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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드리 마을 입구
 바드리 마을 입구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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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낮, 최근 한국전력(이하 한전)이 초고압 송전탑 공사를 강행하고 있는 밀양 단장면 바드리 마을에 다녀왔습니다.   

바드리 마을 가는 길
 바드리 마을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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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은 차가 다니는 큰 도로에서 산길을 따라 4킬로미터를 더 가야 했습니다. 차도 없이 홀로 왔으니 걷는 수밖에요.

동화마을 양윤기 이장
 동화마을 양윤기 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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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 땡볕 아래서 숨을 고르고 있는데 차 한 대가 곁에 섰습니다. 마침 송전탑건설반대 시위현장에 가던 인근 동화마을 양윤기 이장이었습니다. "배낭 매고 혼자 걷는 모습이 꼭 '우리 쪽' 가는 것 같아서" 하며 운전석 옆자리를 내주었습니다.

양 이장을 통해 최근 바드리 마을이 한전 측과 협의한 사실을 알았습니다.

"산에 도로 놔줬다고 (협상을) 해버렸어. 시골 사람들이 이리 순진해. 그거(송전탑) 들어오면 이 좋은 자연이 다 망가지는데…."

오랜 시간 뜻을 같이해온 이웃 주민에 대한 서운함이 역력했습니다.

바드리 마을 송전탑 설치 예정지
 바드리 마을 송전탑 설치 예정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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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이 한전 측에서 76만5000볼트 초고압 송전탑을 세우려는 자리입니다. 바드리 마을 89번 현장. 조금 전까지 본, 산림이 울창한 주변 지역과는 확연히 차이가 납니다.

'농사짓고 살고 싶다.'
 '농사짓고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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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지금 얼마나 답답한 심정이냐면, 지금이 농촌 사람들한텐 농번기야. 제일로 바쁜. 그런데 여기 이렇게 밤낮없이 와 있으니…."

역시나 청정 미나리를 재배하는 양 이장의 푸념이었습니다.

한전 측과 협상을 하기 전까지 바드리 마을은 물론, 송전탑 설치를 반대해온 여러 마을 주민들이 무려 8년을 이렇게 살아왔습니다.  

초고압 송전탑 설치를 반대하는 사람들
 초고압 송전탑 설치를 반대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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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서 밤을 지새운 분도, 역시 시위 중인 인근 83번 현장에서 위문차 온 분도, 가족과 이웃이 걱정돼 올라온 분도 계십니다. 다들 오랜 고단함이 묻어나는 표정으로 이런저런 상황들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765kv 절대 안 돼!'
 '765kv 절대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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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만5000볼트, 건물 45층 높이에 해당하는 140미터 송전탑. 한전 측이 해당 시설이 필요한 이유로 지금껏 내건 명분은 심각한 전력수급난이었습니다. 밀양 송전탑을 통해 신고리 3호기에서 생산하는 전기를 원활하게 보내야 이런 사태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죠.

하지만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고리 3호기에서 생산하는 전기는 전체의 1.7%에 불과하며, 현재 가동을 멈춘 핵발전소 9곳이 실은 한전 직원의 부품 비리와 관리 소홀에 있음을 감안하면 기실 이 송전탑의 필요성에 회의가 드는 게 인지상정입니다.

더군다나 최근 한전 부사장에 의해 이 공사 진행의 '진짜 이유'가 따로 있을 수 있다는 의혹이 커진 상태입니다. 지난 2009년 정부가 아랍에미리트와 맺은 원전 수출 계약에 '신고리 원전 3호기가 2015년까지 가동되지 않을 경우 매달 공사비의 0.25%에 해당하는 보상금을 물어야' 하는 규정이 있다는 것이지요.

잘려진 나무들
 잘려진 나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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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입이 있어 소리내 말이라도 하지. 인간 필요를 위한 자연 파괴는 늘 당연한 건가요?

할머니의 힘든 발걸음
 할머니의 힘든 발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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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을 향한 'ㄷ'자 몸의 할머니가 오늘도 현장을 방문했습니다. 등이 굽고 기력도 쇠해 당신 몸 가누기가 쉽지 않습니다. 할머니는 이 산을 몇 번이나 올랐을까요.

현장에서 만난 한전 직원
 현장에서 만난 한전 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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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번 현장 앞에 있던 한전 직원입니다. 송전탑 반대 시위에 참여한 주민 분과 마주 서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주민 분이 먼저 "서로 못할 짓이다" 했습니다. 그러자 직원이 "주말엔 애 봐야 하는데…" 했습니다. 그리고는 서로 애처롭게 웃었습니다.

송전탑 설치를 반대하는 마을 주민들
 송전탑 설치를 반대하는 마을 주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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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이 가까운 시간, 지난 주말 내내 시위에 참여한 마을 할머니와 여인이 차를 기다리고 앉았습니다. 그리고는 "걸어서 내려갈라고?" 하고 걱정을 했습니다. "바람도 좋고 해서…. 건강하세요" 하고 돌아서는데 맨 앞에 앉은 할머니가 "젊어서 좋다" 작은 소리로 말했습니다.

'그냥 이대로 살게 해주세요.'
 '그냥 이대로 살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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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은 현재까지 개발 광풍의 영향이 적은 지역입니다. 산 위에 서서 바라본 마을 풍경은 이처럼 온화하고 아름답습니다. 이제쯤 송전탑 설치를 현실적 이유로 찬성하는 이도, 여전히 반대하는 이도 있습니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질문에서 지금 상황을 다시금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요?

인간 필요를 위한 자연 파괴는 정당합니까? 다수의 이익을 위한 소수의 희생이 정당합니까? 위험천만한(현재는 존재하지 않는 미래 세대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원폭 피해자들의 되물림되는 고통이 그 예입니다) 원전이 진정한 에너지 대안일까요?


태그:#밀양, #송전탑, #바드리, #한전인턴, #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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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보니 삶은 정말 여행과 같네요. 신비롭고 멋진 고양이 친구와 세 계절에 걸쳐 여행을 하고 지금은 다시 일상에서 여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바닷가 작은 집을 얻어 게스트하우스를 열고 이따금씩 찾아오는 멋진 '영감'과 여행자들을 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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