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난 5월 해녀 생활을 접은 오동도 해녀 할머니 두분이 자판을 펴고 관광객에게 멍게를 팔고 있다.
 지난 5월 해녀 생활을 접은 오동도 해녀 할머니 두분이 자판을 펴고 관광객에게 멍게를 팔고 있다.
ⓒ 심명남

관련사진보기


"영감님, 안녕히 계세요. 그간 고마웠어라. 오늘 용왕님께 마지막 인사하고 떠납니다."

지난달이었다. 평생을 해녀로 살아온 할머니 두 분은 여수 오동도 터줏대감 사진사 엄인섭 할아버지에게 마지막 인사말을 하고 떠났다. 오동도 앞바다에서 '물질'로 살아온 해녀가 은퇴한 것이다.

해녀들은 자맥질을 '물질'이라 부른다. 그래도 5월까지 오동도엔 5명의 해녀가 있었다. 이젠 마지막 3명만 남았다. 오동도 다리를 건너면 입구 바닷가에 해산물을 파는 해녀를 볼 수 있었다. 이들은 좌판을 펴놓고 손수 잡아온 싱싱한 멍게와 해삼 등을 관광객들에게 팔았다. 제주 해안에서 볼 수 있는 흔한 광경이 오동도에서도 펼쳐졌다. 이제는 그 모습도 사라졌다. 장사를 하던 두 분이 해녀에서 은퇴했기 때문이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필자는 그 모습을 스마트폰에 담은 적이 있다. 언젠가 이들과 인터뷰를 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때가 끝이었다니… 못내 아쉽다.

오동도의 가장 젊은 해녀... 그에게 자맥질은

 이제 오동도에 남은 해녀는 3명뿐이다. 남아 있는 해녀중 가장 젊은 해녀 신한점 할머니가 물질을 준비중이다.
 이제 오동도에 남은 해녀는 3명뿐이다. 남아 있는 해녀중 가장 젊은 해녀 신한점 할머니가 물질을 준비중이다.
ⓒ 심명남

관련사진보기


이제 남은 사람 중 가장 젊은 해녀는 신한점(문수동 원앙아파트) 할머니다. 그의 나이도 어느덧 66세다. 할머니는 현재 아들 집에서 며느리랑 손자랑 함께 산다. 필자가 사진 한 번 찍자고 조르니 "이런 것 사진 찍어 갖고 뭐하게"라며 쑥스러워 한다. 해녀라는 직업이 몸서리났던 모양이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해녀 되신 거 후회하세요?"
"후회는 안 해. 왜 안 하냐면 그냥 하고 싶으면 하구, 놀고 잡으면 놀거든. 지금은 용돈이나 벌어 쓰지만 이날 평생, 물질을 해서 자식 셋을 키웠어. 돈 모아 놓은 것은 없지만 오늘도 용돈 벌려고 바다에 나왔어."

할머니는 물질이 마음 먹기에 달렸단다. 아직도 한 달에 3~4일 정도만 빼고 일을 하기도 한단다. 한참 젊었을 때는 오동도 끝 방파제를 훨씬 넘어 깊은 바닷속을 겁없이 누볐다. 그곳은 배들이 지나다니는 뱃길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아찔하단다.

나이가 들어도 물질을 나온 이유가 있다. 집에 있으면 몸이 아프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다에 나오면 아프지 않다. 세상 바람 다 쏘이니 오히려 컨디션이 더 좋단다. 노년에 바다는 그의 삶을 치유하는 '힐링캠프' 같은 곳이다.

여수를 비롯해 남해안 바닷가에 해녀가 사라지고 있다. 요즘 여자들이 "미치지 않는 이상" 해녀를 직업으로 삼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해녀하면 흔히 '제주해녀'가 연상된다. 하지만 예전엔 남해안을 끼고 있는 바닷가에 해녀가 많았다.

어릴 적 물 속에서 불쑥 솟아오르던 해녀는 신비로운 존재였다. 뭍사람들은 해녀의 '숨비소리'를 듣고 신기해한다. 때론 낭만을 얘기한다. 하지만 그 일이 직업인 해녀들의 일상은 고달프다. 물질을 해서 가정경제를 도맡아 왔다. 그래서 해녀는 강해야 했다. 허나 이들 역시 여자였고 또 누군가의 어머니였다.

나잠어법으로 20m 바닷속을 누비는 해녀

 오동도에서 가장 젊은 해녀인 신한점 할머니가 물속 들어가기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오동도에서 가장 젊은 해녀인 신한점 할머니가 물속 들어가기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심명남

관련사진보기


 해녀의 일상은 고달프다. 나약한 여자의 몸으로 물질을 해서 가정경제를 도맡아 왔던 해녀는 강해야 했다. 허나 이들 역시 여자였고. 또 누군가의 어머니였다.
 해녀의 일상은 고달프다. 나약한 여자의 몸으로 물질을 해서 가정경제를 도맡아 왔던 해녀는 강해야 했다. 허나 이들 역시 여자였고. 또 누군가의 어머니였다.
ⓒ 심명남

관련사진보기


 해녀가 물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바닷속으로 들어가 물질을 하면 살아야겠다는 생각뿐이다. 물건할 욕심에 우울증은 사치다.
 해녀가 물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바닷속으로 들어가 물질을 하면 살아야겠다는 생각뿐이다. 물건할 욕심에 우울증은 사치다.
ⓒ 심명남

관련사진보기


 공기 한모금을 머금고 심호흡에 의지하는 해녀의 삶은 처절한 몸부림이다.그래서 자맥질 후 내뿜는 '숨비소리'는 참았던 숨을 토해내는 거친 외침이다.
 공기 한모금을 머금고 심호흡에 의지하는 해녀의 삶은 처절한 몸부림이다.그래서 자맥질 후 내뿜는 '숨비소리'는 참았던 숨을 토해내는 거친 외침이다.
ⓒ 심명남

관련사진보기


 오동도의 마지막 해녀 신한점 할머니가 물질을 한후 채취한 해산물을 보이고 있다.
 오동도의 마지막 해녀 신한점 할머니가 물질을 한후 채취한 해산물을 보이고 있다.
ⓒ 심명남

관련사진보기


해녀들의 물질기법을 '나잠어법'이라 불렸다. 나잠어법은 맨몸으로 물질을 하는 것을 말한다. 베테랑급 해녀들은 최고 20m까지 들어가 해산물을 캐낸다. 그 깊이라면 다이버가 공기통을 매고 입수해도 힘겨움 느낀다.

공기 한모금을 머금고 심호흡에 의지하는 해녀의 삶은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그래서 자맥질 후 내뿜는 숨비소리는 참았던 숨을 토해내는 거친 외침이다. 때론 영화 속에 등장하는 식인상어가 나타나면 어쩌나 하는 공포도 있다. 실제로 식인상어의 공격으로 해녀가 목숨을 잃은 사건이 보도되기도 했다. 특히 바닷속에 처진 그물이 목숨을 위협하기도 한다. 하지만 해녀가 물질을 멈출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여기에 가족들의 생계가 달려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세상에서 받을 고통 다 받고 살았어. 난 저승까지 다 갖다 온 사람이여."

해녀의 삶에 대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은 할머니는 40년째 잠수복을 입고 살았다. 2남1녀의 자녀를 둔 할머니는 물질로 생계를 꾸렸다. 안타깝게도 막내아들은 어렸을 때 경기로 인해 시력을 잃었다. 이 때문에 울기도 많이 울었단다. 그런 막내가 어느덧 37세가 되었다.

"아들이 고열을 앓더니 시력을 잃었어. 맹인이 된 거지. 아들에게 내가 엄중히 했제. 그런 아이들일수록 엄중히 해야지 부모가 짠하다고 안고 그러면 남에게 의지를 하거든. 이런 애들이 깨를 쓰면 고집이 세니까 웬만하면 닥달을 못해. 그래서 그것이 가장 맘에 걸려."

자립심을 키워주기 위한 해녀 어머니의 자식교육 방식이었다. 장성한 아들은 지금도 전화를 통해 하는 말이 있다.

"엄마! 엄마가 나한테 한 것 하나도 안 잊어버려. 왜 그런 줄 알아. 엄마가 나를 강하게 하려고 혼자 일어나라, 희망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고 그렇게 교육했어. 엄마 나 앞으로도 엄마한테 의지하지 않을 거야. 엄마에게 너무 감사해."

해녀 다시 하고 싶냐고?

할머니는 26살 때 해녀가 되었다. 21살 때 남해에서 여수로 시집와 22살 때 장티푸스에 걸려 3번의 큰 수술을 받았다. 이후 건강이 악화되었다. 그 탓에 우울증에 시달렸다. 한때는 삶을 포기했다. 허송세월도 보냈다. 몸이 아파서 남들 밑에서 일도 못할 처지였다. 나가 죽는 것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하지만 결혼 6년 만에 첫딸을 낳았다.

"큰 수술 세 번을 받다 보니 이건 사람도 아녀. 물질해서 자식들 가르치고 묵고 살고 돈 벌어서 아저씨 병원비로 다 나갔어. 아저씨는 간경화로 돌아가셨어. 17년 동안 병원 생활을 했거든."

 해녀의 삶은 고달프다. 하지만 언제나 할머니를 반겨준 것은 바다였다. 40년 해녀 생활을 한 신한점 할머니는 오늘도 오동도 앞바다를 누비고 있다.
 해녀의 삶은 고달프다. 하지만 언제나 할머니를 반겨준 것은 바다였다. 40년 해녀 생활을 한 신한점 할머니는 오늘도 오동도 앞바다를 누비고 있다.
ⓒ 심명남

관련사진보기


그렇지만 할머니를 반겨준 것은 바다였다. 해녀가 할머니 삶의 유일한 출구였던 셈이다. 물질을 하면 우울증이 사라졌다.

"해녀복을 입고 바닷속으로 들어가 물질을 하면 살아야겠다는 생각뿐이 안 들어. 일단 물에 빠지면 모든 신경이 어디로 가냐. 물건 헐 욕심에 다 잊어버려…."

할머니는 게, 멍게, 해삼, 전복, 소라, 고동 등을 잡는다. 물질을 하고 나면 채취한 해산물을 손수레에 싣고 먼길을 걸어야 한다. 오동도에서 중앙동 어장까지 끌고가 수산물 상회에다 판면 하루 일과가 끝난다. 다시 태어나도 해녀를 하고 싶냐는 물음에 손사래를 친다. 다시는 해녀를 안 하고 싶단다. 이제는 세상에 봉사하고 남한테 좀 베풀고 살고 싶단다. 할머니는 마지막 걱정을 털어놨다.

"부모 맘이란 게 다 똑같아요. 어느 가정이든 있으면 있는 대로 걱정이 있고, 없으면 없는 대로 걱정이 있어. 우리 막둥이가 좋은 배필을 만났으면 좋겠어, 그제 마지막 소원이제 뭐."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전라도뉴스> <여수넷통>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네가 하고 싶은 일을 남에게 말해도 좋다. 단 그것을 행동으로 보여라!" 어릴적 몰래 본 형님의 일기장, 늘 그맘 변치않고 살렵니다. <3월 뉴스게릴라상> <아버지 우수상> <2012 총선.대선 특별취재팀> <찜!e시민기자> <2월 22일상> <세월호 보도 - 6.4지방선거 보도 특별상> 거북선 보도 <특종상> 명예의 전당 으뜸상 ☞「납북어부의 아들」저자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