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선암사로 가는 숲길. 한낮의 한 줌 뙤약볕도 허락치 않는다.
 선암사로 가는 숲길. 한낮의 한 줌 뙤약볕도 허락치 않는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시간 참 빠르다. 그 속도에 정신이 혼미해질 것 같다. 한발 비켜서 여유를 찾고 싶다. 전라남도 순천 선암사로 갔다. 지난 16일이다. 선암사는 여전한 절집이다. 언제나 그대로 변치 않는다. 단아하고 향기롭다. 풍광도 빼어나다. 유홍준 교수가 <나의문화유산답사기>에서 우리나라 최고의 문화유산으로 꼽은 것도 이런 연유다.

선암사는 들어가는 길부터 다르다. 운치가 있다. 왼쪽으로 계곡이 흐른다. 길은 초록의 나뭇잎으로 덮여있다. 굴참나무, 층층나무, 산벚나무, 때죽나무, 가래나무, 단풍나무로 울창하다. 한 줌의 뙤약볕도 허락하지 않는다. 길도 절집만큼이나 수수하다.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도 인정했다.

숲길 오른편에 동부도전이 보인다. 편백나무 사이로 보이는 부도와 숲길이 색다른 풍경을 선사한다. 뒤편의 전통야생차체험관도 멋스럽다. 숲속에 들어앉은 차 체험공간이다. 한옥의 단아한 멋과 여유가 묻어난다. 싱그러운 솔내음 속에서 마시는 야생차 한 잔이 향기롭다. 내 마음까지 보드라워진다.

한옥이 단아한 전통 야생차 체험관. 선암사 숲속에 들어앉은 차 체험공간이다.
 한옥이 단아한 전통 야생차 체험관. 선암사 숲속에 들어앉은 차 체험공간이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무지개형 돌다리 승선교와 강선루. 선녀들이 오르내리던 이륙장과 착륙장이었다.
 무지개형 돌다리 승선교와 강선루. 선녀들이 오르내리던 이륙장과 착륙장이었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번잡한 일상을 이겨낼 작은 힘을 얻고 승선교(昇仙橋)와 마주한다. 조선 숙종 39년(1713년) 호암대사가 쌓은 반달 모양의 돌다리다. 국내에서 가장 예쁜 돌다리라고 전문가들이 입을 모으는 명물이다. 보물 제400호로 지정돼 있다.

자연암반 위에 다리를 만들었는데, 균열이 생겨 지난 2003년말 해체하고 다시 쌓았다. 세운 지 290년 만이었다. 이 과정에서 재활용할 수 없는 돌 30개를 버리지 않고 한쪽에 따로 전시해 놓았다. 당초 승선교를 구성하던 아치석 147개의 5분의 1에 이른다. 나머지는 다시 활용됐다.

승선교 아래 계곡으로 내려가서 다리를 쳐다봤다. 반달 모양의 돌다리 사이로 강선루(降仙樓)가 한눈에 들어온다. 선녀들이 무지개를 타고 내려왔다는 곳이다. 선녀들이 이 계곡에서 목욕을 하고 승선교에서 다시 하늘로 올라갔다는 것이다. 승선교와 강선루가 선녀들의 비행장이었던 셈이다.

선암사 서부도전. 작은굴목이재로 가는 길목에 자리하고 있다.
 선암사 서부도전. 작은굴목이재로 가는 길목에 자리하고 있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선암사 편백나무 숲. 여행객이 편백숲 그늘에 앉아 쉬고 있다.
 선암사 편백나무 숲. 여행객이 편백숲 그늘에 앉아 쉬고 있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강선루에서 삼인당을 거쳐 편백나무 숲으로 간다. 삼인당은 신라의 도선국사가 만들었다는 연못이다. 편백숲은 송광사로 가는 길목에 있다. 이 길로 굴목이재를 넘으면 송광사로 연결된다. 작은굴목이재로 가는 길에 서부도전이 있다.

부근에 조계산 생태체험 야외학습장도 있다. 벌개미취, 하늘나리, 옥잠화 등 야생화가 지천이다. 편백숲도 멋스럽다. 나무의자도 군데군데 놓여 있다. 편백쉼터에서 한참 동안 머물렀다. 가까이서 들려오는 계곡 물소리가 귓전을 간질이며 한낮의 더위를 씻어준다. 얼마 오르지 않았는데도 깊은 산속에라도 들어온 것 같다.

편백숲에서 내려와 선암사 경내로 간다. 일주문의 배흘림기둥이 예쁘다. 기둥의 중간이 굵고 위아래가 가늘다. 옆에서 보니 사람 인(人)자를 그리고 있다. 맞배기와집이다. 일주문을 안으로 발걸음을 옮기니 대웅전과 삼층석탑이 반긴다. 석탑의 모양새가 소박하다. 신라 때 쌓은 것이다. 대웅전과 석탑 모두 보물로 지정돼 있다. 수수한 선암사의 분위기와 잘 어우러진다.

태고총림 선암사의 대웅전과 삼층석탑. 모두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돼 있다.
 태고총림 선암사의 대웅전과 삼층석탑. 모두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돼 있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선암사 구시. 통나무를 파서 만든 나무그릇이다.
 선암사 구시. 통나무를 파서 만든 나무그릇이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대웅전 한쪽에 놓인 구시(구유)도 눈길을 끈다. 통나무를 파서 만든 나무그릇인데 길이가 330㎝나 된다. 2000명이 먹을 수 있는 밥을 담았다고 전해진다. 얼마나 많은 승려와 대중이 모였으면 이렇게 큰 구시가 필요했을까. 하긴 오래 전 선암사는 전국에서 가장 큰 도량에 속했다. 한때는 스님 1500명이 생활했고, 선암사에서 공부하지 않으면 인정받지 못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소설 <태백산맥>의 작가 조정래의 아버지(조종현, 1906∼1989)도 이곳의 승려였다. 그의 아버지는 소설에서 법일스님으로 그려졌다. 스님은 '절 소유의 토지를 소작농에게 무상 분배해야 한다'고 나섰다가 빨갱이로 몰려 감옥살이를 했다.

경내에는 아직도 봄꽃이 남아있다. 팔상전 앞에 피어있는 영산홍과 자산홍에 눈이 호사를 누린다. 수국도 피었다. 부처의 머리를 닮았다고 해서 불가에서는 '불두화'라 부르는 꽃이다. 지장전, 불조전, 원통전 등 전각도 많다. 규모는 크지만 웅장한 느낌은 그다지 없다. 장식이 화려하지 않아서다. 하나같이 세월의 더께가 묻어난다.

오래된 풍경화처럼 은은하고 자연스럽다. 불사를 하면서 옛것의 아름다움을 지워버린 숱한 절집과 다르다. 고찰(古刹)답다. 선암사는 백제때 아도화상이 창건했다. 태고종의 본산이다. 태고종은 승려들이 결혼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크게 조계종과 구별된다.

문화재로 지정돼 있는 선암사 해우소. 크고 아름다운 화장실이다.
 문화재로 지정돼 있는 선암사 해우소. 크고 아름다운 화장실이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500년 묵은 와송. 태고총림 선암사의 천불전 앞에서 만날 수 있다.
 500년 묵은 와송. 태고총림 선암사의 천불전 앞에서 만날 수 있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측간도 눈여겨 볼 곳이다. 볼일이 없는데도 부러 발걸음을 해본다. 건축가 김수근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측간이라 평했다. 유홍준 교수는 세계에서 가장 운치있는 화장실이라고 극찬했다. 지은 지 400년이나 됐다. 一자형 건물에 북쪽으로 맞배지붕을 냈는데, 겉모습이 독특하다. 아름답다. 고풍스런 멋도 간직하고 있다.

재래식 화장실로는 드물게 남녀 칸이 구분돼 있는 것도 별나다. 칸막이만 있을 뿐 출입문도 따로 없다. 나무살 사이로 들어온 빛이 조명역할까지 해준다. 자연을 이용한 과학이 스며있는 측간이다. 문화재자료(제214호)로 등록돼 있다.

이 측간 외에도 선암사에는 문화재가 즐비하다. 문화재의 보고다. 국가지정문화재가 승선교, 대웅전, 삼층석탑 등 18점이나 된다. 지방문화재는 일주문과 팔상전 등 9점에 이른다. 문화재자료도 3점을 보유하고 있다.

처진 올벚나무. 수양버들처럼 가지를 늘어뜨리고 있다.
 처진 올벚나무. 수양버들처럼 가지를 늘어뜨리고 있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저녁예불이 진행되고 있는 선암사. 경내가 고요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저녁예불이 진행되고 있는 선암사. 경내가 고요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나무도 고목이 많다. 무우전 옆에 있는 매화나무는 국내 최고령이다. 고려시대 대각국사가 심은 것으로 600년이나 됐다. '고매(古梅)', '선암매'로 불린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원통전과 각황전 담길의 매화나무도 오래 됐다. 장경각 앞의 측백나무와 석류나무도 굵다.

세월의 무게는 삼성각 앞 동백나무에서도 묻어난다. 천불전 앞에 드러누워 있는 와송도 500살이나 먹었다. 수많은 지팡이를 짚고 선 노인 같다. 그래도 솔향기는 짙고 깊다. 수양버들처럼 가지를 늘어뜨린 처진 올벚나무도 눈길을 끈다.

전각과 고목에 눈 맞추며 하늘거리는데, 저만치서 법고 소리 들려온다. 시간을 들여다보니 오후 6시를 가리키고 있다. 저녁예불이 시작된 모양이다. 법고소리가 나는 곳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오랜만에 사물(四物)이 동원되는 저녁예불을 보고 싶어서다. 큰 북을 두드리는 스님의 몸놀림에서 생동감이 넘쳐난다.

북소리도 경쾌하다. 법고에 이어 물고기 형상의 목어를 연주한다. 나무채를 두드려서 내는 소리가 청아하다. 중생을 구제하는 범종 소리도 맑고 깊다. 범종소리가 울려 퍼질 때마다 속세의 고민과 고통이 하나씩 씻겨 내려가는 것 같다. 이내 마음이 평온해진다.

태고총림 선암사의 저녁예불. 스님이 범종을 치고 있다.
 태고총림 선암사의 저녁예불. 스님이 범종을 치고 있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선암사 할머니 장터. 마을 할머니들이 절 입구에 나와 특산물을 팔고 있다.
 선암사 할머니 장터. 마을 할머니들이 절 입구에 나와 특산물을 팔고 있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덧붙이는 글 | ☞ 찾아가는 길
호남고속국도 승주 나들목으로 나가 우회전, 서평삼거리에서 낙안·벌교방면 857번 지방도를 타고 죽학삼거리에서 곧장 직진하면 선암사에 닿는다.



태그:#선암사, #선암사구시, #전통야생차체험관, #승선교, #저녁예불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