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우연히 보게 된 한 장의 사진으로부터 여행이 시작되듯 공연관람도 때론 한 컷의 사진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개인적으론 뮤지컬 <해를 품은 달>이 그랬다. 사진을 통해 본 무대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무대가 눈앞에 펼쳐졌다.

조각보 넘실대는 무대는 보기에만 아름다운 게 아니라 등장인물들 사이의 얽히고설킨 인연을 보다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극적장치로서도 손색이 없다.
 조각보 넘실대는 무대는 보기에만 아름다운 게 아니라 등장인물들 사이의 얽히고설킨 인연을 보다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극적장치로서도 손색이 없다.
ⓒ 쇼플레이/이다

관련사진보기


색색의 한지와 천을 이용해 만든 조각보와 그 사이로 새어나오는 은은한 빛이 조화를 이뤄낸 무대는 '빛과 색의 향연'이라는 표현이 아깝지 않을 정도였고, 그 위에 수놓인 인연들의 사랑은 붉게, 푸르게, 때로는 까맣게 물들어가는 것이 참 아프면서도 고왔다.

애생애사(愛生愛死)

소설과 드라마로 이미 크게 흥행한 바 있는 작품을 무대화하는 건 안전해보일 수 있지만 위험하며, 얕잡아 보이기 쉬우나 어려운 작업이다. 1년 이상의 제작기간을 거쳐 지난 6월 용인 포은아트홀에서 개막한 뮤지컬 <해를 품은 달>은 소설과 드라마에서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재미와 감동을 끌어낸다.

뮤지컬 ‘해를 품은 달’은 등장인물들 간의 복잡한 갈등을 극의 전개상 필요한 부분만 다루되, 훤(김다현)과 연우(전미도)의 사랑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뮤지컬 ‘해를 품은 달’은 등장인물들 간의 복잡한 갈등을 극의 전개상 필요한 부분만 다루되, 훤(김다현)과 연우(전미도)의 사랑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 쇼플레이/이다

관련사진보기


특히, 등장인물들 간의 복잡한 갈등을 최소화해 극의 전개상 필요한 부분만 다루되, 훤과 연우의 사랑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비중의 차이일 뿐, 양명의 외사랑과 민화공주의 집착하는 사랑, 설의 희생적인 사랑에 이르기까지 뮤지컬 <해를 품은 달>은 원작이 그러하듯이 누굴 보아도, 어딜 보아도 사랑이 흘러넘친다.

완전무결(完全無缺)

조선시대 가상의 왕, 이훤은 단 하나의 결점도 허용치 않는 완벽한 남자다. 문무를 겸비함은 물론, 잘생긴데다 순정남이고, 유머감각은 수준급에 필살기로는 애교와 이벤트를 들 수 있다.

조선시대 가상의 왕, 이 훤(김다현)은 단 하나의 결점도 허용치 않는 완벽한 남자다.
 조선시대 가상의 왕, 이 훤(김다현)은 단 하나의 결점도 허용치 않는 완벽한 남자다.
ⓒ 쇼플레이/이다

관련사진보기


몇 장면을 소개하면, 연우의 오라비인 염을 스승으로 모시게 된 훤은 들뜬 마음을 감추지 못한 채 "자네 인물이 '훤'하네. 나도 '훤'일세" "공부가 머리에 '쑥쑥' 들어오는구먼. 자네에게 '쑥떡'을 하사하겠네" 등 센스 넘치는 유머로 관객들에게 웃음을 선사하는가 하면, 연우를 세자빈으로 맞을 생각에 얼굴을 붉히며 안절부절 못하는 장면에서는 능청과 익살을 보태 관객의 손발을 모두 오그라들게 했다. 어쩌면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 이것들을 포함한 모든 것이 '훤'이 가상의 왕일 수밖에 없는 진짜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만구칭찬(萬口稱讚)

뮤지컬 '해를 품은 달'의 무대는 앞서 언급했듯이, 소설과 드라마에서는 만나지 못한 또 하나의 볼거리를 제공한다. 조각보 넘실대는 무대가 그것들 중 으뜸으로, 보기에만 아름다운 게 아니라 등장인물들 사이의 얽히고설킨 인연을 보다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극적장치로서도 손색이 없다. 한편, 조각보의 색과 빛으로 물든 무대 위에서 주고받는 등장인물들 간의 대사와 넘버에 실린 가사들 역시 드라마와 견주어도 밀리지 않을 만큼 좋은 문장들로 가득 차 있다.

조각보 위에 수놓인 인연들의 사랑은 붉게, 푸르게, 때론 까맣게 물들어가는 것이 참 아프면서도 고왔다.
 조각보 위에 수놓인 인연들의 사랑은 붉게, 푸르게, 때론 까맣게 물들어가는 것이 참 아프면서도 고왔다.
ⓒ 쇼플레이/이다

관련사진보기


우선, 훤과 연우가 서로의 마음을 주고받는 '연서'에는 "묏버들 가려 꺾어 님의 손에 보내오니 / 주무시는 창밖에 심어두고 보옵소서 / 밤비에 새잎나면 나인가 여기오소서 / 애타는 밤 지새운 나인 듯이 여기소서"라며 훤을 그리는 연우의 마음을 오롯이 담았다면, 연우를 향한 애틋한 외사랑에 아파하는 양명의 '나눈 정이 만리'에서는 연우를 달에, 자신을 별에 비유하며 "달빛 쫓으며 너를 품었던 지금 저 하늘 별빛 흔들림은 / 눈물 맺힌 까닭인가 마음을 갖지마라 버려라"로 관객들의 마음을 녹이기도 했다.

섬세하면서도 낭만적이고, 애틋하면서도 멋스러운 대본과 가사는 뮤지컬 <엘리자벳> <햄릿> <몬테크리스토> 등을 작사·연출한 박인선의 솜씨다. 눈과 귀도 즐겁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흘러나오는 사랑의 감정으로 행복감을 맛보고 싶은 이들에게 주저 없이 추천하고 싶다. 7월 31일까지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서 상연(8월은 대구와 부산 등지서 지방공연, 12월에는 일본 동경 공연 예정)된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문화공감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정지선의 공연樂서, #문화공감, #뮤지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