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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5일자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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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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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LL 바꿔야…김 위원장님하고 인식 같아'

지난 6월 25일, 국가정보원이 2007년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을 공개한 바로 이튿날 <조선> <중앙> <동아>는 약속이라도 한 듯 1면 머리기사를 제목을 똑같이 뽑았다.

대화록에 실린 "나는 (김정일) 위원장님과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 NLL은 바뀌어야 한다"고 한 노 전 대통령의 정상회담 발언이 그 근거다. 문제는 거두절미하고 문제의 소지가 있는 부분만 부각시켜 노 전 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마치 'NLL 포기'를 약속한 듯한 분위기를 풍긴다는 점이다.

특히 <조선>은 '2007년 정상회담, 대한민국 대통령은 없었다'는 사설까지 할애해 NLL 포기 발언을 기정사실화했다. 이 사설은 정상회담 비공개의 이유는 국익을 위한 것인데, 노 전 대통령은 정상회담에서 국익을 추구하는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않았고, 따라서 이 기록물을 공개할 수 있다는 이상한 논리를 내세웠다.

공영방송도 마찬가지였다. KBS는 국정원 대화록 발췌본이 공개된 당일 '발췌본 전격 공개…"NLL 바꿔야"' 제하의 뉴스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난 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서해 북방한계선을 바꿔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앵커의 단정적 해설을 삽입했다.

똑같은 머리기사 제목... 조중동의 NLL 커넥션

남북정상회담 마지막날인 지난 2007년 10월 4일 오후 노무현 대통령 내외가 평양 백화원 초대소에서 환송오찬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작별인사를 받고 있다.
 남북정상회담 마지막날인 지난 2007년 10월 4일 오후 노무현 대통령 내외가 평양 백화원 초대소에서 환송오찬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작별인사를 받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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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이런 보도행태는 지난해 10월 통일부 국정감사에서 노 전 대통령의 NLL 발언을 처음으로 문제 삼았던 정문헌 새누리당 의원의 발언과도 그 맥을 같이하고 있다. 당시 정 의원은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7년 10월 3일 비공개 단독회담에서 김정일에게 '북방한계선(NLL) 때문에 골치 아프다, 미국이 땅따먹기 하려고 제멋대로 그은 선이니까, 남측은 앞으로 NLL을 주장하지 않을 것이며 공동어로 활동을 하면 NLL 문제는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라고 구두 약속을 해줬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국정원이 공개한 대화록 전문을 보면, 가장 핵심 내용인 노 전 대통령의 'NLL 포기' 발언을 확인할 수 없다. 정 의원의 애초 발언이 얼마나 짜깁기 왜곡의 극치였는지 알 수 있다.

오히려 노 전 대통령은 "(NLL은 남한에서) 현실로서 (영토선으로)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며 "NLL을 갖고 이걸 바꾼다 어쩐다가 아니고 공동번영을 위한 바다 이용계획을 세움으로써 민감한 문제들을 미래지향적으로 풀 수 있다"고 김 위원장을 설득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뿐만 아니라 노 전 대통령은 "그건(NLL) 옛날 기본합의 연장선상에서 앞으로 협의해 나가기로 하고…"라고 언급해 NLL 문제는 이전 정부들의 방침을 계승한다는 취지를 명백히 했다. 노 전 대통령이 말한 기본합의란 지난 1992년의 남북기본합의서를 뜻한다. 노태우 정부 당시 체결된 이 합의서는 NLL에 관련해 "남과 북의 해상 불가침 경계선은 앞으로 계속 협의한다, 해상 불가침 구역은 해상 불가침 경계선이 확정될 때까지 쌍방이 지금까지 관할하여 온 구역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정상회담 대화록은 노 전 대통령이 NLL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해상분계선이 합의되기 전까지는 NLL을 지키려고 노력했던 사실을 확인해주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정상회담 대화록 공개 직후 보수언론의 보도태도에 대해 "대화록의 문장들을 거두절미하고 짜깁기하여, 노 전 대통령의 실제 발언 취지가 아니라 신문 자신의 관점을 반영하는 기사로 둔갑시킨 것"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전체 회담 흐름에 관계없이 입맛에 맞는 발언 한두 개만 제목으로 뽑아 버리면, "개성 아니라 해주를 달라고 해도 줘야지요"라고 했던 김정일 위원장도 얼마든지 '북조선의 반역자'로 만들 수 있다는 지적도 발췌록을 근거로 한 보도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나아가 이런 일련의 보도가 결과적으로 NLL을 통해 국정원의 대선 개입 후폭풍을 덮으려는 새누리당의 의도에 정확히 부응하고 있다는 지적까지 받고 있다.

국정원 댓글 조작엔 침묵하더니 NLL 발언은 적극 보도

지난 6일 오후 서울시청앞 서울광장에서 시민사회단체 긴급 시국회의 주최로 열린 '국정원에 납치된 민주주의를 찾습니다 2차 촛불문화제'에 가족들이 촛불과 피켓을 들고 참여하고 있다.
 지난 6일 오후 서울시청앞 서울광장에서 시민사회단체 긴급 시국회의 주최로 열린 '국정원에 납치된 민주주의를 찾습니다 2차 촛불문화제'에 가족들이 촛불과 피켓을 들고 참여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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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언론시민단체들은 방송사와 조중동을 필두로 한 보수신문 등이 지난 대선 당시 '국정원 직원 댓글'부터 검찰의 국정원 압수수색과 수사발표 등 현재까지 관련내용을 제대로 보도하지 않거나 축소보도하면서 사안을 축소해왔던 것에 반해 새누리당의 'NLL 발언 조작' 이후엔 정부·여당의 주장을 받아 적극 유포하며 '물타기 보도'로 일관해 왔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대화록 공개 전까지 댓글 공작 등을 통한 국정원의 대선개입 의혹에 대한 보수신문과 방송사들의 보도 건수와 NLL 대화록 공개 이후 보도 건수는 심각한 불균형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평가다.

예를 들어, 지난 4월 30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 '오늘의 유머' 사이트를 분석해서 공개한 국정원 직원들 활동 내역을 <조선>과 <동아>는 전혀 보도하지 않았다.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 집계에 따르면 지난 4월 19일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이 서울경찰청의 외압 사실을 폭로한 다음 날부터 5일간 조·중·동은 각각 6개·4개·3개의 기사를 쓴 것으로 나타나, <경향>(21개)와 <한겨레>(9개)와 대조를 보였다.

방송사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의 뉴스 모니터 분석에 따르면 국정원의 선거 개입에 대한 검찰 수사가 진행된 지난 4월 26일부터 6월 14일까지 50일간 MBC는 11건, KBS는 15.5건(단신은 0.5건으로 처리), SBS는 19건 관련 내용을 보도해, 사건의 중요도에 비해 아주 적은 보도량을 보였다.

소극적 보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 불방, 보도 누락의 행태까지 드러난 방송의 경우 '권력의 언론 장악'이라는 측면에서 문제가 더 심각하다.

지난 6월 20일, "지난해 삭제된 국정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의심 계정 10개를 복원해 박원순 서울시장을 비하한 SNS 글 2만여 건을 찾아냈다"는 YTN의 단독보도는 오전 10시 이후 자취를 감췄다. 이 과정에서 국정원 직원의 부당압력 의혹이 제기됐다. 6월 23일엔 MBC에서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을 취재한 <시사매거진 2580> 보도 '국정원에서 무슨 일이?'가 통째로 누락되는 일이 발생했다.

KBS에서도 심각한 보도 불균형이 나타나고 있다. 급기야 전국언론노조 KBS본부는 "국정원의 선거 개입 사건에 사실상 침묵으로 일관한 KBS 뉴스는 새누리당이 NLL 대화록을 제기하자 180도 달라져 기획물까지 쏟아내며 NLL 이슈를 확산시키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다"고 비판했다.

민언련에 따르면 NLL 논란 보도는 지난 6월 19일부터 25일까지 일주일간 KBS 15.5건, MBC 13건, SBS 11.5건이 다뤄져 국정원 선거개입 수사 과정 보도와는 두드러진 차이를 보였다. 민언련은 "KBS·MBC는 국정원 선거개입 사안을 축소·누락 보도 행태를 보이다가 'NLL 발언' 논란 이후 정부·여당 측의 주장을 받아 적극 유포하면서 진실을 가렸다"고 지적했다. 국정원이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발췌본과 전문을 공개하면서 방송 3사는 국정원의 정치개입 사태는 뒷전이고 이전과는 180도 달라진 보도 양상을 보였다는 것이다.

국정원의 대화록 전격공개가 대선 당시 댓글 공작이 밝혀지면서 국회의 국정조사를 받아야 할 처지에 몰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국면전환용'이었다는 세간의 평가를 감안하면, 정상회담 당시 '선 서해협력지대 설치-후 NLL 문제 해결'이라는 노 전 대통령의 발언 취지를 왜곡해 결과적으로 국정원의 의도에 충실히 부응한 언론 역시 국정감사의 대상이라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지난 9일 전국언론노조와 한국기자협회, 민언련, 한국언론정보학회 주최로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에서 열린 '국정원 사태 이후 언론 보도행태 점검 긴급 토론회'에서 이희완 민언련 사무처장은 "국정조사를 통해 국기문란의 공범자로 전락한 언론의 보도행태를 낱낱이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언론들이 국정원을 비판하기보다 오히려 비호하고 있다"고 지적한 그는 "지난 이명박 정권 때 완성된 언론 장악의 과즙을 박근혜 정부가 달게 마시고 있다"고 꼬집었다.


태그:#NLL, #정상회담 대화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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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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