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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오전 '제53주년 4.19혁명 기념식'이 열린 서울 수유동 4.19국립묘지에서 행사 시작 직전 일부 참석자들이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에게 "종북세력, 빨갱이 끌어내" "애국가도 안부르면서"라고 삿대질과 고함을 치는 소동이 벌어졌다.
▲ 4.19기념식장 "종북·빨갱이~" 소동 19일 오전 '제53주년 4.19혁명 기념식'이 열린 서울 수유동 4.19국립묘지에서 행사 시작 직전 일부 참석자들이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에게 "종북세력, 빨갱이 끌어내" "애국가도 안부르면서"라고 삿대질과 고함을 치는 소동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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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정권의 부정선거를 기화로 우리 민중들의 민주주의와 통일에 대한 열망이 활화산처럼 타올랐던 4·19혁명은 미완의 혁명으로 남았다. 어김없이 4월 19일은 돌아왔지만 그만큼 세월은 흘렀다. 대학가를 들썩이게 하던 4·19 기념 마라톤 같은 행사는 이제 대학가에서 거의 찾아보기 힘들어졌다는 언론보도에 마음이 씁쓸하다.

그런데 53년 전인 1960년이나 2013년의 대한민국이나 바뀌지 않은 것이 있다. '빨갱이'란 이름으로 진행되던 비판세력에 대한 마녀사냥은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2013년에도 반복되는 '빨갱이' 소동

지난 19일 서울 수유리 4·19국립묘지에서 '제53주년 4·19혁명 기념식'이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참석하지는 않았지만 이 자리에는 정홍원 국무총리를 비롯하여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 정세균 민주당 최고위원, 노회찬 진보정의당 공동대표 등이 참석했다.

그런데 행사 시작 전에 일부 참석자들이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에게 "종북세력, 빨갱이 끌어내"라고 고함을 지르고, "애국가도 안 부르면서"라고 삿대질을 하는 소동이 벌어졌다고 한다. 주최 측이 이들을 제지하여 더 이상의 불상사는 없었다지만 4·19에 벌어진 이 해프닝에 서글픔을 금하기 힘들다.

1960년 자유당 정권의 장기 집권 음모로 인해 벌어진 3·15부정선거에 항의하는 시민들을 당시 정권과 우익들은 "빨갱이"라고 했다. 심지어 마산에서 시민들과 함께 부정선거에 항의하다가 눈에 최루탄이 박힌 처참한 시신으로 바다에서 떠오른 고등학생 김주열 열사의 죽음에 대해서도 그들은 "빨갱이" 소행이라고 했다. 색깔론이면 뭐든 다 되던 세상이었다.

4·19혁명 당시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를 외치며 남북대화를 주장하던 학생들도 빨갱이라고 하고, 혁신계 정당들이 주장한 중립화 통일방안 제안에 대해서도 빨갱이 음모라고 비난했다. 이런 색깔론은 결국 우익군부들의 5·16군사쿠데타로 이어졌다.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탱크로 깔아뭉갠 5·16쿠데타 세력들의 명분은 빨갱이들로부터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쿠데타 세력에게 4·19는 빨갱이들의 사회혼란쯤으로밖에 인식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4·19혁명 기념 행사장에서 진보정당 대표에게 '종북 빨갱이'라고 삿대질하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4·19 정신은 자유, 민주와 더불어 통일이었다. 전후 10년도 안 된 1960년에도 중립화 평화통일을 주장하는 정치세력이 있었는데, 2013년에 전쟁위기의 평화적 해결을 주장하는 이들에게 종북 딱지를 붙이는 것은 분명 역사의 퇴행이다.

국민의례 강요? 히틀러의 나치 치하에서나 가능한 일

19일 오전 서울 수유동 4.19국립묘지에서 열린 '제53주년 4.19혁명 기념식'에서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 노회찬 진보정의당 대표, 박원순 서울시장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19일 오전 서울 수유동 4.19국립묘지에서 열린 '제53주년 4.19혁명 기념식'에서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 노회찬 진보정의당 대표, 박원순 서울시장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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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 기념식장에서 벌어진 소동에서 보듯, 현재 우리 사회 보수세력들 입장에서는 <애국가> 제창 여부가 애국의 기준인 것 같다. 과거 고(故)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참모들과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으므로 종북세력이라는 식이다.

같은 기준으로 자체 행사에서 <애국가> 대신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는 모든 세력, 즉 진보정당과 노동계 등은 모두 종북세력으로 매도된다. 보수언론과 정치인들은 자신들에 비판적인 세력에 대해서 '애국가를 거부하는 세력, 태극기를 거부하는 세력'이라는 마타도어를 퍼트렸다.

그런데 진보정당 인사들도 국가 행사에 참여하면 어김없이 애국가를 부르고,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한다. 19일 열린 4·19혁명 기념식에서도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는 정홍원 국무총리,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 노회찬 진보정의당 대표 등과 함께 애국가를 불렀고, 국기에 대한 맹세를 했다.

이정희 대표가 박근혜 대통령과 나란히 애국가를 부르고 있는 사진이 있고, 같은 당의 이석기, 김재연 의원이 국회에서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하는 것이 명백한 사실임에도 이들은 국민들에게 애국가와 태극기를 부정하는 세력으로 각인되어 있다.

그리고 우리가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하는 국기에 대한 맹세와 국민의례는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는 존재하지도 않는다. 미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우리가 아는 민주주의 또는 자본주의) 나라에는 국기에 대한 맹세라는 것 자체가 없다.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같은 북유럽 국가들뿐 아니라 영국, 프랑스, 독일 등의 대부분 유럽 국가 역시 마찬가지다.

왕정국가 시절 국왕에 대한 충성 맹세가 있었던 프랑스에는 백년도 훨씬 전에 없어졌고, 파시즘 체제였던 독일의 히틀러 나치 치하, 이탈리아의 무솔리니 치하에서나 존재했던 이런 '맹세'도 파시즘 패망 이후 없어졌다.

우리나라 국기에 대한 맹세의 모태가 일제가 강요했던 "우리는 황국신민이다. 충성으로써 군국에 보답하련다"로 시작하는 '황국신민서사'라고 해도 억측은 아닐 것이다. 그러니까 국민의례니 국기에 대한 맹세니 하는 것들이 애국의 잣대라는 주장은 히틀러의 나치 치하나 일본 제국주의 시대에나 가능한 일이다.

'국기에 대한 맹세'는 일제 잔재 또는 군사독재 유물

제53주년 4.19혁명 기념일인 19일 서울 수유동 4.19국립묘지에서 열린 '민족민주운동단체 합동 참배식'에서 참석자들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있다.
▲ 4월 혁명 영령에 바치는 '임을 위한 행진곡' 제53주년 4.19혁명 기념일인 19일 서울 수유동 4.19국립묘지에서 열린 '민족민주운동단체 합동 참배식'에서 참석자들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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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가와 국기에 대한 맹세와 관련된 논란이 처음 제기된 것은 유시민 전 진보정의당 공동대표에 의해서였다. 2003년 그는 "운동 경기장에서까지 애국가를 부르는 것은 국민의례를 남용하는 것이다. 이것은 군사 파시즘과 일제 잔재가 청산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하며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나아가 "애국심은 내면적 가치인데 국기 앞에서 충성을 공개 서약케 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헌법정신에 어긋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국기에 대한 맹세는 박정희 정권이 남긴 국가주의 체제의 유물이다"라고 주장하여 화제가 된 바 있다. 벌써 10년 전 이야기이다.

'국기에 대한 맹세'는 상해임시정부 또는 정부수립 당시부터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유신정권이 태어난 1972년 문교부가 만들었으며, 전두환 군사독재 시절인 1984년 법제화된 것이다. 국가적인 전통도 아니며, 자랑스러운 민주주의의 유산도 아니라는 것이다. 일제 잔재, 또는 군사독재 시대 유물이라고 보는 편이 더 정당한 평가로 보인다.

그리고 국민의례가 법제화된 것이 이명박 정권인 2010년 7월 대통령훈령 제272호에 의해서였다는 점은 코미디다. 대통령 훈령에 의하면, 중앙행정기관, 즉 정부조직법에 따른 부처청(대통령 및 국무총리 소속기관 포함)과 소속기관은 국민의례를 반드시 해야 한다. 그리고 이 훈령 제5조(국민의례의 실시 권장)는 행안부장관은 지방자치단체와 소속기관, 교육부장관은 교육청과 학교가 국민의례를 할 수 있도록 노력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즉, 중앙행정기관이 아닌 정당은 통합진보당을 비롯해 새누리당이나 민주통합당 등도 자체 행사에서 국민의례를 할 아무런 의무가 없다. 시민단체나 노동단체 등의 민간단체는 말할 필요도 없다. 대통령 훈령에 의하면, 정당의 공식행사에서 애국가를 부르고 안 부르고는 그 정당이 결정할 문제다. 애국가를 부르면 안 될 이유도 없지만, 꼭 불러야 할 이유도, 의무도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2013년 대한민국에서는 국민의례가 애국과 종북의 구분 기준이 되어버렸다. 히틀러 치하의 나치와 일본제국주의 시대가 아니면 상상하기도 힘든 일이 지금 대한민국에서 일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공교롭게도 백범 김구 선생은 1948년 4월 19일 통일정부 수립을 위해 경교장을 나서 북으로 향했다. 1948년 4·19의 백범 김구, 자유와 민주, 통일을 외친 1960년 4·19의 민중들에게, 남북대화를 주장하는 세력들을 종북세력이라 부르며 4·19를 기념할 자격도 없다는 2013년의 4·19는 어떤 의미일까? 다시 한번 깊이 되돌아볼 일이다.


태그:#4.19, #국민의례, #종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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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육에 관심이 많고 한국 사회와 민족 문제 등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글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가끔씩은 세상 사는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고 싶어 글도 써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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