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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여년 전 지극한 효심에 문학성도 뛰어난 장편 한글 제문이 발견돼 어버이날(5월 8일)을 앞두고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경남 산청의 유명한 유학자인 혜산 이상규(1846-1922) 선생의 딸인 이필헌(李必憲, 1901-?)이 쓴 제문인데, 경상대 도서관이 공개했다.

7일 경상대 도서관은 2010년 청주한씨 병사공파 문중 고문헌 도서관인 '문천각'에 영구위탁한 자료에서 한글 제문 2점을 비롯해 한글 편지 4점, 혼수의 물목 등을 지난해 6월 발견했다고 밝혔다. 이 자료들은 100여 년 전 경남 서부지역 사람들의 삶과 언어를 엿볼 수 있는 귀중한 한글 자료로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 것으로 보인다.

7일 경상대 도서관은 100여년전 경남 산청의 유명한 유학자인 혜산 이상규(1846-1922) 선생의 딸인 이필헌(李必憲, 1901-?)이 썼던 제문을 공개했다. 사진은 이필헌이 쓴 친정 어머니 한글 제문(1917).
 7일 경상대 도서관은 100여년전 경남 산청의 유명한 유학자인 혜산 이상규(1846-1922) 선생의 딸인 이필헌(李必憲, 1901-?)이 썼던 제문을 공개했다. 사진은 이필헌이 쓴 친정 어머니 한글 제문(1917).
ⓒ 경상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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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와 관련된 문중 후손들을 이상필(한문학), 박용식(국어국문학) 교수와 문천각 이정희 사서가  탐문 조사하고 관련 기록을 연구해 왔다.

연구 결과 이 제문을 지은 주인공은 산청 묵곡의 유명한 유학자인 혜산 이상규 선생의 딸인 '이필헌'으로 밝혀졌다. 이필헌은 산청 묵곡에서 혜산 이상규와 김해허의 딸로 태어나, 15살인 1915년 묵곡에서 합천 가회로 12살 신랑 한경우에게 시집을 갔다.

제문 2점 중 첫째 제문은 이필헌이 시집간 이듬해에 어머니 김해허씨가 별세하자 첫 기일에 쓴 제문이고, 나머지 1점은 22살 때인 1924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삼년상을 치르면서 쓴 것이다. 이는 현존하는 한글 제문 가운데 비교적 오래된 자료에 속한다.

제문을 쓴 한지의 길이는 각각 3.8m이고, 글자 수도 각각 2822자와 2963자에 달하는 장편이다. 박용식 교수는 "이러한 장편 한글 제문은 흔하지 않다"며 "이 속에는 부모를 기리는 딸의 정성이 지극하고도 감동적으로 자세하게 서술되어 있어 읽는 이로 하여금 눈시울을 적시게 한다"고 밝혔다.

친정 어머니인 김해허씨에 대한 제문은 현재로는 고등학교 1학년 나이에 해당하는 17세의 젊은 여인이 썼는데, 독서량이 상당했다는 점과 유교 경전에 해박한 지식이 있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제문에서 이필헌은 어머니의 삶의 행적과 추모의 정을 문학적으로 기술하였다.

박용식 교수는 "한글로 된 자료를 전혀 남기지 않았던 선비의 여식이 한글 편지와 제문을 남겼다는 점에서 당시 산청에 살았던 선비의 가정교육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7일 경상대 도서관은 100여년전 경남 산청의 유명한 유학자인 혜산 이상규(1846-1922) 선생의 딸인 이필헌(李必憲, 1901-?)이 썼던 제문을 공개했다. 사진은 이필헌이 쓴 친정 아버지 한글 제문(1924).
 7일 경상대 도서관은 100여년전 경남 산청의 유명한 유학자인 혜산 이상규(1846-1922) 선생의 딸인 이필헌(李必憲, 1901-?)이 썼던 제문을 공개했다. 사진은 이필헌이 쓴 친정 아버지 한글 제문(1924).
ⓒ 경상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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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제문은 그동안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경북 지역 사람들이 지은 것이 발견되어 학계에 소개되기는 했으나 대부분 단편이었다. 경남지역에서 경남서부지역 언어로 작성된 장편 한글 제문이 발견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제문 외에도 이필헌의 혼사 때 친정 어머니 김해허씨가 쓴 한글 편지도 발견됐다. 남편 혜산이 70세 되는 해에 사위를 보게 되어서 더없이 기쁘다는 내용이다. '백년언약(百年言約)이 지속되면 양가(兩家)에 이런 경사스런 일이 또 없을 것'이라는 소박한 소망도 담고 있다.

또 혼인 때 신랑 청주한씨 문중에서 신부 함안이씨 문중으로 보내는 혼수 물목도 학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5m가 넘는 한지에 151가지의 목록이 적혀 있다. 장정 30-40명이 짊어지고 가야할 분량이다. 이 물목에는 다양한 종류의 옷감과 화장품, 가락지뿐만 아니라 비누나 요강 같은 생필품도 포함되어 있다.

박용식 교수는 "한글제문 2점은 돌아가신 친정 부모를 향한 딸의 애절한 슬픔이 곳곳에서 묻어나와 눈시울을 붉히게 할 뿐만 아니라, 효(孝)의 가치가 날로 퇴색해 가는 요즘 시대에 경종을 울려주고 있다"고 말했다.


태그:#경상대학교, #경상대 도서관, #이상규 선생, #이필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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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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