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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새벽 3~5시경 집을 나와 산에 오른다. 하루 종일 움막이나 길바닥 등에서 지낸다. 간혹 손자뻘인 전경대원들과 맞서 싸우기도 하고, 한국전력공사 직원들과도 싸운다.

밀양 송전탑 공사 반대 주민들이다. 햇수로 치면 9년째 싸우고 있는데, 한국전력공사가 8개월간 중단했던 공사를 지난 20일부터 재개한 뒤부터 주민들은 다시 '투쟁'에 나섰다. 주민들은 다시 일상생활이 없어진 셈이고, 농삿일도 못할 판이다. 한 할아버지는 "한 해 농사 못하면 어떻노. 철탑 못 막으면 평생 후회할 것인데…"라고 말할 정도다.

한국전력공사가 밀양 송전탑 공사를 재개한 가운데, 23일 오전 한 주민이 헬기장에 있는 장비에 몸을 묶어 옮기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사진 중앙에 보이는 철탑이 밀양시 청도면 주민과 합의에 따라 화악산에 설치된 것이다.
 한국전력공사가 밀양 송전탑 공사를 재개한 가운데, 23일 오전 한 주민이 헬기장에 있는 장비에 몸을 묶어 옮기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사진 중앙에 보이는 철탑이 밀양시 청도면 주민과 합의에 따라 화악산에 설치된 것이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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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몸에 밧줄을 묶어 지내기도 한다. 한국전력이 헬기로 장비를 실어 나르자 장비에 몸을 묶어 작업을 못하도록 한 것이다. 또 주민들은 소나무에 밧줄을 매달아 놓았다. 이것은 밧줄에 목숨을 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한국전력이 송전탑 공사재개를 한 지 나흘만에 12명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쓰러지고, 병원에 후송되기도 했다. 21일 손을 다쳤던 이재란(73) 할머니는 깁스를 하고 다시 농성에 가담해 있다.

공사 현장 곳곳 대치 상황 계속

공사 재개 나흘째인 23일도 여전히 밀양은 '전쟁터'다. 한국전력은 7곳에서 공사를 시작했는데, 3곳에서 정지작업 등을 벌이지만 4곳은 주민과 대치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특히 밀양시 부북면 평밭마을과 단장면 바드리마을 공사 현장 주변은 주민들이 적극 대치하고 있다.

127번철탑 공사장은 화악산 8부능선 쯤에 있는데, 평밭마을 입구에는 주민들이 농성을 계속하고 있다. 나무 사이에 밧줄을 매달아 놓았고, 그 위에 주민들이 자리를 깔고 앉아 있다. 주민 위로 경운기와 트랙터 10여대가 바리케이드 역할을 하고 있다.

평밭마을 입구에서 127번철탑 공사장까지 가는 사이에도 주민들이 지키고 있다. 움막과 천막을 설치해 놓고 살다시피 하고, 두세 명씩 조를 편성해 길목을 지키고 있다. 한국전력 직원들의 출입을 막기 위한 의도다. 기자들도 신분 확인이 돼야만 통과시켜 줄 정도다.

 한국전력공사가 밀양 송전탑 공사를 재개한 가운데, 주민들은 목숨을 걸고 공사 저지 투쟁할 것이라 밝혔다. 사진은 밀양시 부북면 대항리 평밭마을 입구에 있는 농성장에 주민들이 밧줄을 매달아 놓은 모습.
 한국전력공사가 밀양 송전탑 공사를 재개한 가운데, 주민들은 목숨을 걸고 공사 저지 투쟁할 것이라 밝혔다. 사진은 밀양시 부북면 대항리 평밭마을 입구에 있는 농성장에 주민들이 밧줄을 매달아 놓은 모습.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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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력공사가 밀양 송전탑 공사를 재개한 가운데, 주민들은 목숨을 걸고 공사 저지 투쟁할 것이라 밝혔다. 사진은 밀양시 부북면 대항리 평밭마을 입구에 있는 농성장에서 한 할머니가 매달아 놓은 밧줄을 살펴보고 있다.
 한국전력공사가 밀양 송전탑 공사를 재개한 가운데, 주민들은 목숨을 걸고 공사 저지 투쟁할 것이라 밝혔다. 사진은 밀양시 부북면 대항리 평밭마을 입구에 있는 농성장에서 한 할머니가 매달아 놓은 밧줄을 살펴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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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길을 지키고 있는 김길곤(82)씨는 의지가 대단하다. 그는 "한국전력은 보상을 해주고, 그 돈으로 길도 내고 경로당도 짓는다고 하는데 그것이 말이 안 된다"며 "도로나 경로당은 정부나 밀양시에서 해주어야 하는 거 아니냐. 보상이라고 하지만 송전탑 피해 주민한테는 실질적으로 돌아오는 게 없다"고 말했다.

그는 "송전탑 반대하는 주민들은 80살 안팎이 많은데, 옛날에 교육도 안 받았고 그야말로 순진하고 정직하신 분들이며 오염이 안돼 있다"며 "그 분들이 무엇 때문에 이렇게 하겠느냐, 평생 가꾸어온 논밭을 지키고, 자연환경을 지켜 고향땅을 후손한테 물려 주겠다는 생각 뿐이다, 어머니 생각 같은 것이다, 모성애로 보면 된다"고 덧붙였다.

정부를 비난했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은 살기 좋고 행복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했는데 이게 그런 것이냐"며 "이런 일에 공권력을 투입하고 있는데 이것은 예산낭비다"고 말했다.

밀양시 청도면 쪽 화악산 자락에는 장비를 모아 놓은 곳이 있다. 헬기로 중장비를 공사장까지 옮기기 위해 해체해 놓은 것이다. 이곳 주변에는 송철탑이 이미 세워져 있다. 송전탑은 밀양시 5개면을 지나는데 청도면 주민들은 한국전력과 합의를 해주었고, 4개면은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

이곳에는 할머니 10여명이 허리에 밧줄을 메고 있다. 헬기가 장비를 옮기려고 하면 밧줄을 장비에 매달아 옮기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작업은 헬기에서 줄을 내려 한국전력 직원이 장비와 연결시킨 뒤에 옮기는데, 공사재개 뒤 한 차례 그런 시도가 있었지만 주민들이 막아냈다.

127번철탑 공사장에도 10여명의 주민들이 지키고 있다. 이곳에는 경찰병력이 배치되어 있고, 한국전력 직원들이 수시로 정지작업 등을 벌이고 있다. 공사재개 뒤 몇 차례 현장에서 충돌이 발생하기도 했다.

경찰, 주민 2명 소환 통보... "구속시키면 더 단합"

윤여림(75)씨는 경찰을 맹비난했다. 밀양경찰서는 윤씨와 이금자(82)씨에 대해 소환 통보를 한 것이다. 경찰의 업무를 방해했다는 게 이유다.

한국전력공사가 밀양 송전탑 공사를 재개한 가운데, 23일 오전 주민들이 밀양시 부북면 평밭마을 공사 현장에 모여 공사 저지와 관련해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한국전력공사가 밀양 송전탑 공사를 재개한 가운데, 23일 오전 주민들이 밀양시 부북면 평밭마을 공사 현장에 모여 공사 저지와 관련해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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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력공사가 밀양 송전탑 공사를 재개해 주민들과 마찰을 빚고 있는 속에, 23일 오전 경찰들이 밀양시 부북면 평밭마을 공사현장 입구에 있는 쓰레기를 줍고 있다.
 한국전력공사가 밀양 송전탑 공사를 재개해 주민들과 마찰을 빚고 있는 속에, 23일 오전 경찰들이 밀양시 부북면 평밭마을 공사현장 입구에 있는 쓰레기를 줍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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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경찰로부터 전화를 받은 뒤 윤씨는 "어제 11시경 차에 밥을 싣고 단장면 바드리마을 현장에 갖다 주기 위해 가는데, 경찰이 검문을 하더라. 그래서 무슨 검문이냐고 항의를 했다"며 "경찰을 밀쳤다고 해서 조사를 받으러 나오라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나는 구속되기를 원한다. 내가 구속이 되고 나면 주민들은 더 단합이 잘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한국전력은 보상을 해준다고 하는데 지금은 천억을 준다고 해도 송전탑을 허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언론은 사실대로만 쓰라"

주민들은 언론을 경계하고 있다. 특히 몇몇 언론사를 거명하면서 "그 기자들은 절대 취재 못한다"고 말할 정도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기자들을 만나면 "사실대로만 써야 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닐 정도였다.

이남우(71)씨는 "신문과 방송은 사회의 거울인데, 어떤 언론을 보면 한국전력의 주장만 담고, 한국전력에 유리한 내용만 담는다"며 "한 마디로 거짓 보도를 일삼고 있다"고 말했다.

"가령 지중화에 대해, 언론은 한국전력 이야기만 싣는다. 한국전력이 지중화하는데 돈이 2조5000억 원 들어간다고 하니까 그 보도만 한다. 조경태 국회의원이 공학박사 출신이고, 대책위에서 전문가를 통해 알아보니까 돈이 그 정도 드는 게 아니고 4300억 원 정도만 들더라. 그러면 지중화를 언급하려면 2조5000억 원 이야기만 할 게 아니고 4300억 원 이야기도 같이 해야 하는 거 아니냐. 그래야 독자들이 제대로 판단할 것이다."

이남우씨는 신문과 방송에서 보여주는 '송전탑 노선 그림'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송전탑 노선이 비정상적인 데가 많다. 지도를 1/10만 내지 1/5만 크기로 줄여서 보여주는데, 사실을 왜곡하기 일쑤다. 지도를 보면 직선처럼 그려져 있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실제 노선은 ㄷ자 모양인 곳이 많다. 노선이 바로 가야 정상이고, 그렇게 되면 피해는 1개 마을이 보는 정도지만, ㄷ자 모양이면 비정상이고 그 피해는 너댓개 마을로 늘어난다. 언론이 왜 그러느냐."

우원식 의원 "지중화 전문가협의회 구성 노력"

 한국전력공사가 밀양 송전탑 공사를 재개한 가운데, 23일 오전 민주당 최고위원인 우원식 의원이 밀양시 부북면 평밭마을 농성장을 찾자 한 할머니가 무릎을 꿇고 "송전탑 꼭 저지해 달라"고 호소하자 손을 잡고 일으켜 세우고 있다.
 한국전력공사가 밀양 송전탑 공사를 재개한 가운데, 23일 오전 민주당 최고위원인 우원식 의원이 밀양시 부북면 평밭마을 농성장을 찾자 한 할머니가 무릎을 꿇고 "송전탑 꼭 저지해 달라"고 호소하자 손을 잡고 일으켜 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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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력공사가 밀양 송전탑 공사를 재개한 가운데, 23일 오전 민주당 최고위원인 우원식 의원이 밀양시 부북면 평밭마을 농성장을 찾자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루 전날 팔을 다쳤던 이재란 할머니가 깁스를 하고서 농서에 참석해 있다가 이날 우원식 의원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한국전력공사가 밀양 송전탑 공사를 재개한 가운데, 23일 오전 민주당 최고위원인 우원식 의원이 밀양시 부북면 평밭마을 농성장을 찾자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루 전날 팔을 다쳤던 이재란 할머니가 깁스를 하고서 농서에 참석해 있다가 이날 우원식 의원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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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최고위원인 우원식 국회의원이 현장을 찾았다. 우 의원은 이날 오전 평밭마을 농성장을 찾아 주민들을 위로·격려했다.

우 의원이 나타나자 주민들은 박수를 쳤다. 그러자 한 할머니가 앞으로 다가가더니 무릎을 꿇고 앉으면서 호소했다. 할머니는 "송전탑 못 들어서게 꼭 좀 막아달라"고 애원했다. 우원식 의원은 할머니의 손을 잡고 일으켜 세웠다.

우 의원은 "송전탑 지중화를 위해 '전문가협의회'를 구성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어제 새누리당이 정부와 협의를 갖고 주민 보상책을 내놓았는데, 그 돈 갖고 지중화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송전탑 갈등은 햇수로 치면 9년째인데, 몇 년 동안 기다려 놓고 논의하는 몇 달을 못 기다리겠느냐"고 덧붙였다. 민주당 전병헌 원내대표가 지난 21일 밀양을 방문하기도 했다.


태그:#밀양 송전탑, #한국전력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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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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