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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많은 사람은 해외에서 실컷 세금 빼먹고 돈 없는 사람만 한국에서 성실하게 납세하고 있습니다. 돈 없는 사람은 군대 가고 돈 많은 사람은 군대 빼는 것과 다를 게 없습니다."(조수진 실행위원)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유령회사)를 설립하고 송금한 사람을 일단 탈세한 것으로 간주하는 내용의 '역외탈세방지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참여연대 조세재정개혁센터는 17일 박원석 진보정의당 의원과 함께 국회 의원회관에서 역외탈세 방지방안에 대한 토론회를 열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역외탈세특례법 제정 제안 이외에도 탈세로 적발된 범죄를 도와준 로펌이나 회계법인 등을 강력히 처벌해야 한다는 제언 등 조세형평을 실현하기 위한 다면적인 해결책들이 제기됐다.

17일 국회 의원회관 2세미나실에서 열린 역외탈세 방지 토론회에 참석한 패널들이 토론을 하고 있다.
 17일 국회 의원회관 2세미나실에서 열린 역외탈세 방지 토론회에 참석한 패널들이 토론을 하고 있다.
ⓒ 김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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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피난처에 유령회사 세웠다는 것 자체가 탈세 혐의 짙다"

발제에 나선 조수진 참여연대 조세재정개혁센터 실행위원은 "역외탈세 근절을 목적으로 하는 특례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특례법 안에 들어가야 할 내용으로 5가지를 꼽았다. ▲조세피난처 이용 납세자에 비탈세 입증책임 부과 ▲조세피난처 소재 유령회사에 법인격 부인 가능 명문화 ▲내부고발자 신고포상금 상향 및 면책 강화 ▲해외 자산에 대한 신고의무 부여 ▲국세청의 전속고발권 폐지 등이 그것이다.

이날 논의의 핵심이 됐던 내용은 조세피난처 이용 납세자에 대해 비탈세 입증책임을 부과하자는 항목이었다. 변호사인 조 위원은 "상속법 45조를 보면 납세자가 재산을 자력으로 취득한 것으로 보기 어려운 때에는 증여받은 것으로 간주해서 징세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조세피난처에 유령회사를 세웠다는 것 자체가 탈세행위를 염두에 뒀다는 혐의가 짙다"면서 "(이 경우 우선 탈세로 징세하고) 이것이 건전한 경영행위라는 입증은 납세자가 하는 식으로 규정하는 법안 마련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강조했다. 또한 "프랑스와 벨기에 등 일부 국가에서 이미 시행하고 있는 방식"이라고 덧붙였다.

조 위원은 조세피난처에 세워진 유령회사의 법인격 부인도 명문화하자고 주장했다. 국내법에 따르면 법인은 그 회사의 구성원과 무관하게 사람처럼 법적인 권리와 의무를 갖는다. 법인격 부인이란 이런 법인의 속성이 악용될 경우에 한해 법인과 구성원을 같게 보는 것을 말한다. 유령회사가 탈세를 한 경우 법인격 부인을 적용하면 해당 회사의 소유주에게 세금을 징수할 수 있다.

조 위원은 현행 해외소재 계좌에만 적용되고 있는 해외금융계좌신고 의무도 자산 전체로 확대할 것을 제안했다. 현행법인 국제조세조정에 관한 법률 17조에 따르면 해외에 금융계자를 보유하고 있는 내국인은 하루라도 잔액이 10억 원을 넘으면 이듬해 6월에 세무서에 신고해야 한다. 그러나 부동산 등 자산에 대해서는 신고의무를 규정하는 법 조항이 없는 상태다.

"자본주의에서 한계 있어...제주도에 조세피난처 만들자"

토론자로 나선 안창남 강남대 세무학과 교수는 비탈세 입증책임을 납세자에게 두자는 주장을 강하게 반박했다. 조세피난처를 법령에서 정의하는 것도 쉽지 않을 뿐더러 실질적으로 법제화되기 어려운 내용이라는 것이다.

안 교수는 "현행 세법은 민법 규정에 따라 탈세 혐의를 과세관청이 입증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면서 "역외에서 탈세를 했으니 납세자가 정당함을 입증하라는 것은 과세편의적 행정이고 그런 법이 만들어진다 한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안 교수는 "지금은 합법적인 역외탈세가 가능한 시대"라면서 "자본주의 체제가 지금과 같이 가고있는 이상 완벽하게 막아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조세피난처 법인을 이용한 지능적인 절세로 논란이 되었던 애플이나 마이크로 소프트에 대해 미국의 CIA, FBI, 미국 국세청이 처벌을 하고 있지 못하는 이유도 그것이 합법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거꾸로 국내에 조세피난처를 만드는 방안에 대해 제안하기도 했다. 안 교수는 "선진 주요국가는 대부분 역내 또는 역외에 조세피난처를 두고 있다"면서 "외국의 투기자본을 끌어들여서 자국의 경제를 살리고자 하는 의도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자본과 기술이 부족한 한국 경제를 살리기 위해 제주도 등지에 조세피난처를 만들어서 건전한 외국 투자자본을 끌어들이고 경제활성화를 꾀하자는 주장도 있다"고 전했다.

"로펌, 회계법인 등 '탈세 조력자' 처벌 강화해야"

안 교수는 이날 납세자 처벌보다는 로펌이나 회계법인 등 '탈세 조력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방안이 효과적이라는 이색적인 주장을 내놓기도 했다. 탈세 조력자들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게 되면 조세피난처에 유령회사를 만드는 비용 자체가 올라가는 효과가 있고 결과적으로 역외탈세 수요를 줄일 수 있다는 논리다. 실제로 네덜란드 같은 경우는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 국가대표 축구 감독이었던 히딩크가 탈세 사건에 연루되어 네덜란드 검찰에 기소됐을 때 히딩크는 집행유예를 받았지만 그로 하여금 네덜란드에서 조세피난처인 벨기에로 옮기도록 했던 변호사, 회계사는 법정구속되어 2년 형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국내법에도 납세자로 하여금 허위로 신고하게 한 자에 대한 처벌 규정이 있다"면서 "하지만 대법원에서 탈세 판정 난 사건에 로펌이 함께 처벌받았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안 교수와 함께 토론자로 나선 이유영 조세정의네트워크 동북아챕터 대표도 탈세 조력자 처벌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 대표는 "미국에서는 역외탈세 행위를 마약, 무기밀매, 인신매매 같은 범죄로 보자는 움직임이 나오고 있다"면서 "이렇게 규정이 될 경우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들을 처벌할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안 교수가 반박한 납세자 입증책임 전환 문제에 대해서는 조 위원의 편을 들었다. 개인 권리 보장에 민감한 미국에서도 해외계좌 신고와 관련해서 자진신고 규정을 어기면 고의적인 탈세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한편 이 대표는 이날 토론회에서 "미국의 포괄정보제출명령제(John Doe Summon)를 도입을 고려해볼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포괄정보제출명령제란 탈세혐의가 있는 사람들의 신분이 특정되지 않아도 수색영장을 발부할 수 있는 제도로 명백한 증거 없이도 탈세 관련 수사를 가능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그는 "최근 샌프란치스코 지방법원이 이 제도를 이용해 HSBC은행에 대한 수색영장을 발부해줘서 3000여 명의 탈세자를 적발한 적이 있다"고 덧붙였다.


태그:#조세피난처, #조세도피처, #참여연대, #박원석, #역외탈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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