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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의 마루야마(丸山)는 예부터 에도 외곽의 요시와라, 교토의 시마바라와 어깨를 나란히 하던 일본 3대 유곽이었다. 노면전차를 타고 시안바시(思案橋) 정류장에 내려서 맞은편 입구로 들어가면 마루야마 산책이 시작된다.

나가사키시의 대표적인 유흥가 시안바시. 마루야마 역사 여행에 나서는 입구이다.
 나가사키시의 대표적인 유흥가 시안바시. 마루야마 역사 여행에 나서는 입구이다.
ⓒ 전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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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야마 입구 오른편에는 재미있는 장소가 있다. '되돌아보는 수양버드나무(身返り柳) 생각을 끊어내는 다리'라는 이름이 붙인 버드나무와 지금은 사라진 '사절교(思切橋)' 터가 있다. 사절교 이름에 대한 유래는 유곽을 나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지난밤의 유녀에 대한 미련이 남아 뒤돌아보면 그곳에 이 버드나무가 있었다고 하여 나무에 그런 이름이 붙었고, 여기서 미련을 끊고 다시 생활을 위하여 세상 속으로 나간다는 의미에서 붙였다고 한다.

여기서 조금 더 들어가면 니쥬몬(二重門) 터를 지난다. 사실 여기서부터가 진짜 마루야마다. 공원 내에는 막부시대 말기 나가사키에서 활약했던 사카모토 료마(坂本竜馬)의 동상이 건립되어 있다. 공원 인근에는 마루야마의 풍광이 물씬 풍기는 붉고 노란 색채의 제등도 걸려 있다. 파출소와 공원을 지나 정면 맞은편에는 사적(史跡)으로 지정된 요정(料亭) '가게츠(花月)'가 있다. 마루야마 산책에 나섰다면 이곳은 꼭 봐야 한다.

사적으로 지정된, 에도시대부터 내려온 요정집 '가케츠'.
 사적으로 지정된, 에도시대부터 내려온 요정집 '가케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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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정집 '가케츠'.
 요정집 '가케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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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츠의 정원.
 가게츠의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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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츠는 1642년에 건립된 요정으로, 에도시대((1600~1867), 막부말기, 메이지시대에 나가사키를 무대로 활약한 국제 인들의 사교장이었다. 일본의 유명한 문인 므카이 교라이, 라이 산요를 비롯하여 문인가객과 막부 말기의 정치적 뜻을 품은 '지사'들과 수많은 정치인, 무역상, 군인들이 출입하며 쉬어가기도 했고, 때로는 역사적인 회합을 하기도 했다.

입구에는 유명한 문인 므카이 교라이의 문학비가 있고, 현관에 들어서면 큰 제등이 걸려 있다. 요리는 주문하지 않더라도 장사하는 데 방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조심스럽게 가게츠에 들어가 보자. 정말 묘한 기분이 든다. 역사 속의 한 장면처럼 타임 슬립하여 뛰어든 것 같은 기분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도 영업을 한다. 점심과 저녁식사를 할 수 있는 호화찬란한 정식 요리가 나오며 게이샤를 초청하여 전통공연을 하기도 한다.

마루야마의 게이샤들을 관리하던 권번.
 마루야마의 게이샤들을 관리하던 권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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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야마 산책길에 세워진 옛 마루야마 유곽 그림. 한국어로도 설명이 적혀 있다. 나가사키 곳곳에 세워진 주요안내판에는 한국어가 병기되어 있어 여행객의 편의를 돕는다.
 마루야마 산책길에 세워진 옛 마루야마 유곽 그림. 한국어로도 설명이 적혀 있다. 나가사키 곳곳에 세워진 주요안내판에는 한국어가 병기되어 있어 여행객의 편의를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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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츠를 나와 오른쪽으로 가다보면 나가사키 권번 건물이 눈에 띈다. 나가사키의 예기(藝妓)였던 명(名)게이샤 '아이하치'도 이곳에 등록하여 활동했는데, 권번은 게이샤 섭외와 관리를 총괄하던 곳이다. 마루야마의 전성기 때는 시내에 있는 권번을 '시내 권번(町検番)', 이곳을 '야마권번(山検番)'으로 불렀다. '야마'란 마루야마를 부르는 속칭이었다.

현재도 그 전통이 이어지고 있는 게이샤는 보통 요정에서 다양한 전통예능을 손님들에게 공연하는 게 주된 일이지만, 나가사키의 대축제인 '쿤치'가 되면 거리행진에 참여하기도 한다. 해마다 그 수가 감소하고는 있지만 최근에는 젊은 세대가 하나의 예술적 직업으로서 게이샤를 지원하여 젊은 세대의 게이샤를 양성하고 있다. 운이 좋으면 권번 앞을 지나다가 샤미센(三味線) 소리를 들을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매화밭 내대신 천만궁' 신사. 주민들이 즐겨찾는 지역의 명소다.
 '매화밭 내대신 천만궁' 신사. 주민들이 즐겨찾는 지역의 명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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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권번을 바라보며 오른쪽으로 올라가 보자. 여기는 매화정원 길이라는 이름이 붙은 길인데 이곳을 올라가면 거기 신사 입구의 기둥문이 있다. 신사(神社)의 이름은 '매화밭 내대신 천만궁(梅園身代わり天満宮)'이다. 좀 복잡한 이름인데 이런 이름이 붙은 것은 이곳에 얽힌 전설 때문이다.

이곳은 1700년에 창건되었는데, 마을의 궐문 경비를 맡던 야스다 오사무 우에몽이 니쥬몬 부근에서 습격을 당해 창에 찔린다. 그러나 찔린 옆구리 어디에도 상처가 없고, 대신 자택 사당에 모신 천신(天神)이 옆구리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고 한다. '내대신' 천만궁이라 불리게 되었다는 전설인데, 지금도 마을 주민이 즐겨 찾는 친근한 장소다.

신사 경내에는 매화나무와 소의 동상이 있다. 예쁘고 산뜻하게 꾸민 정원 같은 분위기다. 규모는 작지만 흥미로운 볼거리도 많다. 입구 한쪽에는 나가사키의 민요 제목이자, 1999년 나카니시 레이가 쓴 소설 그리고 일본의 국민 여배우 요시나가 사유리 주연의 영화 등으로 유명한 '나가사키 부라부라부시(長崎ぶらぶら節)'의 문학비도 세워져 있다. 이  장소가 소설과 영화 속에서 중요한 무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나가사키부라부라부시' 문학비. '매화밭 내대신 천만궁' 신사 입구 쪽에 세워져 있다.
 '나가사키부라부라부시' 문학비. '매화밭 내대신 천만궁' 신사 입구 쪽에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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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 예기(藝妓)의 이름을 전국적으로 알린 마루야마의 명예기(名藝妓) 아이하치, 나가사키학의 원조로 불리는 고가 쥬지로는 나가사키의 대표적인 민요 '부라부라부시'나 '하마부시'를 발굴하여 전국적으로 큰 인기를 모았다. 아이하치의 삶은 '나가사키 부라부라부시'라는 소설과 영화 등으로도 만들어졌다.
 나가사키 예기(藝妓)의 이름을 전국적으로 알린 마루야마의 명예기(名藝妓) 아이하치, 나가사키학의 원조로 불리는 고가 쥬지로는 나가사키의 대표적인 민요 '부라부라부시'나 '하마부시'를 발굴하여 전국적으로 큰 인기를 모았다. 아이하치의 삶은 '나가사키 부라부라부시'라는 소설과 영화 등으로도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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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과 영화 속 주인공이 된 아이하치(愛八)는 실존 인물로, 그 본명은 마츠오 사다(松尾サダ, 1874-1933년)다. 1931년에 나가사키의 대표적인 민요 '부라부라부시'와 '하마부시浜節'를 레코드로 취입하여 그 이름을 널리 떨치기도 한 나가사키의 이름난 '예기(藝妓)'다. 이 아이하치상의 생애를 소재로 나카니시 레이가 쓴 소설 <나가사키 부라부라부시>는 한국어로는 <게이샤의 노래>라는 제목으로 번역된 적이 있지만 절판되었다. 나도 일본어판과 한국어판으로 헌책방에서 책을 구입해서 읽은 기억이 있는데, 책보다 요시나가 사유리(吉永小百合) 주연의 영화가 더욱 애잔하고 기억에 강렬히 남아있다.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아이하치가 유곽으로 팔려가 어린 나이부터 청소와 빨래와 심부름을 하면서 17세에 게이샤로 입문한 후, 민요를 수집하고 악기 연주와 노래 등에서 빼어난 재능을 발휘하지만, 동료를 아끼고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에게 아낌없이 다 내어주기에만 바빴던 듬직한 '큰 언니'같던 그녀의 삶은 너무 외로웠다. 지금도 영화 속 아이하치를 떠올리면 가슴 속 가득히 슬픔과 외로움이 차오른다.

'나가사키 부라부라부시' 소설과 영화의 주인공 아이하치의 묘.
 '나가사키 부라부라부시' 소설과 영화의 주인공 아이하치의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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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야마 산책길에 이 아이하치의 묘에도 찾아가 보면 어떨까. 그녀의 묘는 제법 높은 지대에 있지만 느릿느릿 좁을 길을 따라 15분 정도 올라가면 수많은 묘지 속에서 그녀의 묘를 찾을 수 있다. 걱정하지 말자. 길이 복잡하긴 하지만 나가사키는 관광도시라서 안내판과 이정표는 확실하게 되어 있어 잘 따라가면 된다. 그녀가 이곳에 잠든 까닭은 생전에 그녀가 "마루야마가 잘 보이는 장소에 묻히고 싶다"고 희망했기 때문이라 한다. 일본의 인기 아카펠라 그룹 가스펠라즈도 성묘하러 온 적이 있다고 한다.

천만궁 쪽을 기준으로 하여 근처에는 나카노차야(中の茶屋)라는 찻집이 있는데, 이곳의 정원이 유명하다. 이 정원과 찻집은 에도시대에 조성되어 지금까지 내려져 온 역사적인 곳이다. 건물 내에는 일본의 전설 속 동물인 갓빠(かっぱ)의 그림으로 유명한 화가 시미즈 콘(清水崑)의 작품을 모아놓은 전시관이 있다. 입장료가 100엔 밖에 안 되니, 안에 들어가 재미난 그림과 함께 수 백년 역사의 정원과 찻집의 기운도 느껴보자.

마루야마 산책 코스에는 오래된 역사적 건물과 많은 이야기들이 남아 있으며, 다양한 사적이 좁은 범위 안에 다 모여 있어 산책 여행에 정말 좋은 곳이다. 하나라도 놓치면 아쉬울 만큼 매력적인 산책여행 코스라 할 수 있다. 물론 요정에서 호화로운 식사와 게이샤의 공연을 감상할 목적이 아니라면 낮 시간에 나서는 것이 좋겠다. '나가사키에 이런 곳이 있다니'하고 놀랄 만큼 흥미로운 역사 여행이 될 것이다. 다만 낯선 여행객에는 어디에 뭐가 있는지 약간은 헷갈릴 수도 있으니 지도를 미리 준비하는 것도 좋겠다.

나가사키 마루야마에서 만나는 돌담과 돌길.
 나가사키 마루야마에서 만나는 돌담과 돌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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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카모토 료마의 동상.
 사카모토 료마의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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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 산책여행 팁] 나가사키에 많은 것 - 언덕과 계단, 돌담길, 고양이...
나가사키에는 오르막길과 언덕이 많다. 평지는 적고 주로 산 위에 마을이 조성되어 있다. 그리고 그 틈틈이 시내 곳곳에 묘지가 산재해 있다. 또 가톨릭, 개신교 교회, 불교사찰, 신사 등도 굉장히 많다.

나가사키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돌담과 돌길이 많다는 점이다. 멋스러운 돌담과 걷기 좋으며 운치있는 돌길을 걷는 일도 즐거움 중 하나다. 

나가사키에 많은 또 한 가지, 바로 길 고양이다. 나가사키를 산책하다 보면 주인 없는 길고양이들을 어디서든 마주치게 된다. 그런데 나가사키 고양이들의 특징이 있는데, 자세히 보면 꼬리가 훤칠하게 길게 뻗은 경우가 별로 없고 전부 둥글게 말려 있거나 구부러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걸 '尾まがり猫'라고 부르는데, 이는 옛날에 중국에서 애완용으로 수입된 이종의 고양이의 피가 섞였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당선(唐船)에 태워져 먼 바다를 건너온 대륙고양이의 흔적이 나가사키의 고양이의 꼬리 끝에 남아 있다니 이 역시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가 아닐까.

고양이 꼬리만이 아니라, 나가사키는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은 물론이고 중국과의 무역이 굉장히 활발하여 중국 문화의 흔적이 매우 강하게 남아 있으며, 개항 이래 중국인이 자유롭게 나가사키에 거주하여 17세기 말엽에는 나가사키 전체 인구 6만 명 중 1만 명이 중국인일만큼 거대한 화교사회를 형성했다고 한다. 중국인 수가 줄어든 것은 그 이후 일제가 침략전쟁을 벌이면서 중국과 전면전쟁을 벌였기 때문이다.

나가사키는 여러 모로 참 재미난 곳이다. 파내도 파내도 또 다른 나가사키의 얼굴이 있다. 나가사키의 다채로운 역사 속에 빠져들면, 나가사키에서 그대로 눌러앉아 살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태그:#마루야마, #나가사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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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의 모든 아이들이 건강하고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기를 바라는 주부이자, 엄마입니다. 번역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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