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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쌍둥이. 왼쪽부터 '진', '선', '미'. 사진을 찍는 짧은 시간에도 서로 번갈아가며 울어대 정신이 없다.
 세 쌍둥이. 왼쪽부터 '진', '선', '미'. 사진을 찍는 짧은 시간에도 서로 번갈아가며 울어대 정신이 없다.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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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만'에 강원도 평창군 한 산골마을에 아기 울음소리가 울려퍼졌다. 그것도 하나가 아닌, 세 쌍둥이가 태어났다. 경사도 이런 경사가 없다. 조용했던 마을이 갑자기 시끌시끌해졌다.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마을에 이런 소란이 일어났던 게 얼마만인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15년 만'이라는 것도 사실, 정확한 기억은 아니다. 하지만, 그 정도로 오래 된 일이라는 것만은 확실하다.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오래 된 일인지도 모른다.

평창군 봉황마을(대화면 개수리)에 세 쌍둥이가 태어난 것은 지난 1월 19일이다. 마을 사람들은 그날 세 '천사'가 태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마치 내 일처럼 기뻐했다. 마을에서 어린 아이 울음소리가 사라진 이후로, 마을에 다시 아기가 태어난다는 것은 꿈처럼 요원한 일이었다. 더군다나 세 쌍둥이가 태어날 거라고는 더 더욱 생각하기 힘든 일이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의 마을에 세 쌍둥이가 태어난 것에 마냥 신기해했다. 아이들이 마을에 큰 복이라도 불러올 것 같은 기분에 들떠 있었다. 아이들이 태어난 집에 찾아가, 아직 열꽃도 다 가라앉지 않은 아이들의 얼굴을 들여다보는 일이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런 기쁨도 잠시, 마을 사람들은 요즘 깊은 근심에 빠졌다.

마을 주민들, 세 쌍둥이 출산 소식 듣고 기쁨도 잠시

세 쌍둥이 아버지, 김영기씨.
 세 쌍둥이 아버지, 김영기씨.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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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주민들은 마을에서 농사를 지으며 어렵게 살고 있는 아이 부모들이 하나도 아닌 세 쌍둥이를 얼마나 잘 기를 수 있을지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요즘처럼 아이 기르기 힘든 때도 없다. 낳는 것도 힘들지만, 기르는 것은 더 더욱 힘들다. 그런 마당에 하나도 아닌 셋을 한꺼번에 키워야 하다니.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그래도 아이들 기르는 일이야 아이 부모들이 책임지고 알아서 할 일 아닌가? 세상 여느 부모들과 마찬가지다. 마을 사람들이 간여할 일도 아니고, 걱정은 자칫 도를 넘은 일이 될 수도 있다. 아무리 한 마을에서 일어난 일이라고는 하지만, 마을 사람들이 너무 지나친 걱정을 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 사연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나면, 그게 그렇게 단순한 일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세 쌍둥이가 태어난 집은 이 마을의 유일한 다문화가정이다. 아버지 김영기씨는 "평범하고 순수한" 농촌 청년이다. 이 마을 토박이로 거의 평생을 농사를 지으며 살아왔다. 김씨는 노모를 모시며, 여동생과 함께 살고 있다.

그런데 노모는 앞을 보지 못하고, 여동생은 정신 지체 장애를 가졌다. 주민들 말에 따르면, 김영기씨 집은 이 마을에서도 가장 형편이 어려운 집에 속한다. 이 마을에서 유일하게 "연탄을 때는" 집이다. 성실하고 우직한 성격을 밑천 삼아 열심히 농사를 짓고 있지만, 가난한 살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세 쌍둥이의 엄마인 누엔씨는 22살에 베트남에서 시집 왔다. 낯설고 물선 땅으로 시집 와 "모든 게 힘든" 생활을 3년째 하고 있다. 한국 생활이 아직도 익숙하지 않은 부분이 많이 남아 있다. 그런데도 누엔씨는 어두운 표정 하나 없이 활달한 모습이다. 장애가 있는 시누이를 보살필 정도로 착하고 고운 심성을 지녔다. 마을 주민들과도 잘 어울려 지낸다.

세 쌍둥이가 태어나는 걸 보고 당황한 아이들 아버지

세 쌍둥이 어머니, 누엔씨.
 세 쌍둥이 어머니, 누엔씨.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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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태어난 건 부부가 연을 맺은 지 3년 만이다. 부부는 처음에는 그냥 쌍둥이를 임신한 줄 알았다. 그런데 아이들을 출산하던 날, 여자 아이 셋이 태어났다. 김영기씨는 그때 아이들이 둘이 아니고 셋인 것에 "당황했다"고 말했다. 둘도 키우기 힘들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에,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세 쌍둥이가 태어났던 것이다.

아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부모의 애를 태웠다. 부모는 물론이고 마을 사람들까지 애를 태웠다. 쌍둥이들은 8개월이 될 무렵에 미숙아로 태어나 인큐베이터에 들어갔다. 그때 아이들 몸무게가 셋을 다 합쳐 겨우 3.9kg에 불과했다고 한다. 부모들은 그 사이 아이들이 어떻게 잘못 되는 건 아닌지 노심초사했다. 아이들이 집으로 올 수 있었던 건 그로부터 두 달이 더 지나서다.

아이들이 인큐베이터에 들어가는 바람에 마을 주민들은 마을 입구에 '세 쌍둥이 출산 축하' 현수막을 걸려던 계획을 포기했다. 마을 주민들이 세 쌍둥이를 도와야겠다고 생각한 건 이때부터다. 마을 사람들은 아이들이 인큐베이터에 있는 동안, 부부가 앞 못 보는 노모를 모시고 살면서 세 쌍둥이까지 키워야 하는 일이 보통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후로 마을 사람들은 지역 내에서 이들 부부에게 도움을 줄 만한 기관과 사람들을 찾아 나섰다. 그 결과, 농협은행 주부대학과 농가주부모임, 대화농협 직원상조회와 고향을 사랑하는 주부모임, 대화면 우정회 등에서 성금을 보내왔다. 여기에 마을 사람들도 십시일반으로 모은 성금을 보탰다.

대관령 한우복지재단에서는 아이들에게 백일잔치를 열어주었다. 그리고 평창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도 옷가지를 보내주는 등의 도움을 주었다. 지역에서는 나름 꽤 많은 관심도 보여주고 지원도 보내주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애를 썼다. 하지만 그렇게 하고 나서도 세 쌍둥이 부부에겐 큰 도움을 주지 못했다. 주민들도 세 쌍둥이를 돕고 싶은 자신들의 마음을 다 채우지 못했다.

마을 앞 정자.
 마을 앞 정자.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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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쌍둥이가 건강하게 잘 자랄 수 있게 하려면...

지역에서 얻을 수 있는 도움은 일시적이다. 실제 백일이 지난 뒤로는 세 쌍둥이에 쏟아지던 관심도 많이 사라졌다. 아이 부모들은 당장 아이들 육아비 걱정을 하고 있다. 세 쌍둥이가 밤새 번갈아 울어대며 잠 못 들게 하는 건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아이들을 먹이고 입히고 병치레를 하는 데 드는 비용이 생각했던 것 이상이다.

이들 부부는 지금 아이들이 태어나 기쁜 것만큼, 그와 똑같이 앞으로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야 할지 걱정하고 있다. 마을 사람들 역시 안타까운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마을 사람들과 지역에서 도움을 주는 데도 한계가 있다. 이럴 때 나라에서 아이들을 키우는 데 부족함이 없는 혜택을 주면 좋은데 그게 또 "빛 좋은 개살구"다.

아이들을 많이 낳아야 한다면서 갖가지 출산장려정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그게 다 어느 나라 얘긴지" 이곳 봉황마을에 태어난 세 쌍둥이에겐 별다른 혜택이 없다. 마을 주민들은 아직도 어떻게 하면 이 부부를 도울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하지만 별 달리 뾰족한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요 며칠 아이들이 배탈을 앓았다. 하지만 부부는 그 아이들을 데리고 병원에 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병원에 가려면 원주까지 가야 하는데, 병원이 가까운 데 있는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자니 염치가 없었다는 얘기다. 병원비도 그에게는 적잖은 부담이었다. 그 말을 들은 마을 주민은 "병원에 가는 게 더 중요하지…"라며 혀를 찼다.

이런 부부를 바라보는 마을 주민들의 마음이 편할 리 없다. 그동안 세 쌍둥이를 돕기 위해 그 누구보다 열심히 뛰어다닌 마을 주민 마영완씨는 "봉황마을에서 15년 만에 세 쌍둥이가 태어났다. 그런데 부모가 형편이 어려워 아이들 키우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마씨는 "주변에서 도우려고 하지만 만족할 수가 없다"며 "세 쌍둥이 부부가 아이들을 잘 키울 수 있게 도와 달라"고 호소했다.

마을 이장 최종진씨는 정부의 출산장려정책을 아쉬워했다. 최 이장은 "우리나라에 출산장려정책도 있고, 어디 다른 지자체에서는 얘 하나 낳으면 천만 원을 주니 이런 이야기도 있는데 그거는 그냥 이야기일 뿐이고 (세 쌍둥이가 태어나서) 막상 지원을 받으려고 하니, 실제적인 혜택은 큰 게 없는 것 같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지금 세 쌍둥이에게는 "물질적인 도움이 가장 절실하다"고 말했다.

마을을 가로지르는 평창강, 그리고 바위 위에 뿌리를 내린 소나무가 멋드러진 봉황대.
 마을을 가로지르는 평창강, 그리고 바위 위에 뿌리를 내린 소나무가 멋드러진 봉황대.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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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의 말처럼 세 쌍둥이가 별 탈 없이 자라는 데는 더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관심이 필요하다. 마을 주민들은 자신들의 호소가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되기를 원했다. 그런 것과 상관없이, 세 쌍둥이 아버지 김영기씨의 바람은 그가 일구는 농토만큼이나 소박했다. 그는 "이제는 아이를 더 낳을 생각이 없고 세 쌍둥이만 잘 키우겠다"며 "아이들이 그저 아프지 않고 잘 자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봉황마을은 풍경이 매우 아름다운 마을이다. 마을 한가운데로 평창강이 흐르고, 강가로는 바위 절벽이 병풍처럼 둘러서 있는 풍경이 절경이다. '금당계곡'으로 유명하다. 마을 앞 강가에 거대한 바위인 '봉황대'가 있다. 마을 이름은 이 봉황대에서 연유한다. 이 마을 사람들의 아름다운 품성은 이런 풍경에서 연유한 게 틀림없다. 마을 주민들은 세 쌍둥이가 첫돌을 맞는 날에 마을 잔치를 벌일 예정이다.


태그:#봉황마을, #세 쌍둥이, #평창, #개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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