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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끈다랑쉬 오름 올라가는 길
 아끈다랑쉬 오름 올라가는 길
ⓒ 조남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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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 와서 살게 된 후 알게된 것 중 하나는 생활 속의 소소한 즐거움이다. 겨울엔 귤밭에서 일하고 가져온 귤과 앞집 할머니가 주신 귤로 귤술을 담가 먹었고, 최근엔 '식비 절감과 재미를 동시에 가져다줄 것이 무엇인가' 고민하다 초절임 한 통을 가득 담갔다. '아직 텃밭이 없는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차에, 식재료 조달이 되면서 제주도 산다면 이맘때쯤 꼭 해봐야 할 것을 알게 됐다. 그것은 바로 고사리 꺾기였다.

4월은 제주도에 고사리가 지천으로 깔리는 시기다. 한라산의 맑은 이슬을 먹고 자라는 제주 고사리는 그 맛과 향이 독특하다. 서귀포 남원 일대에서 하는 '한라산 청정 고사리 축제'는 벌써 19회를 맞고 있기도 하다. 이 시기에는 남녀 할 것 없이 놀이 삼아서라도 고사리순을 꺾으러 나가 1년 먹을 고사리를 장만한다.

먹을 것이 귀했던 옛날 제주도에서는 미역밭 추수 때인 이 시기를 맞아 아이들에게 며칠간 방학을 주기도 했단다. '미역 방학'과 동시에 '고사리 방학'도 되었다. 해촌 아이들은 미역 추수를 돕고, 농촌 아이들은 '고사리손'으로 고사리를 꺾었다. 오일장에 가면 '고사리 앞치마'도 있다. 밑에 지퍼를 달아놓아서 고사리를 꺾는 대로 앞치마에 넣은 후 지퍼를 열어 확 쏟을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어디로 고사리를 꺾으러 갈 것인가, 고민하다가 중산간 오름에 고사리가 많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친구와 함께 나갈 채비를 하고 있는데 하필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제주도 내려와 산답시고 서울에서 돈 잘 벌던 시절 드렸던 용돈도 못 드리는 딸은 엄마 전화가 오면 일단 긴장이 된다. 

"밥은 먹고 다니냐? 주말인데 쉬냐?"
"엄마 나 이따 고사리 꺾으러 갈 거야."
"고사리? 제주도 처녀가 다 됐구만~ 많이 따다가 서울에도 좀 부쳐라."
"……"

막상 말려놓고 보면 양이 극히 적어진다는 그 고사리. 대체 서울에까지 부치려면 얼마나 꺾으라는 것인지 걱정스러웠다.

서울처녀의 첫 번째 '고사리 방학'

아끈다랑쉬 오름에 올라 보이는 전망, 저멀리 우도와 성산일출봉이 보인다.
 아끈다랑쉬 오름에 올라 보이는 전망, 저멀리 우도와 성산일출봉이 보인다.
ⓒ 조남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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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오름(아부오름)에 고사리가 지천으로 피어있다.
 앞오름(아부오름)에 고사리가 지천으로 피어있다.
ⓒ 조남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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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전국 최고라는 제주도 고사리, 저도 참 좋아하는데요'라면서 내가 지금까지 고사리라는 것을 먹어나 봤지, 서울에서 태어나 살다 제주도에 내려오기까지 34살이 되도록 단 한 번도 직접 채취해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고사리가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정도는 알아야 할 텐데, 가보면 어떻게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우선 길을 나섰다.    

"다랑쉬오름에 가야 고사리가 많을 거야."
"다랑쉬오름이 얼마나 힘든지 아니? 아끈다랑쉬로 가자!"

다랑쉬오름에 가야 한다는 친구의 투덜거림을 뒤로 하고 아끈다랑쉬로 올랐다. 아끈다랑쉬오름은 제주시 구좌읍에 있는 용눈이오름, 다랑쉬오름과 인접한 오름이다. '새끼 다랑쉬'라는 뜻으로, 그다지 높지 않은 오름이기 때문에, 오름의 풍광은 구경하고 싶지만 저질체력인 사람에게 아주 좋은 오름이다. 아끈다랑쉬오름 초입에서 장바구니에 뭔가 가득 담아 나오는 아주머니를 만났다.

"뭐 따신 거예요?"
"고사리~ 저기 가면 많어."
"한 번 보여주세요. 이렇게 생긴 거였구나. 샘플로 하나만 주시면 안 돼요?"

아주머니가 주신 '고사리 샘플'을 한 손에 소중히 들고 아끈다랑쉬오름으로 들어섰다. 주변의 다랑쉬오름과 용눈이오름에 비해 너무 낮은 오름이라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다보니 탐방로 정비가 잘 되어 있지 않아 올라가는 길이 미끄러웠다. 산행과는 담을 쌓고 살아온 나는 길이 좋지 않다거나 힘들면 곧잘 투덜이가 되는데, 고사리가 목적이 되다보니 다른 생각은 안 들고 눈에 불을 켜고 고사리만 찾게 되었다. 그런데 아주머니가 그렇게 많다고 했던 고사리가 어찌된 건지 내 눈엔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고사리~ 고사리는 대체 어디 있는 거야!"
"아까 그 아줌마가 다 따간 게 분명해."

오름의 분화구 가까이 이르자 억새밭이 펼쳐졌다. 정상에서는 주변의 오름들은 물론 우도와 성산일출봉까지 선명하게 건너다보인다. 머리 속엔 고사리뿐이라 땅만 보고 가는데, 그때부터 실한 고사리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니, 지천으로 깔려 있어 정신이 없었다.

고사리 꺾느라 굼부리(분화구) 안에서 한 시간 반 정도 헤맸을까. '나 좀 데려가주시오' 하는듯 귀여운 '고사리손'을 오므리고 있는 고사리들을 친구와 경쟁하듯 꺾다보니 제법 큰 비닐봉지 안이 가득찼다. 날도 덥고 배도 고파 그만 내려가기로 했지만, 내려가는 길에도 눈은 고사리만 찾고 있었다.

'고사리 앞치마'를 정말 사야 하는 건가...

점심을 먹으러 간 성읍민속마을 식당에서 고사리를 삶아주셨다.
 점심을 먹으러 간 성읍민속마을 식당에서 고사리를 삶아주셨다.
ⓒ 조남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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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시간동안 꺾은 고사리가 냄비 하나 분량이 되었다.
 두시간동안 꺾은 고사리가 냄비 하나 분량이 되었다.
ⓒ 조남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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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리 꺾기가 왜 이렇게 재미있을까. 가만 생각해보니, 살면서 자연에서 직접 먹을 것을 채취하는 기쁨을 맛본 적이 거의 없기 때문이지 싶었다. 서울 살 적엔 해마다 해외여행을 가고, 주말에는 패러글라이딩이니 뭐니 밖으로 돈 쓰고 나돌아다니면서, '사람은 역시 이렇게 살아야 되는 거야'라고 생각했었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렇게 살면서도 가슴에 남아 있는 헛헛함은 어찌할 수가 없었다. 직장에서 오는 스트레스 또한 그렇고 말이다.

도시에서 제주로 오게 되면서, 삶의 외적인 '사이즈' 자체는 줄어든 것 같이 보이지만, 이전엔 알지 못했던 기쁨들이 있다. 없이 살아도 인상 쓰지 않고 살 수 있으니 좋다. 한층 가벼운 사람이 된 느낌도 든다. 어쩌면 이전부터 맞지 않는 크고 무거운 옷을 입고 살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부가 만선의 기쁨을 안고 집으로 돌아오듯이 이만하면 우리 '고사리 좀 꺾었다'는 생각으로 오름을 내려왔다. 밥을 먹기 위해 성읍민속마을로 향했다. 돼지불고기정식을 시켜놓고 식당 주인인듯 한 아주머니에게 물었다.

"이거 먹을 수 있는 고사리 맞죠?"
"먹을 수 있지~ 그럼~. 근데 이거 얼마 동안 딴 거?"
"아끈다랑쉬오름에서 두 시간 동안 딴 거예요~."
"… 고사리가 별로 없었나보네. 이거 말려봐요~. 확 줄어서 도둑맞은 거 같지."

바로 삶아서 불려서 냉동실에 넣었다가 볶아먹든지 햇볕에 말리든지 해야 한다는데, 어리버리하게 고사리를 보면서 서 있으니, 바로 그 자리에서 고사리를 삶아주셨다. 마침 식사 반찬으로 고사리 무침이 나오자 반가웠다. 고사리 무침 한 접시가 이렇게 일일이 꺾는 수고로움은 기본이고 삶고 불리고 말린 후엔 확 줄어들어버리는 안타까움 끝에 탄생한다는 걸 알게 되자 고사리를 남길 수가 없었다. "고사리무침 한 접시 더 줍서" 해서 다 비웠다.

소중히 담아 온 고사리를 집 앞에 널었다. 고사리 무침은 어떻게 하면 좋은지 육지에 있는 엄마에게 전화를 해봐야겠다. 고사리 많이 따는 사람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고사리 앞치마'의 구입을 심각하게 고민하는 중이다.

고사리를 집 앞에 널었다.
 고사리를 집 앞에 널었다.
ⓒ 조남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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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제주도, #고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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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사는 서울처녀, 제주도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전해드릴게요 http://blog.naver.com/hit10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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