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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드러진 배추장다리꽃
 흐드러진 배추장다리꽃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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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계속 되는 꽃샘추위 속에서도 봄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남녘땅 섬진강가에서 매화꽃을 피우며 북상한 봄이 어느덧 서울에도 올라왔다. 서울의 봄은 노랗게 피어나는 산수유로부터 시작된다. 해마다 맨 먼저 피어나 봄을 알리는 전령이다. 뒤이어 개나리가 피어나고, 목련이 피어나더니만 요즘은 벚꽃까지 와글와글 피어나고 있다.

우리 집 베란다의 봄은 배추장다리꽃이 알렸다. 3월 초순부터다. 지난 가을에 어린 배추 네 포기를 사다가 화분에 심은 배추들 중 하나다. 네 포기 중 두 포기는 집 없는 달팽이들의 먹이로 사라져버렸다. 또 한 포기는 비료를 너무 가까이 주어 말라버렸고 겨우 한 포기가 살아남았다(지난 12월에 올린 기사 '배추야 고맙다, 멘붕에서 구해줘서').

그 배추 한 포기가 겨울 추위 속에서도 곱고 건강하게 잘 자랐다. 1월이 지나고 2월이 지나는 동안 배추는 커다란 화분을 가득 채울 만큼 크게 자랐다. 한겨울 모진 추위 속에서도 푸르고 싱싱하게 자란 배추가 먹음직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네 포기 중에 겨우 한 포기가 살아남아 잘 자란 것이 신기하고 귀하여 그냥 두고 보기로 했다.

그런데 3월이 되자 배추 포기 가운데서 무언가 불쑥 솟아오르는 것이 있었다. 배추장다리였다. 날마다 물을 주며 지켜보는 가운데 장다리는 쑥쑥 자라났다. 그리고 3월 10일경부터 장다리 줄기 끝에서 작고 노란 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며칠 뒤부터 연산홍 화분도 꽃봉오리가 벙긋거리기 시작했다.

어른 키만큼 자란 배추장다리
 어른 키만큼 자란 배추장다리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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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추장다리꽃도 베란다 화분석을 한자리 차지했다
 배추장다리꽃도 베란다 화분석을 한자리 차지했다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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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춧잎 위에 떨어진 꽃잎
 배춧잎 위에 떨어진 꽃잎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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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렵 어느 날 부턴가 베란다로 통하는 거실 문을 열면 향긋한 냄새가 스며들곤 했다. 처음엔 향기의 정체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런데 배추장다리 가지가 더 많이 퍼지고 꽃도 더 많이 피어나면서 더욱 진한 향기의 정체가 밝혀졌다. 바로 배추장다리꽃 향기였다.

배추 화분은 본래 안방 앞 베란다에 있었다. 그러나 장다리꽃이 피어날 때부터 거실 앞 베란다 다른 화분들 옆으로 옮겨 놓았다. 그냥 배추가 아니라 꽃을 피운 화분으로 대접하여 승격(?)된 셈이다. 아니 당당한 화분으로 자리매김 된 것이다.

그렇게 3월 초부터 피기 시작한 배추장다리꽃은 여전히 진한 향기를 내뿜으며 지금까지 계속 피어나고 있다. 장다리가지가 자라고, 줄기 사이에서 또 다른 작은 가지가 솟아나면서 한 달이 넘게 계속 꽃을 피우고 있는 것이다.

바닥에 떨어진 노란 배추장다리 꽃잎
 바닥에 떨어진 노란 배추장다리 꽃잎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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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 진한 배추장다리꽃
 향기 진한 배추장다리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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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철쭉꽃이 한창이다
 요즘 철쭉꽃이 한창이다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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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추장다리꽃보다 늦게 꽃을 피우기 시작한 연산홍은 벌써 거의 다 져버렸다. 요즘은 연산홍 옆자리의 진분홍 철쭉이 화려한 자태를 뽐내며 한창 피어나고 있다. 그러나 우리 가족들의 관심과 사랑은 단연 배추장다리꽃으로 쏠려 있다. 연산홍이나 철쭉은 모양만 화려할 뿐 향기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벌써 한 달이 넘는 기간 동안 줄기차게 꽃을 피우며 향기를 뿜어내는 배추장다리꽃이 귀한 것이다.

"향기는 좋은데 지는 꽃잎이 귀찮네."
"무슨 소리야, 그냥 놔둬, 바닥에 노랗게 깔려있는 모습도 예쁘기만 하구먼."
"예쁘긴 한데 그냥 놔두면 지저분해질 것 같아서."

그런데 문제가 한 가지 있긴 있다. 작고 노란 배추장다리꽃잎이 날마다 떨어져 내리는 것이다. 그런데 그 양이 장난이 아니다. 하루만 그냥 놔두면 화분 주변이 온통 노란 꽃잎으로 뒤덮이기 때문이다. 베란다 쪽 창문을 열면 그 꽃잎들이 사르르 사르르 거실로 날아들기까지 한다. 아내는 그 꽃잎들을 쓸어내는 것이 귀찮은 것이다.

그래도 1개월이 넘게 계속 피어나는 배추장다리꽃이 있어 집안이 온통 봄의 향기로 넘쳐난다. 꽃잎 하나하나는 작고 볼 품 없지만 어른 키만큼이나 자란 줄기마다 노란 꽃들이 앙증맞게 피어있는 모습은 참으로 멋지고 아름답다. 금년 가을에는 두 개의 배추화분을 준비하여 내년 봄 다시 피어날 배추장다리꽃을 기다려봐야겠다.

떨어진 꽃잎을 쓸어내려다가~~~
 떨어진 꽃잎을 쓸어내려다가~~~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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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쭉 연산홍과 어우러진 배추장다리꽃
 철쭉 연산홍과 어우러진 배추장다리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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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지난 12월에 올린 기사 "배추야 고맙다, 멘붕에서 구해줘서" 의 베란다에서 자란 배추의 뒷이야기인 요즘 근황입니다.



태그:#배추장다리꽃, #베란다, #철쭉, #연산홍,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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