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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들이 어미제비를 기다리는 아기제비처럼 목을 빼고 줄지어 서있다.
 여행자들이 어미제비를 기다리는 아기제비처럼 목을 빼고 줄지어 서있다.
ⓒ 조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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뭍을 떠나 섬에 간다. 뱃머리가 닿기도 전에 여행자의 마음은 풍선처럼 부풀어 올라 봄바람에 두둥실 떠오른다. 몇 해 전이었던가 금오도 대부산을 다녀온 게, 이후로 난 이 섬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다도해해상국립공원에 속한 여수 금오도는 큰 자라를 닮은 섬이다. 여수시 남면에 속해 있으며 해안선이 64.5km나 된다. 비렁길은 그 해안선으로 이어진다.

옛날에는 울창한 숲에서 사슴들이 무리지어 살아 조선고종 때 명성왕후가 이 섬을 사슴목장으로 지정 출입과 벌채를 금지했다고 한다. 이후 1885년 출입금지가 해제되자 관의 포수였던 박씨가 아들 삼형제를 데리고 들어와 두포에 정착했다.

철부선의 커다란 아가리는 거대한 버스까지 삼켜버렸다.
 철부선의 커다란 아가리는 거대한 버스까지 삼켜버렸다.
ⓒ 조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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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미제비 기다리는 아기제비처럼 부푼 꿈 안고 나선 뱃길

비렁길은 함구미에서 끝 마을인 장지까지 18.5km다. 5개 코스의 첫 출발지인 함구미가 비렁길의 시작이다. 그러나 우리 일행은 신기마을에서 배를 타고 들어와 여천마을에서부터 출발했다. 한 시간여 아스팔트길을 걷다보니 함구미에 당도했다. 신기마을에서 여천까지의 뱃삯은 편도 5000원이다. 철부선인 금호페리호 3척이 30분 간격으로 왕복 운항한다.

돌문어잡이로 널리 알려진 돌산도의 신기항은 예전의 한산했던 모습은 이제 찾아볼 수가 없다. 금오도 비렁길을 찾는 이들로 인해 마을 고샅길까지 주차해둔 차량들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었다.

철부선의 커다란 아가리는 거대한 버스까지 삼켜버렸다. 한 대를 싣자 육중한 배가 기운다. 버스 세대를 싣고서야 배는 선수를 돌려 신기마을을 뒤로하고 물살을 가른다. 봄바람에 실려온 갯내음이 좋다. 배 난간에는 여행자들이 어미제비를 기다리는 아기제비처럼 목을 빼고 줄지어 서있다.

여천마을에서 함구미까지 가는 길에 펼쳐지는 풍경들도 아름답다.
 여천마을에서 함구미까지 가는 길에 펼쳐지는 풍경들도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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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렁길의 출발점인 함구미 마을 풍경이다.
 비렁길의 출발점인 함구미 마을 풍경이다.
ⓒ 조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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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바위에는 강태공들이 점점이 보인다. 바다에 한가롭게 떠 있는 어선들, 양식장의 부표, 무리지어 하늘을 나는 갈매기, 이름 모를 섬들, 주마등처럼 바다의 풍경이 하나둘 스쳐간다. 바다는 쉼 없이 알 수 없는 그리움으로 철썩인다. 이내 여행자의 가슴에 파고들어 파문을 일으키곤 한다.

여천마을에서 함구미까지 가는 길에 펼쳐지는 풍경들도 아름답다. 우리 일행 말고 이 길을 걷는 이는 없다. 이따금씩 마을버스와 승용차가 오간다. 동백은 붉은 꽃망울을 활짝 터트렸다. 매화꽃도 흐드러졌다. 옥빛바다와 하얀 매화꽃의 대비가 멋스럽다. 아낙네들이 방풍나물을 캐고 있다.

"나오다가 방풍나물도 사씨요잉~, 싸디 싸 한 바구니에 5000원."

이 길을 걷다보니 많은 시간을 흘려보냈다. 오늘 걸을 비렁길은 함구미에서 두포까지 5km의 여정이다. 함구미 안내소에서 만난 문화관광해설사(최영선)의 말에 의하면 평일 하루에 300여 명, 주말이면 하루 600여 명이 이 섬을 찾는다고 한다.

금오도 비렁길의 시작이다.
 금오도 비렁길의 시작이다.
ⓒ 조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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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구미에서 두포까지 5km의 여정, 가는 내내 탄성 자아내

함구미 바다에서 해녀가 물질을 한다. 마을 돌담길을 지나 산길로 들어섰다. 여기서부터 금오도 비렁길의 시작이다. 풀섶에 떨어져 내린 붉은 동백꽃, 오솔길에서 마주한 진달래꽃이 아름답다. 절터와 신선대 두포로 가는 길이다.

아스라이 보이는 수평선과 점점이 떠 있는 섬 사이로 홀 로선 등대가 보인다. 황톳길이다. 이 길은 무리에 휩싸이지 말고 홀로 걸어야 더 운치 있다. 어디선가 목탁소리가 들려온다. 천혜의 절경을 뽐내는 미역널방이다. 기암절벽의 아름다움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주변의 풍경은 여행객의 발길을 붙들고 한동안 놓아주질 않는다.

함구미가 금오도 비렁길의 시작이다.
 함구미가 금오도 비렁길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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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혜의 절경을 뽐내는 미역널방이다.
 천혜의 절경을 뽐내는 미역널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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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풍경은 여행객의 발길을 붙들고 한동안 놓아주질 않는다.
 아름다운 풍경은 여행객의 발길을 붙들고 한동안 놓아주질 않는다.
ⓒ 조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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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 수평선에서 끝없이 밀려오는 그리움은 가슴을 일렁이게 한다. 비렁길을 걷는 이들의 얼굴에는 순간 환한 꽃이 피어난다.

"와~ 여기가 낙원이다."
"와따! 정말 멋지다."

바다로 치닫는 비렁길에서 철썩이는 파도소리가 귓전에 맴돌다 사라진다. 눈길 닿는 곳마다 아름다운 풍경이다. 산새 울음소리도 정겹다. 치유의 길, 금오도 비렁길에서 마주하는 대자연은 여행자들을 알 수 없는 행복감으로 가슴 벅차게 한다. 이 길은 느리게 걸을수록 좋다. 해찰을 부린 만큼 기쁨은 더 충만될 테니까.

어미소가 송아지를 혀로 어루만진다.
 어미소가 송아지를 혀로 어루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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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밭을 지나자 유채꽃의 진한 향기가 진동한다.
 마늘밭을 지나자 유채꽃의 진한 향기가 진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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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벽이 인상적이다. 전설에 의하면 드넓은 평지가 있는 이곳이 송광사 절터였다고 한다. 어미소가 송아지를 혀로 어루만진다. 짙푸른 마늘밭을 지나자 유채꽃의 진한 향기가 진동한다. 어디선가 아기염소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아기염소를 만난 아이들은 함성을 지르며 좋아한다.

"전주에서 왔는데 너무 너무 멋있어요."

비렁길에서 만난 아가씨들의 이야기다. 금오도 비렁길에는 소소한 즐거움이 한없이 펼쳐진다. 가다보면 만나고 돌아서면 또 있고.

내 생에 최고의 음식... 냉막걸리 한잔에 라면 한 젓가락

비렁길 쉼터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냉막걸리 한잔으로 목을 축이고 라면 한 그릇으로 요기까지 했다. 직접 만든 손두부에 막걸리 한잔, 노란 양은냄비에 담긴 라면의 맛은 아마도 오래도록 기억될 듯싶다. 내 생에 최고로 맛있는 음식이었으니 말이다.

냉막걸리 한잔이 목젖을 타고 넘자 온몸이 짜릿하다.
 냉막걸리 한잔이 목젖을 타고 넘자 온몸이 짜릿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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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 한잔에 라면 한 젓가락이지만 이 순간만큼은 고급 음식이 전혀 부럽지 않다.
 막걸리 한잔에 라면 한 젓가락이지만 이 순간만큼은 고급 음식이 전혀 부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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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마을 빨랫줄에 널려있는 옷가지들도 아름다운 풍경으로 다가온다.
 섬마을 빨랫줄에 널려있는 옷가지들도 아름다운 풍경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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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풍나물 포대를 지게에 지고 가는 할머니를 누렁이가 뒤따른다.
 방풍나물 포대를 지게에 지고 가는 할머니를 누렁이가 뒤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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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중 허기에 마신 냉막걸리 한잔이 목젖을 타고 넘자 온몸이 짜릿하다. 하산주를 먹기 위해 산행을 한다는 어느 산악인의 말이 떠오른다. 진짜 맛이란 이런 게 아닐까. 비록 막걸리 한잔에 라면 한 젓가락이지만 이 순간만큼은 고급 음식이 전혀 부럽지 않다.

한잔 술에 시장기까지 해결했으니 세상을 다 얻은 듯 기뿐 순간이다. 한참 가던 길을 되돌아 나와 함구미 마을로 다시 접어든다. 이어지는 코스는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해본다. 할머니가 방풍나물 포대를 지게에 지고 힘겨운 발걸음이다. 누렁이가 뒤따른다.

덧붙이는 글 | * 금오도 비렁길은 지난 23일에 다녀왔습니다.
* 이 기사는 다음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금오도, #냉막걸리, #비렁길, #탄성, #힐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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