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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후보시절 박근혜 대통령이 내세운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이명박 대통령의 대북 적대정책과는 다를 것이란 기대를 받았다. 그러나 취임 5개월 동안 현재까지 남북관계는 악화일로를 걸어왔고 어떤 정치적 파고에도 끄떡없던 개성공단은 사실상 폐쇄상태다. '남북 간 신뢰를 만들겠다'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정책효용성이 있는 건지, 오히려 불신의 골을 깊게 하는 건 아닌지 짚어볼 때가 됐다. 박근혜 정부가, 또 김정은 정권이 서로에게 취한 조치들을 짚어보면서 '한반도 불신 프로세스'의 원인은 무엇인지 알아본다. [편집자말]
지난 2012년 2월 28일 당시 새누리당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북한이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일원이 돼 한국 및 주변국과의 신뢰를 쌓도록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추진해야 한다"고 발언하고 있다.
 지난 2012년 2월 28일 당시 새누리당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북한이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일원이 돼 한국 및 주변국과의 신뢰를 쌓도록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추진해야 한다"고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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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간 신뢰를 위해서는 우선 약속을 지켜야 합니다. 기존 합의에 담긴 평화와 상호존중의 정신을 실천하며, 세부 사항은 현실에 맞게 조정해 나갈 것입니다. 신뢰를 쌓기 위해서는 다양한 대화 채널이 열려 있어야 합니다. 남북관계 발전을 위해서라면 북한의 지도자와도 만나겠습니다." - 2012년 11월 5일 박근혜 후보의 통일외교안보정책공약 발표 중에서

지난 대선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대북정책공약은 대체로 '보수 정당 후보지만 전향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북한과의 정상회담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대화 중시' 태도와 정치 상황과는 관계없이 교류·협력과 인도적 지원은 유지하겠다는 점, 과거 정부가 맺은 6·15선언과 10·4선언도 이행할 수 있다고 밝히면서 이명박 정부보다 유화적인 자세를 가진 걸로 평가됐다.

이명박 정부 5년간 남북관계 악화로, 북한과 변변한 대화의 장도 열지 못하던 당시 상황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인 문재인 민주당 후보가 아니라 박 후보가 당선돼도 남북관계는 적지 않은 변화를 맞이할 것이라 예상됐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시절에는 천안함사건에 대응해 이명박 정부가 내린 5·24 대북제재 조치가 언제 해제될지 관심사일 정도였고, 통일 전 서독이 동독에 대가를 지불하며 정치범을 데려온 프라이카우프가 '한국판'으로 실시될 거란 예측도 나왔다.

물론, 당선 뒤 대선 공약을 말한 그대로 이행하기는 쉽지 않다. 아무래도 공약이란 게 표를 모으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고, 지난 대선 때 새누리당은 중도층 공략을 위해 의도적으로 공약에서 보수색을 많이 뺐기 때문이다. 대선 때 화두였던 경제 민주화 공약이 정부 정책 마련단계에서 하나하나 힘을 잃고 있는 게 한 예이고 이미 '대폭 후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쉽사리 평가를 내놓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정부는 박 대통령 취임 5개월이 지난 현재 상황에서도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어떤 정책으로 구현할지 정책자료도 내놓지 못했다. 그렇다면 박근혜 정부가 지난 5개월간 취한 대북 조치를 통해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평가할 수밖에 없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정책자료도 아직까지 안 나와


박근혜 정부가 북한에 취한 첫 조치는, 지난 4월 11일 류길재 통일부장관이 발표한 대북 대화 제의 성명이다. 북한과 한미간의 군사적 긴장이 높아진 상태에서 북한이 개성공단 진입을 차단(4월 3일)하고 북측 노동자를 철수(4월 8일)시키는 등 개성공단 파행이 시작된 시점에서 정부는 북한에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을 제의했다.

당시 정부는 "북한 측이 제기하길 원하는 사안들을 논의하기 위해서라도 대화의 장으로 나오기 바란다"고 열린 자세를 취했다. 이는 보수-진보를 가리지 않고 좋은 평가를 받았고, 대북전단을 살포하던 보수성향 시민단체들도 한시적으로 전단살포를 중지하는 등 협조를 얻어내기도 했다.

그러나 북한은 쉽사리 대화의 장으로 나오지 않았고, 정부는 다시 개성공단 실무회담을 제의하며 "26일 오전까지 대화 불응 시엔 중대조치를 취하겠다"는 성명을 내기에 이른다. 26일 정부는 개성공단에 잔류하고 있던 남측 인원들을 전원 귀환시키는 결정을 내렸다. 기업들이 내지 않은 미지급 임금과 세금 등 1300만 달러를 정부가 대신 지급하면서까지 완전철수를 서둘렀다.

정부는 "국민 안전이 최우선"이라고 완전귀환 결정 이유를 설명했다. 박 대통령은 지난 5월 31일 청와대 기자단 오찬에서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것과 관련 "마지막 순간까지 공단에 남은 우리 국민 7명의 안위가 어떻게 될까를 놓고 조마조마하며 인질이 되는 것 아닌가 생각했다. 아주 긴박했던 순간은 참 상상하기 싫을 정도였다"라고 털어놨다.

그러나 당시 상황에 대한 입주기업 쪽 얘기는 다르다. 최근 입주기업들은 북한의 신변위협도 없었고 먹거리가 풍부하진 않았지만 주식으로 먹을 정도는 공단 내에 충분히 있었다고 주장하면서 정부가 완전철수를 서둘렀다고 비판하고 있다. 결국 박 대통령을 비롯한 최고위 안보정책 결정자들이 북한에 대해 가진 '깊은 불신'이 섣부른 '완전 철수'를 결정한 원인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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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차 개성공단 남북당국실무회담이 지난 7월 25일 개성공단 종합지원센터 회의실에서 열렸다. 양측 대표단이 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제6차 개성공단 남북당국실무회담이 지난 7월 25일 개성공단 종합지원센터 회의실에서 열렸다. 양측 대표단이 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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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정부가 줄기차게 요구한 당국 간 회담에 북한이 응한 것은 6월 6일이나 돼서였다. 남북은 같은 달 12~13일 서울에서 회담을 열기로 했지만, 회담 준비 실무접촉 과정에서 '격' 문제가 불거졌다. 정부는 통일부장관의 회담 상대로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이 나와야 한다고 주장했고, 북한의 반발로 결국 회담이 무산됐다.

정부는 통일전선부장을 회담 상대로 요구한 건 "새로운 남북관계를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개성공단 문제에 대해 실질적인 권한을 가진 이가 회담장에 나와야 그 약속을 믿을 수 있다는 것이고, 아무리 권한을 위임받았다 해도 격이 안 맞는 회담 상대는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새로운 남북관계' 논리는 정부가 가진 북한에 대한 깊은 불신을 재확인시켰다. 이와 동시에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북한과 이룬 합의도 올바른 것이 아니어서 존중하기 어렵다는 속내를 드러낸 것이기도 하다.

'북한을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기조는 여섯 차례 열렸지만 개성공단 정상화 합의는커녕 남북 당국간 감정의 골만 깊게 파놓은 실무회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정부는 개성공단 중단사태 재발방지 방안으로 '북한의 전적인 책임 인정, 북한의 재발방지 약속'를 고수했다. 정부가 북한에 내세운 건 '이 정도는 해야 믿어줄 수 있다'는 논리였다.

박 대통령은 대선 후보 때 이미 북한에 대한 깊은 불신을 나타냈다. 지난해 11월 8일 외신기자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박 대통령은 "북한은 도발도 많이 하고 약속도 어기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믿는다, 신뢰한다, 이것은 안 된다"며 "또 그렇다고 어떤 보상을 자꾸 줘서 해보려는 것도 안 된다는 게 그동안의 과정을 통해 알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의 대북인식이 깊은 불신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 현재의 대북기조는 쉽사리 바뀌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또 박 대통령의 대북 강경책은 여론의 지지를 받고 있어 정책전환에 대한 압박도 없다. 인사 실패와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미국 성추문 등으로 40%대에 머무르던 박 대통령 지지율은 개성공단 완전 귀환 조치 직후인 지난 5월 50%대를 넘어 현재는 60%대를 기록하고 있다.

"신성시해야 할 북남수뇌 상봉 담화록 공개" 북한도 남한 불신


개성공단 출입차단 119일째인 지난 7월 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회관에서 열린 개성공단 입주기업 긴급 비상대책회의에서 한재권 비상대책위원회 공동대표위원장(왼쪽 세번째)과 입주기업 대표들이 개성공단 정상화를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있다.
▲ 개성공단 입주기업 "남북당국 정상화 조속히 합의해야" 개성공단 출입차단 119일째인 지난 7월 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회관에서 열린 개성공단 입주기업 긴급 비상대책회의에서 한재권 비상대책위원회 공동대표위원장(왼쪽 세번째)과 입주기업 대표들이 개성공단 정상화를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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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남한만 북한을 불신하는 게 아니다. 북한도 남한 정부를 불신하기는 마찬가지다. 남측이 개성공단 정상화 실무회담에서 북측 박철수 대표단장은 "북악산 정점이 (평양) 대성산 정점만큼 청아하고 맑은가"라며 박 대통령의 개성공단 정상화 의지에 의문을 나타냈다. 3차 회담에서 박 단장은 "가장 신성시해야 할 북남수뇌 상봉 담화록을 내부의 정략적 목적을 위해 전면 공개하면서 회담을 완전히 백지화하고 모욕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개성공단 입주기업 사이에서도 점점 정부의 개성공단 정상화 의지를 못 믿겠다는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 30일 개성공단 정상화 촉구 비상대책위원회는 "우리는 지난 6차회담에서 (나온) 북측 제안에 대해 전향적이었다고 본다"고 북측을 긍정평가하기 시작했다. '불신'이 '불신'을 낳고 있는 형국이다.


태그:#불신, #신뢰프로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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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상근기자. 평화를 만들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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