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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어버이날만 되면 어김없이 책 한 권을 펼쳐 본다. 소설도, 수필도 아닌 바로 30년 전 우리 엄마가 쓴 '육아일기'다.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은 지금 엄마의 육아일기를 보면 참 감회가 새롭다.

이 육아일기 속에는 나에 대한 엄마의 사랑이, 내가 커가는 모습이, 나에 대한 가족들의 기대와 바람들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30년 전, 엄마가 써 내려간 육아일기에는 또 다른 엄마가 살아있다.

엄마의 육아일기는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장장 8년간 계속되었다.
 엄마의 육아일기는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장장 8년간 계속되었다.
ⓒ 김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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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낳은 날이란다"로 시작하는 엄마의 육아일기

나는 태어날 때 엄마를 많이 고생시켰다. 머리와 발의 위치가 바뀐 '역아'였던 탓에, 엄마는 서른 넷 적지 않은 나이에 제왕절개 수술로 나를 낳았다. 당시 내 몸무게는 고작 2.6kg밖에 되지 않아 자칫하면 인큐베이터 신세를 질 뻔했다. 첫 아들을 힘들게 낳고 기진맥진한 가운데서도 엄마는 그날 바로 펜을 들어 육아일기를 써 내려갔다. 그날의 기록은 이렇다.

"너를 제왕절개 해서 낳은 후, 신기롭게도 빛나는 눈으로 너는 나를 보았단다. 의사선생님께서도 너를 보고 '참 똘똘하게도 생겼군' 하더구나. 너는 무척 작았단다. 너를 낳아 놓으니 2.6kg이야. 다른 애들보다 800g 정도 적은 몸무게였었단다. 그래도 다른 애들보다 내 눈엔 네가 제일 커보였단다."(1985년 11월 2일)

다행히 나는 인큐베이터에 들어가는 것은 면했는데, 그로부터 28년 뒤 태어난 엄마의 손자 즉, 내 아들은 태어나자마자 인큐베이터 신세를 졌다. 태어나고 3시간 만에 호흡이 가빠져서 산소 마스크까지 쓰고 신생아 중환자실에 입원해 나를 걱정시켰다. 자식을 낳고 고생을 해보니 육아일기 속 엄마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재밌게도 일주일 뒤 퇴원한 손자를 품에 안은 엄마의 첫 말은 육아일기에 적었던 말과 같은 "다른 애들보다 훨씬 커보인다"였다.

나는 남들보다 작게 태어났지만 왕성한 식성 덕에 금방 평균 몸무게를 회복해 엄마를 기쁘게 했다. 하지만 엄마가 그토록 바라던 모유는 먹지 않았다. 제왕절개 때문에 혈관주사를 맞고 있던 엄마의 초유가 어린 내 입맛에는 맞지 않았나 보다. 그 이후에도 나는 엄마의 모유를 '줄기차게' 거부했고, 결국 엄마는 내게 모유 대신 분유를 먹였다. 이에 대한 서운함을 엄마는 이렇게 기록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나는 그때까지 혈관 주사를 계속 맞고 있었기 때문에 젖이 너무 맛이 없었나보다. 그 삼일 밖에 안된 네가 어찌 그 맛을 잘 구별하는지 죽어도 두 번 다시 젖을 빨려고 들지는 않는구나. 제발 엄마 젖을 빨렴. 아파 죽겠다. 모유가 좋은거래. 우유는 입에만 좋지."(1985년 11월 4일).

엄마의 육아일기는 때론 나의 육아 지침서가 된다.
 엄마의 육아일기는 때론 나의 육아 지침서가 된다.
ⓒ 김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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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에도 엄마는 내가 커가는 모습 하나하나를 정성스럽게 기록했다. 시부모에 시누이까지 모시고 살면서 육아일기를 쓰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 내게 새로운 변화가 있으면 빠짐없이 육아일기에 적었다. 혀를 내밀며 침을 뱉어서 온 가족이 웃었다는 내용, 우유를 잘 안 먹어 딸기를 주었더니 이도 없으면서 곧잘 먹었다는 내용, 처음으로 아파서 병원에 다녀왔다는 내용 등 사소할 수 있는 일상까지... 엄마의 육아일기를 보면 내가 언제 어떻게 컸는지 한 눈에 보일 정도다.

나도 아들을 키우는 입장이 되어보니 순간순간 '이 녀석이 잘 크고 있나', 걱정이 될 때가 있다. 그 때면 항상 먼저 들춰보는 것이 바로 엄마의 육아일기다. 아들 녀석이 백일 지나서 한 번 뒤집고 나서는 잘 뒤집지 않기에 무슨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싶었는데... 육아일기 속 나도 만만치 않게 뒤집고 되집는 것이 늦은 모양이었다.

"네가 태어난 지도 어언 7개월 15일이 되었구나. 뒤치고 기어다닐 때도 되었는데 이상하게 너는 뒤치려고 안 그런다. 어쩌다 뒤치면 아주 귀찮아 한다. 다시 누어 발버둥치고 투레질 하면서 아주 즐거워 한다."(1986년 6월 16일)

이 대목을 읽고 나서야 아들에 대한 막연한 걱정도 다소 누그러졌다. 부전자전이구나 싶어서.

엄마의 육아일기 속에 담긴 '역사'

엄마는 내가 그린 그림들도 허투루 버리지 않고 모두 육아일기에 붙여 기록했다.
 엄마는 내가 그린 그림들도 허투루 버리지 않고 모두 육아일기에 붙여 기록했다.
ⓒ 김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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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시작된 엄마의 육아일기는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해 첫 시험을 치른 8년간 계속 됐다. 중간 중간 누락된 시기가 있지만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엄마는 육아일기책을 꺼내 '아들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았다. 그 중에는 소소하게 우스운 일도 있고, 여러 가지로 관심을 끌었던 '핫'한 국내외 뉴스도 있다.

"2시 쯤 되어 우유를 먹었는데 한참이 되도 꽤 조용하더구나. 엄마는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었거든. 그래서 잠이 들었나 하고 안방을 살그머니 가서 들여다 보았더니 글쎄 원 네가 어떡하고 있었는지 아니? 글쎄 똥을 싸서 방에 뭉개놓고 너는 앉아서 그것을 주물럭 거리며 놀고 있더구나. 하도 기가 막혀 '아유'하고 마루에 서 있었더니 그 소리에 놀랐는지 너는 막 울고..."(1986년 8월 17일)

앉고 일어서기 시작한 내가 기저귀를 풀어 똥을 가지고 논 모양인데, 엄마는 가감없이 이를 일기에 적었다. 기억이 나지 않는 까마득한 옛날 일이지만 이 글을 읽다보면 천진한 내 얼굴과 황당해 하는 엄마의 표정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엊저녁 냉장고에서 멸치액젓을 꺼내 바닥에 뿌려 놓고 물장난 치듯 가지고 놀던 아들을 바라보는 와이프 표정과 별반 다르지 않았으리라.

엄마는 육아일기에 국내외 뉴스를 남기기도 했다.
 엄마는 육아일기에 국내외 뉴스를 남기기도 했다.
ⓒ 김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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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일기에는 나도 모르는 내 첫사랑 이야기가 적혀 있다. 내 첫사랑은 여섯 살 때 송정윤이란 여자 아이였나보다. 유치원에서 돌아와 여자 친구 이야기를 잔뜩 늘어놓는 아들을 보며 엄마는 어떤 감정이었을까. 서운했을까, 귀여웠을까 아니면 반반이었을까.

"정윤이가 그렇게 좋아?/응 결혼할 거야. 정윤이보다 더 예쁜애는 없어./큰 고모가 그러시는데 너보다 훨씬 안 예쁘다고 그러시던데?/아니야. 정말 예뻐./하며 울먹울먹. 네가 이 글을 볼 때 쯤 너도 어떤 여학생과 사랑을 하고 있을지도. 너의 첫사랑은 6살 봄이였다고 전하면서 - 사랑에 빠진 아들아."(1990년 4월 24일)

엄마는 중간 중간 들려오는 뉴스를 적는데도 게으르지 않았다. 내가 커서 알았으면 하는 국내외 소식들을 육아일기에 기록했고, 때로는 인상 깊은 신문기사를 오려 붙이기도 했다. "라면만 먹고 뛰었다"는 1986년 아시안게임 임춘애 신화에 감동 받았던 엄마는 임춘애에 대한 이야기를 한 장에 걸쳐 빼곡하게 적어 놨다. "우리 아들은 임춘애보다 더 큰일을 해내는 멋진 젊은이로 자라렴"이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바람도 함께 적으면서 말이다.

"오늘은 아시아 경기 폐막식 날이다. 우리가 중공에 이어 2위야. 금메달이 93개다. 요번 금메달 수상자 중 아주 아름다운 미담이 있다. 육상선수 '임춘애'라는 학생 이야기야. (중략) 우유를 마음껏 먹어보는 게 소원이라는 소녀. 밥보다 라면을 더 많이 먹었다는 소녀. 친구와 선생님이 도시락을 싸다주어 먹었다는 소녀가 아주 장한 일을 해내어 청와대까지 가고, 영부인 손에 쥐어 번쩍 들렸다. 참 장하다. 그렇지?"(1986년 10월 5일)

엄마는 교육방침이 적힌 신문기사를 스크랩 해 육아일기에 붙여 놓기도 했다.
 엄마는 교육방침이 적힌 신문기사를 스크랩 해 육아일기에 붙여 놓기도 했다.
ⓒ 김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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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점차 커가면서 덩달아 교육에 관심이 많아진 엄마는 신문에 난 교육방침에 감동을 받은 듯, 이를 육아일기에 크게 붙여 놓기도 했다. "숙제 못해도 거들지 말라"는 제목의 이 신문기사에는 바른버릇 기르기의 방법으로 "▲형제의 싸움은 말리지 마라 ▲아이들과 경기를 하면 이겨라 ▲ 부모자녀 식사 평등하게 하지 말라 ▲ 우산 들고 마중나가지 마라" 등 요즘 부모들이 읽으면 다소 이상하게 생각할 만한 내용이 잔뜩 적혀있다. 하지만 당시 엄마와 아버지의 생각은 다른 모양이다.

"아빠께서 오늘 신문을 보시더니 좋은 기사가 났다고 하시면서 오려서 육아일기에 붙여 두라고 하시더라. 그러시면서 엄마도 이행하도록 하라고. 무슨 내용인지 자세히 읽어보니 어렵지도 않으면서도 정에 끌리기 쉬운 그런 내용이더구나. 사소한 것을 지침서로 발표한 것은 어떻게 생각하면 쉽게 지나쳐 버릴 수 있는 것을 일깨워 주는 것 같다."(1987년 3월 8일)

놀라운 것은 이 신문기사 대로 우리 엄마는 비가 와도 단 한 번도 우산을 들고 마중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덕분에 어렸을 적 나는 비 맞는 것이 일상이었고, 심지어 비 맞는 것을 누구보다 즐기는 아이였다. 나도 비가 올 때 우리 아들을 마중 나가지 않을 수 있을까. 엄마랑 달리 나는 아마 그렇게는 못할 것 같다.

30년 전 엄마의 육아일기는 세월이 흐를수록 점점 더 특별하게 다가온다.
 30년 전 엄마의 육아일기는 세월이 흐를수록 점점 더 특별하게 다가온다.
ⓒ 김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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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육아일기, 그곳에 사랑이 있더라

언젠가 엄마에게 어떻게 육아일기를 이렇게 열심히 썼냐고 넌지시 물어보니 "너에게 편지 쓰는 마음으로 썼다"고 했다. 한 마디로 이 육아일기는 나에 대한 엄마의 일방적 러브레터인 셈이다. 정성스런 글씨로 한 글자 한 글자 씩 쓰여 있는 러브레터를 수백장 가지고 있는 나는 참 복 받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도 그렇고, 와이프도 그렇고 일하랴 애 키우랴 바쁘다는 핑계로 엄마 같은 육아일기는 꿈도 못 꾸고 있다. 곧 태어날 둘째 또한 육아일기를 받아 보기는 힘들 것이다. 그래서 30년 전 엄마의 육아일기는 더 대단해 보인다. 아울러 내 아이들에게 정성이 담긴 육아일기를 남겨주지 못한다는 게 조금 미안해지기도 한다. 나는 아무리 열심히 해도 우리 엄마처럼 부지런한 사람은 못 되는 모양이다.

이처럼 엄마의 육아일기는 때로는 나를 흐뭇하게 미소 짓게 만들기도 하고, 때로는 내 육아 지침서가 되기도 하며, 때로는 부모님의 사랑을 느끼게도 만드는 마술 같은 책이다. 30년 전 엄마의 육아일기가 세월이 지날수록 더 특별해지는 건 바로 이 때문이 아닐까. 육아일기 속 어버이날에 대한 엄마의 당부를 마지막으로 이 글을 끝마친다.

"오늘은 어버이날이다. 네가 자랐으면 엄마 아빠 가슴에 꽃을 달아 줘야지. 그런데 네가 너무 꼬마니 그냥 지나쳐야지. 이다음에 커서 멋지게 어버이날을 장식해주렴. 엄마 아빠는 큰 선물 안 바란다. 성의는 표시하는 걸 원해. 왜인지 아니? 엄마 아빠는 너에게 뭐든지 해주기만 했잖니? 그래서 '생일'과 '어버이날'을 기억해 주길 바란다. 아주 작은 것도 부모들은 큰 그 무엇보다도 자식의 선물은 반가우니까. 알았지?"(1986년 5월 8일)


태그:#어버이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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