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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 발언으로 논란을 빚은 시크릿 멤버 전효성의 트위터 사과문
 '민주화' 발언으로 논란을 빚은 시크릿 멤버 전효성의 트위터 사과문
ⓒ 트위터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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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베스트'(이하 일베)를 중심으로 '5·18 폭동설' 등 극우적 역사인식이 청소년 등 젊은층을 중심으로 온라인상에서 퍼지고 있다. 일선 학교 교사들은 학생들이 왜곡된 역사인식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이게 된 원인 중 하나로 근현대사 교육의 부재를 꼽았다.

청소년의 역사인식에 '빨간불'이 켜지게 된 계기는 한 아이돌 그룹 멤버의 말실수 때문이었다. '시크릿' 멤버인 가수 전효성(24)은 지난 14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저희는 개성을 존중하거든요, 민주화시키지 않아요"라고 말해 물의를 빚었다. 일베에서 '민주화'라는 단어는 '자신과 생각이 다른 소수를 집단으로 억압·폭행하거나 언어폭력을 휘두르는 행위'란 뜻으로 사용된다. 게시글 비추천의 뜻으로도 쓰인다.

전효성은 최근 대학 축제 무대에 올라 "인터넷에서 잘못 쓰이는 것을 제가 잘 거르지 못하고 무분별하게 사용했다. 깊이 반성하고 있다"고 사과했다. 일베의 폭력적 언어가 이미 젊은층을 중심으로 온라인에서 널리 퍼졌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10대 학생 "'네 얼굴 5·18 폭동이야'라고 놀리기도" 

10대 청소년 사이에서도 왜곡된 역사인식이 담인 소위 '일베어'가 퍼져있다. 중3 박아무개(16)양은 "몇몇 아이들이 장난으로 일베에서 나오는 표현을 쓴다"며 "피부가 안 좋은 친구에게는 '네 얼굴 5·18 폭동이야'라고 놀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고2 이아무개(18)군은 "민주화가 진보적 의미를 가졌다는 정도는 알지만 그래도 친구들끼리는 부정적인 의미로 쓴다"고 덧붙였다.

청소년들이 왜곡된 역사관에 노출되고 있는 상황이지만, 일선 교육 현장에서 근현대사 교육은 오히려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 중·고등학교 역사 교과서에서는 현대사를 아주 짧은 분량으로만 다룬다. 최근 일부 극우세력의 '폭동설' 주장으로 논란을 빚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경우, 중학교 '역사 (하)'에서 9줄, 고등학교 '한국사'에서 1~2쪽 사이로 서술됐다.

고3 김아무개(19)군은 "5·18은 요즘에 논란이 돼서 제대로 알게 됐지만 그 외의 근현대사 사건은 사실 잘 모른다"며 "구석기 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역사는 자세하게 배웠는데 근현대사 부분은 교과서 뒷쪽에 있고 분량도 얼마 안 돼 선생님도 제대로 안 가르치고 지나간 것 같다"고 말했다.

개정된 교육과정이 2011년부터 새로 적용되면서 근현대사 교육 비중은 더 줄어들었다. 개정 이전 7차 교육과정 때까지는 '한국 근현대사'가 '국사', '세계사'와 함께 고등학교 역사 선택과목으로 따로 존재했다. 그러나 개정된 교육과정부터는 고등학교 역사 과목이 '한국사', '동아시아사', '세계사'로 조정되면서 근현대사를 심도 있게 배울 기회가 상대적으로 줄어들었다.

국가교육과정 정보센터(NCIC)에 공개된 2009년 교육과정 개정 내용. 애초 '한국사'는 "현대와 가까운 역사를 중심"으로 가르치는 게 교육 목표였지만, 이후 수정된 교육 목표에서는 '현대'라는 단어가 사라졌다.
 국가교육과정 정보센터(NCIC)에 공개된 2009년 교육과정 개정 내용. 애초 '한국사'는 "현대와 가까운 역사를 중심"으로 가르치는 게 교육 목표였지만, 이후 수정된 교육 목표에서는 '현대'라는 단어가 사라졌다.
ⓒ 이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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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지난 2009년 12월 교육과정 개정 계획을 처음 발표할 당시만 해도 교육 당국은 고등학교 '한국사'에서 근현대사를 비중 있게 다루려했다. 국가교육과정 정보센터(NCIC)에 공개된 '한국사' 교육 목표를 보면 이렇게 명시됐다.

"현대와 가까운 과거에 대한 이해를 심화함으로써 현대 세계와 우리 국가와 사회에 대한 통찰력을 확대한다."
"현대사회가 직면한 문제들의 역사적 배경과 상호 관련성을 파악해 그 의미와 가치를 평가할 수 있도록 한다."

그러나 교육과학기술부(현 교육부)는 돌연 2010년 5월 한국사 교육목표를 수정했다. '현대'라는 단어를 아예 지웠고 "우리 역사가 형성, 발전되어 온 과정을 다룬다"는 정도로만 서술했다.

이명박정부 교육과정 개정 후 근현대사 '대폭' 축소

또한 근현대사 부분이 교과서 후반부에 위치해 수업 과정에서 대충 훑거나 생략하게 된다고 일선 학교 교사들은 입을 모았다. 이럴 경우 중요한 근현대사 내용을 학생들이 제대로 익히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현직 중학교 역사 교사인 이성호 전국역사교사모임 회장은 21일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근현대사가 역사 교과서에서 워낙 뒤쪽에 있다 보니 기말고사가 끝난 후 진도가 나가기도 한다"며 "그러면 교사들이 아예 안 가르치기도 한다"고 전했다. 그는 또 "이명박정부 들어 특정과목을 몰아서 수강하는 '집중이수제'가 시행되면서, 한국사 한 권을 한 학기에 끝내버리는 학교까지 생겨나게 됐다"며 "이럴 경우 근현대사의 주요 사건, 인물, 시대 흐름, 배경을 살피며 수업할 여유가 사실상 없다"고 지적했다.

이 회장은 역사 교육 과정에서 근현대사 비중을 늘려 학생들의 합리적 역사 판단력과 공감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아무리 현대사라 해도 5·18 같은 사건은 요즘 아이들이 경험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시간상 까마득한 일"이라며 "5·18이 얼마나 비극적인 사건이었는지 아이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수업하려면 최소 1시간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애초 교육과정 개정 계획대로 중학교 때는 전근대사를 중심으로 배우고 고등학교 때는 근현대사 중심으로 한국사를 배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병수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대변인은 시험 위주의 역사교육 방식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 대변인은 "근현대사를 주요 과목으로 두고 있는 프랑스는 교과서 외에도 각종 서적을 읽게끔 해 스스로 역사인식을 기르도록 교육하는 반면, 한국은 시험출제에 맞춰 역사교육이 이뤄져 아이들이 단편적으로 사건 지식만 익히는 데 그친다"며 "우리나라 학생들이 근현대사를 심도 있게 공부해 현대사회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태그:#일베, #근현대사, #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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