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점심시간에 가보니 절 입구부터 사람들이 북적였습니다.
 점심시간에 가보니 절 입구부터 사람들이 북적였습니다.
ⓒ 변창기

관련사진보기


"창기씨 나랑 절에 점심이나 같이 먹으러 갑시다."

동네 아는 어르신이 전화를 해서 심심하면 절에 같이 가자고 했습니다. 학교 비정규직인 저는 '빨간날' 모두 쉬는데 17일(금)은 석가탄신일이라 출근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또 공짜라면 사족을 못 는 입장인지라 점심 시간에 맞춰 어르신이 오라는 곳으로 갔습니다. 큰 길 도로변에 있는 아담한 절간에 도착하니 입구부터 사람들이 북적이고 있었습니다. 주변 학교 운동장은 절에 온 분들을 위해 개방되어 주차장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언덕으로 조금 올라가자 절 입구가 나왔습니다. 안에는 사람들로 발디딜 틈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어린이부터 나이 많은 어르신까지 있었고 가족도 많이 와서 밥 줄에 줄을 서 있었습니다. 머리 위로는 연등이 줄줄이 매달려 있었으며 가훈 써주는 행사, 연등 만드는 행사, 연등 달 사람 접수, 기왓장 접수를 하고 있었으며 대웅전에는 모조 어린 붓다에게 물 붓기 행사를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부처님 진신사리라 하면서 작은 유리 구슬모형 안에 전시하고도 있었습니다. 우린 구경할 새도 없이 줄을 섰습니다.

200미터는 되어 보이는 밥 줄
 200미터는 되어 보이는 밥 줄
ⓒ 변창기

관련사진보기


"밥 줄인데요."

긴 줄이 있어 물어보니 밥 줄이라 했습니다. 공터 중앙에 탑이 있고 여러 행사장이 있어 밥줄은 구불구불 했습니다. 족히 200미터는 되어 보였습니다. 우리는 맨 뒤에 줄지어 섰습니다.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계속 줄을 따라 들어가니 절간 뒤켠에 마련된 곳에서 밥을 나누어주었습니다. 밥은 몇 가지 나물과 고추장을 넣은 비빔밥이었고 떡을 하나 얹어주었습니다. 멀건 김칫국과 받아 자리에 앉아 먹었습니다. 다 먹고 나니 2시가 지나고 있었습니다. 12시 30분경부터 줄을 서서 밥을 먹었는데 1시간 30분가량 줄을 선 셈입니다.

할아버지와 제가 밥을 다 먹고 빈 그릇을 씻는 곳에 두고 나왔는데 그때도 우리가 서 있던 줄 길이 만큼 길게 늘어서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계속 몰려 들어 왔습니다. 오후 2시부터 공연 행사도 진행된다 했습니다. 오후 7시에도 공연이 잡혀 있으며 그때는 행운권 추첨도 하니 많이 보러 오라고 방송을 했습니다. 우리는 밥만 먹고 그 절을 그냥 빠져 나왔습니다.

지난 부활절 때가 생각 났습니다. 교회는 절과는 달리 건물 안에서 모든 일정이 진행됩니다. 부활절 날 모르는 교회에 가서 점심을 먹으려면 여러가지 부담스러운 과정을 겪어야만 합니다. 교회 집사나 장로 같은 분들이 "어디서 왔느냐"고 묻는다든가 "등록하고 교회 다녀라"고 말을 합니다. 저는 고난받다 십자가에 죽임을 당했다는 그 성인 그리스도가 부활했다는 날이라 하여 기념하려고 간 것인데 교회에 신도분들이 그리 나오시니 참 부담스럽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밥 줄은 절간 뒤에서 끝났습니다.
 밥 줄은 절간 뒤에서 끝났습니다.
ⓒ 변창기

관련사진보기


오늘 가서 점심 공양한 절엔 그 누구도 "어디서 왔느냐"거나 "등록하고 불자가 되라"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승려들을 여러 번 마주쳤으나 그냥 인사나 하고 지나칠 뿐이었습니다. 그 절 신도분들이 절에 온 손님들 점심 공양 대접하느라 바쁘게 일하셨는데 신도분들도 아무도 잡지 않았습니다. 그냥 줄을 섰고 밥과 국을 타서 먹고 나왔을 뿐입니다.

밥 한그릇 얻어 먹으면서도 어느 곳에서는 부담이 되고 어느 곳에서는 부담 없이 얻어 먹고 나올 수 있었습니다. 저는 종교가 그렇게 부담을 주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독교와 불교는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이라는 유일신을 숭배하면서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유일한 아들로 섬기고 있습니다. 반면 석가모니를 믿고 따르는 불교는 신의 존재를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오로지 생명으로 환생했을 때 석가모니가 알려준 불도를 닦아 득도의 경지에 이르라 합니다.

기독교가 탄생한 지가 2000년 정도 되었다고 하고, 불교가 생긴 지는 2500년이 넘었다고 합니다. 처음부터 그랬는지 아니면 세월이 수천 년 흐르면서 그분들의 가르침이 시대 흐름에 맞게 변해버렸는지 몰라도 기복신앙으로 많이 흐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아홉마리 용이 아기 부처님을 목욕시켰다는 설화에 따라 부처님의 정수리에 물을 붓는 '관불의식'을 하는 불자.
 아홉마리 용이 아기 부처님을 목욕시켰다는 설화에 따라 부처님의 정수리에 물을 붓는 '관불의식'을 하는 불자.
ⓒ 변창기

관련사진보기


오늘 절에 갔다가 발견한 건데요, 기독교와 불교가 서로 다른 종교사상을 가지고 지구상에 퍼져 있고 인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슷한 부분도 더러 있는거 같습니다. 대웅전 문 앞에서 행사가 진행되었는데 작은 석가모니상 머리 위에 감로수를 붓는 신앙의식을 하였습니다.

아홉마리 용이 아기 부처님을 목욕시켰다는 설화에 따라 부처님의 정수리에 물을 붓는 의식이라 '관불의식'이라고 한답니다. 기독교 의식에도 그런 의식이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제자의 발을 씻기는 것이나 흐르는 물에 들어가 세례의식을 하는 의식이 있습니다. 둘 다 '물로 하는 의식'이라는 겁니다.

저는 오늘 물에 대한 의식이 비슷하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성자의 깨달음도 둘이지 않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성자들은 생명체가 존재하는 지구별이 하나뿐이듯이 '진리도 하나'임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절간 한모퉁이 물화분 안에는 수련꽃이 예쁘게 피어 있습니다. 우리 모두 수련처럼 예쁜 마음으로 살아갔으면 좋겠네요. 붓다 오신 날, 오늘처럼 넉넉하게요.

절간 물화분에 핀 예쁜 수련 한송이
 절간 물화분에 핀 예쁜 수련 한송이
ⓒ 변창기

관련사진보기




태그:#석탄절, #석가모니, #성탄절, #그리스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인간해방 사회는 불가능한가? 노동해방 사회는 불가능한가? 청소노동자도 노동귀족으로 사는 사회는 불가능한가?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