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중앙일보가 보도한 박근혜 대통령의 역사교육 관련 발언(7월 11일 치 갈무리)
 중앙일보가 보도한 박근혜 대통령의 역사교육 관련 발언(7월 11일 치 갈무리)
ⓒ <중앙일보>

관련사진보기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0일 언론사 논설실장-해설위원들과 한 점심 자리에서 '역사 교육을 강화하겠다'는 뜻을 밝히며 "이렇게 중요한 과목은 평가 기준에 넣어야 된다는 게 개인적 생각"이라면서 "학계나 교육계와 의논해 이것을 평가에 어떻게든 반영해나가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11일 치 <중앙일보>는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을 두고 "수능으로 들어가면 깨끗하게 끝나는 일"이라는 소신을 밝혔다고 전했다. 한국사를 수능 필수과목으로 해서 역사인식을 강화하겠다는 말이다. '수능에 들어가면 정말 혼이 살아있는 시민으로 살아날까'라는 의구심이 든다.

좋게 생각하자. 잘된 일이라고 여기자. 역사를 올바로 아는 시민이고, 겨레라야 더 나은 뒷날을 바랄 수 있다는 말은 아무리 말해도 입이 닳지 않는 법. 하지만 우리가 역사교육을 왜 하려고 하는지 본질적 물음을 놓쳐선 안 된다.

역사만 바짝 공부하면 다 되는 줄 아나

지금까지 역사교육을 한 번 떠올려보라. 이미 어른이라면 학창 시절을 돌이켜보라. 역사 시간에 돌도끼 쓰던 때부터 이명박 정부까지 정치·경제·문화·생활사를 샅샅이 훑어 공부해오지 않았는가. 암기 기계처럼 역사 사실을 달달 외우는 공부를 해오지 않았나. '역사교육을 제대로 하라'고 떠드는 사람들이야 쉽지만, 정작 공부하는 아이들은 답답해 죽을 지경이다.

우리 아이들은 스펀지가 아니다. 좋게 생각해서 설령 그 많은 역사지식을 다 빨아들였다고 치자. 그게 오늘의 우리 삶과 연결짓지 못하고 낱낱으로 겉도는 기억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동시에 어느 세대보다도 철저하게 역사교육을 받았을 이 나라 정치인들이 아무렇게나 역사를 부정하고 왜곡하는 일을 우리는 어떻게 봐야 하는가. 유네스코가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한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심각하게 왜곡하고 희생자들을 모욕하는 일들은 왜 일어나겠는가. 더욱이 계엄군이 저지른 만행에는 철저히 눈 감고 있는 교과서나 '정치적으로 대립된 이슈'라고 말하는 교육부 장관의 인식은 역사교육이 모자랐기 때문인가. 총으로 정권을 빼앗은 5·16을 쿠데타라고 말하지 못하는 머뭇거림을 과연 어떻게 봐야 하는가? 이웃나라 역사왜곡에 저항하는 수단으로만 보지 않았는가.

동떨어진 파편처럼 박제된 기억은 역사 인식이라고 할 수 없다. 역사학자 E.H. 카아는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일 뿐만 아니라, 과거의 사건과 미래의 목적의 대화"라야 한다고 했다. 이 말은 단지 과거의 기억이 아니라 지금 여기를 밝히고 뒷날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역사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대원칙은 좋다. 하지만 점수를 미끼로 아이들 기억마저 입맛대로 바꾸려고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우리는 어떤 뒷날을 바라고 역사를 가르치려고 하는가. 일본과 중국의 역사 왜곡에 맞서려는 사람을 키우려는 것인가, 역사 사실을 기계적으로 많이 아는 사람을 기르는 것인가, 아니면 역사적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는 사람을 바라는 것인가.


태그:#역사교육, #수능, #한국사, #역사인식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 말과 글쓰기 교육, 어린이문학에 관심이 많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