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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탄공원, 육군대장 박정희 전역기념비.
 군탄공원, 육군대장 박정희 전역기념비.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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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대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후 그의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과거를 되살리는 작업이 본격화되고 있는 모양새다. 전국 각지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과거 행적을 미화하고, 업적을 부각시키는 작업이 한창이다.

국방부는 지난 1일 박근혜 대통령에게 "'국방정신교육원' 설립을 추진하겠다"고 보고하면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화려한 부활을 예고했다. 국방부는 국방정신교육원 설립을 보고하면서 "장병 정신전력 강화를 통한 무형전력을 극대화하겠다"는 취지를 내세웠다.

문제는 국방정신교육원이 박정희 유신독재 치하에 만들어졌다는 사실이다. 국방정신교육원은 1977년 '국군정신전력학교'라는 이름으로 설립돼 '국방정신교육원'으로 이름을 바꿨다가, 1998년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이후 군 조직을 대대적으로 구조 조정하는 과정에서 사실상 문을 닫았다. 국방정신교육원 부활은 "시대착오적인 이념교육을 강화"하는 것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관련이 있는 '추억'을 되살리는 작업도 한창이다. 과거 박 전 대통령이 머물렀던 장소나 즐겨 먹었던 음식 등이 화려한 부활의 대상이 되고 있다. 경북 문경시에서는 1930년대 청운각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주로 먹었던 음식인 칼국수와 보리밥 등을 관광상품으로 만드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청운각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초등학교 교사 시절에 거주하던 하숙집이다. 문경시는 청운각 주변을 정비하는 작업을 함께 벌이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은 이곳에서 '긴 칼'을 차는 일본 군인이 되겠다는 꿈을 꾸다가, 어느 날 만주군관학교에 가서 시험을 치렀다. 초등학교 교사가 갑자기 일본 천황을 위해 싸우는 군인이 된 것이다. 그런 장소가 지금 '박정희 명소' 중에 하나로 되살아나고 있는 중이다.

철원 군탄공원 진입로, 박정희 장군 전역공원 명칭복원 결정 환영 플래카드.
 철원 군탄공원 진입로, 박정희 장군 전역공원 명칭복원 결정 환영 플래카드.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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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원군, '박정희 장군 전역지공원' 명칭 복원 결정

강원도 철원군은 1961년 5·16군사쿠데타를 일으킨 이후 군인에서 정치인으로 탈바꿈하는 과정에서 박 전 대통령이 남긴 흔적을 되살리고 보존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철원군은 지난 3월 26일 "철원군 갈말읍 군탄리에 있는 '군탄공원'을 25년 만에 옛 이름인 '육군대장 박정희 장군 전역지공원'으로 복원한다"고 발표했다. 철원군에서는 상당히 오랜 시간 우여곡절을 겪은 뒤에 박정희 전 대통령이 옛날 공원 이름으로 되살아나고 있는 셈이다.

군탄공원에는 현재 '육군대장 박정희 전역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63년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시절 육군 갈말읍 지포리의 육군 제5군단 비행장에서 전역했다. 군사쿠데타 이후 2년 3개월여가 지난 시점이다. 박 전 대통령은 이 전역식에서 전역사를 통해 '다시는 나와 같은 불운한 군인이 없도록 하자'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이후 육군 제5군단은 '박정희 장군'의 전역을 기릴 목적으로 1969년 지금의 군탄공원 자리에 '국군장병 일동'이라는 이름으로 높이 5m 가량의 전역기념비를 세웠다. 그리고 정부는 1976년 전역기념비가 있는 장소 주변을 정화하는 사업을 벌여 2만여 평 규모의 공원을 조성했다. 철원군은 이 공원에 '육군대장 박정희 전역지공원'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하지만 전역지공원은 박정희 군사정권에 부담으로 작용했다. 박정희 군사정권은 자신들이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았다는 사실에 부담을 느꼈다. 그들에게 전역지공원은 쿠데타를 상징하는 또 다른 유물이었다. 이후 군사정권은 전역기념비의 머릿돌을 교체하고 그 머릿돌에서 박정희 장군이 전역사로 남긴 '불운한 군인'이라는 표현이 들어간 문구를 지웠다. 그 문구가 군사쿠데타를 연상시킨다는 게 이유였다.

그 와중에도 전역지공원이라는 이름은 그대로 남았다. 그러나 그 이름을 유지하는 것도 그나마 군사정권을 지탱하는 것이 가능했을 때의 일이다. 1987년 6월민주화항쟁 이후, 5·16군사쿠데타와 박정희 군사정권에 대한 역사적인 평가가 달라지면서 '육군대장 박정희 전역지공원' 역시 논란의 대상이 됐다. 결국 전역지공원은 민주화 바람을 타고, 1988년 군탄리라는 지명을 따 '군탄공원'이라는 단순한 이름으로 바뀌었다.

군탄공원, 육군대장 박정희 전역기념비 머릿돌.
 군탄공원, 육군대장 박정희 전역기념비 머릿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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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가 부각될 때마다 고개를 드는 '박정희 복원 시도'

이런 배경을 가진 군탄공원을 다시 '육군대장 박정희 전역지'라는 이름으로 되돌려 놓아야 한다는 주장이 일기 시작한 것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 박근혜가 '정치인'이 되면서부터다. 그러니까 철원군에서 '육군대장 박정희 전역지'라는 이름을 되찾으려는 시도가 있었던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정치계의 전면에 나설 때마다 부활 바람이 불었다.

2000년에 이미 철원군번영회 등의 민간단체가 중심이 돼 옛날 이름을 되살리려는 시도가 있었다. 부활 시도는 당시 15대 국회의원이었던 박근혜 의원이 한나라당 부총재로 선출된 이후에 일어났다. 그러나 당시는 김대중 정부 시절이었다. 그런 까닭에 전역지 명칭 부활 시도는 큰 힘을 받지 못했다. 게다가 이때 철원군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조차 복원 찬성 의사가 반대 의사에 밀리는 결과가 나왔다.

이후 전역지 명칭 부활 시도는 2012년 초 박근혜 대통령이 새누리당의 대통령 후보로 부각되고, 당내 경선을 거쳐 마침내 18대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면서 본격화된다. 철원군번영회와 철원행정개혁시민연합 등이 중심이 돼 '박정희 장군 전역지 지명복원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명칭을 되찾는 작업을 펼쳤다. 그 결과 지난달 26일 철원군 지명위원회(위원장 정호조 철원군수)는 군청 상황실에서 명칭 변경 심의회를 열고 만장일치로 전역지 명칭을 되살리기로 결정한다. 군탄공원으로 이름이 바뀐 지 25년 만에 일어난 일이다.

하지만 지명 복원 결과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복원을 추진한 세력이 명칭을 복원하는 과정을 일방적으로 진행했다는 지적이다. 지명위원회는 명칭 변경을 결정하면서 그 근거의 하나로, 지난해 9월 20일부터 11월 20일까지 3개월간 실시한 군민 여론조사 결과를 제시했다. 그런데 군청에서 실시했다는 이 설문조사에는 겨우 600여 명도 안 되는 인원이 참여한데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조사 결과에 심한 편차가 드러나 문제다. 철원군 인구수는 5만여 명에 가깝다.

철원군이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온라인' 조사에는 141명이 참여해 군탄공원을 전역지공원으로 변경하자는 의견에 88.7%인 125명이 찬성했다. 그리고 '오프라인' 조사에는 529명이 참여해, 48.7%인 255명이 찬성했다. 군탄공원 명칭을 그대로 유지하자는 의견에는 각각 7.8%와 38.5%가 찬성했다. 이 과정에서 군민을 대상으로 한 공개 토론회 같은 것은 없었다.

지명복원추진위원회가 전역지 지명을 복원하려는 이유에도 문제가 있다. 1988년에 전역지공원을 군탄공원으로 바꾸는 데는 5·16군사쿠데타를 비판하는 나름의 역사적인 이유가 있었다. 그런데 군탄공원을 다시 전역지공원으로 바꾸는 데는 공원을 "관광명소화"한다는 게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다. 당연히 전역지 명칭 변경을 둘러싸고 군민들 사이에 논란이 일지 않을 수 없다.

군탄공원, 공원 내력을 적은 안내판.
 군탄공원, 공원 내력을 적은 안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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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칭 변경 근거로 제시한 여론조사 "공신력 없다"

철원군농민회 김용빈 정책실장은 설문조사 방식에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전역지 명칭을 복원한다고 하면서 공식적으로 공개된 자리에서 군민들의 의견을 청취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설문조사는 복원을 추진하는 쪽에서 여러 단체에 문건을 보내 의사를 물어보는 방식으로 진행한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우리는 그 문건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설문지 발송 대상자를 임의로 선정한 게 분명하다, 설문조사 추진체도 문제"라며, "설문조사가 제3자나 전문기관에 의뢰한 것도 아니어서 공신력을 얻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김용빈 실장은 옛날 지명을 복원하는 것에도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철원에서는 군민들이 접경지역에 살면서 통일을 열망하는 미래지향적인 삶을 살고 있는데 유독 전역지 복원만 과거로 되돌아가는 것"이라며 "박정희 전 대통령은 알고 보면 너무 부끄러운 사람인데 복원을 추진하는 게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전역지 복원이 철원 지역을 떠나 전 국민이 박정희의 실체에 접근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원했다.

전교조 철원지회 허양욱 지부장은 교육적인 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관련해 5·16군사쿠데타 같은 것은 교육적으로 아직 역사적 평가가 끝나지 않은 부분"이라며, "이런 상태에서 전역지공원으로 지명을 복원하는 것은 결국 아이들에게 쿠데타든 뭐든 성공만 하면 된다는 식으로 가르치는 꼴이 돼 교육적으로도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허 지부장은 전역지 명칭 복원과 관련해 여론을 수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그는 "전역지 명칭을 복원하려 한다는 사실은 복원을 추진하는 사람들 외에 아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군청 홈페이지에서 설문조사를 한다는 사실조차 몰랐다"며 "이 문제는 먼저 여론화를 거친 다음에 무엇이 맞는 것인지 이야기를 해보고 나서 바꾸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명칭 복원을 추진한 사람들의 생각은 다르다. '육군대장 박정희 장군 전역지 유적공원화 사업추진위원회' 이근회 위원장은 먼저 전역지 지명을 복원하는 문제를 정치적인 시각으로 바라보지 말 것을 요구했다. 이 위원장은 지명 복원은 단순히 역사적 사실을 바로잡는 일에 불과하다는 것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그는 "(지명 복원은) 우리 지역에 역사적 사실이 존재하는 것을 그대로 복원하고 보존하려는 것"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이 위원장은 "정치하는 사람들은 박정희 전 대통령을 독재자다 영웅이다 하며 쌈들 하는데 우리는 거기에 끼기를 원하지 않는다"며 지명 복원에 반대하는 사람들과 일정한 선을 그었다. 그는 "그런 논쟁에서 벗어나 과거 대통령 했던 사람이 여기에서 전역을 했다는 사실은 바꿀 수 없는 것"이라며, "오히려 정치적인 논리에 의해서 명소 이름을 바꾸는 것이 역사를 역행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런 점에서 그는 1988년에 전역지를 군탄공원으로 바꿔놓은 것이야말로 "노태우 대통령이 나오면서 자신이 유신 세력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 정당한 행정 절차 없이 편의대로 바꿔버린 것"에 불과하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그는 앞으로 훼손된 전역비의 머릿돌을 원래대로 고쳐놓는 것을 비롯해, 전역지공원을 테마가 있는 관광지로 만드는 등 유적공원화하는 사업을 펼친다는 계획이다.


태그:#박정희, #박근혜, #박정희 장군 전역비, #군탄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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