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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산 캄보디아 사람

이번 7월 중순 캄보디아여행에서 저희의 안내를 맡은 분은 김성준 선생. 씨엠립에 살고 있는 분입니다.

10여 년 전 한국에서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자신 소유의 모든 것을 정리해서 현금으로 바꾸었습니다. 그것을 어머님에게 드리고 그 일부를 가지고 한국을 떠났습니다. 언제쯤 집으로 다시 돌아갈지는 기약하지 않은 채…. 직장에서의 루틴하고 빠듯한 시간들이 배낭여행에 빠져 지내던 시절의 자유를 갈망하게 했던 것입니다. 

우선 지난 배낭여행에서 알게 된 친구가 있던 캄보디아의 씨엠립으로 가서 방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태국, 버마, 라오스, 베트남을 한 바퀴 돌아볼 심산으로 길을 나섰습니다. 하지만 그 계획은 며칠 뒤 무산이 되었습니다. 프놈펜에서 툭툭이를 타고 이동 중에 자신에게 미소를 지으며 따라오는 오토바이를 탄 청년에 홀려 버렸습니다. 방심하던 차에 쥐고 있던 허리전대를 낚아채 달아나 버렸습니다. 그 전대에는 여권은 물론 한국에서 가지고 온 모든 돈이 들어있었습니다. 느린 툭툭이가 쏜살 같이 달아나는 오토바이를 따라잡을 수는 없었습니다. 수백만 원이었지만 캄보디아에서는 서민용 집을 두 채 정도는 살 수 있는 액수였습니다.

10년째 캄보디아에서의 삶을 이어가고 있는, 캄보디아교민 김성준 선생(우)
 10년째 캄보디아에서의 삶을 이어가고 있는, 캄보디아교민 김성준 선생(우)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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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을 돌아보면 스스로도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왜 모든 돈을 전대에 담아 나왔는지, 왜 전대를 허리에 두르지 않고 무릎에 올려놓고 있었는지, 다가오는 그들을 왜 의심하지 않았는지…. 그것은 예정된 운명이라고 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지 않고는 배낭여행 경험이 많은 자신이 가장 기본적인 안전수칙에 그렇게 방심했을 리가 없었습니다. 

날치기 사실을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신고서 작성을 돕던 경찰은 서류작성 대가를 요구했습니다. 주머니에 남은 몇 푼의 돈까지 그 경찰에게 건네고 방을 얻어놓은 씨엠립으로 되돌아왔습니다. 

캄보디아에서의 무일푼의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후 10여 년의 치열한 세월은 캄보디아를 증오하기보다 더욱 사랑하게 만들었습니다. 마침내 캄보디아 여인과 결혼을 하고 아들까지 얻었습니다.

9세기에서 15세기까지 태국과 라오스, 베트남까지 다스렸던, 자신들이 있는 곳을 세계의 중심으로 믿었던 크메르 제국의 영욕을 공부했습니다. 앙코르의 돌 조각하나하나에 담긴 그들의 경이로운 생각들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앙코르의 방대한 석조 건축물들에 조각으로 남은 제국의 과거를 상세히 이해하는 사랑과 힌두교에서 관세음보살신앙이 뿌리내리는 종교적 과정뿐만 아니라 정치적 변화의 이유에 대해 막힘없이 답하는 깊이를 갖출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는 캄보디아 사람보다 캄보디아를 더욱 소중히 여기는 한국산 캄보디아 사람이었습니다.

앙코르와트(Angkor Wat)의 중앙사당탑
 앙코르와트(Angkor Wat)의 중앙사당탑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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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행복 하라

김성준 선생은 타프롬(Ta Phrom)과 앙코르톰(Angkor Thom)을 돌아 마침내 앙코르유적군의 최고 절정인 앙코르와트(Angkor Wat)의 중앙사당탑 아래의 가파른 경사 계단 아래에서 일행을 세우고 물었습니다.

앙코르와트(Angkor Wat)의 중앙사당탑으로 오르는 경사도 70도가 넘는 가파른 계단
 앙코르와트(Angkor Wat)의 중앙사당탑으로 오르는 경사도 70도가 넘는 가파른 계단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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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과거를(지나온 길을) 보려면 발금을 봅니다. 미래를 보려면 손금을 봅니다. 그런데 발금과 손금보다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무엇일까요?" 

"현금!"
"순금!" 

일행은 농을 섞어서 답했습니다. 함께 웃고 다시 정색을 한 김 선생님이 말을 이었습니다. 

"심금입니다. 마음의 금이지요. 마음에 그어진 금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니까요. 그러니 내 마음의 금을 잘 그어야 됩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보다도 훨씬 중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지금'입니다. 지금 힘들고 괴로우면 내일도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행복하다면 내일도 분명 행복합니다." 

1달러 대신 볼펜 한 자루를  

헤어지는 날 다시 김 선생은 송별인사를 하기 위해 우리 앞에 섰습니다. 다시 질문을 했습니다.  

"한국에 돌아가시면 분명 캄보디아를 여행하고자하는 사람들이 선생님들에게 물을 것입니다. 캄보디아에 무엇을 준비해가면 좋겠느냐고? 그러면 무엇을 말해드리겠습니까?"

이번에는 답변의 짬을 주지 않고 말을 이었습니다.

수리야바르만 1세(Suryavarman I)때에 만들어진 인공호수,웨스트 바레이(Western Baray). 씨엠립의 취수지이자 시민들의 휴식 장소입니다.
 수리야바르만 1세(Suryavarman I)때에 만들어진 인공호수,웨스트 바레이(Western Baray). 씨엠립의 취수지이자 시민들의 휴식 장소입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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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1달러짜리를 두둑하게 준비하라고…. 제발 그렇게 안내해 드리지는 말아주세요. '1달러만'을 외치는 아이들에게 1달러를 건네는 것으로 그들의 미래를 바꿀 수 없습니다. 아마 집집마다 책상 위나 책상 서랍 안에는 쓰지 않는 볼펜들이 수북할 겁니다. 한국에서는 필요 없는 그것을 모조리 가방에 담아 가라고 전해주세요. 그리고 쓰다만 공책도 함께…. 이곳에서 '1달러만'을 외치는 아이들에게 펜과 노트를 대신 건네준다면 그들이 그걸 가지고 할 수 있는 게 공부 외에 무엇이겠습니까? 1달러는 그 다음날 사라지겠지만 펜과 노트는 그들의 미래를 바꾸게 될 것입니다."

'1달러만'을 외치거나 소품을 팔고자하는 아이들
 '1달러만'을 외치거나 소품을 팔고자하는 아이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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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준 선생은 아이들을 차로 불러서 한국노래를 주문했습니다. 그들은 능숙하게 한국노래를 불렀습니다. 그 대가로 2달러를 받았습니다. 김성준선생은 이 푼돈 보다 그들의 미래를 바꿀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김성준 선생은 아이들을 차로 불러서 한국노래를 주문했습니다. 그들은 능숙하게 한국노래를 불렀습니다. 그 대가로 2달러를 받았습니다. 김성준선생은 이 푼돈 보다 그들의 미래를 바꿀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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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준 선생님은 구걸하는 캄보디아 아이들의 '지금'을 바꾸고 싶어 했습니다. 그리고 바뀐 '지금'이 그들의 내일을 바꿀 것으로 믿고 있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태그:#캄보디아, #씨엠립, #김성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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