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2012년 박근혜 대선캠프 정치쇄신특위 위원장을 맡았던 안대희 전 대법관이 2015년 12월 14일 부산 해운대구에서 출마 선언을 할 예정입니다. 구영식 기자의 2013년 기사가 안 전 대법관의 행보를 둘러싼 논란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판단에 이를 다시 게재합니다. [편집자말]
<기울어진 저울> 표지
 <기울어진 저울> 표지
ⓒ 한겨레출판

관련사진보기

지난해 8월 어느 날, 기자는 한 대기업 CEO출신 인사를 만난 적이 있다. 그의 사무실에서 차를 마시며 '세상 돌아가는 일'로 이야기를 나누던 중 안대희 전 대법관이 화제의 중심에 섰다. 그는 며칠 전 새누리당 정치쇄신특별위원장에 임명된 터였다. 기자가  "안대희 전 대법관뿐만 아니라 '반삼성 강골검사'인 남기춘 전 검사까지 새누리당으로 간 것은 의외다"라고 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원래 검사 출신들은 권력지향적이다. 아무리 개혁 성향으로 보인다고 할지라도 그들은 권력이 있는 쪽으로 가기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안대희나 남기춘이 새누리당으로 간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기자가 갑자기 수개월 전의 일화를 꺼낸 이유는 최근 출간된 <기울어진 저울 - 대법원 개혁과 좌절의 역사>(이춘재·김남일, 한겨레출판) 때문이다. 이 책은 노무현·이명박 정부 10년간 진행돼온 "대법원을 중심으로 한 사법개혁의 시도와 굴절"(한승헌 변호사)을 다루고 있다. 그런데 뜻밖의 일로 여겨졌던 안대희 전 대법관의 새누리당행 비밀을 풀어줄 실마리가 책 속에 들어 있었다.

'독수리5형제'와 대립한 안대희, 대법관 퇴직 48일 만에 새누리당행

안대희 전 대법관은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장과 대검 중앙수사부장을 지낸 검찰의 '대표 칼잡이' 가운데 한 명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사법고시 동기였던 그는 참여정부가 출범한 직후인 지난 2003년 대검 중수부장에 임명됐다. 이후 2002년 대선자금 수사를 지휘하면서 '국민검사'라는 애칭을 얻었고, 팬클럽이 생겨날 정도로 전국적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검찰총장에는 오르지 못했다. '차떼기당'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한나라당은 물론이고 안대희 전 대법관을 대검 중수부장에 발탁한 청와대도 반대했기 때문이다. 이후 부산고검장을 거쳐 서울고검장으로 자리를 옮긴 그가 대법관 후보로 거론됐다. 검찰 수뇌부와 이용훈 당시 대법원장이 '검찰 몫 대법관'으로 그를 적극 밀었다. 그런데 청와대는 그의 발탁에 소극적이었다. 그 이유는 이랬다.

노무현 대통령은 애초부터 검찰 출신 인사가 대법관이 되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있었다. 법조인 출신인 노 대통령은 검찰 출신 인사를 대법관으로 임명하는 관행이 박정희 정권 때 법원과 검찰을 길들이기 위한 목적으로 만든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민주적 정통성이 취약한 5공화국 때는 검찰 몫을 두 자리로 늘리기도 했으나, 6·29 선언 이후 개헌 과정에서 한 자리로 줄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검찰 몫 대법관'의 정당성은 매우 취약했다.(94쪽)

그러자 이용훈 대법원장이 청와대를 설득했고, 노무현 대통령도 결국 '안대희 카드'를 받아들였다. "사법부 과거사 정리 작업을 추진하고 있는 이 대법원장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안대희 전 대법관은 자신을 적극 천거한 이 대법원장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그는 김태환 제주도지사와 문국현 창조한국당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등에서 철저하게 친정인 검찰 편에 섰다.

검찰의 압수수색 과정이 위법이었던 전자의 사건에는 다수의견과 다르게 "지나치게 엄격한 기준으로 위법수집증거의 배제원칙을 선언함으로써 자칫 실체적 진실 규명을 통한 형벌권의 적정한 행사를 불가능하게 한다"는 별개의견을 냈다.

또한 '공소장일본주의'(재판부가 예단을 갖는 것을 막기 위해 공판이 시작되기 전에는 공소장만 제출하도록 하는 원칙)를 위반한 후자의 사건에는 "여러 이념 가운데 하나에 불과한 공소장일본주의를 형사재판에서 절대적으로 지켜야 할 이념으로 승화시킴으로써 전체를 보지 못한 부분적인 성찰에 그쳤다"고 주장했다.

이런 안대희 전 대법관을 두고 <기울어진 거울>의 저자들은 "수사과정의 절차적 합법성을 엄격하게 해석하려는 (사법부의) 시도에 맞서 검찰의 권한을 확보하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썼다"고 표현했다. 그런 과정에서 대법원내 진보성향 대법관을 가리키던 '독수리 5형제'(이홍훈·박시환·전수안·김영란·김지형)와 치열하게 대립할 수밖에 없었다. 그를 강력하게 천거했던 이용훈 대법원장도 크게 실망했다.

안 대법관의 가세로 대법원에서 보다 다양한 의견이 논의되기를 기대했지만, 형사재판절차와 증거 능력에 관련된 재판에서는 결과적으로 검찰의 기존 태도에서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는 이후 대법원에서 '검찰 몫' 대법관에 대한 강한 회의가 일어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102쪽)

물론 안대희 전 대법관에게도 전향적인 면모가 전혀 없지는 않았다. 국가보안법 사건에서는 기존 공안검사 출신 대법관과는 확연하게 다르게 전향적인 의견을 내놓았다. 하지만 "피의자 인권과 검찰의 수사관행이 부딪히는 사건에서는 어김없이 '친정' 편에 섰다"는 것이 저자들의 평가다. 그런 점에서 그가 대법관에서 물러난 지 48일 만에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 캠프로 달려간 것이 이해될 듯하다.

'신영철은 남았고, 조용환은 떠났다'는 씁쓸한 촌철살인만 남다

안대희 새누리당 전 정치쇄신특위 위원장
 안대희 새누리당 전 정치쇄신특위 위원장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기대에 못 미친 안대희 전 대법관의 활동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정부 당시 대법원은 '좀 더디지만 확실하게' 변화하고 있었다. 이홍훈·박시환·전수안·김영란·김지형 대법관 등 '독수리 5형제'가 수적 열세 속에서도 "국가권력과 자본의 횡포로부터 사회적·경제적 약자를 보호하는 소수의견"을 많이 냈기 때문이다.

<기울어진 저울>의 저자들은 "이들은, 대법원이 그동안 사회의 주류를 위한 '그들만의 대법원'으로 불렸던 이유가 성향과 배경이 천편일률적인 고위 법관 출신들로 구성된 탓이었음을 입증해보였다"며 이렇게 의미를 부여했다.

서울대 법대, 남성, 고위 법관 출신의 주류 대법관들이 폐쇄적이고 퇴행적인 사고의 틀에 갇혀 민주화라는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음을 상대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사법부가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가치관을 반영할 수 있도록 법원 구성을 다양화해야 한다는 것을 몸소 보여줬다.(9쪽)

하지만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좀 더디지만 확실하게 변화하던' 대법원이 다시 후퇴하기 시작했다. 대법원 변화를 이끌었던 독수리 5형제도 하나둘씩 떠나고, '신영철은 남았고, 조용환은 떠났다'는 씁쓸한 촌철살인만 남았다. 이명박 정부를 이은 박근혜 정부에서도 이런 상황이 나아질 기미는 전혀 없어 보인다.

이러한 불안한 징후는 두 정부가 맞교대하는 시기에 일어났다. 지난 2월 14일 대법원은 노회찬 진보정의당 대표의 의원직을 박탈하는 판결을 내렸다. '삼성 X파일'에 등장하는 '떡값검사들'의 명단을 인터넷에 공개했다가 기소된 노 대표에게 '징역 4월 집행유예 1년, 자격정지 1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한 것이다. "(삼성 X파일이) 비상한 공적 관심의 대상이라고 보기 어렵다"(양창수 대법관)는 비상식적인 판단이 깔려 있었다. 대법원에 '정의구현'의 의지가 있는가를 의심케 하는 대목이다. 

대법관에 누가 임명되는지를 바라보는 일반 국민들의 관심도는 매우 낮다. 아주 짧은 기간을 빼면 오랫동안 대법원이 "서울대 법대, 남성, 고위 법관 출신"이라는 '그들만의 대법원'으로 운영됐던 탓이 크다. 하지만 최고사법기관으로서 대법원의 법관은 물론이고 헌법재판소 재판관의 인사는 대단히 중요한 '공적 관심사'다. "노무현 정부에서 추진된 대법원 구성 다양화와 사법부 과거사 청산 작업이 이명박 정부를 거치면서 어떻게 흐지부지되었는지를 추적한" <기울어진 거울>은 그 이유를 아주 절실하고 설득력 있게 보여주고 있다. 

덧붙이는 글 | <기울어진 저울 - 대법원 개혁과 좌절의 역사> 이춘재 김남일 씀, 한겨레출판사 펴냄, 2013년 3월, 312쪽, 1만4000원



기울어진 저울 - 대법원 개혁과 좌절의 역사

이춘재.김남일 지음, 한겨레출판(2013)


태그:#기울어진 거울, #안대희, #이춘재, #김남일
댓글5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3,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