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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열 의사 기념관은 4300평의 넓은 부지에 건물은 연면적 1600㎡(485평)로 전시실과 영상실 등이 있다. 기념관에 들어서면 책을 들고 앉아 있는 박 의사의 동상이 보인다. 동상 좌대엔 임시정부 최고 이론가인 조소앙 선생이 남긴 글이 새겨져 있다. '천황을 타도하는 선봉에 서시고 민주를 개벽하는 건물이 되시다'라는 멋진 문장이다.

마성면
▲ 박열 의사 마성면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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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 전시관은 의사의 일대기와 그가 아나키즘 운동을 펼치면서 간행한 <흑도> 등 잡지, 저서, 어록, 당시 재판 기록과 그를 지원한 일본인 후세 변호사에 관한 자료, 신문 기사, 가네코에 관한 자료 등이 진열돼 있다. 그동안 일본·한국·북한 등에 흩어져 있던 유품과 사료 등 630여 점이다.

2층에는 박열과 가네코의 유적, 일제 강점기의 법정 및 형무소 체험실, 영상실, 박열의 사회운동 및 항일투쟁 자료실이 만들어졌다. 가네코의 철학과 사상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공간이며, 일본에서 그녀에 대한 연구가 상당히 진척되어 있음을 알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박열보다 더 투철했던 혁명 전사였던 가네코에 대한 자료는 생각보다 많아서 공부가 많이 되어 좋았다.

기념관이 조성되면서 정말로 이곳은 일본 아나키스트들이 찾는 성지가 되고 있다. 기념관 완공 이전에도 가네코 연구회 회원 등 300여 명이 일본의 흙과 물을 가져와 가네코 묘소에 뿌리고 그의 흔적을 더듬었다.

기념관이 준공된 뒤에도 일본인과 재일교포 등 수백 명이 찾아와 전시자료를 꼼꼼히 살피고 있다. 국내 아나키스트 단체인 '국민문화연구소' 회원들과 연구자, 재일동포도 수시로 이곳을 방문하고 있다.

참, 재미있게도 난 박열 의사 기념관을 둘러보면서 박열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이제라도 알게 되어 너무 기뻤고, 가네코 여사에 대해서도 공부가 되어 무척 좋았다. 그런데 보수적인 경상도 문경 땅에 어떻게 왜 누구의 도움과 의지로 아나키스트 박열 의사의 기념관이 건립되었을까? 의아한 측면(?)도 있었다.

지난 1983년 전두환 대통령의 특별 유시로 '전봉준 장군 유적정화사업'이 시작되었다. 이어 전북도의 주관으로 1987년 10월 전북 정읍에 전봉준 기념관이 건립되었다. 동학농민혁명을 주도한 전봉준 장군을, 학살과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군인 출신 대통령이 칭찬하면서 기념관 건립을 독려(?)한 것이다.
   
문경시
▲ 가네코 여사 추모비 문경시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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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전씨(?) 집안이 아니었다면 있을 수 없는 일 같은데, 약간은 웃기면서도 비상식적인 일이 일어난 것이다. 재미있게도 보수가 진보를 칭찬하고 격려하면서 기념관까지 건립을 주선한 것이다.

박열 의사 기념관에서도 너무 좋은 것을 많이 보았지만, 나는 약간은 생뚱맞은 기분이 든 게 사실이다. 원래 예천사람으로 문경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는 상주에서 다니고, 15살에 서울로 유학을 갔다가 다시 19살에 일본으로 건너가 독립운동과 형무소 그리고 해방 직후에도 일본에서 활동했다.

이후 귀국하여 잠시 서울에서 우익인사로 활동하다가 전쟁으로 납북된 사람이 과연 문경 마성면에 얼마나 살았고, 문경에 얼마나 기여를 했는지 의문(?)이 많이 들었다. 거기에 보수적인 토양인 문경 땅에 평등·평화·자유를 외치는 아나키스트 기념관이라, 알 수 없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역시 우리 민족에게 피는 이념보다 진한가 보다.

박열 의사 기념관을 둘러 본 나는 옛날부터 평산 신씨와 돌, 호랑이가 많아 '신·석·호(申·石·虎)의 고장'이라고 불리는 문경을 살펴보기 위해 가장 먼저 '평산신씨 문희공파 문경화수회' 신봉식 회장과 함께 문중의 재실과 산소 등을 둘러보려고 버스를 타고 가은읍으로 갔다.

칼국수
▲ 문영집 칼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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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가은읍 사무소 인근에 있는 칼국수 전문점인 '문영집' 앞에서 만나 인사를 하고는 식사를 했다. 3500원이라고 하는 착한 가격으로 정부와 경북도, 문경시로부터 착한가격모범업소 지정을 받은 곳이다. 

노년의 주인 할머님이 정말 시골스러운 칼국수를 직접 손으로 밀어서 약간의 고명으로 김과 계란채를 올린 국수에 배추김치와 열무김치, 고추김치를 함께 먹으니 맛이 참 좋았다.

열무김치를 좋아하는 나는 김치 맛과 손을 직접 밀어서 만든 국수를 오랜 만에 보는 터라 기분 좋게 한 그릇을 했다. 식사를 마치고 신봉식 회장과 함께 전곡리에 있는 평산신씨 문경 입향조인 신숙빈(申叔彬) 선생을 모시는 재실인 '구수재(龜壽齋)'로 갔다.

재실의 문, 구수문
▲ 평산신씨 재실의 문, 구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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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숙빈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서, 평산신씨의 시조인 고려 무장 신숭겸 장군의 17세 손이다. 사헌부 감찰, 거창현감을 지냈다. 무오사화 이후 관직을 사퇴하고 장인인 사직 안귀손과 함께 문경 가은 소양으로 들어가 후진을 양성하였다.

호는 한천처사(寒泉處士)다. 대사성 자승의 여섯 째 아들로 태종의 셋째 딸인 정선공주의 외손자다. 문장이 뛰어났으며 품행과 도의가 올발라 당대에 학자로서 이름이 높았다. 가은에 상강정(上江亭)을 짓고 찾아오는 후진들을 가르쳤다. 사후, 문경에 있는 '한천서원(寒泉書院)'에 배향되다.

나와 신봉식 회장은 선생을 모시는 재실인 구수재,구수문(龜壽門)과 이웃한 상강정 등을 둘러보았다. 나는 새롭게 만든 듯한 구수문과 낡은 구수재가 이상하게 어울려 좋아보였다. 내부의 큰 조경석과 나무들도 의미가 있어 보이고 아름답게 가꾸어 놓았다.
 
화수회장님과
▲ 평산신씨 재실 구수재 화수회장님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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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바로 언덕 위에 있는 상강정 정자가 마음에 들었다. 신숙빈 선생이 후진들을 가르치며 지내던 자리에 후손들이 건립한 정자이다. 정면 3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정자의 입구에는 그의 업적을 기려 세운 비가 있으며 우측 전면에는 그의 장모인 강릉 최씨의 정려각이 있다.

아울러 뒤편에 있는 아주 규모가 작은 '소양서원(瀟陽書院)'을 잠시 살펴보았다. 소양서원은 경북 문화재자료 제505호로 1712년(숙종38)에 향리의 유림들이 김낙춘, 안귀남, 신숙빈 등 지역의 선현들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였다. 흥선 대원군의 서원 훼철 당시 사당은 철거되고 강당과 동재만 남아있던 것을 1990년에 복원하였다.

가은읍
▲ 소양서원 가은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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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당의 우측 뒤에는 동재를 세웠고, 마당의 뒤쪽에는 내삼문과 사당으로 이루어진 묘의 영역이 별도로 자리 잡고 있어, 강학과 제향 공간이 분리되어 있는 형태이다. 강당은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기와집이며,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맞배기와집이다.

2007년 동재와 삼문을 보수하여 조선시대 교육시설로서의 서원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정언신·김낙춘·심대부·이심·남영 등 5현이 봉안되어 있다. 서원은 전체를 감싸는 외부 담장이 없는 것이 약간은 아쉬웠다.

여기까지 짧게 본 다음, 소양리 구수동 연소혈 자좌오향원에 있는 신숙빈 선생 부부의 묘소에 올라 잠시 인사를 드렸다.

가은읍
▲ 신숙빈 선생 부부 산소 가은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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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산신씨 문희공파 주손 집안의 처녀를 맞이하여 2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살고 있는 사람으로 처가의 큰 어른에게 처음으로 인사를 드리는 것이 죄스럽기도 했지만, 터가 무척 좋고 풍광도 훌륭하여 후손들이 모두 잘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곳이었다.  

신숙빈과 그의 장인 안귀손은 농암면 농암리에 위치한 한천서원에 배향되어 있다. 1697년(숙종 23)에 건립된 한천서원은 설립초기에 안귀손과 신숙빈을 제향하였으며 1787년(정조 11)에 성만징을 추배했다. 1868년(고종 5)에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으나 후에 다시 짓고 매년 3월 중정(中丁)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한편, 문경의 평산신씨 문희공파 화수회는 지역에 아직도 신씨들이 많이 살고, 고려 건국에 큰 역할을 했던 신숭겸 장군의 문경지역 전투 공적을 기리고, 최근 사극 메카로 부각된 가은읍을 보다 많이 알리기 위해 구수재 부근에 신숭겸 장군 사당 건립을 추진 중에 있다고 한다.

덧붙이는 글 | 18일 문경시 마성면, 가은읍



태그:#문경시 , #가은읍, #마성면, #박열 의사, #평산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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