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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한 중앙지검 2차장이 1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 기자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가정보원 관련 의혹 사건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이날 검찰은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을 대통령 선거 운동에 개입했다는 혐의로 불구속 기소하고 나머지 국정원 직원들은 기소유예한다고 발표했다.
▲ 검찰, 국정원 의혹 사건 수사결과 발표 이진한 중앙지검 2차장이 1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 기자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가정보원 관련 의혹 사건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이날 검찰은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을 대통령 선거 운동에 개입했다는 혐의로 불구속 기소하고 나머지 국정원 직원들은 기소유예한다고 발표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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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피고인은 국가안보 본연의 기능에 한정한 국가정보원법의 원칙과 한계를 뛰어넘어도 된다는 그릇된 인식으로 대통령과 정부여당 정책에 반대하는 의견을 가진 사람과 단체 모두를 종북세력으로 규정, 직원들에게 사이버 공간에서 각종 정치 이슈와 선거에 관해 이들을 공격하게 함으로써 선거운동이 금지된 공무원이 그 지위를 이용해 낙선운동을 했다."

지난 14일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윤석열)이 작성한 '국정원 대선·정치개입 의혹 사건' 관련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공소장의 결론 부분입니다. 이번 사건을 수사한 검찰이 공소장 말미에 밝힌 핵심 내용은 "현직 국정원장이 특정 후보의 낙선을 위해 선거운동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정보기관의 수장이었던 원세훈 전 국정원장. 그는 왜 현행 법률까지 위반해가면서 직원들을 동원해 '문재인 낙선운동'을 벌였을까요? 

당시 문재인 후보의 낙선운동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반사이익은 바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의 당선, 즉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인데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던 그가 반드시 박근혜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들어야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검찰의 기소 의견대로 '원세훈의 그릇된 인식' 때문일까요? 아니면 그가 꼭 그 일을 해내야만 했던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일까요?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나선 원세훈, 이유가 뭘까?

지난 2004년 10월 6일 서울시청에서 열린 국회 행자위 국정감사에 출석한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과 원세훈 행정1부시장.
▲ 이명박 시장과 원세훈 부시장 시절 지난 2004년 10월 6일 서울시청에서 열린 국회 행자위 국정감사에 출석한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과 원세훈 행정1부시장.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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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세훈 전 원장은 2002년 이명박 대통령의 서울시장 시절부터 최측근으로 일하다 2008년 행정안전부 장관에 이어 2009년 2월 12일 국정원장에 임명돼 2013년 3월 21일까지 국정원을 이끌었습니다.

4년여 기간 동안 대한민국 정보기관을 이끈 수장인데, 그가 고작 국내정치에 개입해 특정 정당의 특정 후보를 당선시키고 특정 정당의 특정 후보를 낙선시키고자 선거운동을 했다니…. 그 자체로 우리 정보기관의 수준이 참으로 한심하다고 하면 지나친 비하일까요?

과거 정보기관들은 국내정치에 개입해 민주주의를 억압했고 이에 국민은 저항했습니다.

잘 기억하시는 것처럼 "박정희의 유신시절 중앙정보부와 전두환 군사독재 시절 국가안전기획부의 광범위한 정보정치는 국민적 비난에 직면해 결국 1993년 문민정부 이후 정보기관이 국가안보 본연의 기능에만 충실하도록 국내 문제에 대한 관여 범위를 명확히 제한"했지요. 그 사실 원 전 원장이 모르지 않을 텐데 그는 왜 그랬을까요?

검찰은 이번 공소장에서 원 전 원장의 잘못을 이렇게 지적했습니다. "국가정보원의 직무 범위는 '보안정보의 수집·작성 및 배포'에 한정된 것이고 그 직무 범위를 넘어서 사이버 공간에서 직접 국민들을 상대로 각종 홍보나 반대의 정치적 활동을 하는 것은 위법한 것이다. 그런데도 원세훈 전 원장은 이를 강행했다"고 말이지요.

또한 검찰은 "더욱이 국가기관이 일반 국민의 의견인 것처럼 가장하여 사이버 공간에서 국민의 자유로운 여론 형성에 개입한 행위는 어떤 명분을 내세운다고 하더라도 표현의 자유 등을 보장한 우리 헌법의 이념에 비추어 결코 허용될 수 없다"고도 적시했습니다.

정보기관의 수장으로 재직하면서 엄청난 불법행위를 해놓고도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직무를 수행했다는 데 국민적 공분이 있는 게 사실입니다. 국가의 녹을 먹은 원 전 원장이 국민들의 눈을 인식하지 않은 채 특정 정치집단의 이익을 위해 '봉사'했다는 데 격분한다는 트위터 의견이 나오는 이유 같기도 합니다.

국가 안보 본연의 기능에만 충실하도록 했는데, 정치 깊숙이 개입

 원세훈 전 국정원장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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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원 전 원장이 매월 개최한 전 부서장 회의에서 전달한 '지시사항'은 얼핏 보더라도 지나칠 정도로 국내정치에 깊숙이 개입해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민주당 서영교 의원이 17일 법사위 회의장에서 공개한 몇 대목을 함께 보시겠습니다.    

"(중략) 요번에 지방선거에서는 2012년도에 정권에 바꿀 수 있도록 다 모아라, 단일화해라… 그래 모으라는 거는 희망과 대안 뭐 등 다 만들지만, 어쨌든 선거에는 단일화해라 하는 게 북한의 지령이라고… (중략) 일반 국민이 보면 다수가 반대를 하고 어떤 정책에 대해 한나라당만 찬성하는 것처럼 이렇게 돼 있잖아.(중략) 어쨌든 여러분들께서 중심을 잡고 좀 일을 해주시기 바랍니다."(2010. 4. 16)

"8·24 주민투표와 관련,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우리나라에서 선거는 누구나 참여하되, 각자의 의견은 투표로 보여주면 되는데 현재 투표 자체를 거부하는 일이 허용되는 것은 매우 잘못"(2011. 8. 22)

"인터넷 자체가 종북좌파 세력들이 다 잡았는데, 점령하다시피 보이는데 여기에 대한 대책을 우리가 제대로 안 세우고 있었다… 전 직원이 인터넷 자체를 청소한다, 그런 자세로 해서 그런 세력들을 끌어내야 됩니다"(2011.10.21)

"작년 선거 때도 보니까 보수세력이 결집하면 이길 수 있는 교육감 선거에서도 결국은 분열 때문에 졌잖아요…."(2011. 11.18)

"특히 총선이 얼마 남지 않았고 연말 대선도 예정돼 있어, 적과 종북세력들이 남남갈등 조장은 물론 주요 국정 성과 폄하를 위해 준동하고 있는 상황임. (중략) 국민들이 현혹되지 않도록 업무를 수행해 나가야 할 것임"(2012.1.6)

"진짜 금년 한 해가 아주 중요한 한 해 아닙니까. 이제 총선도 있고 대선도 있고, 종북좌파들은 북한과 연계해가지고 어떻게든지 다시 정권을 잡을라 그러고… (중략) 야당이 되지 않는 소리하면 강에 쳐박아야지 4대강 문제라 뭐 이렇게 떠들어도 뭐. 일은 죽도록 해놓고 여태까지 여러분 보니까 일은 우리가 했는데 왜 우리 가만히 있어… 그런데 지금 정신 못차리고 아직까지 그러고 있단 말이야. 우리 국가정보원은 금년에 잘못 싸우면 국가정보원이 없어지는 거야 여러분들 알잖아"(2012.2.17)

"종북좌파세력들이 국회에 다수 진출하는 등 사회 제분야에서 활개치고 있는데 대해 우리 모두는 부끄럽게 생각하고 반성해야 함. 직원 모두는 새로운 각오로 이들이 우리 사회에 발붙일 수 없도록 함으로써 국정원의 존재 의미를 찾아야 할 것임." (2012. 6.15)

따져보면 원 전 원장의 정치·선거개입은 재임 시절 내내 계속 된 것 같습니다. 특히 새누리당이 취약한 트위터나 SNS 공간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인터넷 자체를 청소한다 그런 자세로 해서 그런(종북) 세력들을 끌어내야 된다"고 강조하기도 했지요.

과연 이 말들이 진짜 대한민국의 최고급 국가정보를 취급했던 국정원장의 입에서 튀어나온 발언이 맞나 의심될 정도로 지나치게 정치적으로 편향돼 있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최소한의 정보만 알아도 금세 알 수 있는 사실 관계조차 확인하지 않은 채 직원들을 대상으로 역할을 주고 '밀어붙인' 게 아닌가 하는 인상도 지울 수가 없군요.

새누리당 정권재창출 위해 애쓴 원세훈, 말 없는 박근혜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와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지난해 12월 16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방송국에서 열린 제18대 대통령선거 후보자 3차 토론회에 앞서 촬영을 위해 나란히 섰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와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지난해 12월 16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방송국에서 열린 제18대 대통령선거 후보자 3차 토론회에 앞서 촬영을 위해 나란히 섰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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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여 이토록 열심히 '새누리당의 정권재창출'을 위해 노력한 원 전 원장은 올 1월 퇴임을 앞두고 연 전 부서장 회의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국정원의 할 일은 대북첩보 수집, 종북세력의 척결이며, 대통령 직속기관으로서 국정과제 지원은 당연한 업무로 지금까지 우리가 걸어온 길에 대해 자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

국정원법과 공직선거법을 위반하면서 국내정치와 선거에 깊숙이 개입해온 바에 대해 자부심을 가져라? 도무지 상식에 맞는 말이라 하기 어렵습니다. 원 전 원장이 지시했던 게 "야당이 되지 않는 말을 하면 강에 처박으라"고 했던가요? 도대체 누구를 강에 처박아야 하는 걸까요? 도통 알 수가 없습니다.

원 전 원장의 이 같은 정치·선거개입이 백일하에 드러났는데도 결과적으로 가장 큰 혜택을 입은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4일 검찰의 수사발표 이후 닷새가 지나도록 유구무언입니다. 지난해 12월 16일 대통령 후보 마지막 TV토론이 끝난 직후 밤 11시에 서울 수서경찰서에서 국정원 댓글녀 사건에 대한 수사결과를 발표한 데 대해서도 일언반구 말이 없습니다.

심지어 당시 서울경찰청장이었던 김용판, 박원동 국정원 국익정보국장 그리고 권영세 새누리당 선대위 종합상황실장(현 주중대사)이 여러 차례 통화를 했다는 제보내용이 폭로됐음에도 언급조차 없습니다.

오히려 새누리당 의원들은 국회 상임위 회의장을 통해 '국정원 감싸기' 총력전에 나섰습니다. 검찰이 선거법을 적용해 원세훈 전 원장을 기소한 것이 오히려 지나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의 여론지형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지켜보고 있는 걸까요? 여러분은 왜 박 대통령이 이번 사건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한다고 보십니까.


태그:#원세훈,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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