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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날처럼 초등 둘을 등교시키고, 막내도 어린이집에 보내고 집을 치우고 있었다. 남편이 운전해달란다. 이런 고급인력을 공짜로. 하지만 냉큼 오케이했다.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며.

'운전만 하고 올 순 없지…. 출장지 근처니까 난 순천국제정원박람회를 보고 오면 되겠군.'

서둘러 양산, 모자, 주부들의 필수품인 자외선 차단 마스크와 선크림까지 챙겼다. 스마트폰으로 '전시·행사' 박람회를 검색했다. '추천코스→기능→테마별 코스→세상의 풍경 코스'를 보기로 했다. 오천주차장에 차를 주차 후 셔틀버스를 타고 동문으로 향했다.

버스가 하차하는 곳에는 발판을 대놔서 내릴 때 편했다. 바쁜 남편을 놔두고 언제 또 오려나 싶어 보고 싶었던 박람회장에 혼자 들어갔다. 입장료는 1만6000원. 두어 시간은 보아야 본전 생각이 안 날 듯하여 물 한 병을 가방에 넣고 안내지도를 펼쳤다. 국제정원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하는 박람회인 만큼 다른 나라의 정원이 어떠할지 궁금했다.

넓은 정원의 미로에서 헤매다

볼펜을 가져오지 않아 중학생인 듯한 여학생에게 펜을 빌려 코스에 붉은 펜으로 표시한 후 감사의 표시로 껌을 몇 개 건네주었다.

동문→야수의 장미정원→흑두루미 미로정원→갯지렁이 다니는 길→프랑스 정원→중국 정원→꿈의 다리→한방체험관→독일 정원→참여 정원→네덜란드 정원→미국정원→스페인 정원→이탈리아 정원→영국 정원→일본 정원→태국 정원→바위 정원→실내 정원→조경산업관→동문

처음 들른 곳은 '장미정원'. <미녀와 야수> 이야기에 나오는 장미정원을 상상하면서 꾸민 공간으로 30여 종의 장미 수 만 송이가 피는 환상적인 공간이다. 바람개비 뒤로 붉은 장미 터널에서 야수가 튀어나오려나 하고 쳐다보았더니 관람객들만 나오고 있었다.

다음은 '흑두루미 미로정원'. 순천의 시조이자 2013 순천만 국제정원박람회의 상징인 흑두루미 모습으로 꾸며진 미로정원이다. 뜨거운 햇살 속에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헤매지 않을까 걱정스러워 살짝 들어갔다 나왔다. 하지만 그리 넓지 않아 헤맬 걱정은 안 해도 된다.

바람개비 뒤로 붉은 장미 터널에서 야수가 튀어나오려나
▲ 장미정원 바람개비 뒤로 붉은 장미 터널에서 야수가 튀어나오려나
ⓒ 박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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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감명 깊었던 황지해 작가의 작품 '갯지렁이 다니는 길'. 선큰 가든(sunken garden, 지하나 지하로 통하는 공간에 꾸민 정원)으로서 태양을 하루 종일 담아두는 곳이다. 여인의 머릿결이 순천만 호수의 시원이 되고 갯지렁이가 다니는 자유분방한 선들을 입체적으로 드로잉하여 조감도 상 나뭇잎의 형상을 볼 수 있다. 정원 속에는 갯지렁이 형태의 갤러리와 도서관, 쥐구멍카페, 개미굴 휴게공간 등을 갖추고 있다.

상상하면서 보면 된다는 안내하시는 분의 말씀
▲ 갯지렁이 다니는 길 상상하면서 보면 된다는 안내하시는 분의 말씀
ⓒ 박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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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정원'은 어딘지 두리번거리는데 언덕이 시야를 가로막는다. 더운데 뭐하러 저길 올라가나 싶었는데, 간간이 올라가는 이들이 보였다. 그때 관람차가 내 옆을 훅 지나간다. 1인당 2천 원만 내면 이용할 수 있는데, 아직은 박람회장에 들어선 지 삼십여 분 정도가 지났던 때라 약간 더울 뿐 그리 부럽진 않았다. 주황색 티를 입고 쓰레기봉투를 들고 계신 분께 도면을 보이며 '프랑스정원'을 물었다. 방금 무심코 지나온 정원이 '프랑스정원'이었다. 정신 바짝 차려야겠다. 이 정원은 루이 14세가 유럽문화의 중심으로 성장하고자 했던 꿈과 소망을 담은 베르사유 궁전을 모델로 하였다.

1인당 2천원만 내면 이용할 수 있다
▲ 관람차 1인당 2천원만 내면 이용할 수 있다
ⓒ 박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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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걸음 지나지 않아 '중국정원'이다. 이곳은 들어서자마자 커다란 조형물이 반긴다. 정원을 청소 중인가 보다. 약간 시들한 부레옥잠이 건져져 있었다. 이 정원은 중국판 로미오와 줄리엣이라고 할 수 있는 양산백과 축영대의 사랑 이야기를 담은 정원이다.

이 정원은 중국판 로미오와 줄리엣이라고 할 수 있는 양산백과 축영대의 사랑 이야기를 담은 정원이다.
▲ 중국 정원 이 정원은 중국판 로미오와 줄리엣이라고 할 수 있는 양산백과 축영대의 사랑 이야기를 담은 정원이다.
ⓒ 박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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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관람객이 다리 위를 오가고 있었다. 지붕이 있어 잠시 더위를 잊게 해 주었다. 이름 하여 '꿈의 다리'. 세계 최초로 물 위에 떠있는 미술관이다. 아시아에서는 첫 번째로 긴 지붕이 있는 인도교로 설치미술가 강익중과 순천시민이 박람회를 위해 만들었다.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그림이 타일로 장식된 벽은 신선했다.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그림이 타일로 장식된 벽은 신선했다.
▲ 꿈의 다리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그림이 타일로 장식된 벽은 신선했다.
ⓒ 박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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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다리'에서 '한방체험관'으로 향하는 길에는 중간 중간 윷놀이도 있고 가마와 쉬는 공간이 많아 지루하지 않았다. 단지 발이 힘들 뿐. '한방체험관'에서는 다양한 한방재료를 활용해 방문객이 직접 건강한 생활을 위한 체험을 할 수 있도록 설계된 공간이다. 여기서는 10분의 시간과 천원이라는 돈을 투자하면 몸과 마음이 쉬어갈 수 있는 힐링 공간이다. 관람객들이 많아 힐링을 포기하고 다음 정원으로 향했다.

여기서는 10분의 시간과 천원이라는 돈을 투자하면 몸과 마음이 쉬어갈 수 있는 힐링 공간이다.
▲ 한방체험관 여기서는 10분의 시간과 천원이라는 돈을 투자하면 몸과 마음이 쉬어갈 수 있는 힐링 공간이다.
ⓒ 박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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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코 걷는데, 짧은 다리가 눈에 띈다. 머리와 발바닥이 다리 끝과 끝에 기다랗게 장식되어 있어 웃음을 준다. 발바닥이 가려우면 어떻게 긁으려나. 물 한 병으로 더위에 지쳐 아이스크림을 더위를 달랬다. 한참 동안 '독일 정원'을 두리번거려도 찾기 어려웠는데, 저 다리 건너편에 풍차가 보인다. 다행이다. 지도와 안내표지판을 보고 찾기는 쉽지 않을 듯싶다. '한방체험관'에서 '독일정원'을 가려면 언덕이 있는 다리를 건너가야 한다는 중요한 사실. 나만 헤매는 건 아닌가 보다.

발바닥이 가려우면 어떻게 긁으려나.
▲ 웃음 주는 다리 발바닥이 가려우면 어떻게 긁으려나.
ⓒ 박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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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정원이 어디 있어요?"라는 질문을 하고 다니는 무리가 저 앞에 있다. 다른 관광객들도 모르긴 마찬가지. 여기서 팁. 주황색 티를 입고 있는 분에게 물어보거나 시원한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 먹으면서 가게주인에게 물어보면 가장 확실할 듯싶다.

이번 언덕 위에는 뭐가 있으려나 싶어 올라갔는데, 뜨거운 햇살이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서둘러 내려왔다. '내가 뭐하러 올라왔을까?'라는 중얼거림을 하며 말이다. 드디어 '독일 정원' 포츠담의 칼 푀르스터 선큰 정원을 모델로 디자인되었고,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방법으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정신, 꾸밈없는 자연의 모습을 담은 평화로운 정경이다.

포츠담의 칼 푀르스터 선큰 정원을 모델로 디자인했다.
▲ 독일정원 포츠담의 칼 푀르스터 선큰 정원을 모델로 디자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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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면에 광주광역시의 모습도 보인다. 여기는 '참여정원'. 이 정원은 국내외 도시, 기업, 작가 등이 디자인한 공간으로 다양한 테마와 주제를 통해 정원을 새롭게 인식하고 정원문화가 확산되기를 바라며 만든 희망의 공간이다. 풍차와 튤립이 대표적인 '네덜란드 정원' 커다란 풍차에는 관람객들이 많이 올라가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튤립은 아무리 찾아봐도 없다. 4월 하순에서 5월 초순에 피는 꽃이라 시기가 맞지 않아 다른 꽃들이 나를 맞이했다. 한 계절이 아니라 여러 계절에 맞는 꽃들로 정원의 분위기가 바뀐다는 게 순천정원박람회의 특이한 점이라지만 계절이 야속하다.

내가 좋아하는 튤립은 아무리 찾아봐도 없다. 4월 하순에서 5월 초순에 피는 꽃이라 시기가 맞지 않아 다른 꽃들이 나를 맞이했다.
▲ 네덜란드 정원 내가 좋아하는 튤립은 아무리 찾아봐도 없다. 4월 하순에서 5월 초순에 피는 꽃이라 시기가 맞지 않아 다른 꽃들이 나를 맞이했다.
ⓒ 박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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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 두 시간이 되자 다리는 풀리고, '미국정원' 안내문만 보고 휙 지나치고 만다. 이 정원은 복합적이고 다양한 양식들이 합해 나타난다고 한다. 광대한 지형적 특성을 살리는가 하면 여유로움도 느낄 수 있다고.

'이탈리아정원'과 '스페인정원'은 서로 마주하고 있다. 작은 분수도 눈에 띈다. '이탈리아정원'은 르네상스 시대 메디치카의 빌라 정원을 재현했다. 지형을 살리기 위한 계단식 설계, 큰 나무와 작은 나무들의 조화로운 패치가 예술적으로 어우러진다. '스페인정원'은 오렌지 나무를 심어 정원 안에 숲을 만든다. 오렌지 정원을 재현하기 위해 오렌지 나무와 비슷한 유자나무를 심어서 정원을 만들었다. 줄을 맞춰 가지런히 식재된 오렌지 나무와 수경시설이 스페인정원의 특징이다.

'영국정원'이다. 풍경화를 그리듯 자연으로의 회귀와 상상력을 발현하는 빅토리아 시대의 아름다움을 최대한 자연스러워 보이도록 구성되었다. 영국인들은 정원에서 가족 나들이와 예술을 즐기는 공간으로 활용된다. 입구에만 들어서서 사진만 찍고 패스. '일본정원'은 고치현의 자연과 풍토를 만날 수 있다. 물을 사용하지 않고 돌과 모래로 표현하는 일본의 정원 양식인 가레산스이 방식을 사용하여 바위로는 고치현의 험준한 산과 해안, 자갈로는 웅대한 태평양을 재현했다. 벽에 정원 모형이 있는데, 초록모양이 영락없는 둘리 같다.

아기공룡 둘리?
▲ 일본 정원 아기공룡 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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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중간 아이들의 지루함을 달래기 위한 뽀로로 캐릭터 인형이 놀이 공간으로 자리하고 있어, 아이들의 지루함을 달래줄 듯하다. 휴게공간인 천막 아래 드러누워 정원이 내 것인 양 오수를 즐기는 사람들도 눈에 띈다. '태국정원'은 사진도 찍지 못한 다리의 묵직함으로 그냥 지나친다.

중간중간 아이들의 지루함을 달래기 위한 뽀로로 캐릭터 인형이 놀이 공간으로 자리하고 있다
▲ 캐릭터 인형 중간중간 아이들의 지루함을 달래기 위한 뽀로로 캐릭터 인형이 놀이 공간으로 자리하고 있다
ⓒ 박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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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 정원'은 크고 작은 바위들이 어우러져 있어 강인한 자연의 힘을 느끼게 해준다. 바위 정원에 사용한 바위는 목포→순천간 고속도로 공사 때 버려질 위기에 있는 돌을 사용했다. 바위정원 가운데 우뚝 서 있는 팽나무는 수령이 600년 된 나무이고 제주도에서 옮겨온 특별한 나무이다.

크고 작은 바위들이 어우러져 있어 강인한 자연의 힘을 느끼게 해준다.
▲ 바위정원 크고 작은 바위들이 어우러져 있어 강인한 자연의 힘을 느끼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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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정원'이다. 그나마 실내에서 보는 것이라 덜 더울 듯 싶어 그곳으로 향했다. 순천만조직위가 식물종 다양성, 환경생태 보존의 중요성 등 정원박람회의 주제성을 나타내고자 한 기획전시공간이다.

자연 그대로의 순수정원으로써 그 소중함과 가치를 함께 나누려는 원시의 자연, 정글의 풍경, 인류의 선택으로 꾸며지고, 그밖에 화암수록, 양화소록, 산가요록 등 우리나라의 옛 책에 나타난 정원연출의 모습과 전통자연관을 볼 수 있는 한국 전통정원의 기획전시가 마련되어 있다. 여기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담양의 소쇄원이었다. 평소에도 가까운 곳이라 여러 번 갔었는데, 작은 정원으로 나를 반기니 반갑다.

평소에도 가까운 곳이라 여러 번 갔었는데, 작은 정원으로 나를 반기니 반갑다.
▲ 작은 소쇄원 평소에도 가까운 곳이라 여러 번 갔었는데, 작은 정원으로 나를 반기니 반갑다.
ⓒ 박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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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조경산업관'이다. 국내외 선진 정원용품 업체가 모여 정원 기술의 장을 선보이는 곳이다. 정원 꾸미기에 관심이 커지면서 도시와 자연을 더 아름답게 꾸미는 방법을 보여준다. 하지만 난 들어가보지 못했다. 출구가 저만치 나를 어서 오라고 손짓하는 것만 같아서.

이건 뭐 오꾸닭도 아니고

멀리서 나를 반기던 남편이 내 종아리를 보고 막 웃는다.

"시꺼먼 때가 묻은 것 같애."
"어라. 칠부 바지와 발목 양말 사이만 오꾸닭(오븐에 꾸운 닭)처럼 까맣게 그을렸네."

양산과 모자, 자외선 마스크까지 준비했던 터라 방심했는데, 세 시간 동안 뜨거운 햇살이 나의 아킬레스건을 실컷 비췄던 모양이다.

"그래, 모든 건 다 순천정원박람회 때문이야."

그늘을 드리우는 큰 나무가 있기보다 시선을 아래와 앞만 보면 되는 정원이라 그늘이 없어서 탄 모양이다. 아예 짧은 반바지를 입던지 긴 바지를 입던지 해야 한다는 것을 뒤늦게 후회한 들 이미 지나간 일. 연예인들의 예쁜 선텐이 아니라 시꺼먼 때같이 선처럼 그어져 치마는 입기 어렵게 됐다. 담엔 내 살들을 꼭꼭 숨기고 말겠다.


태그:#순천정원박람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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