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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포 근처의 해녀들의 쉼터 벽에 걸려있는 테왁과 망사리
▲ 테왁과 망사리 성산포 근처의 해녀들의 쉼터 벽에 걸려있는 테왁과 망사리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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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운 교수의 <남자의 물건>이라는 책 서두에는 ''여자의 물건'이라면 떠오르는 것이 여러 가진데 남자의 물건이라면 딱히 떠오른 것이 없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대부분 남자의 물건이라고 하면, 은밀한 곳의 '그 물건'을 떠올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러가지문제연구소' 소장을 자처하는 김정운 교수는 안성기, 조영남, 이어령, 신영복, 이왈종 등 열 명의 다양한 분야의 남자들의 물건을 이 책에서 소개한다.

납은 물에 쉽게 뜨지 않기 위해서, 빗창은 전복을 딸 때 사용하는 물건이다.
▲ 납과 빗창 납은 물에 쉽게 뜨지 않기 위해서, 빗창은 전복을 딸 때 사용하는 물건이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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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물건>에서는 '여자의 물건'이라면 떠오르는 것들로 반지, 가방, 구두, 화장품 등등을 열거했다. 물건이 많아서 남자들보다 훨씬 재미있고, 볼 것도 많고, 이야기할 거리도 많다는 것이다. 아무튼, <남자의 물건>은 그 거무튀튀한 것만 떠올리는 세태에 유쾌한 반전을 준다.

그런데 문득 '여자의 물건'이 아니라, '해녀의 물건' 혹은 '제주 여인들의 물건'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해녀'도 분명 여자건만, 위에서 말한 반지, 가장, 구두, 화장품 같은 것은 연상되지 않는다.

테왁과 망사리와 오리발과 납 등 해녀의 물건(도구)가 한 켠에 쌓여있다.
▲ 해녀의 물건 테왁과 망사리와 오리발과 납 등 해녀의 물건(도구)가 한 켠에 쌓여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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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녀의 물건'하면 떠오르는 것은 테왁, 빗창, 망사리, 오리발, 납, 물옷 등이며, '제주 여인의 물건'이라고 해도 농삿일이나 바닷일에 쓰이는 물건(도구)들이 떠오른다.

시대가 변했음에도 불구하고, 제주 여인 특히 해녀들에게는 여전히 억척스러운 삶과 관련되는 물건들인 것이다. 오죽했으면, "여자로 나느니 쉐로 나주(여자로 태어나느니 소로 낳지)"라는 말이 있을까?

벽에 걸린 물옷과 망사리와 테왁
▲ 해녀의 물건 벽에 걸린 물옷과 망사리와 테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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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제주 여성의 삶, 특히 해녀의 삶은 억척스럽다. 끊어질 듯한 숨을 이어가기 위해 내뱉는 '숨비소리'는 그들이 여전히 살아있음을 들려주는 생명의 소리다. 휘파람 소리와도 같은 숨비소리는 바다에서 들려오는 그 여느 소리보다도 멀리 퍼진다. 숨비소리처럼, 제주 해녀들의 삶에 주어진 고단함은 길고 깊다.

해녀의 쉼터 내부
▲ 해녀의 쉼터 해녀의 쉼터 내부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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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해녀는 아이를 낳고 사흘만에 물에 들기도 했단다. 육지에서 시집살이 하던 며느리가 밭에서 아이를 낳고, 몸조리도 못하고 밭일을 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어쩌면 이 땅의 여성들은 아주 오랫동안 그렇게 질긴 삶을 감내하며 살아왔고, 지금도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그것을 숙명처럼 참고 살아가는 이들, 그 대척점에 가부장적인 남성들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시대가 좋아졌다고 해도, 여전히 고단한 삶을 강요당하는 여성들이 있으며, 전수되지 못할지도 모르는 제주 해녀들의 삶은 이제 노구를 이끌고 물에 들어가는 할망들에 의해 겨우겨우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제주의 바다가 그들을 부르고 있다.
▲ 테왁과 망사리 제주의 바다가 그들을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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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전, 제주도 종달리에 처음 발을 붙였을 때 해녀였던 김완선(80) 할망은 75세까지도 물질을 했단다. 요즘은 힘이 부쳐 못한다며 못내 아쉬워했다.

서울 촌놈이었던 나는 자연산 전복이라며 할망이 건네준 어른 손바닥보다도 큰 전복을 보곤 그게 얼마나 큰 것인지 감이 오질 않았다. 전복을 송송 썰어 전복죽을 끓이고 나서야 그 양이 엄청나다는 것을 알았다. 쌀알보다 더 많이 씹히던 전복과 늘 허여멀건한 전복죽만 먹다 쑥물처럼 시퍼런 전복죽을 처음으로 먹고는 전복죽의 참맛을 알았다.

스티로폼으로 만든 테왁, 시대가 변하면서 많은 물건들이 바뀌었지만, 물질을 하는 해녀는 바뀌지 않았다.
▲ 테왁 스티로폼으로 만든 테왁, 시대가 변하면서 많은 물건들이 바뀌었지만, 물질을 하는 해녀는 바뀌지 않았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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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을 접은 지 5년 정도 되었다는 말끝에 "힘이 있으면 다시 한 번 물질을 하고 싶다"고 한다. 이젠 먹고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평생 봐왔던 바다밑을 보고 싶다는 것이다.

내가 제주도를 떠나고 한 핸가 뒤에 물질을 접었다고 했다. 이틀 전에 제주도에서 만나 들은 이야기다.

그들의 삶을 지탱해주는 물건들
▲ 물옷과 테왁과 망사리 그들의 삶을 지탱해주는 물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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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4·3에 대한 기억은 너무도 또렷하고,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진저리가 난다고 한다. 그냥 바다와 더불어 살아갈 수 있었는데, 그때 너무도 많은 것을 잃었단다. 그리고 오랜 세월, 4·3과 관련된 이야기는 마음 깊은 곳에 숨기고 살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희생자일 수록 더 그랬단다. 좌익, 빨갱이로 매도되는 세상이었으니까.

어촌계마다 해녀들이 동동작업을 한다.
▲ 테왁과 망사리 어촌계마다 해녀들이 동동작업을 한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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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가 여름 소낙비처럼 내리는 날 새벽, 성산일출봉 근처에 있는 해녀들의 쉼터를 찾았다. 이른 새벽이기도 하지만, 주룩주룩 내리는 비에 작업을 쉬는 듯했다. 허긴, 작업도 아무때나 나가서 하는 것이 아니라, 어촌계 일정에 따라 나가는 것이니 해녀들의 물질을 보려면 때도 잘 맞춰야 한다.

나에게는 오히려 잘 된 일이다. 제주에 살 적에도 미안한 마음에 천천히 살펴보지 못한 '해녀의 물건'을 천천히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을 얻었으니.

비가 내리치는 창으로 흐릿하게 보듯 그들의 삶을 흐릿하게 보았다.
▲ 제주도 비가 내리치는 창으로 흐릿하게 보듯 그들의 삶을 흐릿하게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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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나는 정말 제대로 본 것일까? 빗방울이 내리는 창문을 통해 흐릿하게 보이는 것처럼 나 홀로 보고 홀로 상상하면서 그들의 아픔일랑 흐릿하게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여자로 나느니 쉐로 나주."

그 한 마디에 '해녀들의 물건' 혹은 '제주 여인의 물건'이 다 들어있는 듯하다. 거기엔, 가방이나 화장품이나 반지, 구두 같은 것들은 없다. 그런 것보다는 테왁과 망사리, 빗창, 물옷, 납, 호맹이, 오리발 같은 것들이며, 물질을 마치고 밭으로 나가 일할 때 사용하는 골갱이 같은 것들이 있다.


태그:#해녀, #테왁, #망사리, #빗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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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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