에 도착할 무렵 비가 그쳤다. 무더위와 비를 뚫고 도착한 23km의 지리산 첫날 코스가 끝났다. 190명이 정원인 세석대피소에는 많은 사람들이 저녁을 준비하고 있다. 대피소 이용료 8000원, 담요 대여료 한 장당 2000원이면 지리산에서 가장 평온한 세석평전에서 꿈의 나래를 펼칠 수 있어서 좋았다.

다음 날 아침 6시에 세석대피소에서 출발하였다. 장터목대피소까지 3.4km, 장터목대피소에서 천왕봉까지 1,7km이다. 하늘은 너무 맑다. 어제 비가 온 뒤끝이어서 멀리 보이는 지리산 줄기마다 구름들이 넘나들며 그 특유의 지리산 운무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다. 촛대봉에서 바라본 천왕봉 주변의 운무, 멀리 걸어왔던 노고단, 반야봉에 걸쳐진 운무가 장관이다. 역시 지리산 능선이다.

여름에 지리산 종주하면서 늘 찾는 꽃이 있었다. 세석대피소에서 장터목대피소로 넘어가는 능선에 피는 하얀 구절초이다. 보통 구절초는 9월경 높은 산 능선에 그 순백의 자태를 자랑하며 피는 꽃이다. 늘 여름 지리산을 종주하다 보면 장터목 가는 길목 그곳엔 늘 하얀 구절초 꽃이 피어 있었던 기억이 또렷하다. 아침부터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면서도 하얀 구절초꽃을 찾으며 나아갔다. 그런데 진짜 늘 보았던 그곳에 하얀 구절초꽃들이 몇 송이 피어 있었다. 너무나 반가웠다.

지리산 구절초
 지리산 구절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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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이 특산인 지리터리꽃은 아직 꽃망울만 머금고 있다. 대신 장터목 지나 고사목 지대에 넘실거리는 풀들 사이사이 많은 꽃들이 얼굴을 내밀고 있었고, 바위 아래 산수국도 고고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 오이풀꽃의 보랏빛 손짓이며, 여려 형태의 하얀 취꽃들의 향연도 향그럽다. 이름을 알 수 없은 수많은 꽃들에겐 미안하다.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주어야 하는데.

오전 8시 지리산 천왕봉에서 바라본 줄기들의 운무가 장관이다. 사방을 빙 둘러 보니 구름들이 지리산을 가득 둘러싸고 있다. 멀리 걸어온 길 노고단 능선에 이르는 푸른 줄기가 눈부시다. 그 줄기 사이사이 넘나드는 구름들은 하늘 높이 퍼져 있다. 멀리 덕유산 능선은 구름 속에 들어 희미한 윤곽의 일부만 보인다.

지리산 천왕봉에서 본 운무
 지리산 천왕봉에서 본 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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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에 1박 2일의 지리산 종주 35km 산행은 체력의 한계를 느끼게 하는 힘든 여정임에는 틀림이 없다. 헉헉대고, 물 마시고, 줄줄 흘리는 땀을 이지지 못한다.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그대로 주저앉고 싶다. 하산하는 발걸음은 떨어지지 않는다. 무릎이 시큰거린다. 헛발을 디딜 것 같아 불안하다. 동행한 윤영조 회장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리산에 대한 정은 더욱 굳어진다. 오전 11시 30분 지리산 출입지 백무동에 도착했다.


태그:#지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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