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하루 종일 매장과 창고를 드나들며 대량으로 상품을 나르고 진열한다. 중노동에 시달리지만 월급은 비정규직의 경우 최저임금 수준에 그친다.
 하루 종일 매장과 창고를 드나들며 대량으로 상품을 나르고 진열한다. 중노동에 시달리지만 월급은 비정규직의 경우 최저임금 수준에 그친다.
ⓒ 홈플러스 노동조합

관련사진보기


정부의 고용률 70% 로드맵이 박근혜 대통령 취임 100일에 맞춰 발표됐다. 우연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번 발표 내용은 박 대통령이 "정부의 최우선 목표"라고 밝히고, 정홍원 총리까지 나서서 연일 강조해 온 사안이라는 점에서 취임 100일에 세상에 내놓기는 딱 알맞았다. 박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는 2017년까지 고용률 70%를 달성하겠다는 계획에는 고용노동부뿐 아니라 기획재정부, 미래창조과학부 등 정부 주요 부처가 모두 참여한다. 이명박 정부 '4대강 사업'에 비견할 만하다.

로드맵 발표에 대한 반응은 다양하다. '고용률 70%'라는 목표 설정과 그에 따른 효과에는 토를 다는 사람이 거의 없다. 반면에 그 방식이나 과정에는 여러 지적들이 이어진다. 중소기업을 중견기업으로 성장시킨다는 내용은 이미 지난 정권에서 추진한 것이고, 특수고용노동자들의 사회보험 확대 또한 오래된 논란거리였다.

또 핵심내용이라고 할 수 있는 시간제 공무원 채용도 수요조사와 직무분석을 아직 마치지 못해 8월까지 실시하겠다고 한다. 시간제 교사 도입도 아직 법률 검토를 마치지 않았다. 실속 없는 '취임100일용 선언'이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운 이유다.

대선공약에는 없던 시간제 일자리..."저임금, 불안정 고용 해소가 먼저"

지난 해 9월 5일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100% 국민행복 실천본부의 '총선 공약 법안실천 국민보고'에 참석해 황우여 대표, 이한구 원내대표,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 이주영 대선기획단장과 함께 공약이 적힌 피켓을 들어보이며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지난 해 9월 5일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100% 국민행복 실천본부의 '총선 공약 법안실천 국민보고'에 참석해 황우여 대표, 이한구 원내대표,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 이주영 대선기획단장과 함께 공약이 적힌 피켓을 들어보이며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그 가운데 가장 우려스러운 것이 바로 시간제 일자리 확대다. 선진국에서 이미 확대했으니 이를 우리 경제에도 도입해야 한다는 취지는 설득력이 있지만 정책 우선순위에서 가장 중요시 돼야 하는지에는 의문이 제기된다. 지난해 대선 당시 박 대통령의 공약에서도 '시간제 일자리 확대'는 찾아 볼 수 없었다. 그는 근로시간 단축과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 기존에 사회의 공감을 얻던 정책을 중심으로 일자리 확대 공약을 내놓았다. 그러던 대통령이  갑작스럽게 시간제 일자리를 강조하고 나섰다.

시간제 일자리가 본격적으로 언론을 타고 나온 것은 지난달 말이다. 현오석 경제부총리가 기자간담회에서 "기존 일자리와 충돌되지 않는 새로운 형태의 시간제 일자리를 개발해야 한다"고 말한 것이 시작이다. 그 전까지는 정부차원에서 시간제 일자리에 대한 특별한 언급조차 없었다. 불과 일주일 만에 시간제 일자리는 정부의 핵심 과제로 떠오른 것이다. 이는 신속하게 진행됐던 노사정 협의 테이블의 진행과 동시에 이뤄졌다. 결국 정부는 공공분야에서만 92만 개의 시간제 일자리를 만드는 계획을 내놓았다.

정부는 공공부문의 시간제 일자리 확대를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라고 설명하지만 노동계는 오히려 비정규직만 양산할 것이라며 우려한다. 그 과정이 어떤 개연성도 없이 급하게 진행됐고, 고용률 70% 달성을 위해 시간제가 정반대의 형태로 악용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은 정부의 고용률 70% 로드맵 발표 이후 낸 성명에서 "악용 소지가 다분한 시간제 일자리를 추진하는 것은 고용률 70%라는 수치 달성에만 목표를 둔 채 '나쁜 일자리'가 양산돼도 상관 않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박성식 민주노총 부대변인은 "노동시간 단축이라는 큰 방향에는 동의하지만 저임금·고용불안 문제가 계속된 상황에도 불구하고 이번 로드맵에는 이를 타개할 현실적인 대책이 전혀 없다"고 지적했다. 새로운 시간제 일자리를 만드는 게 아니라 기존에 불안전한 고용을 먼저 해결해야 한다는 취지다.

설령 공공부문에서 양질의 시간제가 만들어진다고 해도 진급이나 근무형태 전환 등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책이 없다. 시간제(파트타임)에서 풀타임 근무로 전환하거나 그 반대가 자유롭게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시간제 교사도 이미 정규직 교사와 기간제 교사의 차이가 있는 상황에서 또 다른 시간제 교사가 생겨나면 그 역할과 지위에 혼란이 일 것은 안 봐도 뻔한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한국노총도 시간제 일자리만을 지나치게 늘리려는 시도가 전체적인 일자리 질의 저하로 이어질까 우려된다며 정부의 로드맵을 비판하고 나섰다. 이들은 성명에서 "현재 차별을 받는 시간제 노동자들과 학교비정규직 등에 대한 해결책 없이는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 정책이 현실에 반영되기에는 미흡하다"고 밝혔다. 한국노총 역시 최저임금과 비정규직 등 현안 문제 해결이 우선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현재 시간제 일자리는 임시직, 관행부터 바꿔야"

지난해 2월 8일 오후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승용차 생산라인에서 노동자들이 부품 조립 작업을 하고 있다. 중노위가 올해 3월 19일 32개 현대차 하청업체에 대해 불법파견 판정을 내린 후 고용노동부가 그 어떤 조치도 하지 않으면서 비정규직노조가 반발하고 있다.
 지난해 2월 8일 오후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승용차 생산라인에서 노동자들이 부품 조립 작업을 하고 있다. 중노위가 올해 3월 19일 32개 현대차 하청업체에 대해 불법파견 판정을 내린 후 고용노동부가 그 어떤 조치도 하지 않으면서 비정규직노조가 반발하고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이러한 정부의 급작스러운 시간제 일자리 확대가 결국은 노동시장 유연화 확대를 위한 것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신자유주의와 함께 급속도로 확산됐던 노동시장 유연화는 비정규직과 소득 양극화 등의 문제를 낳았고, 지난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로는 철퇴를 맞았다. 이명박 정부도 정권 초반 노동시장 유연화를 강조했지만, 금융위기 이후 비정규직이 사회 핵심 문제로 떠오르자 이후에는 고용 안정성을 더 강조했다. 지난해 총선과 대선에서도 어느 누구도 노동시장 유연화를 입에 담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의 시간제 일자리 확대가 다시 노동시장 유연화로 회기하는 것이 아니냐고 우려하는 이유는 기존에 불안정한 일자리를 개선하지 않고 무리하게 시간제를 도입하려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OECD국가 가운데 시간제 근로의 비중이 매우 낮은 수준이지만 비자발적 시간제 근로로 따지면 3위 수준으로 올라간다. 그만큼 시간제를 원하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시간제 근로를 해야 하는 사람이 이미 많이 있다는 것이다. 이들에 대한 고용안정화 대책보다 새로운 시간제 일자리 확대를 이야기 하고 있는 게 문제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4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지난해 총·대선에서 여야를 막론하고 노동시장 유연화라는 말 자체가 사라졌다, 이번 정부의 공약에도 노동 유연성이란 게 없어 그 이야기가 언제 나오나 지켜보고 있었는데 이번에 시간제 일자리가 거론되는 거 보니 우려가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현존하는 시간제 일자리의 90% 이상이 임시직인데 그런 관행을 바꾸기 위한 사전 노력 없이 시간제를 무작정 확대하겠다는 것은 정규직 시간제 일자리라는 간판만 들고 속으로는 노동 유연성을 하자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비정규 노동자 결의대회에 참여한 영어회화 전문강사들. 영어회화 전문강사들은 무기계약직 전환과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비정규 노동자 결의대회에 참여한 영어회화 전문강사들. 영어회화 전문강사들은 무기계약직 전환과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 이장원

관련사진보기


심상정 진보정의당 의원도 "정부가 구상하는 시간제 일자리는 빛 좋은 개살구에 머물 공산이 크다, 지난 10년 사이 시간제 일자리가 2배가 늘어 175만 명에 이른다"며 "이 중 여성이 74%에 달하며 자발적으로 선택한 경우는 50%가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임금 수준도 한시적 노동자의 월평균 임금 160만 원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65만 원 수준"이라며 시간제 일자리가 아무리 반듯해도 시간제 노동자는 결국 '을 중에 을이자, 수퍼을'이다, 국민들은 시간제 일자리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반듯한 정규 일자리를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것저것 여러 가지 대책이 있지만 결국 이번 정부의 고용률 로드맵은 '시간제 일자리'가 핵심이다. 당장 2014년부터 시간제 일반직 공무원을 채용할 계획이다. 공공부문에서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가 만들어진다고 해도 민간부문에서는 그 작용방식이 완전히 다르다. 이미 파견법 위반 등 불법 고용형태로 법원의 판결을 받아도 시정하지 않는 게 한국 기업의 현실이다.

기존에 문제가 되는 고용형태를 바로 잡는 노력 없이 단지 시간제 일자리를 확대하라고 하면 기업들에 좋은 빌미가 될 수도 있다. 박근혜 정부는 갑자기 꺼내든 시간제 일자리에 매몰될 게 아니라 대선 당시 내세웠던 약속들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태그:#시간제, #고용율, #박근혜, #로드맵,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