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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신되지 않은 우편물들
▲ 우편함 수신되지 않은 우편물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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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신되지 않은 우편물들이 오랫동안 비어있는 집임을 증명한다. 그 골목엔 제법, 수신되지 않은 우편물이 가득한 우편함들이 많다. 대부분은 고지서들이거니 공공기관에서 보낸 우편물들이다.

낡은 지붕과 십자가
▲ 거여동재개발지구 낡은 지붕과 십자가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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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갠 아침, 재개발지구의 그 좁은 골목에도 아침햇살이 비춘다는 당연한 사실을 본다.
새삼스럽다. 그곳은 아침 햇살이 비추기에는 불경스러운 곳처럼 느껴었다. 아침 햇살에 대한 실례이거나, 그곳에도 똑같은 해가 뜬다는 것이 잔인하다고 생각했다.

폐허가 된 집에 들어가 보았다.
▲ 폐가 폐허가 된 집에 들어가 보았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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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떠난 곳은 대부분 자물쇠로 굳게 잠겨있고, 녹슨 자물쇠가 그들이 떠난 지 오래되었다는 것을 증명해 주고 있었다. 열쇠가 잠기지 않은 폐가 한 채가 보여 용기를 내서 들어가 보았다. 혹시 모르겠다. 어릴 적 내 친구의 집일지도, 들어와 본 적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버려진 짐들만 그곳을 지키고 있다.
▲ 폐가 버려진 짐들만 그곳을 지키고 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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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떠난 그곳에는 더난 사람들에게 버림받은 물건들이 그곳을 지키고 있다. 그곳에도 다 깨진 창문으로 빛이 들어오고 있다. 그 빛에 다 썩어빠진 내장같은 폐가의 속내가 드러난다.

폐가에서 바라본 골목
▲ 폐가 폐가에서 바라본 골목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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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가에서 골목을 바라본다. 그 집과 다르지 않은 모습, 그렇게 비슷비슷한 모습으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살았기에 서로 힘이 되었을 것이다. 나와 다르지 않다는 것, 그것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가?

한 때는 쉼터였을 이곳
▲ 폐가 한 때는 쉼터였을 이곳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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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이곳은 고단한 몸을 쉬는 집이었을 터이고, 사랑을 나누는 곳이었을 터이고, 자라나는 아이들을 보며 희망을 꿈꾸던 곳이었을 터이다. 비가 새는 판잣집이라도 내일의 해는 뜨는 법이고, 그 해를 기다리는 것이 죄될리 없었을 터이니까.

2006년 7월이나 8월에 떠났을 터이다.
▲ 달력 2006년 7월이나 8월에 떠났을 터이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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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력, 2006년 7월과 8월이 함께 있는 6장짜리 달력이다. 그러니까 아마도 저 즈음에 이곳을 떠났을 터이다. 2006년 막, 여름이 시작되던 이맘때 그곳을 떠날 생각을 했을 것이다. 곧, 개발이 되면 새집에 살 꿈을 꾸고 떠났을까?

그 세월만큼 녹이 슨 칼
▲ 녹슨 칼 그 세월만큼 녹이 슨 칼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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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떠난 세월의 흔적은 녹으로 남아 서슬 퍼렇던 칼을 무디게 했다. 어쩌면 오랜 새월동안 재개발과 개발의 논란 속에서 이렇게 무뎌졌는지도 모르겠다. 삭아버리기 전에 뭔가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겨우 마음을 모았을 때에는 부동산 경기가 바닥을 쳤을 것이다.

이젠, 그곳을 떠난 사람도 남은 사람도 묘안이 없는 상황이 된 것일까?

오랜 세월 빛바랜 흔적
▲ 처마 오랜 세월 빛바랜 흔적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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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케도 색깔만 변하고 잘 버텼다. 우박이라도 내리면 구멍도 송송 뚫리기 마련인데, 그저 색깔만 변했다. 그러나 만지면, 푸석하니 부서져 버릴 운명이다.

혹시라도 그곳에 살던 이들의 삶도 그런 것이 아닐까? 공용화장실 옆에 있는 수도꼭지에서 물을 길어가는 이가 있다. 낯선 이의 눈길이 부담스러운지, 아니면 의심스러운 것인지 자꾸만 흘낏거린다.

아무리 그들을 이해한다고 해도, 이해하려고 해도 나는 그곳에서 이방인인 것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피었다 지는 꽃
▲ 낙화 올해도 어김없이 피었다 지는 꽃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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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었던 장미가 어제 내린 비에 꽃잎을 놓아버렸다. 저것도 의미가 있다고, 떨어진 꽃도 의미가 있다고 했던가? 그것이 저 떨어진 꽃에게는 무슨 의미일까?

떨어진 꽃처럼 떨어진 사람들, 그 꽃 떨어진 곳에 열린 열매들을 탐하는 사람들, 혹은 그저 훔쳐먹는 사람들. 척박했던 그곳을 일궈왔던 이들과 살아왔던 이들이 웃을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을지 막막하다.

덧붙이는 글 | 2013년 6월 13일, 아침에 담은 사진입니다.



태그:#재개발지구, #우편함, #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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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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