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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에 치러졌던 말레이시아 하원 총선거는 그 어느 때보다도 열기가 뜨거웠다. 말레이시아 역사상 최대 인원인 1300만 명의 유권자가 투표를 했고 개벽을 염원하는 국민들의 뜻에 따라 야당 세력의 규합인 '국민연합(Pakatan Rakyat; PR)'이 성사되었다.

또한 2006년 11월 23일 커뮤니케 형식으로 선포된 선거법 개혁 운동 '버르시 (Berish)'는 다음 해에 가두시위의 형태로 변모했으며 2011년 '버르시 2.0'을 통해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게 되면서 야당 세력이 힘을 얻는 듯 했다. 그러나 56년 전통을 자랑하는 '국민전선(Barisan Nasional; BN)'은 다수의 의석을 확보했으며 정권 교체는 없었다.

14일 서울 동교동에 위치한 카페에서 성균관대학교 대학원생이자 EBS 라디오 중국어 진행자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말레이시아 국적 청년 소열녕(33, 남)과 이번 말레이시아 총선을 바라보는 시각과 앞으로 진행될 정국에 대해 면담하였다.

정확한 발음과 어휘로 2013년 말레이시아 총선 결과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그는 중국계 말레이시아인으로서 본국에 있었던 과거부터 현재까지 라디오 뉴스 진행자로 일했다.
▲ 소열녕 씨와의 인터뷰 정확한 발음과 어휘로 2013년 말레이시아 총선 결과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그는 중국계 말레이시아인으로서 본국에 있었던 과거부터 현재까지 라디오 뉴스 진행자로 일했다.
ⓒ 신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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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전에 본국에서 말레이시아 라디오 텔레비전 방송국에서 라디오 뉴스 진행자로 일한 이력이 있는데 언론인으로서 바라본 말레이시아의 현실은?
"라디오 텔레비전 말레이시아(Radio Televisyen Malaysia; RTM)는 한국의 KTV와 같이 국영매체이면서 지상파이다. 한 부의 산하기관이라서 장관이 장악하고 있다. 해당 매체의 주된 역할은 정부의 정책 전달이라 편집권의 독립이 보장되기 어렵다.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는 말레이시아의 현실을 감안한다면 RTM채널은 여당인 'BN'의 목소리를 대변한다.

그 일례를 들자면 RTM 측이 이번 총선 기간 동안 야당인 PR한테 하루에 10분씩 텔레비전을 통한 선전 기회를 주겠다고 하였으나 야당 측은 터무니없이 적은 녹화분량과 편집 가능성 –방송국 측은 생방송이 아닌 사전 녹화를 제안- 때문에 거절했다. 대조적으로 여당이 메니페스토 선포식을 하는데 RTM은 이를 2시간 동안 방송했다.

그 외에 티비 쓰리(TV3), 엔티비세븐(NTV7), 에잇티비(8TV) 등의 지상파 방송 채널이 있는데 티비 쓰리의 경우 말레이로 방송되는 프로그램이 대부분이며 엔티비세븐과 에잇티비의 경우 중국계 말레이시아인을 대상으로 하기에 마켓이 다를 뿐 정치적인 성향은 거의 비슷하다. 그러나 중국어로 방송되는 에잇티비의 뉴스는 말레이계를 대변하는 티비 쓰리의 그것보다는 야당에게 조금 더 공평한 기회를 줄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민영방송은 그나마 야당에게 주는 기회가 많지만 그 마저 여당이 지분을 보유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말레이시아에는 인터넷 매체를 제외한 지상파, 위성방송의 대표들이 BN과 공생관계에 있는 재벌가 출신이어서 당연히 검열이 이루어진다. 심지어는 외국방송 조차도 검열의 대상이 되는데 CNN의 경우 편집을 위하여 방송이 3분 정도 지연된다. 말레이시아 내 모든 외국 채널의 송출권을 위성방송사인 애스트로(Astro)가 보유하고 있기에 가능한 이야기다. 애스트로는 이런 독점적인 권한을 이용해서 위성시청료를 임의대로 책정할 수 있다."

- 개인적으로 수행한 직무가 정치적인 영향을 받는 편이었는가?
"본인은 기자가 아닌 아나운서라 주는 원고를 그대로 전달하였고 대부분은 '우리말 나들이'와 같은 교양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정도였다. 가끔은 라디오 드라마에서 성우로 활약했다. 개인적으로도 소속된 당파가 없다."

- 정권 교체, 왜 필요한가?
"지난 세기부터 지속되어 오던 정치 권력의 부패, 언론통제, 불공정한 선거, 거기에 치안 문제와 생태 파괴가 더해지면서 말레이시아에 총체적인 위기가 미래에 올 것은 불 보듯 자명한 이치이다. 이 모든 문제는 정권 교체를 통해서 개선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 말레이시아는 7세기에 스리비자야 왕국, 14세기 말라카 왕국을 통해서 18세기 부기스 족의 왕국을 거쳐서 18세기 영국의 내정간섭을 받았다. 1941~1946년에 이르는 시기에는 일본제국이 말레이시아를 점령했다. 이러한 시점에서 최초로 민주주의를 이룩한 것이 BN인데 바로 이 점이 BN에게 집권여당의 위치를 준 것이 아닌가?
"BN은 여러 당의 연합이다. 영국 식민 시절부터 세계적인 독립운동 기류에 영향을 받아 형성된 민족주의 성향의 정치적 단체들이 존재했다. 공산주의의 영향을 받아 좌파 청년단체와 공산당이 수립되었다. 특히 공산당이 (일부 학자들에 따르면) 장기간 지속될 수 있었던 대영제국의 식민 지배 의지를 유격전을 전개하여 꺾었다는 주장도 있다.

반면 오늘날의 BN을 구성하는 주요 3당인 통일말레이시아국가(UMNO)와 말레이시아중국계연합(MCA), 말레이시아인도계회의(MIC)는 영국과의 협상을 통해 독립에 기여했고 헌법을 제정함으로써 국가의 기틀을 확립했다. UMNO 총재이자 말레이시아의 첫 총리인 퉁쿠 압둘 라만의 초기 재임 기간 동안에는 UMNO의 정책 취지가 대중에게 긍정적으로 수용되었던 것으로 짐작한다."

그러나 라만의 민족화합 정책에 반감을 느낀 압둘 라작을 포함한 젊은 말레이 정치인들이 말레이계를 우대하는 '신경제정책'을 추진하고 '민족'이라는 키워드를 정략적으로 이용하면서 인구의 약 45%를 차지하는 말레이 유권자들에게 지지를 이끌어냈다.

"BN은 대영제국의 '분할통치(Divide & Rule)'의 유산인 '인종정치(Racial politics)'를 통해서 민족을 분화시키고 서로에 대한 경계와 경쟁을 유발시켰다. 이번 말레이시아 총선 다음 날 총리는 야당의 성장을 목도하며 '중국계 쓰나미(Chinese Tsunami)'라는 이름을 붙였다. 말레이시아 내 중국계 인구는 24%로 야당의 유효 정당 득표율인 51%에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정치적 목적이 뚜렷한 수사학적인 표현임을 알 수 있다. BN의 중국계 정당인 MCA도 중국계 유권자들에게 말레이시아 내 중국계 시민들의 대표성을 띤 정당이라고 선전한다.

하나 짚고 넘어갈 것은 현재 발행되고 있는 말레이시아 교과서에는 독립을 위해 헌신했던 초기의 민족 단체들에 대해 상세히 소개되어있지 않고 여당의 방식대로 독립의 공훈을 BN의 주요 3당에게 돌리고 있다. 교과서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 3당이 유혈 사태가 없이 독립을 쟁취한 중용적인 정당이라고 묘사되어있다. 물론 3당이 영국과의 협상을 통해 이룬 성과와 헌법을 개정한 점은 인정하지만 여타 좌익 단체들에 대한 기술이 많이 누락되어 있는 것은 개선되어야만 한다.

인터뷰 후 동교동 일대를 산책하며 9년 동안 생활한 한국사회의 모습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길거리 한국 젊은이들을 보며 "선택할 수 있는 기회에 비해서 다양한 차림을 볼 수 없다"고 말했다.
▲ 소열녕 씨와의 인터뷰 인터뷰 후 동교동 일대를 산책하며 9년 동안 생활한 한국사회의 모습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길거리 한국 젊은이들을 보며 "선택할 수 있는 기회에 비해서 다양한 차림을 볼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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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전선과 국민연합의 치열한 접전은 외국인의 시각으로 보았을 때 민족, 종교갈등의 연장으로 보인다. 국민전선은 전통적으로 말레이계를 우대하는 경제정책인 '신경제정책(NEP)'를 실시하여 국민의 대다수인 말레이인들을 BN 지지자로 만들었다. 현재 성장하고 있는 중국계나 인도계 경제인들이 반발을 살 이유가 된다. 정말 이것이 말레이시아 정계의 쟁점이며 얼마나 차별이 심한가?
"부미푸트라가 극빈층 말레이 사람들을 가난에서 벗어나게 하는 데 있어서 어느 정도 역할은 한다. 아파트 입주에 있어 우선권을 주는 혜택이 그것이다. 말레이시아에는 여러 민족이 공존하고 각 민족이 조금씩은 경제적인 위상이 다를 수도 있다. 하지만 민족에 중점을 둔 정치를 행한다면 다른 국내문제를 해결하는 기회를 놓친다. 한국을 포함한 외부에서 말레이시아 정치를 보는 시각 또한 여당의 '인종정치'에 쏠린 경우가 많다. 하지만 부정부패와 치안 문제, 불공정 선거, 경제침체는 민족을 가리지 않는다. BN과 가까운 경제인사에는 말레이계만 있는 것이 아니다. 민족에 관계없이 줄만 잘 서면 성공가도를 달리는 것이다."

- 지난 번 국외에서 있었던 선거법 개혁 시위와 백악관 서한 보내기 운동을 보면서 말레이시아 재야 세력들이 정치적 해법을 국제사회와 미국에서 찾으려는 듯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말레이시아라는 컨텍스트에서 정치 개혁을 하기 위해서는 그들(외부세력)의 개입 보다는 우리(말레이시아인) 스스로가 하는 게 낫지 않은가? 미국 정부의 개입을 통해서 한 국가의 정치적 갈등이 해소된 적이 진정으로 있는가?"

- 비슷한 정치적 염원을 가지고 있는 해외 인사들과 접촉하여 운동의 전략과 해법에 대해서 논의하는 것도 정권 교체에 도움이 되지는 않을는지?
"전 말레이시아 총리를 지냈던 안와르 이브라힘 RP 대표 같은 경우는 이미 해외 자유파 인사들과 접촉을 하고 있고 좀 더 사회주의 성향을 가진 민주행동당(DAP)에서도 여타 민주국가에서 선거가 진행되는 경우 사절단을 파견하여 교류를 지속하고 있다. 그래도 스스로 해결할 내부문제는 존재하며 외부와의 협력이 필요한 부분에 한해서는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다.

일부 야당 세력이 선거 결과에 대해서 백악관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냈지만 미국이 개입할 수 있는 부분은 제한적이며 오바마 대통령은 이미 BN 내각 수립을 축하하는 메시지를 보내온 상황이다. 또한 군사 탄압이나 인도주의적 위기가 없는 상황에서 국제사회가 합법적으로 선출된 정부와 무슨 담판을 짓겠는가? 말레이시아 정권 교체의 난점이 여기에 있다."

- 현재의 정치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해법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보는가?
"이번 선거를 둘러싼 상황을 두고 말하자면 현재 야당 측이 투표 결과와 관련하여 20~30개의 상소를 준비하고 있다.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만약에 원고가 모든 케이스에서 승소한다면 재보선을 통해서 문제는 다 해결된다. 그러나 3권 분립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좀 더 현실적인 시각은 다음 번을 기약하는 것이다. 대법원장의 경우 총리의 의견을 반영하여 국왕이 임명하며 의원내각제에서는 다수당이 행정부를 장악하게 된다."

- 그렇다면 내각제를 대통령제로 전환한다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가?
"그러한 논의 자체가 말레이시아 내에서 전무하다. 우선 대통령제가 성립되려면 왕권 전복이나 왕의 국가원수 권한을 부정해야만 하는데 조선 시대처럼 왕을 섬기는 국민들이 다수인 국가에서는 실현되기 힘들다. 입헌군주국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이해하고 다른 해결책을 찾아야만 한다."

- 왕실과 BN의 관계는 어떤가?
"대체로 BN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편이지만 천편일률적으로 그렇다고 대답할 수는 없다. 대영제국은 말레이시아의 9개 왕국을 주로 전환하였고 각 주마다 왕실이 존재한다. 연방제 국가인 말레이시아의 국가 원수는 바로 9명의 왕이 5년을 주기로 돌아가며 지낸다. 또한 입헌군주국에서 왕은 상징적인 역할을 수행하기에 정계에 미치는 영향력은 사실 크지 않다. 하지만 말레이시아 왕들이 결성한 왕실협의회는 이슬람과 말레이계의 이익을 대변하는 기구로서 기능하고 있다."

- 일부에서는 야당 지지세력이 이전보다 월등히 늘었음에도 불구하고 총의석 222석 가운데 133석을 차지했다. 따라서 부정선거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데 그 근거로 독특한 선거구 구분 방식(도시 지역구와 농촌 지역구) 그리고 선거 당일 개표소 정전사태 등이 있다. 어느 정도 믿을 만한 근거인가?
"말레이시아 지도를 놓고 보면 서안 지역은 도시화가 다른 곳에 비해 많이 진행된 발달된 곳으로 말레이 중산층과 중국계가 거주하고 있으며 이번 선거에서 야당 세력이 큰 성과를 낸 곳이기도 하다. 반면 동부는 개발이 덜 진행됐으며 야당이 승전한 곳이기도 하다. 예외적으로 동부 해안에 위치한 트렝가누(Terengganu) 주에서는 PR의 주축인 범말레이시아이슬람당(PAS)이 주 의석 2개 차이로 BN에 패배했다. 클란탄(Kelantan) 주는 근 20년간 PAS당이 집권하고 있는 곳이다. 따라서 도시 지역과 농촌 지역을 구분하여 정치적인 해석을 달리하는 것은 사실 큰 의미가 없다.

야당 지지자들은 적은 표차로 BN이 총선에서 다수 의석을 확보한 것에 대해 선거 결과 의혹을 제기하고 나섰다. 그러나 서안 선거구의 경우처럼 많은 표차 -예를 들자면 5000~6000표 이상-를 낸다면 수치 조작은 불가능해진다. 민주행동당(DAP) 출신의 임관영 총서기는 페낭 주지사로 선출되면서 정부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기업들에게 입찰 과정을 공개했다. 이에 따라 BN 집권 시절 주 정부와 호의적인 관계를 맺고 있었던 '크로니(친정부 파벌)'가 반감을 갖고 선거기간 동안 여당을 지지하는 후원회를 결성하여 유권자들에게 돈을 지급하였다. 그러나 7744표 차로 야당 출신 임관영이 페낭 주 의석을 지켜냈다. 이번 선거에서 야당이 패배한 지역을 살펴보면 표차가 300표 안팎인 경우도 있어 조작이 없었다 하더라도 야당의 위치가 위험하다.

선거 당일 투표소 정전사태의 경우 벤통(Bentong) 지역의 사례가 매체에서 가장 크게 알려졌는데 후에 야당 지도자가 그러한 사실은 없었다고 발표했다. 일부 야당 지지자들이 선동을 목적으로 허위사실을 퍼뜨렸을 가능성도 있다. 그 사례로 마하디르 전 총리의 '유럽 망명 사진'이 있는데 당시 인터넷 상에 떠돌던 사진은 해외 순방길에 오르는 총리의 모습이었다.

국외로 출국한 말레이시아 국적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이 귀국하여 합법적인 경로로 주민카드(IC)를 소지하고 있다면 투표를 하는 행위 자체는 문제가 될 것이 없다. 선거위원회는 뇌물공여를 처벌할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선거 의혹이 불식된 것은 아니다. 한국의 세종시와 같은 행정도시인 푸트라자야(Putrajaya)의 유권자 수는 전국에서 가장 낮은 수치인 10000여명 정도인데 그 중에 국회의원을 한 명 선출하는 것과 11만 명의 유권자를 보유한 도시에서 의원이 한 명 선출되는 것은 대표성에 문제가 있지 않은가?

페낭(Penang) 의회에서는 여당 의원이 10개 의석을 차지하고 있으며 총선 승리시 유권자들에게 돈을 지급하겠다는 약속을 공공연하게 했다. 여당지지자 후원회의 명의로 시민들에게 무료로 급식을 하며 이들에게는 여당 후원회 유니폼을 입게 한다. 이러한 행위가 법적으로는 정당하더라도 도의적으로는 맞지 않는다. 후에 해당 지역 여당 총서기는 국민들의 지탄을 한 몸에 받아야 했으며 오히려 공개석상에서 울상으로 후원회를 비판했다고 한다.

또한 '잉크 사건'은 많은 부분이 의심스럽다. 말레이시아에서는 기표를 마친 유권자의 집게손가락에 원칙적으로 3일 동안 지워지지 않는 잉크로 표시를 한다. 이번 총선 때 일반인에 앞서 투표에 참여한 군인들이 투표 후 손을 세정하자 잉크가 지워졌다며 경찰과 선거위원회에 신고를 했다. 그러나 군 상부에서는 이들을 경질했으며 선거위원회 관계자는 '잉크를 흔들어 사용하는 것을 깜빡했다'고 해명했다. 또 투표소에 도착하기 전에 누군가 와서 자신의 이름으로 투표를 하여 표를 행사하지 못한 경우나 유권자에 해당하지 않는 사람(사망자나 미성년자)이 선거인 명단에 실린 경우도 매체를 통해 보도되었다.

진상을 밝히기 위해서 야당 지도자들이 주요 의혹에 대한 증거를 수집하여 법원에 제출할 예정이다. 판결만이 선거에 부정이 있었는지, 혹은 야당 지지자들이 만들어낸 루머에 불과한지 시비를 가릴 수 있다."

홍대에 위치한 한 커피전문점에 앉아서 1시간 30분 가량 진행된 인터뷰를 통해 2013년 말레이시아 총선은 단순히 정치적 문제에 국한된 것이 아님을 확인했다.
▲ 소열녕 씨와의 인터뷰 홍대에 위치한 한 커피전문점에 앉아서 1시간 30분 가량 진행된 인터뷰를 통해 2013년 말레이시아 총선은 단순히 정치적 문제에 국한된 것이 아님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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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으로 야당 세력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정권 교체를 위해서는 더 많은 시민을 각성시켜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야당 정치인들이 민주주의의 뿌리인 지방 서민들을 직접 찾아가는 활동을 향후 5년간 전개해야만 한다. 이번 선거 기간 동안 야당이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주류 매체가 아닌 SNS를 통한 정치운동 덕분이었지만 지방에는 인터넷의 수혜를 보지 못하고 텔레비전을 통해 소식을 접하는 가구가 많기에 지상파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야당 지도부는 이미 전략상의 문제점과 실력 부족을 인지하고 있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행동을 하는 것이 관건이다.

또한 전통적으로 야당이 집권하고 있는 3개 주에 대한 세력을 유지하고 더 나아가 나머지 주들을 설득하는 방법도 강구해야만 한다. 이번 총선에서 야당이 패배했다고 보는 시각이 만연하고 있지만 적어도 여당이 총 의석의 3분의 2를 장악하여 개헌을 가능케 하는 것을 막았다는 점은 다행으로 생각한다."

- 2011년 광화문에서도 말레이시아 선거법 개혁을 요구하는 시위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번 총선 결과는 기존의 선거법 덕이라고 생각하는가?
"지난번 '버르시 2.0(말레이시아 선거법 시위, '깨끗하다'는 말레이어 단어)'의 요구사항은 8개로 선거인 명단 재정립, 지워지지 않는 잉크 사용, 부정부패 척결, 선거 유세기간 연장, 공평한 매체 접촉 등이 있었는데 잉크 사용을 제외한 선거법 개정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 총선에서도 정치적으로 큰 변동이 없었다. 따라서 재야세력은 이미 국내외에서 '버르시 4.0'을 기획하고 있다."

- 정치 상황이 야당의 염원대로 흘러갈 가능성은 어느 정도 있는가?
"생각해보라. 56년 동안 정권교체는 단 한번도 없었다. 예를 들어서 한 사람과 3년 동안 사귀었다가 실연을 당하면 힐링을 하는 데 3년의 시간이 들 것이다. 56년 동안 이변이 없었으니 이걸 무너뜨리려면 적어도 5년에서 10년은 필요하지 않겠나? 2008년 총선에서 야당이 의외의 성과를 거두었을 때 국민들은 이 현상을 '쓰나미'로 표현했다. 그 이후로 정권교체의 희망을 보았고 노력을 해왔지만 이번에는 이길 수 있을 것만 같다는 의식이 팽배했다. 하지만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에 사람들은 크게 실망한 것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크게 실망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야당 세력은 정권교체를 위한 준비를 단 5년 동안 진행해왔다. 그래도 의석 수는 이전에 비해서 늘었다. 그 이전에는 정권교체라는 꿈을 꾸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그러나 2008년을 기점으로 이제는 꿈 꿀 수 있다.

말레이시아 사람들은 그 동안 '민족'간의 갈등으로 인해 '민주'와 '자유'라는 가치를 잊고 살아오지 않았는가? 불필요한 논쟁에서 국민 모두가 너무 많은 힘을 소모하지 않았나? 민족에서 벗어나 '계층'을 생각할 때 말레이시아는 하나의 국가가 될 수 있다."


태그:#말레이시아, #총선, #부정선거, #의혹, #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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