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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vN <꽃보다 할배>의 포스터. 할배들의 패션 센스가 돋보인다.
 tvN <꽃보다 할배>의 포스터. 할배들의 패션 센스가 돋보인다.
ⓒ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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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고? 신구 할배가 나온다고?"

tvN에서 <꽃보다 할배>가 방영된다는 소식을 듣고 내가 보인 첫 반응이다. 그렇다. 난 신구 할배의 팬이다. 10년 전 신구가 출연한 시트콤 <웬만해서 그들을 막을 수 없다>를 재밌게 봤었다. 그 시트콤 짤(짤림방지. 즉, 짤방의 줄임말로 '사진'을 일컫는 말)을 컴퓨터에 저장해두고 우울할 때면 꺼내볼 정도다. 그만큼 할배들의 등장은 나를 설레게 했다. 

KBS <1박 2일>을 기획했던 국민 PD 나영석과 이순재(78), 신구(77), 박근형(73), 백일섭(69) 4명의 할배 그리고 젊은 짐꾼 이서진(42)의 유럽 배낭여행기라는 독특한 설정은 인기몰이에 한 몫 더 했다. 아니나 다를까. 3회를 맞이한 지난 19일(금)에는 시청률 4.38%를 기록하며(케이블 방송 시청률 기준), 방영 전의 기대에 부응하고 있다.

하지만 프로그램 출연진과 설정만으로 흥행 가도를 달릴 수는 없는 법. <꽃보다 할배>의 흥행 요소는 무엇일까.

할배들에 대한 이해, 나도 언젠가 노인이 된다

"배낭여행은 뭐다, 라고 내가 설명할 수 있는 거 있으세요?"
"배낭은…6·25 때! 쌀자루를 메 본 적이 있어."

<꽃보다 할배> 1화에서 이순재가 제작진들에게 했던 말이다. 상상이나 가는가. 6·25 때 쌀자루를 메어본 이후로 처음 배낭을 메다니! 평균 나이 76세의 할배들은 경제적으로 조금만 여유가 생기면 배낭을 챙기고 유럽여행 계획을 세울 수 있는 요즘 젊은이들과 다른 세상을 살았던 것이다.

 대기업 총수 전문 배우 박근형 할배는 알고 보니 손주바보였다
 대기업 총수 전문 배우 박근형 할배는 알고 보니 손주바보였다
ⓒ 김다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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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말이면 무조건 따르는 순한 남편이 된 이순재, 여행에 앞서 소주와 햇반이면 된다는 신구, '손주'라는 말만 들어도 좋은 손주 바보인 박근형과 백일섭의 모습은 우리네 할아버지와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우리 할아버지들이 눈에 아른거려 그들이 더 친근하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죽기 전에 그래도 고생스럽지만, 이 언제 경험하우?"
"내가 죽어갈 때도 이게, 이런 모양이 잔상으로 남아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

프랑스의 아름다운 경치를 바라보며 신구가 말했던 대목을 보면 괜히 서글퍼진다. 백일섭이 여행 내내 무릎이 아프다며 걷기를 거부하는 모습을 보며 나의 노년을 그려 보기도 한다. 그들에게 젊은 시절이 있었듯이 나에게도 노년의 시절이 올 것이다. 청년과 노년의 공감대 형성, <꽃보다 할배>가 세대를 막론하고 사랑받는 이유다. 그런 할배들의 모습을 보면서 답답하고 우울하게만 느껴졌던 노년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된 것 같다.

억지스러운 설정은 가라! 할배들의 진짜 이야기

젊은 짐꾼 이서진은 <꽃보다 할배> 촬영 내내 심기가 불편하다. 그도 그럴 것이 4명의 할배들을 따라 다니며 온갖 허드렛일을 해야 한다. 기분이 좋을 리가 없다. 혹자는 이서진의 찡그린 표정이 보기 싫다는 둥, 할배들이 조금 더 주도적으로 여행했으면 좋겠다고 하는데 내 생각은 다르다.

 젊은 짐꾼 이서진은 늘 노심초사다. 본인은 초조하고 힘들더라도 이런 모습은 시청자들에게 큰 웃음을 준다.
 젊은 짐꾼 이서진은 늘 노심초사다. 본인은 초조하고 힘들더라도 이런 모습은 시청자들에게 큰 웃음을 준다.
ⓒ 김다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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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같은 대선배랑 같이 다니는데 심기가 안 불편한 사람이 어디 있겠나. 그리고 혼자 여행 계획 다 짜고, 사서 고생하면 그건 우리 할배들이 하는 여행이 아니다. 젊은 짐꾼 이서진이 고생하고, 할배들은 의지하는 게 현실이다. 나는 <꽃보다 할배>를 통해 우리 할배들의 진짜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다. 설정이 아예 없으리라곤 생각 안 하지만, 적어도 억지스러운 설정은 없는 듯하다.

<꽃보다 할배>의 몰입도는 할배들의 진짜 모습을 여과없이 보여주는 것에서 나온다. 물론 케이블 채널이라 가능한 일이겠지만, 생수병에 소주를 담아 가는 곳마다 챙겨가는 할배들의 모습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카페 테라스에 앉아 불란서(우리 할배들은 프랑스라는 지금의 말대신 과거에 발음을 한자로 표기한 불란서를 쓴다) 토스트를 먹으며 소주를 주섬주섬 꺼내는 모습은 우리 할배들임을 알 수 있다.

'직진 순재'라는 별명을 얻은 이순재는 고집스러운 할배의 면모를 잘 보여준다. 자신을 불편하게 만드는 무거운 장조림통을 발로 차며 역정을 내는 백일섭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언제 예능 프로에서 할배들의 진짜 이야기를 본 적이 있던가!

77세 노인이 23세 청년에게 건넨 말은? "존경스럽습니다"

 <꽃보다 할배> 2화에서 나온 명장면. 손녀뻘인 학생에게 존경스럽다고 말할 수 있는 모습이 멋있다.
 <꽃보다 할배> 2화에서 나온 명장면. 손녀뻘인 학생에게 존경스럽다고 말할 수 있는 모습이 멋있다.
ⓒ 김다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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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명의 할배와 젊은 짐꾼은 아침 식사 중에 한 학생과 대화를 나누게 된다. 23살의 어린 나이로 혼자서 50일 동안 배낭여행을 하고 있다는 학생의 이야기를 들으며 할배들은 "대단하다", "용감하다"는 칭찬을 쏟아낸다. 가만히 학생의 이야기를 듣던 신구는 이렇게 말한다.

"그럼 아무 도움 없이 혼자서 이렇게 찾아서 여행 하시는 거예요?"
"네."
"존경스럽습니다."

<꽃보다 할배> 2화에 나온 이 장면은 명장면으로 꼽힌다. 다들 이 장면을 보고 느끼는 바가 여러 가지일 것 같다. 할배의 겸손함에 감동을 받기도 하고, 당신들이 해보지 못 했던 것에 대한 아쉬움에 짠하기도 하고. 나는 이 장면을 보면서 일종의 부채의식이 생겼다. 먹고 살기 급급해 젊음을 마음껏 누려보지 못 했던 우리 할배들이 있는데, 나는 젊음을 갖고 있음에도 제대로 보내고 있지 않는 것 같아 괜히 죄송했다.

<꽃보다 할배> 연관 검색어에 '신구 명언'이 있을 정도로 우리보다 앞서 세상을 산 할배들의 말씀은 젊은이들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꽃보다 할배>는 그저 1시간 웃고 끝나는 예능이 아니다.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신구 할배의 명언을 끝으로 리뷰를 마무리할까 한다.

 신구 할배의 명언은 '신구 명언'이란 이름으로 인터넷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신구 할배의 명언은 '신구 명언'이란 이름으로 인터넷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 김다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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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에펠탑처럼 우리 미술사나 예술사에서 보면 당대에는 인정받지 못 했던 작품들이 세월이 지나면서 새롭게 해석되고 가치를 인정해주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저는 뭐 그렇게 살아 볼라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요 지경에서 끝나지만 지금을 살아가고 앞으로를 내다보는 젊은이들은 지금 이 시대에 인정을 못 받더라도 새롭고 가치있는 걸 시도해보시면 훗날에 더 크고 명예로운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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