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우리나라 교육 문제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교사인 나는 40여만 명에 가까운 교사 집단에 그 일차적인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학교 밖 사람들에게는 허울뿐인 소리로 들리겠지만, 교직은 엄연한 전문직이다. 교육은 결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교사들은 외부 환경을 탓하며 교사 노릇 못해 먹겠다고만 이야기한다. 이는, 대표적인 전문직인 의사나 변호사가 외부 환경을 핑계로 환자 치료를 못하느니, 의뢰인 변호를 못하겠다느니 하는 말을 하지 않는 것과는 극명하게 대비된다.

하지만 주변을 둘러보면 진정한 교육으로부터, 아이들로부터 점점 멀어지는 교사들이 천지에 깔려 있다. 스스로 전문직으로서의 위상에 걸맞은 노력을 기울이거나, 자신들을 그토록 힘겹게 만드는 외부 환경의 불합리에 맞서 싸우려는 교사들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일 년 가 봐야 책 한 권 제대로 읽지 않는 교사들,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어서 빨리 수업 종이 울리기를 바라는 교사들, 그리하여 오후 네 시 반이 되면 칼같이 교문을 빠져나가는 교사들을 보는 심정은 참담하기만 하다.

그런데 이쯤에서 나는 다음과 같은 의문을 가져 본다. 그들은 원래 학교 생활을 그렇게 하려고 교사가 됐을까. 그들은 처음부터 학생을 만나거나 수업을 하는 걸 싫어했을까. 그들 모두 분명히 중고등학교나 대학교를 다니면서 제법 부지런히 공부께나 하고 책도 많이 봤을 텐데, 그들은 왜 그렇게 책을 보거나 무언가를 연구하는 일을 싫어하게 된 걸까.

학교 일을 하지 않을수록 교장에 가까워지는 곳

<교장제도 혁명> 겉그림
 <교장제도 혁명> 겉그림
ⓒ 살림터

관련사진보기

<교장제도 혁명>을 쓴 13명의 공동 저자들은, 이 질문들에 대한 답 속에 '교장'이라는 말이 꼭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할 것 같다. 교장마다 정도의 차이가 있겠고, 또 모든 교장이 그런 것도 아니겠지만, 학교에서 제왕적인 권위자로 군림하는 교장이 현재의 학교교육이 안고 있는 문제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왜 이렇게 돼버린 걸까. 원래 교장이라는 족속이 그런 부류에 속해 있기 때문일까.

아닌 게 아니라 이 책을 보면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교장들이 많이 등장한다. 일제 강점기 황국신민 교육의 한 장치였던 애국조회나 훈화 교육을 실시하고, 그 훈화 내용을 받아 적고 소감을 쓰게 하는 초등학교 교장, 비정규직 교무보조 선생님에게 방학 중에는 자신의 딸이 경영하는 약국으로 출근하라고 지시하는 중학교 교장, 수 명의 비정규직 행정보조사들을 교무실에 모이게 한 다음, 자신이 가지고 온 나물을 다듬으라고 지시하는 교장을 우리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 자기만 쓴다고 바닥에 페인트로 '교장 전용'이라는 글씨를 칠하라고 요구하는 교장은 차라리 '귀엽다'.

하지만 교장 제도의 문제를 이런 '막가파' 부류의 행태에 국한해서 보아서는 안 된다. 이들 부류의 문제가 결코 그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저자들은 이들 '막가파' 교장을 포함하여, 겉으로는 점잖고 교양 있는 교육자 행세를 하지만 철저하게 권력과 이해타산의 논리에 따라 학교 현장을 지배하는 제왕적 교장들의 이면에 교장제도라는 구조와 정책이 가져오는 폐해, 곧 시스템의 문제가 깔려 있음에 주목한다.

도대체 교장제도에는 어떤 문제가 있을까. 교장 공모제를 통해 교장 '자격증' 없이도 아주 훌륭하게 교장 직무를 수행한, 전 한성중학교 교장 고춘식 선생님의 말을 들어보자.

지금 우리는 자격증은 곧 '자격'이라는 등식을 전제와 고정관념으로 심한 착각에 빠져 있고 더 나아가 맹신까지 하고 있다. 마치 '경쟁'을 시키면 곧 '경쟁력'이 생긴다고 착각하거나, 진도를 나가면 다 가르치고 다 배우고 아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과 유사한 것이다. (중략) 누구나 교장이 될 수 있다. 누구나 교장이 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아무나 교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왜일까? 교장이라는 직책의 중요성 때문이다. 그가 가지는 권한이 절대적이고 책임이 아주 막중하기 때문이다.(168~172쪽)

사정이 이러한데도, '자격'이 아니라 '자격증'만으로 교장이 된 '함량 미달자'들이, "교과서에는 있고 학교에는 없는 민주주의"(26쪽)를 몸소 구현(?)하고, 학교에서 "민주공화국에 대한 냉소를 가르치는 반헌법적 존재"(46쪽)가 되어 군림한다. 오죽 하면 열 교사 한 교장을 못 당한다는 말이 나왔을까.

이렇게 교장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교사들 위에서 전횡을 일삼고, 아이들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 있음으로써 '비교육적인 교육자'가 되는 시스템은 누가 보아도 정상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교장 승진을 교육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교사들의 치열한 경쟁으로 빗대고 있는 권재원 교사(풍성중학교)의 분석은 결코 지나치지 않다. 그의 말마따나 교육을 하지 않을수록, 그리고 학교 일을 하지 않을수록 교장에 가까워지는 곳이 대한민국 학교 현장이다.

'법대로'만 했다면, 대한민국 학교는 지금...

어쩌다가 이 지경에까지 이르게 됐을까. 우리나라 학교가 '법대로'만 했더라도 이런 상황까지는 오지 않았을 것이다. 현재 '초중등교육법' 제20조 1항은 "교장은 교무를 통할하고, 소속 교직원을 지도·감독하며, 학생을 교육한다"고 교장의 업무와 권한을 명시해놓고 있다. 권 교사의 분석에 의하면, 여기서 교무는 교무실의 교무가 아니라 학교의 제반 사무, 즉 교육을 제외한 일체의 학교 일을 일컫는다.

그렇다면 원칙적으로 교장이 학교 행정일까지 해야 한다. 여기에 학생을 교육하는 일이 덧붙여진다. 그러니 '법대로'만 한다면, 교장은 학교의 교원(교장, 교감, 교사를 묶어 일컫는 말) 직원(학교 행정실 직원을 생각하면 된다)을 통틀어 가장 바쁜 사람이어야 한다. 하지만 실제 현실 속의 교장은 으리으리하게 치장된 교장실에서 그 누구보다 가장 한가하게 보내는 사람이다.

권 교사에 따르면, 이러한 교장 모습은, 일이 너무 힘들다며 교사로 돌아가고 싶다고 전보를 내는 일본의 교장, 수업과 평가 이외의 모든 일을 행정실 직원 서너 명과 함께 도맡아서 하는 미국의 교장, 또는 수업도 하면서 각종 교무 총괄도 해야 하는 영국이나 독일의 교장과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이다.

이런 교장 못지 않게 학교에서 불필요해 보이는 교감의 모습 또한 교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초중등교육법' 제20조의 2항은 교감의 업무와 권한을 규정하고 있다. 그 내용을 보면, 교감은 교장을 보좌하여 교무를 관리하고 학생을 교육하며, 교장이 부득이한 사유로 직무를 수행할 수 없는 때 그 직무를 수행한다고 되어 있다. 교감이 하는 일이, 교무실 '아랫목'에 앉아 교사가 작성한 공문서를 보고 꼬투리를 잡거나, 빨간 줄로 밑줄을 쳐가면서 되돌리는 일 따위가 아님을 누구라도 알 수 있다.

교육법이 교장과 교감에게 이렇게 막대한 임무를 부여한 까닭은 무엇인가. 바로 교사가 학생을 대상으로 교육 본연의 일에 충실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초중등교육법' 제20조의 3항에서도 교사는 "법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학생을 교육한다"고 '심플하게' 규정해 놓고 있다. 실제 교장과 교감이 '법대로' 학교의 행·재정적인 제반 업무를 수행하고, 교사와 함께 교육(수업) 활동을 해나간다면, 교사들이 이른바 '교육 외의 잡무' 때문에 법이 규정한 본연의 직무를 소홀히 하는 상황은 거의 펼쳐지지 않을 것이다.

거시적인 분석과 제언들이 골치가 아프다고?

교사가 해야 하는 일은 오로지 교육뿐이다. 그런데 법에 정해진 바에 따라 교육 이외의 업무는 교사가 하지 않도록 돕겠다던 곽노현 교육감의 교원 업무 정상화 방안이 도리어 이상적이고 급진적이라는 말을 듣는 이상한 나라에 우리가 살고 있다. 실제 학교에 가 보면 그렇다. 우리나라에서 교사가 법에 정해진 바에 따라 수업하고 평가하고, 학생을 지도하고 상담하는 일에만 전념하는 학교를 찾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물론 학교 밖에서는 교사가 으레 그럴 거라 짐작하면서 교사가 뭐가 바쁘고 힘드냐며 교원 평가에 성과급제를 하면서 더 뺑뺑이 돌려야 한다고 가학적인 주장을 한다. (54쪽)

"교장의 자율성이 곧 학교의 자율성"(45쪽)이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이것은 명백한 착각의 오류이다. 내가 보기에, 현재의 교장 제도를 혁파하여 개선하지 않은 채 학교 자율성을 교장의 자율성을 조건으로 구현하려는 시도는 교장이 갖고 있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더욱 강화하는 결과밖에 가져오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우리는 이 책의 제2부("교장이 바뀌면 학교가 바뀐다")와 제3부("교장제도 이렇게 바꾸자")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혁신학교를 중심으로 교장공모제를 실시한 학교의 성과와 한계, 새로운 학교공동체 문화 만들기 사례를 소개하고 있는 제2부와, 교장 자격증이 교장의 '자격'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며, 교장임용제도의 개혁을 위해 교장보직공모제를 제안하고 있는 제3부의 내용들이 교장 제도에 대한 고민과 성찰에 많은 길라잡이가 돼 줄 것이다.

이런 거시적인 분석과 제언들이 골치가 아프다고? 그렇다면 권재원 교사가 명쾌하게 정리한 다음 내용을 참조하자.

그들이 교장이 되고자 하는 이유는, 그리고 교장의 직무 만족도보다 교사보다 훨씬 높아서(초등교장 1위, 중등교장 49위, 교사 90위-기자 주) 일본이나 미국과 큰 차이를 보이는 까닭은 이 셋으로 축약된다.

(1) 별로 일 안 하고도 월급 받는다.
(2) 누구의 제어도 받지 않는 유일한 행위자로서의 권력을 만끽한다.
(3) 해 먹는다.

교장제도의 개혁 방향은 그러니 아주 간단하다. 이 셋을 반대로 뒤집으면 된다.

(1) 교장은 수업을 안 하는 만큼 행정 일을 전담하거나, 아니면 수업도 분담하도록 한다.
(2) 교장의 학교에서의 결정권, 특히 교육에 대한 결정권은 교사들에게 분산시키며, 소속 교직원에 대한 감독권은 철저하게 법령으로 제한하여 임의재량권처럼 남용하지 못하게 한다.
(3) 교장은 모든 회계 관리를 학교운영위원회, 교사회의 승인을 받아서 하도록 한다. (68쪽)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오마이뉴스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교장제도 혁명> (한국교육네트워크 엮음 | 살림터 | 2013. 6. 21 | 268쪽 | 1만 4천 원)



교장 제도 혁명 - 학교혁신의 지름길

한국교육연구네트워크 엮음, 살림터(2013)


태그:#<교장제도 혁명>, #한국교육연구네트워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살림터, 2017)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살림터, 2016) "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