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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kg으로 태어난 아들... 첫 느낌은 동병상련이었다.
 3kg으로 태어난 아들... 첫 느낌은 동병상련이었다.
ⓒ 권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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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출산을 했다. 3kg의 건강한 남자아이가 태어났다.

"생명이라는 것을 품고 있다가 세상으로 나올 수 있도록 그 생명과 함께 사경을 해매며 노력한 내가, '엄마'라는 이름으로 그 무섭고 대단한 일을 해냈다는 게 믿어지지가 않을 만큼 기뻤다."

라고, 고상하게만 표현하기에는, 애 낳는 일은 정말 '빨리 낳아야지'라는 생각 이외의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는! 무지막지한 에너지 집중의 시간이다. 임신 때부터 별 생각 없이 초지일관 '어떻게든 낳겠지'라고만 여겼던 마음가짐이 고맙게도 득은 된 것 같다. 그 고통을 미리 알았다면 걱정이 앞서 육체적으로 힘든 와중에 심적으로도 굉장히 고통스러웠을 것 같다.

"죽기 싫어서 낳았어"라는 표현이 과장되지 않을 정도로, 난 정말 잘못하다간 죽겠다, 싶어 죽을 만큼 힘을 줬었다.

"엄마, 힘 더 줘야지. 힘을 길~~게 줘야지. 그렇게 힘주면 애기 힘들어요. 자 조금만 더 길게."

엄격한 간호사의 꾸중은 육체적인 고통 위에 정신적인 고통을 가미해 날 더 괴롭혔다. 꾸중을 들으니 오기가 생겨 더 열심히 힘을 줬으므로, 결국 간호사의 급한 억양의 꾸중은 오히려 도움이 된 건지도 모르겠다.

출산 전에 호흡 연습은 열심히 했어도 호흡과 함께 힘주는 연습은 하나도 안 했다. '힘은 당연히 잘 주겠지'라는 생각에 걱정도 안 했는데, 실상 대변 보는 것보다 훨씬 더 세게, 그리고 길게 힘을 주는 것은 생각보다 무척 힘들었다. 내가 안쓰러웠던 남편은, 처음부터 끝까지 힘을 주느라 땀범벅이 된 내 얼굴을 수건으로 연신 닦아냈다.

침대 양 옆에 붙은 손잡이를 팔로 잡고 힘을 줬는데, 팔에 힘을 너무 준 탓인지 출산 이후 산후조리기간 내내 팔이 아팠다. 자주 쓰지 않던 팔 근육을 무리라 할 정도로 써댔으니 근육통이 생기지 않을 리가 없었다.

오후 4시에 입원하여 산모들 사이에서 굴욕 3종세트라 일컬어지는 관장, 내진, 회음부절개를 빠짐없이 차례로 겪은 후, 다섯 시간 만에 아들 숲이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그 다섯 시간은 내게 정말 지옥문을 백 번은 넘게 왔다 갔다 한 것처럼 아득했다. 지옥문 같았던 아득한 그 시간을 잘 버티니 아기천사 하나가 스르륵 짠! 하고 나타나 빽빽 울어댔다.

시작은 모성애가 아닌 '동병상련'

네가 내게 처음 온 날.
▲ 모자(母子) 네가 내게 처음 온 날.
ⓒ 권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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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통을 줄여준다는 무통주사는 일부러 맞지 않았다. 출산의 고통을 고스란히 느끼고 싶기도 했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아이와의 제대로 된 호흡을 통해 건강한 아이를 출산하고픈 욕심도 있었기 때문이다. 진통을 정확히 느껴야 힘을 줘야 할 때 제때 줄 수 있는 것이었다.

진통이 가장 심할 때, 즉 자궁 수축의 힘이 가장 셀 때, 그 타이밍에 산모가 힘을 줘야 한다. 자궁수축의 힘과 산모의 힘이 더해지고 아이가 그 힘에 밀려 세상으로 나오려는 움직임이 더 활발하게 하는 것이다. 제대로 된 출산은 나와 내 자궁과 내 아이가 함께 호흡을 맞춰야 한다고 믿었고, 다행히도 나는 잘 해냈다. 내가 보내는 힘과 녀석을 품고 있던 자궁의 움직임과 녀석의 노력한 움직임이 맞닿아 대단하게도, 기특하게도 생명을 만들어냈다.

그렇게 출산의 고통을 함께한 내 아이. 아이를 보고 느낀 첫 감정은 '동병상련'이었다. 모성애가 아닌 바로 동병상련. 아이를 보자마자 '너도 나처럼 힘들었겠구나' 하는 생각에 안아줄 수밖에 없었다. 동병상련도 모성애라고 우기면 어찌 할 말은 없지만, 내겐 그저 동병상련.

누가 내게 아기를 낳자마자 모성애가 생긴다고 했는가. 아기를 안아본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동병상련의 감정이 무르익기도 전에 아기는 탯줄을 자르러, 그리고 손가락이나 발가락이 다 있는지, 호흡이 제대로 되고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침대 위에 누워있는 내 품을 즉시 떠났다.

그날 밤, 난 입원을 했고 목욕을 마친 아기는 내 입원실로 왔다. 시작이었다. 아기와의 대면적 삶의 시작 말이다. 모성애고 뭐고 아직 잘 모르겠지만, 내 안에서 이렇게 펄떡이는 생명이 튀어나왔다는 것에 대해서는 무척 경이로웠다. 나는 그 경이로움에 감탄하며 고통스러움이 가득했던 하루를 병원 침대에서 마감했다.

모성애는 자연분만 후 2박3일의 입원과정을 거치는 동안, 그리고 집에서 산후조리를 하는 과정 중에도 나타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일단은 나의 신체적, 정신적 회복도 중요했던 것이다.

낳자마자 모성애는 안 생겼어도 지금의 모자관계에 차질은 없다. 모성애는 내 신체와 정신이 회복되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발동이 걸렸고, 지금 아들은 엄마 없인 못 사는 '엄마바보', 나도 아들 없인 못 사는 '아들바보'가 됐으니까. 낳자마자 모성애가 생기지 않아도 이상할 것 하나도 없다. 정상과 비정상으로 굳이 구분하려고 든다면, 이게 정상 아닐까?


태그:#엄마, #출산, #모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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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문화, 다양한 사회현상에 관해 공부하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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