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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식전에 전등사에 다녀왔다. 주말이라 낮에는 사람으로 북새통을 이룰 절 마당이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고요했다. 그새 누가 비질을 했는지 마당엔 티끌 하나 떨어져 있지 않았고 나뭇잎들 사이로 얼굴을 들이민 햇살이 반짝였다.

대웅전을 올려다보았다. 아무도 없는 듯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댓돌 아래에는 신발 여러 켤레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제각기 다른 모양과 크기의 신발이었지만 모두 한 방향을 향해 놓여 있는 걸 보니 안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보는 듯 했다.

천 배를 올리는 사람들

문을 열고 대웅전 안으로 들어섰다. 부처님을 향해 절을 올리는 사람들이 여럿 보였다. 내가 아는 이들도 있었지만 낯모르는 이도 두엇 섞여 있었다. 그들 모두는 지극한 마음으로 두 손을 가슴에 곱게 모으고 절을 올리고 있었다. 그들을 보니 내 마음에도 뭔가 모를 지극함이 들어서는 듯 했다.

전등사 대조루입니다.
 전등사 대조루입니다.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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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어 시간 동안 정진을 하던 도반들이 고요히 명상에 잠겼다. 붉게 상기된 얼굴이며 땀에 젖은 등허리에서 뜨거운 김이 배어나오는 듯 했다.

'정토 법당'을 만들기 위해 시작한 기도 모임이 1차에 이어 2차에 접어들었다. 첫 번째 기도 정진은 백련사에서 시작되었다. 지난 3월부터 백련사 큰 법당에서는 천 배를 올리는 깊은 마음들이 있었다. 토요일 새벽마다 백련사로 향하는 사람들에게 초봄의 차가운 새벽바람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옛 말은 그저 나온 말은 아닐 것이다. 마음을 모아 정성을 다하는데 어찌 하늘이 감동하지 않겠는가. 백련사에서의 기도 정진은 자기 자신을 감동시키는 일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힘은 너울을 타듯 이웃에게로 전파가 되어 더 큰 물결을 이루었다.
 
말이 쉬워 천 배(拜)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닐 것이다. 그들 역시 고비를 넘기며 스스로를 다잡았을 것이다. 그렇게 한 번이 두 번이 되고 한 달이 되더니 마침내 백일기도를 마치고 두 번째 기도정진에 들어가게 되었으니 어찌 감개가 무량하지 않겠는가.

대웅전의 옆문을 통해서 약사전과 명부전을 봤습니다.
 대웅전의 옆문을 통해서 약사전과 명부전을 봤습니다.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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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회는 법륜스님을 지도법사님으로 모시고 수행과 공부를 하는 단체이다. 정토회 강화지회는 2007년도에 처음 시작되었다. 강화도 동막 바닷가 마을에서 서울 서초동에 있는 정토법당까지, 그 먼 길을 멀다않고 공부를 하러 다닌 한 분이 계셨다. 그 뒤를 이은 몇 분이 더 계셨고, 지금은 세상의 희망이 되고자 서원(誓願)을 하고 일상에서 수행정진을 하는 분들이 조용히 힘을 키우고 있다.  

말은 금방 널리 퍼지지만 깊이가 얕다. 그래서 해가 가고 날이 가면 사라져 버린다. 그러나 마음으로 하는 말은 당장은 보이지 않으나 어느 결에 마음속으로 스며들어 깊고 힘찬 강을 이룬다. 그 분들의 내면을 흐르는 웅숭깊은 말씀은 사람들의 가슴 속으로 조용히 스며들어 힘찬 내를 이루었다.

기둥이 되고자 하는 마음

새벽 5시에 절을 올리기 시작했는데 어느새 시계는 여덟시를 향해 가고 있다. 근 세 시간 가까이 절을 했는데도 지쳐 보이지 않고 오히려 얼굴이 볼그스름하니 예쁘기만 하다. 절은 비우는 것이라고 한다. 비운 자리에 새로운 것이 들어오니 그것은 사랑일 수도 있고 또 행복이기도 하리라. 천 배는 고사하고 백팔 배도 겨우 따라서 한 나는 그들이 누리는 충만감을 덩달아서 같이 누렸다.  

강화 옆 섬인 교동도의 화개사에서 절하는 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강화 옆 섬인 교동도의 화개사에서 절하는 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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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을 이루고 있는 기둥들을 톺아보았다. 한 아름으로도 모자랄 것 같이 크고도 우람한 기둥들이었다. 이렇게 장중하게 자라자면 얼마만큼의 시간이 필요했을까. 지금 천 배를 올리는 이 분들도 이런 굳건한 기둥이 되기 위해 절을 하는 것이리라.

전등사 길목에 있는 찻집 마당에 둘러앉아 고마운 마음들을 나누었다. 서로 위해주는 그 마음이 있어서 천 배도 할 수 있었노라며 다들 고마워했다. 생전 처음으로 천 배를 드린 분이 계셔서 그 분에게 축하의 박수도 크게 쳐주었다.

천 배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닐 것이다. 그러나 누구라도 할 수 있는 게 또 천 배일 것이다. 마음을 먹으면 누구라도 할 수 있지만 마음을 내는 게 쉽지만은 않으니 아무나 할 수 없는 게 천 배인 것이다. 나는 천 배는 언감생심 꿈도 꾸지 않고 그저 이른 아침에 절에 온 것만으로도 장하다고 생각하며 백팔배를 한 것으로 만족했다.

이른 시간이라 찻집 마당은 고요했다. 마당 한 쪽의 연못가에는 산수국이 피어 있었다. 청보랏빛 꽃 색이 고왔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도반들의 얼굴색도 고왔다. 불어오는 한 줄기 바람이 조용히 그들의 어깨를 어루만져 주고 지나갔다.


태그:#전등사, #강화도, #정토회, #백팔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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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을 '놀이'처럼 합니다. 신명나게 살다보면 내 삶의 키도 따라서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뭐 재미있는 일이 없나 살핍니다. 이웃과 함께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아침이 반갑고 저녁은 평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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