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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열린 '영화 <링컨>의 정치적 해석' 특강에서 최장집 교수가 강연 중이다.
 23일 열린 '영화 <링컨>의 정치적 해석' 특강에서 최장집 교수가 강연 중이다.
ⓒ 김경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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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고귀한 목표를 추구하지만, 그가 다루는 무기는 음모와 폭력이다. 그 과정에서 그나마 고귀한 목표와 더러운 수단 사이를 양립시키기 위해 부단히 애쓰고 고뇌하는 사람이 정치가다. 영화 <링컨>은 그런 정치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좋은 영화다."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가 최근 개봉한 영화 <링컨>을 소재로 '정치의 본질'을 강의하는 시간을 마련했다. 23일 오후 4시 정치발전소 사무실에서 열린 '영화 <링컨>의 정치적 해석' 특강에서다.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가 사회를 맡은 이날 특강에는 30여 명이 참석했다.

최 교수는 미국 언론인 데이비드 브룩스의 <Why we love politics(우리가 정치를 사랑하는 이유)>라는 영화평을 인용하며 "영화 <링컨>은 실제로 정치가 움직이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교재"라면서 이날 특강을 준비한 이유를 설명했다.

"우리나라 진보, 목표부터 달성 가능한 것으로 수정해야"

영화 <링컨>은 링컨 대통령이 남북전쟁 종전을 앞두고 노예제 폐지를 명문화한 헌법 13조 수정안을 통과시키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13조 수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서는 하원에서 2/3 이상의 표를 얻어야 한다. 집권당인 공화당은 물론이고, 민주당의 반대파까지 설득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그나마 공화당도 급진파와 보수파로 양분된 상황.

링컨 대통령은 급진 노예 폐지론자 스티븐스 의원을 찾아간다. 그의 과격한 주장이 반대파를 자극하고, 협상을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다. 흑인과 백인의 '무조건적 평등'을 요구하는 그에게 링컨 대통령이 말한다.

"나침반은 당신이 선 곳에서 정북(正北)을 가리켜줄 것이오. 하지만 그 길에서 만날 늪과 사막과 협곡은 알려주지 않지요. 장애물에 주의하지 않고 목적지로 내달리다 늪에 빠져버리면 정확한 방향을 안들 무슨 소용이 있겠소?"

대통령의 말에 스티븐스는 '무조건적 평등'에서 '법 앞의 평등'으로 후퇴한다. 최 교수는 영화 속의 이 장면을 두고 "정치에서는 최소강령적 접근(마르크스주의에서 즉각적인 개혁에 대한 일련의 요구)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 진보파의 부족한 점이 그거다. 현실에서 할 수 있는 범위를 정하고,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것으로 낮게 잡아야 한다. 한국사회의 보수성 때문에 안 됐다, 수구세력 때문에 안 됐다고 할 게 아니라 목표부터 현실 가능한 것으로 수정해야 한다."

"국가보안법 폐지, 누가 들어도 합리적인 태도 필요"

최 교수는 최소강령적 접근의 필요성을 설명하며 2004년 국가보안법 폐지 시도를 예로 들었다. 그는 "국가보안법 폐지는 노예 해방과 마찬가지로 최대강령적 접근(마르크스주의에서 사회주의가 달성해야 할 최종 목표)"이라며 "남북 대치는 현실이기 때문에 국가보안법이 필요한 부분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걸 인정하면서 다른 법을 만들거나 독소조항을 없애는 등 누가 들어도 합리적인 태도가 앞으로 필요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진보파가 국가보안법 문제에 접근한 방식이 "링컨이 문제에 접근했던 방식"은 아니라는 것이다.

'영화 <링컨>의 정치적 해석' 특강에 참석한 시민들의 모습.
 '영화 <링컨>의 정치적 해석' 특강에 참석한 시민들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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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교수가 또 하나 강조한 것은 링컨 대통령의 연설 장면이다. 최 교수는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정치"로 유명한 게티스버그 연설이 아닌, 남북전쟁 종전을 앞두고 행한 2차 취임연설을 명연설로 꼽았다.

링컨 대통령은 북부인들의 기대와는 달리 남부가 패전의 책임을 지고 개혁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가 말한 것은 통합과 관용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심판 받지 않기 위해서는 상대를 심판하지 않도록 합시다. 남북 어느 쪽의 기도도 신의 응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어느 쪽도 신의 충분한 응답을 받지 못했습니다.…"

최 교수는 "이상과 대의를 말했던 게티스버그 연설에 정치를 넣었을 때 나온 것이 2차 취임연설"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하나의 미국을 위해 전후처리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승자의 태도를 보여줬다는 것이다.

"그래서 <링컨>이 중요하다"

최 교수는 한국 정치가 잘 작동하지 않는 이유로 하부기반의 붕괴를 지적했다. "교육적, 문화적, 도덕적 환경 등의 하부기반이 붕괴된 상황"이라는 것이다. 특히 그는 "도덕적 기반을 바로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강력한 열정은 잘 살아보자는 거다. 권력과 돈을 향한 열정, 이것이 너무나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도덕적인 기반을 어디서부터 만들어나갈 것인가. 큰 도덕적인 지표를 만드는 것이 너무나 중요하다."

최 교수가 대안으로 제시한 것은 민주주의다. 그는 "지금 시대의 우리 사회에서 대안은 민주주의 가치와 이념에서 나와야 한다"며 "보통 사람들의 이해와 요구를 잘 포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래서 <링컨>이 중요하다"며 링컨 대통령의 리더십을 강조했다.

"링컨은 실제로 대중 속에서 조직을 하고, 대화하고, 그 속에서 지식을 얻은 아주 민주적인 사람이다. 영화에도 링컨 대통령이 보통 사람들과 대화를 즐기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 면에서 영화 <링컨>이 상당히 교육적인 의미를 갖지 않을까."


태그:#링컨, #최장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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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15기 인턴기자. 2015.4~2018.9 금속노조 활동가. 2019.12~한겨레출판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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