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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디밭 관리를 위해 비 온 후 물이 고인 곳에 흙을 돋아 수평을 마춘다.
▲ 시랑헌 정원 진디밭 관리를 위해 비 온 후 물이 고인 곳에 흙을 돋아 수평을 마춘다.
ⓒ 정부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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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촌한 사람들 대부분 '잡초'가 가장 버거운 상대라고 말한다. 말끔히 베어내도 2주만 지나면 본래대로 돌아가 버린다. 두 번째 벌초 때는 회의감이 들고, 세 번째는 두려움이 앞선다. 네 번째 부터는 포기하기 십상이다. 제초제를 사용하고픈 유혹에 빠지게 되고 '절대불가' 신념이 없으면 넘어가게 된다. 제초제는 고엽제와 작용기전이 같다. 절대로 피해야 될 독약이다.

10년 째 주말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의과대학 교수 한 분이 시랑헌을 다녀가면서 자신의 잡초 다루는 비결을 공개했다. 잡초들의 성쇠(盛衰)를 알아 대처한다는 것이다. 자고 일어나면 쑥쑥 자라는 5월과 6월에는 잡초에게 져주고 잡초가 어릴 때나 성장이 더딜 때인 4월이나 7월 이후에 벌초한다는 것이다.

시랑헌은 나와 집사람이 은퇴 후 여생을 보내기 위해 지리산 자락에 지은 집이다. 작년 초부터 시작한 건축공사가 막바지 단계다. 연못 꾸미기, 잔디공사 등 자잘한 일들이 계속되고 있지만 먹고 잘 생활공간은 확보되었다. 급히 서둘러야할 이유가 없다. 이제 텃밭에 정성을 들여야 할 때다.

집짓느라 바빠 농작물을 심어놓고 제때 돌보지 못했다. 콩을 심었지만 한 톨도 수확하지 못한 것을 비롯하여 한 번도 농사다운 농사를 짓지 못했다. 요즈음은 토마토, 오이, 상추, 호박, 풋고추를 수확하는 철이지만 우리 텃밭에서 나는 양으로는 나와 집사람 둘이 먹기에도 턱없이 부족하다.

그동안 '잘 되면 좋고 안 되도 그만이다'라는 마음으로 밭일을 하고, 농사에 대한 지식과 경험도 없으면서 비료와 농약을 쓰지 않는 농사 고수들의 자연농법을 고집했다. 자연농법은 비료와 농약을 사용하지 않으면서 수확량은 일반재배와 같은 수준을 올리는 최고의 농사기술이다. 또 농작물에 쏟는 정성도 일반재배에 비할 바가 아니다.

굳이 친환경재배니 자연재배니 구별하지 않더라도 너른 밭을 두고 시장에서 먹거리를 사다 먹는 것보다 잘 발효된 농협퇴비나 '유박'같은 친환경 유기질 비료를 최소한 사용하더라도 둘이서 먹을 정도는 자급자족하는 것이 옳을 것 같다. 자연농법은 일반농사법을 터득하고 난 후 생각해볼 일이다. 

철망을 설치하고 그 위에 검정 천을 둘러야 멧돼지 접근을 막을 수 있단다
▲ 철망에 천두르기 철망을 설치하고 그 위에 검정 천을 둘러야 멧돼지 접근을 막을 수 있단다
ⓒ 정부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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멧돼지 피해 때문에 철망을 설치하러 텃밭을 자주 다니다보니 다른 농작물들의 상태도 보게 되었다. 햇볕을 받지 못해 누렇게 시들어가고, 잡초에 눌려 죽지 못해 납작 엎드려 있다. 시랑헌을 지을 때 옮겨 놓은 과일나무와 정원수들도 이미 절반은 죽었고 나머지도 생존이 불투명한 상태다.

철망공사가 끝나자마자 낫을 갈아 날을 세우고 예초기를 정비한 뒤 텃밭으로 내려갔다. 텃밭 둑에 자라고 있는 아카시아, 싸리나무와 같은 나무들은 톱과 낫으로 잘라내고 나무같이 자란 쑥대들은 양날예초기로, 풀밭은 나일론 줄  예초기로 제거했다.

시랑헌 건축을 위해 임시로 옮겨놓은 나무들이 잡초 때문에 절반이상이 죽었다.
▲ 정원수와 과일나무 시랑헌 건축을 위해 임시로 옮겨놓은 나무들이 잡초 때문에 절반이상이 죽었다.
ⓒ 정부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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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충들은 잡초보다 두려운 상대다

나와 집사람에겐 잡초도 버거운 상대지만 해충들은 더욱 더 두려운 존재들이다. 지난 6년 동안에 여러 차례 해충 피해를 당했다. 밤나무 밭에서 잡초를 베다가 뱀에게 물려 응급실로 실려 갔고, 방안에서 두 차례나 지네에게 물렸다. 벌에게 쏘여 병원을 다녀온 횟수도 여러 번이다. 모기나 깔따귀에 물린 자리에 염증이 생겨 병원에 가서 주사 맞고 약을 며칠씩 복용한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개미들 때문에 잠을 설치는 것은 피해 축에도 들지 못한다.

시랑헌 터의 터줏대감 격인 뱀, 지네, 모기, 깔따귀 등 해충들과 각종 미생물로부터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했다면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시랑헌에서 살아가면서 우리들 자신이  피해자라는 생각은 잘못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우리가 이사 오기 전부터 시랑헌 터에서 살고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우리가 들어와 집을 짓고 길을 내고 농사를 지으면서 그들의 생태계를 뒤흔들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가 짓는 집과 가꾸는 텃밭 때문에 그들은 자주 보금자리를 옮겨야했고 때로는 목숨을 잃었다.

참새를 해로운 새라고 하여 모두 잡아버린 중국 사람들은 파괴된 생태계 때문에 큰 혼란을 겪어야했다. 생태계의 편견과 무지로 인한 단적인 피해사례다. 현세를 살고 있는 생물들은 모두가 생태계를 이루는 구성요소이며 존재가치가 있다. 우리도 그들 중에 하나라면 큰 파문을 일으키지 않으면서 그 생태계의 구성원이 되는 것이 순리일 것이다. 

숲속으로 들어가서 일할 때는 발목을 덮는 구두를 신고, 텃밭을 멜 때는 양봉용 모자를 쓴다. 집안이 습해 지네가 들어올지도 모르겠다 싶으면 보일러를 가동하고 제습기를 돌린다. 동트기 전부터 밭일을 시작하고 햇볕이 따가운 낮에는 집안에서 일한다. 방충망을 꼼꼼히 점검하고 허술한 부분은 곧바로 수리했다. 외출하여 처리해야 할 일들은 비오는 날로 미뤘다. 비 온 후 땅이 젖었을 때 씨를 파종하거나 잔디밭에 잡풀을 뽑는다.  

지극히 당연하고 상식적인 사실이지만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무시하고 자기 본위로 처리하는 경우가 흔하다. 시행착오나 사고로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난 후에야 자신의 무지와 오만에 찌든 아집(我執)을 의식한다. 얼마나 아집을  내려놓기가 힘이 드는지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지 않고 따르기 어렵다. 6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인간도 크게 보면 동물의 범주에 속하고 동물의 본능은 생존과 번식이다. 결국 우리도 살아가기 위해 그들의 피해를 강요하고 그들도 죽을 힘을 다해 반격하는 것이다. 누가 피해자이고 누가 가해자임을 구별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지금까지 자연으로부터 도태되지 않고 지구상에 생존하고 있는 종이라면 설사 그것이 모기나 깔따귀일지라도 생존의 가치를 인정해야할 것이다.

지구상에 인간이 존재하고 이를 해치는 종족은 멸종시켜야한다고 단정하는 것은 바퀴의 축 하나를 제거해버리는 것처럼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콜럼버스는 신대륙을 발견했지만 그곳에 영적으로 수승한 삶을 살고 있던 원주민들에겐 무지한 사람들의 침략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다.

좀 더 높은 차원에서 세상일을 관조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다보면 어떻게 죽어야 되는지 알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무더운 여름밤에 창틈으로 들어오는 미풍의 서늘함은 우주의 섭리다.

오르막길은 힘들고 내리막길은 힘이 덜 든다.


태그:#귀촌, #시랑헌, #잡초, #해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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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덕연구단지에 30년 동안 근무 후 은퇴하여 지리산골로 귀농한 전직 연구원입니다. 귀촌을 위해 은퇴시기를 중심으로 10년 전부터 준비했고, 은퇴하고 귀촌하여 2020년까지 귀촌생활의 정착을 위해 산전수전과 같이 딩굴었습니다. 이제 앞으로 10년 동안은 귀촌생활의 의미를 객관적인 견지에서 바라보며 그 느낌을 공유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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