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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월드미스 유니버시티 국내대회에 참가한 학생들이 한복 패션쇼를 선보였다.
 2013 월드미스 유니버시티 국내대회에 참가한 학생들이 한복 패션쇼를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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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화를 신고 다니는 에티오피아 아이

"에티오피아 이야기예요. 그 나라의 산골마을에 사는 한 어린아이는 외출할 때면 항상 헐렁한 미국제 낡은 군화를 신고 다니는 거예요. 물론 넉넉지 않은 환경에 신발을 살 여유도 없었겠지만, 늘 낡은 군화를 신고 다니는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물었어요. '넌 왜 그 낡은 군화를 신고 다니는 거니?' 아이는 망설이다 대답을 했어요. '이 군화는 우리 할아버지가 신던 건데,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아버지가 보관해 오던 것을 내가 신는 거예요."

아이의 할아버지는 1951년 에티오피아 병사로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그는 한국 땅에 도착하자마자 국방색 군복과 통일화라고 불리는 미국제 신발을 지급받았다. 할아버지는 그 누구보다 용감했다. 그 용맹함을 인정받아서일까. 그는 화천 전투에 투입되었다. 화천발전소 탈환을 위한 밀고 밀리는 공방전. 이보 전진을 위해서는 때론 일보 후퇴도 해야 했다.

여름비가 내리던 어느날 아침. 할아버지는 중공군들의 기습을 받아 후퇴를 하던 중 다리에 총탄을 맞은 미군병사를 발견했다. 후퇴하던 길을 뒤돌아서 그 미군 병사를 어깨에 메고 뛰었다. 그렇게 한참 산길을 뛰다 할아버지는 어디에선가 날아온 적의 총탄에 머리를 맞았다.

"내 신발과 옷을 내 나라 에티오피아에 사는 식구들에게 전해주세요."

할아버지는 부상당한 미군병사의 손을 꼭 잡고 이 한마디를 남기고 숨을 거두었다. 1975년,  에티오피아 마지막 황제인 하일레 셀라시에 1세가 암살되면서 한국전에 참전했던 병사들은 왕의 친위대였다는 이유로 외곽으로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다. 가세는 나날이 기울어만 갔다. 결국 아버지는 목숨처럼 아끼던 할아버지의 신발을 어린 아들이 신도록 허락했다.

고려대학교 언론대학원에 재학 중인 고가혜 양은 '군화를 신고 다니는 에티오피아의 아이'에 대한 운문을 통해 한국전쟁을 말했다.
 고려대학교 언론대학원에 재학 중인 고가혜 양은 '군화를 신고 다니는 에티오피아의 아이'에 대한 운문을 통해 한국전쟁을 말했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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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2일, '2013 제2회 세계평화안보 문화축전 백일장'이 화천군 동촌리 평화의 댐 인근에서 열렸다. 운문과 산문으로 나뉜 백일장은 모집정원인 600명이 조기에 매진됐다. 참가자 중에는 2013월드미스 유니버시티 국내 최종예선전에 참가한 대학생 80명의 이름도 눈에 띄었다. 어떤 내용으로 글을 쓸 것인지를 묻는 내게 고가혜(고려대학교 언론대학원)씨가 '군화를 신고 다니는 에티오피아 아이'에 대한 운문(韻文)을 쓸 것이라며 내게 설명한 내용이다. 

"입상을 하고 안하고가 중요한 게 아니고, 한국전쟁의 아픔을 우리 같은 젊은 세대들이 제대로 알았으면 해서 주제를 그렇게 정했고, (에티오피아가)지금은 빈국으로 전락했지만, 그들이 있기에 우리나라에 평화가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어요."

어느 방송에서 '6·25가 뭔지'를 묻는 질문에 '모른다'라고 답하는 학생들을 조명한 적이 있다. 그런데 고가혜 양은 한국전에서의 에티오피아의 역할까지 말했다. 

어느 훌륭한 패션 디자이너에게 줄 빨간 벙어리장갑

김경애 학생(전남대학교 의류학과 4년)은 호남의 미래가 되기 위해 월드미스유니버시티에 참여하게 되었다는 포부를 밝혔다.
 김경애 학생(전남대학교 의류학과 4년)은 호남의 미래가 되기 위해 월드미스유니버시티에 참여하게 되었다는 포부를 밝혔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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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틀을 가지고 봉사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 것 같아 지원하게 되었어요."

전남대 의류학과(4년)에 재학 중이라는 김경애씨는 월드미스 유니버시티 지원동기를 말했다.

그녀는 여고시절부터 지금까지 꽃동네나 노인보호시설, 고아원 등지에서 자원봉사활동을 해 왔다고 했다. 영어 공부에 집중했던 것 또한 고아원 아이들에게 재능기부를 하기 위함이었는데, 결국 통역까지 나설 정도의 실력을 겸비하게 되었단다.

"어떤 아이 때문에 며칠 동안 울어본 적도 있었어요."

그녀는 2년 전 모 고아원에서 '진실'이란 이름을 가진 초등학교 2학년 어린이를 만났다. 아이는 그녀를 기다리다 녹아버린 사탕을 찢어진 노트에 싸서 건네줬다. 부모들의 이혼으로 그곳 고아원에 오게 되었다는 아이와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사람 사는 따뜻한 정이 뭔지를 알려준 아이에게 의미 있는 선물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빨간색 실 뭉치를 하나 샀단다. 그 후로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면 서툰 솜씨로 뜨개질을 했다. 떴다가 풀고 다시 뜨기를 반복한 끝에 빨간 벙어리장갑 한 켤레가 완성됐다. 예쁜 신발도 한 켤레 샀다. 아이의 꿈이 패션디자이너 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지난해 크리스마스 이브. 거의 두 달여 만에 아이를 만날 수 있다는 기대 때문에 잠도 설쳤다. 다음날 아침 일찍 고아원을 찾았다. 그러나 아이는 보이지 않았다. 사무실에 들러 아이의 행방을 물었더니, 어머님이란 분이 데려갔단다. 아이의 주소는 사생활보호를 위해 알려줄 수 없다는 대답. 아이를 만나지 못한 섭섭함보다 그 가정이 고아원보다 못한 환경이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불안하기도 했다. 후에 훌륭한 패션디자이너의 모습으로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하며 섭섭함을 달랬다.

내가 한국의 리더가 되어야 하는 이유

평화안보 백일장에서 작품 활동중인 대학생들. 당신들이 한국의 미래이고 리더이다.
 평화안보 백일장에서 작품 활동중인 대학생들. 당신들이 한국의 미래이고 리더이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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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은 5·18 때 현장에 계셨었데요. 옆에서 계엄군의 총탄에 쓰러지는 마을 사람들을 목격하셨기 때문인지 어머님은 제가 어렸을 때부터 '너는 호남의 미래가 되어야 한다', '리더가 되는 것이 광주의 진실을 알리는 길이다'라는 말씀을 하셨었어요." 

김경애씨는 어머님의 이름을 기사에 넣어도 되느냐는 질문에 당당히 '서말심(55)'이라고 밝혔다.

"만일에 (월드미스유니버시티)이 대회에 수영복 심사가 있다거나 미(美)만 중시했다면 지원하지 않았을 거예요. 지(知)와 미(美)를 겸비해야 가능하다는 말에 호감이 갔어요. (1,2,3등인) 지·덕·체는 큰 관심 없고요. 호남의 미래 더 나아가 한국의 리더가 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이 대회에 지원을 했다는 것이 정확한 답입니다."

평화안보문화축전 백일장에서 만난 고가혜, 김경애 학생. 이들을 통해 젊은이들에 대한 내 선입견이 바뀌었다.
 평화안보문화축전 백일장에서 만난 고가혜, 김경애 학생. 이들을 통해 젊은이들에 대한 내 선입견이 바뀌었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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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학생과의 대화. 젊은이들이 한국의 역사에 대해 아예 모르거나 잘못알고 있을지 모른다는 내 선입견이 기분 좋게 무너진 날이었다.

2013 월드미스유니버시티 국내 최종예선 대회
○ 기  간 : 2013. 6. 20 ~ 7. 9(20일간)
○ 장  소 : 워커힐 호텔, 인천시, 용인시, 화천군
○ 참  석 : 국내 여대생 80명
   * 화천평화포럼 및 안보견학 : 6.22~6.26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기자는 강원도 화천군청 관광기획 담당입니다.



태그:#고갈혜, #김가혜, #월드미스유니버시티, #평화문화안보축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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