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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과도한 근무시간과 미래에 대한 비관, 우울증 등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등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프랜차이즈 가맹점주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특히 대형 프랜차이즈에 소속된 편의점 점주들이 눈에 띕니다. 말만 '사장님'이고 실상은 프랜차이즈 업체와 철저한 갑을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어떤 현실속에 있으며 왜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지, 대안은 무엇인지 살펴봅니다. [편집자말]
"내가 국가유공자입니다. 나라에 그렇게 노예생활 했으면 됐지. 도대체 이 나이에 롯데에까지 노예생활을 해야 겠느냐고."

지난 17일 저녁 경기도의 한 세븐일레븐 편의점. 이곳을 운영하는 박용희(가명)씨는 편의점 경영자를 '노예'에 비유했다. 초로에 접어든 그의 얼굴은 피곤에 절어 있었다. 하지만 편의점 얘기만 나오면 목소리에 힘이 돌았다. 박씨의 발치에는 건설현장에서 사용하는 공구가 놓여 있었다. 그는 오늘도 '공사판 노가다'를 하고 왔다고 했다. 편의점의 적자를 메우기 위해서였다.

'월 300만 원에서 500만 원은 보장된다'는 회사 측 말만 믿고 별 고민 없이 시작했던 편의점에서는 수익이 나오지 않았고 오히려 박씨 가족의 현금을 빨아들이는 '암세포' 같은 존재로 자리잡았다. 대출이자를 내지 못해 노후대책으로 마련했던 집도 경매에 넘어갔다. 박씨는 "흑자는 커녕 온 가족이 돈을 벌어다가 적자 채우느라 바빴다"며 "어서 빨리 점포를 정리하고 싶은 마음 뿐"이라고 털어놨다.

"매달 300~500만 원 수익 보장... 눈 안돌아가는 사람 어딨어"

박씨가 냉동실에 쌓아놓고 먹는 편의점 폐기 음식들. 일단 얼려놓고 먹을 때 녹혀 먹는다. 편의점을 운영하는 박씨는 "수익이 나지 않아 이런 식으로 1년 가까이 폐기음식을 먹어왔다"고 말했다.
 박씨가 냉동실에 쌓아놓고 먹는 편의점 폐기 음식들. 일단 얼려놓고 먹을 때 녹혀 먹는다. 편의점을 운영하는 박씨는 "수익이 나지 않아 이런 식으로 1년 가까이 폐기음식을 먹어왔다"고 말했다.
ⓒ 김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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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씨가 편의점을 시작한 것은 약 20개월 전. 화훼업을 하던 중 직종 전환을 고민하던 박씨에게 매월 500만 원 수준의 고수익을 보장해준다는 편의점은 매우 매력적인 사업이었다. 그는 코리아세븐 측의 사업설명회를 들은 후 편의점을 차리기로 결심했다.

"편의점 사업설명회에 가면 '장사가 안 되도 본사에서 몇 년 동안은 매달 300만 원에서 500만 원을 보장이 된다.' 그렇게 말을 해. 롯데는 대기업이잖아. 그러니까 온 놈들이 다 혹하는 거야. 이 어려운 때에 그런 제안에 눈깔 안 돌아가는 놈이 어딨어."

그렇게 박씨는 담당 영업직원이 추천하는 자리에 편의점을 냈다. 점포에서 발생하는 이익 중 35%는 프랜차이즈 업체가 가져가고 나머지 65%를 박씨가 갖는 조건이었다. 일 매출은 평균 30만 원에서 40만 원 사이. 박씨는 소박하게 300만 원을 꿈꾸며 월말을 기다렸다.

그러나 '월수입 300만 원'의 기대는 첫 달부터 깨졌다. 정산 받은 돈에서 전기세·매장 임대료 등을 제하니 남는 돈이 없었던 것. 박씨는 즉각 회사 측에 "이익금이 없다"고 말했지만 점포를 담당하는 영업사원은 '그건 저희가 어쩔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 할 뿐이었다.

그는 "'사기당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계약서를 살펴보니 월 300만 원 이상 최저 수익을 보장하는 직접적인 문구는 없었다"고 말했다. 황당했지만 5000만 원에서 많게는 1억 원에 이르는 점포 해지 위약금 조항 때문에 그만 둘 생각은 아예 할 수 없었다.

"20개월 만에 1억 손해... 그만 두게만 해달라"

그때부터 박씨 가족의 '지옥'은 시작됐다. 임대료·전기세만 빼도 이미 적자인 마당에 시간제 아르바이트를 쓸 수는 없었다. 박씨는 24시간 영업을 지키기 위해 점포 계산대 옆에 간이 침대를 만들었다. 종일 편의점 안에서 먹고 자고 일하며 몇 개월이 지났지만 점포 매출은 나아지지 않았다. 그간 변한 거라곤 박씨가 신경쇠약을 얻었다는 사실 뿐이었다.

올해 최저임금인 시간당 4860원으로 계산했을 때 24시간 일하는 그가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할 경우 받는 월급은 30일 기준 349만9200원. 그러나 '사장님'에게 적용되는 셈법은 달랐다. 월 수익이 안 남는 수준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돈을 가져다 넣어야 하는 경우도 많았다. 점포 내에서 유통기한 내에 안 팔린 물건에 대해서는 박씨가 배상을 해야하기 때문.

박씨는 "푸드(삼각김밥·유음료 등)는 유통기한이 지나면 85%를 내가 물어야 한다"며 "상온식품도 손실이 3개월에 16만5000원이 넘어가면 내가 부담한다"고 토로했다. 점포 내 이익은 35-65로 가져가면서 손실에 대해서는 15-85의 비율을 적용한다는 것이다. 그는 "하루짜리 유통기한의 삼각김밥 폐기 비용으로 수십만 원을 쓴 적도 있다"고 털어놨다.

매달 적자였지만 사측은 꼬박꼬박 유지비 및 수수료 명목으로 돈을 떼어갔다. 박씨는 "냉장고 등 점포 내 시설 관리를 '롯데기공'에서 매달 관리유지비로 5만 원 넘게 가져간다"며 "점포를 폐점할 경우 냉장고를 우리가 받는 것도 아닌데 왜 우리가 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매달 적자로 세금 낼 게 없는데 '세무대행 수수료'라고 해서 매달 7만 원 넘게 떼어간다"고 덧붙였다.

박씨가 운영하는 점포 정산서. 적자가 나더라도 '점포유지보수비', '전산유지 보수비', 세무대행 수수료'등은 영업지원금과 관련없이 회사가 매달 떼어간다.
 박씨가 운영하는 점포 정산서. 적자가 나더라도 '점포유지보수비', '전산유지 보수비', 세무대행 수수료'등은 영업지원금과 관련없이 회사가 매달 떼어간다.
ⓒ 김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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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정이 이렇자 다른 가족들도 인근 식당 등에서 일해 온 돈을 점포 운영에 보탰지만 속수무책이었다. 박씨 역시 일이 있는 날이면 가족에게 가게를 맡기고 일당 8만1000원짜리 공사판을 전전했다. 그렇게 해서 편의점에 들어간 돈은 약 3000만 원. 박씨 부부가 노후를 위해 은행 대출을 받아 마련했던 주택은 편의점을 시작한지 1년 만에 대출이자를 내지 못해 경매로 넘어갔다.

현재 박씨 가족은 화훼업을 하던 시기 옛 임대농장에 지어놨던 농장 관리동에서 생활하고 있는 상태다. 박씨는 "그 집도 몇 달 째 편의점 때문에 가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여전히 편의점 안에서 잠자고 밥은 유통기한이 지나 폐기가 된 삼각김밥을 냉동실에 차례대로 얼려놨다가 오래된 것부터 녹여서 해결한다.

박씨의 바람은 하나다. 본사와의 협의를 통해 위약금 없이 빨리 편의점을 그만두고 싶다는 것. 얼마 전 요양보호사 자격증도 땄다. 편의점을 닫으면 당장 기거할 집이 없으니 일과 잠자리를 함께 해결할 의도에서였다. 박씨는 "가평에 있는 친구 하나가 얼마 전에 죽었는데 편의점 비울 수가 없어서 가지도 못했다"며 "편의점 하면서 1억 원 정도 손해봤지만 그것도 괜찮으니 이런 노예생활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다"고 강조했다.

"일매출 150만 원 안돼? 그럼 편의점 접어야"

박씨는 취재 전 기자에게 이름·지역·나이·점포 사진·위약금 및 전기세 규모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철저한 익명 보장을 요구했다. 자신이 노출될 경우 회사와의 관계가 나빠질 수 있다는 이유였다. 박씨에게 '점포에서 먹고 자는 내용을 기사화해도 되느냐'고 묻자 박씨는 웃으며 "우리만 그런 것이 아니니 상관없다"고 대꾸했다.

업체를 막론하고 무분별한 가맹점 확장으로 일 매출이 100만 원에 미치지 못하는 '적자' 점포들이 많고 그런 편의점에서는 흔히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공정위가 지난해 편의점 가맹점포 451개를 조사한 결과 월 평균 순수입이 100만 원 미만인 점포는 33%, 100만 원 이상 200만 원 미만인 점포는 전체의 23.1%에 달했다.

이런 사정은 바로 점포 부실로 연결됐다. 지난해 신용보증기금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0년말 4.6% 수준이던 부실편의점 비율은 2012년 8월 말 기준 9.5%로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업종의 부실률(5.9%)의 1.5배를 넘는 수치다. 벌써 올해에만 세 명의 편의점주가 생활고를 이유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코리아세븐 홈페이지에 표기된 가맹조건. 가맹점주가 직접 점포를 소유하거나 임차하여 운영하는 완전가맹의 경우 최대 월 500만 원, 연간 6000만 원의 영업지원금을 지급한다고 명시되어있다.
 코리아세븐 홈페이지에 표기된 가맹조건. 가맹점주가 직접 점포를 소유하거나 임차하여 운영하는 완전가맹의 경우 최대 월 500만 원, 연간 6000만 원의 영업지원금을 지급한다고 명시되어있다.
ⓒ 코리아세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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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선 점주들은 이 같은 현상의 이유로 편의점 프랜차이즈 업체들의 최저 수익보장제도를 지목했다. 업체들이 예비점주들에게 최대 450만 원에서 500만 원의 영업이익을 몇 년간 보장해준다며 신규입점을 '낚시'하고 있으며 그 때문에 상권 경쟁이 더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가맹점 유치 홍보에 사용되는 '월수익 500만 원 보장'도 실상은 말과 달랐다. '매출이익한도 내'라는 단서가 붙기 때문이다. 한 점포에서 월 200만 원의 매출이익을 남기면 회사가 부족분인 300만 원을 채워주는 게 아니라 회사 몫(35%)인 70만 원을 가져가지 않는 방법으로 지원하는 식이다.

이 돈에서 건물 임대료나 인건비 등을 추가로 제해야 하기 때문에 매출 자체가 떨어지는 점포라면 회사 지원을 받아도 연속적인 적자를 면치 못하는 셈이다. 또한 프랜차이즈 업체의 월수익 보장제도는 편의점별로 2년에서 3년 동안만 지속된다. 그 뒤에는 없는 이익을 회사와 나눠 가져야 한다.

이날 만난 경기도의 다른 편의점주 이진석(가명)씨 역시 "1년 장사했지만 이익금은 0"이라고 털어놨다. 그의 점포 일 매출은 80~90만 원 수준. 매달 들어오는 정산금은 150만 원에서 250만 원 정도다. 그러나 이 중 200만 원 정도가 아르바이트 인건비와 임대료로 지출된다.

이씨는 "달로 보면 50만 원 정도 버는 달도 있고 50만 원 정도 손해 보는 달도 있지만 1년 기준으로 보면 수익은 0"이라고 말했다. 그는 "일 매출이 100~150만 원 정도 되는 점포가 한 달에 150만 원을 겨우 벌어가는 게 이 동네 분위기"라며 "그 정도 아니면 (점포를) 접는 게 좋다"고 말했다.


태그:#편의점, #최저수입보장, #세븐일레븐, #가맹사업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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