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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정원이 공개한 '2007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사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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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정보원(원장 남재준)이 24일 전격 공개한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전문(103쪽)과 그에 앞서 국정원이 발췌해 공개한 이른바 '발췌본(8쪽)' 사이에는 '짜깁기'라고 할 만큼 심각한 내용의 불일치가 존재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특히 '서해 북방한계선(NLL)' '회담 자세' '북핵 문제' 등과 관련해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불리한 발언 위주로 '짜깁기'됐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은 25일 "NLL 바꿔야… 위원장님과 인식 같아"라는 제목을 신문 전면에 배치하며 'NLL 포기' 주장을 강조했다. 그러나 회의록 전문에는 "NLL을 바꾼다 어쩐다가 아니고"라는 발언과 함께 "옛날 기본합의에 연장선상에서 앞으로 협의해 나가기로 하고"라며 기존 경계선을 유지하자고 제안하는 대목이 있다.

또 "그렇게 상세하게 보고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만 적힌 발췌록을 근거로 노 전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보고'하는 형식으로 회담이 진행됐다는 일각의 주장도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회의록 전문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이 사용한 '보고'라는 단어는 북쪽 배석자(김계관 외교부 부상)의 보고를 뜻했다.

또한 새누리당이 발췌록 내용을 공개하며 "북핵을 옹호했다" "저자세로 일관했다"고 주장한 것과 다르게, 노 전 대통령은 핵문제 해결 의지를 강조하거나 북한의 '자주' 정책을 촉구하기도 했다. 

'쌍방 관할 유지' 밝힌 남북기본합의서 강조... NLL 포기 안했다

25일자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1면
 25일자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1면
ⓒ 이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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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는 회의록 내용 중 "NLL 바꿔야 합니다 "위원장님하고 인식이 같습니다"라는 발언을 25일 1면 머리기사 제목으로 뽑았다. 새누리당 등에서 주장하는 '노무현 NLL 포기 발언'을 뒷받침 해주는 대목으로 강조된 것이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전날 국정원이 2급 비밀에서 일반문서로 재분류한 103쪽짜리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전문을 입수했다고 소개하면서 이 발언을 인용했다. <동아일보>는 앞서 국정원이 국회 정보위원회에 제출한 발췌본에 근거했다.

그러나 회의록 전문을 검토한 결과, 이 발언의 뒷부분에서는 다른 취지의 발언이 등장했다.

"NLL은 바꿔야 합니다. 그러나 이게 현실적으로 자세한 내용도 모르는 사람들이 민감하게, 시끄럽긴 되게 시끄러워요. 그래서 우리가 제안하고 싶은 것이 안보 군사 제도 위에다가 평화 경제지도를 크게 위에다 덮어서 그려보자는 것입니다."

노 전 대통령은 NLL이 불합리하다는 북쪽의 주장에 동조하는 입장을 보이면서도, '여론의 반대가 높아 NLL을 건드릴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대신 'NLL을 평화·경제지도로 덮자'는 구상을 제안하면서 '서해 평화협력특별지대'를 조성하자고 설득했다. 단순히 'NLL 포기'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는 대목이다.

"기본 합의에 연장선상에서…" 라는 대목은 발췌본에 안 넣어

'2007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발췌본'은 8페이지 분량으로 국정원이 제작했다.
▲ 국정원이 제작한 '2007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발췌본' '2007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발췌본'은 8페이지 분량으로 국정원이 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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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NLL을 유지하면서 서해평화협력지대를 구상하자는 분명한 뜻을 담은 대목이 나온다.

"NLL 가지고 이걸 바꾼다 어쩐다가 아니고… 그건 옛날 기본합의에 연장선상에서 앞으로 협의해 나가기로 하고 여기에는 커다란 어떤 공동의 번영을 위한 그런 바다 이용계획을 세움으로써 민감한 문제들을 미래지향적으로 풀어나갈 수 있지 않겠느냐… 그런 큰 틀의 뭔가 우리가 지혜를 한번 발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는 것이죠."

'기본합의'는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를 뜻한다. 노태우 정부 당시 체결된 이 합의서는 NLL에 관련해 "남과 북의 해상 불가침 경계선은 앞으로 계속 협의한다, 해상 불가침 구역은 해상 불가침 경계선이 확정될 때까지 쌍방이 지금까지 관할하여 온 구역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NLL을 기준으로 남북이 군사적으로 관할하는 체제를 우선 유지하면서 평화수역 등의 논의를 이어가자는 것이었다.

국정원이 전문 공개에 앞서 새누리당 정보위원들에게 먼저 공개한 발췌본의 '의도성'도 엿보인다. 국정원이 임의로 간추린 발췌본에는 '조중동'이 제목을 뽑은 "NLL은 바꿔야 한다"는 대목은 있지만, "NLL 가지고 이걸 바꾼다 어쩐다가 아니고… 그건 옛날 기본합의에 연장선상에서"라고 말한 대목은 없었다.

정상회담 당시 청와대 연설기획비서관이었던 김경수 노무현재단 봉하사무국장 역시 "NLL 자체를 건드려서는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에 서해평화협력지대를 갖고 해결하자는 취지의 발언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평화협력지대 문제를 합의하고 NLL 문제는 추후 합의해 가자는 것이 노 전 대통령의 취지였고, 김 위원장도 나중에 그에 동의한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며 "노 전 대통령이 NLL을 포기하는 발언을 했다고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의원직 사퇴' 건 서상기 "노무현이 김정일에게 보고" 주장, 헛발질로 드러나

서상기 국회 정보위원장이 이른바 'NLL대화록'관련해 기자들에게 보낸 문자메시지.
 서상기 국회 정보위원장이 이른바 'NLL대화록'관련해 기자들에게 보낸 문자메시지.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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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이 편집해서 기존에 공개했던 발췌문 역시 전문과 큰 차이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발췌본에서는 전문 속 대화 맥락이 거두절미 된 채 노 전 대통령에게 불리한 발언 위주로 구성됐다. 국정원이 정파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는 말만 발췌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대표적인 표현 중 하나가 '보고드린다'는 대목이다.

"6자회담에 관해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는데, 조금 전에 보고를 그렇게 상세하게 보고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발췌록에는 이렇게 돼 있다. 그러나 전문에는 노 전 대통령이 말한 '보고'는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의 보고를 뜻한 것이었다.

회의록 전문에 따르면, 정상회담에 북쪽 관계자로 배석했던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이 "참가했던 단장이 여기 대기하고 있는데 한번 들어보시겠다면 불러서 들어보시죠"라며 당시 베이징 6자회담 결과를 설명하겠다고 말했다.

김 국방위원장도 6자회담 북측 단장으로 참석했던 김계관 부상을 불렀다. 그러면서 "좋은 문건 나왔는데 문건 나온 걸 개괄적으로 설명해 드리라우"라고 지시했다. 이에 김 부상은 당시 정상회담 직전 6자회담에서 도출된 '10.3 핵 불능화 합의' 관련 북측 입장 등을 설명했다.

이에 노무현 전 대통령은 "예, 잘 알겠습니다"라며 보고를 잘 들었다고 밝혔다. 이후에도 "6자회담에 관해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는데 조금 전에 (김계관 부상을 통해-기자주) 보고를 그렇게 상세하게 보고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서상기 국회 정보위원장이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새누리당 원내대책회의에 도중 누군가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고 있다.
▲ 서상기 정보위원장 '은밀한 통화' 서상기 국회 정보위원장이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새누리당 원내대책회의에 도중 누군가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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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새누리당 소속 서상기 국회 정보위원장은 지난 20일 국정원이 준 정상회담 회의록 발췌본을 열람한 뒤 "노 전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보고드린다' 같은 표현을 썼다"며 "내 말이 조금이라도 과장됐다면 의원직을 사퇴하겠다"고 강조했다. 서 위원장의 주장이 틀린 것이다.

서 위원장은 이날 오후 기자들에게 보낸 문자메시지를 통해 "국정원에서 전문과 발췌본을 모두 가져왔으나, 발췌본 만으로도 사실 확인이 충분해 원본은 보지 않았다"고 했다.(위의 문자메시지 캡춰 사진 참조). 이처럼 중대한 내용을 원본전문은 보지도 않은 채, 왜곡을 한 셈이다.

북핵 문제와 '자주성'과 관련해서도 발췌본과 전문의 내용이 상이했다. 발췌본에는 "남측에 가서 핵문제 확실하게 이야기하고 와라… 주문이 많죠…. 근데 그것은 나는 되도록 가서 판 깨고… 판 깨지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주장 아니겠습니까…" 라는 발언만 소개됐다. 북핵을 옹호한다고 해석될 가능성이 있다.

노무현 "고립이 아니라 진짜 자주가 될 수 있도록"... 김정일 "옳습니다"

하지만 전문을 보면, 노 전 대통령은 이 발언 다음에 이같이 말했다.

"많은 국민들이 또 그게 중요하다고 그래요…. 중요한 일입니다. 중요한 일인데…. 그러나 문제는 6자회담에서 이미 풀려가고 있고 그 틀이 근본적인… 문제해결이 가능한 틀이기 때문에 거기서 풀자.. 그런 것들을 내가 계속 주장해왔고… 했습니다. 했는데 우리 국민들에게 안심시키기 위해서 핵문제는 이렇게 풀어간다는 수준의 그런 확인을 한번 해주시면 더욱 고맙겠습니다."

"우리가 미국에 의지해왔습니다, 그리고 친미국가입니다" "국제무대에 나가서 북측 입장을 변호해왔습니다"라고만 기록된 발췌본과 다르게, 회의록 전문에는 "남측의 어떤 정부도 하루아침에 미국과 관계를 싹둑 끊고 북측이 하시는 것처럼 이런 수준의 자주를 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고립을 자초하는 자주는… 이것은 할 수 없는 것이다"고 강조했다.

또 "우리가 선진강국이 되자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하고 적대관계, 관계정상화 풀어야 되고요" "자주가 고립이 아니라 진짜 자주가 될 수 있도록 그렇게…"라고 말했고, 이에 김 위원장은 "옳습니다, 노 대통령님의 견해를 충분히 알았습니다"라고 맞장구를 쳤다.

노 전 대통령은 또 남북 경제협력 진전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위원장께서 혁명적 결단을 하셔야 됩니다, 특구를 하시든 특구 이외의 것을 하시든요"라고 김 위원장에게 개성공단에 이은 서해(해주)공단 개발의 결단을 촉구하기도 했다.


태그:#NLL, #국정원, #노무현, #김정일, #새누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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