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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두 아들이 대국(?)을 펼칩니다. 돌을 길게 늘여놓는 일이 중요합니다.
▲ 대국 아침부터 두 아들이 대국(?)을 펼칩니다. 돌을 길게 늘여놓는 일이 중요합니다.
ⓒ 황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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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애 : "아니지, 그렇게는 못 먹지."
둘째 : "와! 내가 이겼다."
큰애 : "검은 돌이 흰 돌을 완전히 못 둘러쌌잖아."
둘째 : "아니야, 흰 돌 잘 둘러쌌어, 내가 이긴 거야."

아홉 살, 여덟 살 두 아들이 조용히 바둑 둡니다. 눈치껏 자리를 피하고 있는데 갑자기 목소리가 높아집니다. 바둑판 앞에서 입씨름이 벌어졌습니다. 검은 돌이 흰 돌을 온전히 둘러쌌는지가 관건입니다. 말다툼에 지친 두 아들이 확실한 판가름을 기대하며 저를 쳐다봅니다.

간절한 마음 알겠는데 안타깝지만 저는 바둑을 잘 모릅니다. 애매모호한 결론을 내리고 엉거주춤 자리를 벗어났습니다. 진즉 바둑 공부 좀 해둘 걸, 아쉽습니다. 이윽고 물러설 곳 없이 싸우던 두 아들이 조용해졌습니다. 큰애가 마지못해 양보를 했습니다.

또 다시 두 아들은 바둑판 위에 줄지어 돌 세우느라 바쁩니다. 지난 6일 아침, 봄이 성큼 다가왔습니다. 두 아들이 부스스 일어나더니 약속이나 한 듯 거실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곧이어 책꽂이 옆에 세워둔 바둑판을 펼치고 마주 앉습니다.

큰애와 둘째가 바둑판위에 흰돌과 검은돌로 줄을 세웁니다.
▲ 흰돌과 검은돌 큰애와 둘째가 바둑판위에 흰돌과 검은돌로 줄을 세웁니다.
ⓒ 황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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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 검은돌이 보입니다. 검은돌을 바둑판 밖으로 튕겨내야 합니다. 원시적인(?) 놀이입니다.
▲ 튕기기 놀이 저 멀리 검은돌이 보입니다. 검은돌을 바둑판 밖으로 튕겨내야 합니다. 원시적인(?) 놀이입니다.
ⓒ 황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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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튕기기 놀이 한 덕분에 바둑돌이 깨졌습니다. 물론, 아내에게 호되게 야단맞았습니다.
▲ 깨진 바둑돌 열심히 튕기기 놀이 한 덕분에 바둑돌이 깨졌습니다. 물론, 아내에게 호되게 야단맞았습니다.
ⓒ 황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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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판 받아들고 세 아들이 묘한 웃음을 날립니다

잠시, 흰 돌을 누가 쥘지 티격태격하더니 조용히 바둑돌을 줄지어 세웁니다. 지난밤 10시가 넘도록 대국(?)을 펼치더니 눈뜨자마자 또 바둑입니다. 바둑이 달콤한 잠을 멀리 쫓아 낼 만큼 재밌을까요? 혹시, 게임 중독은 아닐까요? 컴퓨터로 두는 '인터넷 바둑게임'이 아니라서 그나마 다행입니다.

아이들 다투게 만든 바둑판과 돌, 며칠 전 아내가 들고 온 물건입니다. 아파트 쓰레기장 옆에 처박혀 있었는데 집으로 옮겨 왔습니다. 세 아들, 아내에게서 바둑판을 받아들고 묘한 웃음을 날리더군요. 재밌는 놀이가 생각난 거죠. 녀석들이 공모한 놀이는 '돌 튕기기 놀이'였습니다.

구슬치기 하듯 돌을 맞춰 바둑판 밖으로 튕겨내는 장난인데 꽤나 재밌어 하더군요. 하지만 다섯 살 막내를 뺀 두 아들의 관심 그리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구슬치기와 비슷한 바둑돌 튕기기 놀이가 얼마나 아이들 관심을 끌겠어요. 두 녀석이 돌 튕기기 놀이를 포기한 또 다른 이유는 아내에게 혼났기 때문입니다.

바둑돌 튕기기 놀이를 하면 돌이 서로 부딪쳐 깨지잖아요. 당연히 방바닥은 깨진 돌로 어지럽지요. 그 모습 본 아내가 참다못해 한마디 했거든요. 서서히 원시적인 놀이가 싫증 나던 참에 잘 된 거죠. 아내에게서 핀잔도 들었으니 그 핑계 대고 곧바로 바둑돌을 내려놓았습니다.

큰애가 제멋대로 바둑규칙을 정하고 둘째에게 따르랍니다.
▲ 바둑 큰애가 제멋대로 바둑규칙을 정하고 둘째에게 따르랍니다.
ⓒ 황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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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이 정한 규칙에 둘째는 불만이 많습니다.
▲ 규칙 형이 정한 규칙에 둘째는 불만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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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애가 마음대로 정한 바둑 규칙, 둘째에게 강요합니다

그렇게 아이들 손에서 바둑돌이 멀어지나 싶었는데 며칠 후 두 녀석이 어설픈 바둑을 다시 두기 시작했습니다. 이번엔 나름대로 규칙을 정해 돌을 놓는데 신기하더군요. 두 녀석이 '돌 튕기기 놀이'에서 점잖은 '바둑 돌 놓기'로 눈을 돌린 데는 아내의 숨은 노력이 있었습니다.

두 아들이 이런저런 사정으로 바둑판과 돌에서 눈을 뗄 즈음, 아내가 책 한 권을 내밀었거든요. 아내는 아이들에게 호통 친 게 미안했는지 도서관에서 책 한 권을 빌려왔습니다. 바둑 초보자를 위한 책이었죠. 그 책을 큰애가 받아들더니 몇 장 넘겼습니다.

이윽고 구석으로 책을 휙 던져두고 둘째와 바둑을 두더군요. 바둑 규칙을 모두 이해했다는 듯 그럴듯하게 바둑을 뒀습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큰애는 바둑 규칙을 마음대로 정했습니다. 책에서 대충 훑어본 내용을 바탕으로 자신의 머릿속에서 나름대로 규칙을 만든 겁니다.

그리고 그 규칙을 둘째에게 강요하고 있었습니다. 둘째는 아예 책을 들여다보지도 않았기 때문에 형이 만든 어설픈 규칙을 순순히 따를 뿐이었죠. 그 후, 두 아들이 낮밤을 가리지 않고 바둑을 두더군요. 제멋대로 정한 규칙을 열심히 따르며 재밌게 돌을 늘여 놓더니 마침내 조용한 토요일 아침 갈등이 터진 겁니다.

아내가 도서관에서 빌려온 바둑책입니다. 큰애는 이 책을 대충 훑어보더니 나름대로 규칙을 만들었습니다.
▲ 책 아내가 도서관에서 빌려온 바둑책입니다. 큰애는 이 책을 대충 훑어보더니 나름대로 규칙을 만들었습니다.
ⓒ 황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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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설픈 규칙은 혼란만... 제가 바둑을 배워야 할까요

둘째가 큰형이 정한 규칙에 마음이 상한 겁니다. 똑같은 상황에서 매번 형만 자신의 돌을 가져갔거든요. 둘째가 억울한 상황을 마지못해 몇 번 넘기더니 그날은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저는 두 아들 티격태격 다투는 모습을 곁눈질로 바라만 봤죠. 특별히 해줄 말이 없었기 때문이었죠.

바둑에 대해 뭘 알아야 참견을 하죠. 그저 안타까울 뿐이었습니다. 큰애가 만든 규칙은 조용히 상대방 마음 읽어가며 바둑 두기에는 너무 엉성한 규칙이었습니다. 웬만한 일로 다투지 않던 두 녀석이 그날은 목소리를 높이더군요. 서로 이겼다고 으르렁거렸습니다. 결국, 명쾌한 답은 나오지 않았고요.

지루한 말다툼은 아내의 큰 목소리에 조용히 끝났습니다. 그렇게 두 아들의 소란이 끝난 후,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습니다. 그나마 컴퓨터 인터넷 게임이 아니라 다행입니다. 인터넷 바둑게임이었으면 중독증세가 훨씬 심했겠지요. 또 한 가지, 어설픈 규칙은 서로 혼란만 일으킬 뿐이란 걸 깨달았습니다.

때문에 엉성한 규칙은 만들지도 말고 남에게 강요하지도 말아야지요. 그나저나 항상 대국이 끝나면 누가 이겼는지 판가름 내 달라고 제게 달려오는데 그때마다 난감합니다. 어느 녀석이 더 많은 집을 지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애들의 소모적인 분쟁을 막기 위해서 바둑을 배워야 할까요?


태그:#바둑, #규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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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아들 커가는 모습이 신기합니다. 애들 자라는 모습 사진에 담아 기사를 씁니다. 훗날 아이들에게 딴소리 듣지 않도록 노력합니다. 세 아들,아빠와 함께 보냈던 즐거운(?) 시간을 기억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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