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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저의 손위 시누이의 텃밭 아래편에 있는 단감나무 과수원에는 오래전부터 개 한 마리가 개줄에 묶인 채로 외롭게 살고 있습니다. 그 개는 과수원 주인이 단감 창고를 지키기 위해 기르고 있는 듯했습니다. 주인이 찾아 와 밥을 챙겨 줄 때 이외에는  다른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없는 그 개가 애처러워 보여서, 저는 시누이네 텃밭을 찾아 갈 때마다 비록 먼 말치에서나마 그 개에게 아는 척을 하고는 했습니다. 그러면 그 개의 반응은 시쿤둥한 표정,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였습니다.

올해 3월 초, 텃밭에서 냉이와 달래, 그리고 쑥을 캐기 위해 저는 여러 차례 텃밭을 찾아 갔습니다. 그때 새끼 강아지 두 마리가 그 개 주변에서 뛰어다니며 놀고 있었습니다. 하얗고 긴 털을 가진 그 개와 두 마리의 새끼 강아지는 외모와 체격, 털까지 모두 달라 보였습니다.

저의 인기척을 느꼈는지 두 마리의 새끼 강아지가 호기심 어린 눈빛을 보내기에, 저는 별다는 반응을 기대하지 않고  "요요요요..." 하고 손은 흔들며 아는체를 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두 마리의 새끼 강아지가 몇번을 넘어지며 힘들게 언덕을 올라 저에게로 쪼르르 달려 왔습니다.

친정집의 두 마리 강아지는 아무리 친해 보려고 노력을 해도 자꾸만 도망을 가는데, 꼬리를 흔들며 다가오는 새끼 강아지가 너무나 고마워서 저 또한 반갑게 두 강아지의 머리를 번갈아가며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한 마리 새끼강아지는 포메라니안을 갈색의 긴 털과 작은 체구였고, 다른 강아지는 전형적인 누렁이로 짧은 갈색털로 체구가 조금 더 컸습니다.

두 새끼 강아지가 형제 관계인지 의심이 될 정도로 전혀 달라 보였지만, 제가 텃밭을 방문할 때마다 두 강아지가 서로 경쟁하는 것처럼 저를 기대 이상으로 반겨 주어서 황송할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나물을 캐기보다는 강아지의 안부가 궁금해서 더욱 자주 텃밭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포메라니안을 닮은 강아지의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군데 군데 털이 많이 빠진 모습이 몹시 아파 보였습니다. 그럼에도 있는 힘을 다해서 저에게 달려 오는 모습은 차마 애처로워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가파른 언덕을 달려 오느라 몇 번을 넘어지던 그 강아지의 모습은 집으로 돌아와서도 내내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과수원 주인을 만나면 아파 보이는 강아지를 동물병원에 데리고 가야 하지 않는지, 아니면 내가 데리고 가도 괜찮은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여전히 주인 아저씨를 만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4월 20일 토요일이었습니다. 그날도 돋나물을 뜯으러 놀러 오라는 시누이의 전화를 받고  텃밭으로 가던 저는 단감나무들 사이로 오랜만에 주인 아저씨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지난해 먼발치에서 그 아저씨의 모습을 몇번 본 적이 있었지만, 인사는 단 한 번도 나누지 못했던 아저씨였습니다.

하지만 그날은 망설임 없이 아저씨의 과수원으로 들어가서 제가 먼저 아저씨에게 인사를 건넸습니다.

"안녕하세요? 여기 과수원 주인 아저씨시죠? 여기 새끼 강아지 두 마리가 있던데, 저기 흰개가 어미인가요?"
"네~"

그런데 어미개와는 다르게 새끼들의 털은 왜 누런색인지, 또 두 마리의 강아지가 서로 다른 종처럼 보이는지를 물어 보았습니다.

흰털의 어미개가 세 마리의 새끼를 낳았는데, 한 마리는 누군가가  키우겠다고 가져가고, 포메라니안을 닮은 작은 강아지는 털색은 달라도 어미를 닮았고, 짧은 털의 누런강아지는 애비를 닮았다고 했습니다.

아저씨께 그 이야기를  듣고나서 "새끼 강아지가 한 마리가 많이 아파 보이던데... 지금 안보이네요?"하고 주변을 둘러 보았지만 과수원 어디에도 아픈 강아지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죽었어요."

아저씨의 그 말을 듣는 순간, 저는 왜 좀 더 서두르지 못했는지... 저 자신을 자책하면서 한동안 멍하니 아무런 말도 꺼낼 수가 없습니다. 잠시 후, "그렇지 않아도 제가 볼 때마다 많이 아파 보여서 병원에 데려 가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벌써 그렇게 되었네요.."하고 저의 발길을 시누이네 텃밭으로 옮겼습니다.

그때부터 누렁이는 혼자서 과수원 곳곳을 돌아다니며 놀았습니다. 그날 주인 아저씨께 강아지의 이름을 미처 물어보질 못했지만, 저의 마음대로 "누렁아~"하고 불렀습니다. 그렇게 부르면 누렁이가 자신의 이름이 맞다는 듯, 몇번을 넘어지며 언덕을 달려 올라와서 저에게 반갑게 꼬리를 흔들어 줍니다.

비록 몸이 아파 보여도 두 마리의 새끼 강아지가 함께 뛰어 놀며 장난치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는데... 누렁이는 매어 있는 어미개 옆에서 벌렁 드러누워 해바라기를 하다가도, 제가 "누렁아~"라고 부르면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저에게 쏜살같이 달려 옵니다.

반가워요~ 하고 반겨주는 누렁이
▲ 누렁이 반가워요~ 하고 반겨주는 누렁이
ⓒ 한명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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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은 쑥스러워 합니다.
▲ 누렁이 조금은 쑥스러워 합니다.
ⓒ 한명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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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저에게 달려온 누렁이의 머리를 쓰다듬다 보니 목걸이를 했습니다. 제법 자라서 새끼 강아지의 모습을 벗어낸 누렁이에게 주인 아저씨께서 선물을 하였나 봅니다. 비록 새끼강아지의 모습을 벗었다고 해도, 누렁이는 여전히 모든 것이 알고 싶은지, 호기심 많은 표정으로 과수원과 텃밭 이곳저곳을 누비기도 하고, 돋나물을 뜯는 저의 곁을 서성이며 함께 놀아달라고 애처러운 눈빛을 보내기도 합니다.

누렁이와 한참을 놀아주다가, 이제는 집으로 가야 한다고 자리를 털고 일어나 돌아올 채비를 하면, 누렁이는 저의 말을 알아듣기라도 하는 듯 금세 새초롬해 하는 표정을 짓는 까닭에 저의 발길을 쉽게 돌리지 못하기도 합니다.

"누렁아~ 잘 지내고 있어~ 다음에 또 올게~"

아쉽게 저의 발걸음을 몇번 옮기다가 뒤돌아 보았더니, 그곳에 누렁이 또한 아쉬움이 가득 담긴 표정으로 저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지금도 언제든지 텃밭에 가서 "누렁아~"하고 부르면, 이웃 단감나무 과수원에서 저를 기다렸다는 듯 망설임없이 달려 와  반겨주는 누렁이가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누가 누렁이처럼 나를 아낌없이 반겨줄까요?

넓은 단감나무 과수원이 누렁이의 놀이터입니다.
▲ 누렁이 넓은 단감나무 과수원이 누렁이의 놀이터입니다.
ⓒ 한명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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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만 돌아가야지...
▲ 누렁이 이제 그만 돌아가야지...
ⓒ 한명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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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던 길 멈추고 아쉬워하는 누렁이
▲ 누렁이 가던 길 멈추고 아쉬워하는 누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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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올거죠? 묻는 듯한 표정
▲ 누렁이 또 올거죠? 묻는 듯한 표정
ⓒ 한명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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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다음 블로그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태그:#텃밭, #단감 과수원, #누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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