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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복합역사 전경. 신축을 시작한 지 14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무허가 건물이다.
 구미복합역사 전경. 신축을 시작한 지 14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무허가 건물이다.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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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저녁, 구미복합역사 상업시설을 임차한 써프라임 플로렌스의 한 임원은 스마트폰으로 대법원 홈페이지를 검색하다가 눈이 번쩍 뜨였다. 써프라임 플로렌스와 한국철도공사(코레일)가 벌이고 있는 구미복합역사 상업시설 명도소송 사건 진행상황과 관련해 이런 내용이 추가돼 있었기 때문이다.

'2013. 07. 04 법원 박주영 참고자료(직권) 제출'

이날 오후 2시 대구지방법원에서 1심 판결이 내려지기 직전 주심판사가 직권으로 참고자료를 제출한 것이다. 법조계 내부에서조차 "이런 사례는 본 적이 없다"고 말할 정도로 이례적인 일이었다. 게다가 박 판사가 제출한 참고자료는 코레일에 불리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퍼갑'인 코레일은 승소했다.

코레일 내부문건조차 자신의 '기망행위' 인정

코레일은 지난 2012년 3월 21일 구미복합역사 상업시설 명도소송을 제기했다. 주차장 조성의무 위반, 임대료 미지급 등을 이유로 임대차계약을 해지하려고 한 것이다. 이에 구미역사 상업시설을 임차한 써프라임 플로렌스에서는 '입찰사기' 주장으로 맞섰다.

대구지법의 한 판사는 "이 소송의 핵심 쟁점 가운데 하나는 지하주차장 건설문제였다"고 말했다. 구미시와 코레일이 입찰 전에 최종 사용승인의 필수조건으로 지하주차장 건설 협의를 끝냈는데도 이것을 감춘 채 입찰(2007년 10월)과 계약체결(2007년 11월)을 진행했기 때문에 '입찰사기'라는 것이 임차인의 주장이다.

재판과정에서 제출된 코레일의 '제85차 이사회' 자료(2010년 7월 22일)에는 "지하주차장은 구미역사의 사용승인을 위해서 반드시 완공되어야" 한다고 적시돼 있다. 비슷한 시기에 작성된 '구미복합역사 정상화 추진 방안'이라는 내부 문건에도 이렇게 기술돼 있다.

- 임차인 모집 전에 옥외주차장은 지하로 건설해야 한다는 구미시의 의견을 접수('06.12.15) 및 협의('06.5.26, '07.5.30)한 사실이 있었음.
- 임차인 모집 및 우선협상과정에서 구미시의 의견을 고지하지 않아 사업계획서 평가('07.10.25)시 지하주차장이 미반영되었으며

코레일에서조차 임차인에게 구미역사 상업시설 사용승인의 필수조건으로서 지하주차장 건설을 알리지 않았음을 인정한 것이다. 하지만 대구지방법원 민사합의 11부(부장판사 이영숙)에서는 지난 4일 코레일의 손을 들어주었다. 앞서 6월 27일로 예정됐던 선고기일이 석연치 않은 이유로 1주일 연기된 뒤 나온 판결이었다. 게다가 재판부는 이미 지하주차장 건설에 투입한 70억 원을 돌려 달라는 임차인의 반소도 기각했다.

대법원의 전자소송 시스템. 지난 4일 박주영 주심판사가 직권으로 참고자료를 제출했다는 내용이 적시돼 있다.
 대법원의 전자소송 시스템. 지난 4일 박주영 주심판사가 직권으로 참고자료를 제출했다는 내용이 적시돼 있다.
ⓒ 대법원 전자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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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고일에 주심판사의 참고자료 직권 제출... "사상 초유의 사건"

그런데 코레일 승소 판결이 나오기 직전 박주영 주심판사가 직권으로 참고자료를 제출했다. 주심판사가 판결 직전에 직접 참고자료를 제출하는 것 자체가 매우 이례적이라는 지적이 많다.

판사 출신인 서기호 진보정의당 의원은 "사상 초유의 사건이다"라고 표현했다. 그는 "판사가 자기 판결을 정당화하기 위해 별지 형식으로 자료를 제출할 수는 있지만 참고자료를 판사가 직접 제출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의 한 판사는 "형사소송은 검사와 변호사가 자료를 제출하고, 민사소송은 피고와 원고가 제출한다"며 "그런데 판사가 참고자료를 제출하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한 변호사도 "민사소송은 변론주의를 원칙으로 하기 때문에 당사자가 주장하거나 입증하지 않으면 재판부는 판단하지 않는다"라며 "당사자들이 자료를 내는 게 맞는데 왜 주심판사가 직권으로 자료를 제출했는지 의문이다"라고 그 배경에 의구심을 나타냈다.

대법원의 한 판사는 "원고나 피고가 증거를 신청하지 않으면 판사가 사실을 확정하기 위해 문서송부촉탁이나 사실조회 신청 등에서 나온 결과를 증거로 채택할 수 있다"며 "하지만 그것도 예외적이다"라고 말했다.

더욱 눈길을 끄는 것은 박주영 판사가 제출한 자료가 1심에서 승소한 코레일에 불리한 것이었다는 점이다. 박 판사가 선고일에 낸 자료는 지난 2007년 5월 8일 구미시 건설과에서 구청 홈페이지에 올린 'KTX 구미역 정차를 위한 한국철도공사 협조사항'이라는 글로 '구미역 후광장에 지하주차장 설치 및 일정기간 사용후 기부체납'이라는 대목이 들어 있다.

'철도를 이용하는 시민들의 교통편의를 위하여 지상광장부지를 철도공사에서 지하주차장 설치시 기부체납 조건으로 무상임대'

이는 이미 2007년 5월 8일 이전에 구미시와 코레일이 구미역 상업시설 사용승인의 조건으로 지하주차장 건설을 협의했음을 보여준다. 경우에 따라서 '증거'에 해당할 수 있는 자료였던 것이다. 특히 임차인의 '입찰사기' 주장에 맞서고 있던 코레일로서는 확실히 불리한 자료였다. 하지만 재판부는 코레일의 손을 들어주었다. 재판부의 판단이 이미 결정된 상태였는데도 주심판사가 선고일에 판결에 어긋나는 자료를 제출한 점은 의문이다.     

서기호 의원은 "본인의 생각이 최종 판결결과와 다르다는 것을 기록을 통해 남기려고 했을 수 있고, 피고에게 '항소심에 참고하라'는 메시지를 주기 위해 자료를 제출했을 수도 있다"고 추정했다. 그는 "판결결과와 다른 자료를 제출한 것은 판결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행위로 볼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박주영 판사가 선고일인 지난 4일 직권으로 제출한 참고자료의 일부.
 박주영 판사가 선고일인 지난 4일 직권으로 제출한 참고자료의 일부.
ⓒ 구미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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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지법쪽 "코레일의 기망행위 시기를 확실하게 하기 위해 자료 제출"

하지만 조순표 대구지법 공보관(판사)은 "코레일이 피고를 기망한 사실을 인정하기 위한 추가적인 보충자료로 2007년 5월 8일자 구미시 홈페이지 캡처화면을 참고자료로 제출했다"고 해명했다.

"(주심판사가 제출한) 참고자료는 피고에 유리한 자료지만, 이미 결정난 것의 보충적 자료다. 코레일의 기망행위는 지하주차장 건설문제와 KTX 구미역 정차문제인데 피고가 (공판 과정에서) 제출한 자료만으로도 코레일의 기망행위가 어느 정도 인정됐다. 다만 (기망행위를 시작한) 날짜가 애매해 그것을 좀더 확실하게 하기 위해 (주심판사가) 자료를 제출한 것이다."

조순표 공보관은 "다만 지하주차장과 관련한 코레일의 기망행위는 인정되지만 그 인과관계(코레일의 기망행위와 피고의 손해)가 인정되지 않는다"라며 "피고는 1차 임대차계약 체결 당시에는 그러한 사정을 알지 못했지만 이후 지하주차장 건설 부분을 알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피고 스스로의 경영판단에 의해 주차장 투자협약과 화해합의를 약정했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도 1심 판결문에서 이렇게 판시했다.

"피고는 1차 임대차계약 이후로서 적어도 2008년 1월경에는 구미역사 후면 광장에는 지하에 주차장을 건설하여야 하고, 그 것이 구미복합역사 건물의 사용승인을 받기 위한 주요 요건인 사정을 알게 되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고는 위와 같은 사정 반경을 주장하여 1차 임대차계약을 해지하거나 임대차 조건을 변경하는 조치를 취하지 아니하고 스스로의 경영판단에 기하여 피고의 비용으로 이 사건 지하주차장을 건설하기로 약정하였다고 판단된다."

하지만 써프라임 플로렌스의 한 임원은 "재판부와 코레일은 저희가 지하주차장을 짓는 투자협약을 체결함으로써 기망행위(2007년 10월 입찰하기 전에 코레일과 구미시가 지하주차장 건설문제를 협의했다는사실을 속인 행위)가 사라졌다고 주장한다"라며 "하지만 우리가 코레일의 기망행위를 알게 된 것은 (지난 2010년 9월) 투자협약을 체결한 이후였다"고 반박했다.

이 임원은 "지난 2011년 국정감사에 나온 '코레일 이사회' 자료를 보고 우리가 속았음을 알았다"라며 "투자협약을 체결하기 전에 코레일의 기망행위를 알았다면 (임차인에 불과한 우리가) 투자까지 받아서 지하주차장을 짓지는 않았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임원은 "우리는 임차인에 불과한데 왜 지하주차장을 지어야 하나,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갑'인 코레일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었다"라며 "특히 재판부의 판결은 코레일을 변호한 법무법인 '광장'의 변론을 거의 그대로 인용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조순표 공보관은 '주심판사가 선고일에 참고자료를 제출하는 것이 아주 이례적이다'라는 지적에는 "판사가 판례나 참고논문 등을 참고자료로 제출하는 경우가 간혹 있다"며 "재판장과 주심판사 사이에 이견이 있어서 주심판사가 (코레일에 불리한) 참고자료를 제출한 것도 아니다"라고 답변했다.
 
한편 코레일은 지난 1999년 구미역 구역사를 철거하고 역무시절과 상업시설 등을 갖춘 지하 1층, 지상 5층의 구미복합역사(4만565㎡)를 신축하기 시작했지만 14년이 지나도록 완공하지 못했다. 최초 예상했던 공사비 350억 원보다 2배 이상 많은 800억 원 이상이 들어갔지만 여러 가지 분쟁 등으로 현재까지 '무허가 건물'로 남아 있다. 이로 인해 구미복합역사는 몇년 간 구미시의 최대 현안이었다.


태그:#구미복합역사, #박주영, #대구지법, #한국철도공사, #써프라임 플로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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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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