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잔디밭에 있는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만드는 그늘 때문인지 느티나무 아래 잔디는 잘 자라지 못하고, 지의류에 속하는 초록이끼가 무성합니다. 맨땅이 드러났다면 생명을 품기가 어려웠을 터인데, 초록이끼 덕분에 많은 생명들이 그곳에서 자라납니다.

 

땅의 옷에 해당되는 지의류, 그들이 있어 작은 씨앗들이 추운 겨울도 나고, 봄이 오면 그 안에서 기지개를 켭니다. 그들은 아주 오랜세월 단단한 것들을 부드럽게 만들고 썩은 고목은 물론이요, 때론 바위도 고슬한 흙으로 만드는 역할을 합니다.

 

 

그 속에선 작은 씨앗이나 식물만 자라나는 것이 아닙니다. 지렁이들이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를 봅니다. 동글동글 지렁이 배설물, 지렁이는 단단하거나 혹은 썩은 땅을 정화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렇게 낮은 곳에서, 보이지 않은 곳에서 자기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있어 자연은 생명됨을 지킵니다. 누구를 위해서 그 일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본성대로 살아가면서 그들은 어우러져 생명을 피워냅니다.

 

'무위자연', 누구를 위하지 않고 본성대로 피어나는 자연에 대한 이야깁니다. 본상대로 살아가면서도 서로를 풍성하게 하는 삶, 이 세상도 그러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꿈을 꿉니다.

 


그 작은 생명들이 내어놓은 결실을 봅니다. 꽃은 아니지만, 가장 단순한 모습으로 피어나 자신의 대를 이어갑니다. 아름답고 화사하게 치장하는 것보다는 목적에 충실한 것이지요. 겉모습보다는 속내가 더 중요하다는 진실을 눈으로 봅니다.

 

진리는 아주 단순하다고 합니다. 진리가 아닌 것은 이런저런 사변으로 치장을 해서 보통 사람들이 봐도 무슨 말인지 모를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자기도 속이고 타인도 속이는 이런 류의 사설들은 외향을 멋들어지게 치장하여 사람들을 현혹하지만, 그 안에는 생명이 없습니다. 결국에는, 파멸의 길로 치닫기 마련입니다.

 


어린아이라도 '아하!'하며 알아들을 수 있는 것, 그렇게 말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연령이 어릴수록 경험이 많은 교사들이 필요한 것이고, 무슨무슨 학문의 개론서는 그 방면에서 아주 오랫동안 종사한 전문가가 쓰는 것입니다.

 

이렇게 아침에 잠시 숨을 돌리고 초록생명을 바라보고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입니다. 이렇게 행복한 시간을 갖고 하루를 출발해도 고단한 하루가 됩니다.

 

세상이 아무리 문제가 많은 것 같아도 찬찬히 살펴보면 아름다운 구석도 있고, 희망이 없는 것 같아도 솟아날 구멍이 있습니다. 때론 그것을 찾으려 발버둥쳐도 보이지 않는 것 같을 때가 있지만, 어쩌면 그것은 우리네 욕심에 눈이 멀어 보이지 않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마음을 놓아버리면, 비워버리면 거기서 또 다른 가능성이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민들레 씨앗 하나, 꽃 한 송이에서 맺혀진 민들레씨앗의 숫자를 세어본 적은 없습니다. 단지 '아주 많다'는 정도입니다만, 신비스러운 것은 그 작은 씨앗 마다 생명을 품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데 어울려 지내던 친구들과 떨어져 홀로 여행을 시작했을 때, 그는 두려웠을까요? 아니면, 기대감으로 충만했을까요? 자연의 본성대로 '무심'했겠지요. 그러나, 저 씨앗은 저렇게 쉬면서 그곳에 생명을 피워낼 것입니다. 작은 생명들의 쉼터에 제대로 안착을 했으니까요.

 


가을이면 냄새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그다지 환영을 받지 못하는 은행나무의 꽃이 바람에 떨어졌습니다. 떨어진 만큼은 열매가 덜 열리겠지만, 남아있는 것들은 저렇게 떨어진 것이 있기에 그만큼 실한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떨어진 것들, 경쟁에서 뒤쳐진 것들에게 감사해야 할 이유입니다. 우리는 경쟁사회를 살아가도록 강요당하고 있습니다. 경쟁에서 승리했다는 자부심만 가질 것이 아니라, 내가 이겼으므로 패배한 이들을 생각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산다고 이 세상에 큰 문제가 생길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그런 배려가 부족합니다.

 


저 꽃잎도 이제 시들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은 그 꽃의 화사했던 그 빛깔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씨앗은 아니지만, 잠시 쉬었다 흙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그 즈음엔 저 화사했던 빛깔은 흙의 빛깔을 닮을 것입니다.

 

가장 낮은 곳에 사는 초록생명이 생명을 품었습니다. 그 생명을 품은 곳을 걸으면 발바닥이 근질거립니다. 그들이 주는 포근함, 그들은 그렇게 밟아도 좋다고 합니다. 너무 아프게, 자신들이 견디지 못할만큼이 아니라면 넉넉하게 받아줍니다. 그들이 견디지 못할 때에는 바로 반격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사라져 버립니다. 사라짐으로 자신들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는지를 일깨워주는 것이지요. 너무 늦게 깨닫지 말기를...

 

작은 생명들의 쉼터,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 아직 쌀쌀한 기운이 남아있습니다만 그렇게 시나브로 봄이 가고 있습니다.


태그:#지의류, #민들레씨앗, #새싹, #생명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