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기사 수정 : 24일 오후 8시 54분]

전남 담양군에서 발원한 영산강은 호남평야를 가로질러 목포에서 바다와 만나는 호남의 젖줄기다. 물길을 따라 수많은 역사와 문화를 간직하고 있으며, 다양한 생태계를 품고 있는 곳이 바로 영산강이다. 하지만 4대강 사업으로 영산강은 저수지가 되어가고 있다. 흐르지 못하는 강은 상처를 입고 아파하고 있다. 지난 3월 둘째 주 영산강 현장을 찾았다. SBS <물은 생명이다>는 이런 모습을 4대강 기행 네 번째로 지난 22일 방영했다.

70년대 영산강 유역 종합개발사업이 진행됐다. 장성댐, 담양댐, 광주댐, 나주댐 등으로 상류, 중류 지류의 물길이 막히더니, 바다와 만나는 지점에 하굿둑이 자리잡게 됐다. 물의 흐름이 줄어들고 오염원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강의 자정 기능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게다가 수질 개선 및 생태계 개선을 목표로 삼은 4대강 사업마저도 본류에 승촌보, 죽산보 등으로 그나마 남아 있는 물길을 막아버렸다.(※승촌보, 죽산보도 댐으로 불려야 한다.)

이에 대해 광주환경운동연합 최지현 사무처장은 "(4대강) 공사로 인한 좋지 못한 현상이 계속 나타나고 있다. 공사 중에도 그랬고 계속 문제점이 있었는데, 여전히 문제점이 진행 중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수질 개선의 중요한 역할을 했던 습지가 준설로 사라졌다는 점이다. 습지는 '생태계의 콩팥'이라 불릴 만큼 생물 서식지에 주요한 기능을 담당하고 있었다.

4대강 부작용 규명에 300일 걸린다? 농지 침수 피해에 멍드는 농심

4대강 사업으로 새롭게 조성된 담양습지 부근 하중도 머리 부분이 물살에 파여 나가 있다. 4대강 사업으로 영산강의 기존 습지가 상당부분 훼손됐다는 것이 지역 환경단체의 지적이다.
▲ 파여나간 담양습지 4대강 사업으로 새롭게 조성된 담양습지 부근 하중도 머리 부분이 물살에 파여 나가 있다. 4대강 사업으로 영산강의 기존 습지가 상당부분 훼손됐다는 것이 지역 환경단체의 지적이다.
ⓒ 이철재

관련사진보기


영산강의 대표적인 습지는 강변에 대나무숲이 울창했던 담양습지였다. 현재 이곳은 4대강 공사로 빽빽했던 숲과 습지의 일부가 훼손됐다. 그나마 법적으로 습지보전구역이기 때문에 이 정도로 공사가 끝났다는 것이 최지현 처장의 말이다. 최 처장은 기존 습지 훼손에 따라 대체습지를 조성한 곳이 있는데 오히려 하천에 안 좋은 영향을 주고 있다면서 문제로 지적한다.

영산강 곳곳에서 조류가 떠다니는 것을 눈으로 볼 수 있으며, 강바닥에는 물감을 풀어 놓은 듯 조류가 가득하게 자리잡고 있다. 세제 성분이 포함된 폐수가 유입돼 댐 하류 곳곳에서 비누거품이 뭉쳐 있는 것도 어렵지 않게 보이고 있다. 습지 등이 사라지고 대체습지가 유명무실한 상황에서 수질 개선이 쉽지 않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4대강 사업이 가져 온 문제는 농경지 침수 피해도 있다. 전남 나주시 신석리 (죽산보 상류 약 1Km) 일대 10헥타르에 달하는 농경지에는 지금쯤 파란 보리가 수북히 키를 높이고 살을 찌워야 했다. 하지만 보리는 5cm도 자라지 못한 채 뿌리가 말라가고 있었다. 이 마을 진득근 이장(73)은 4대강 공사 때문이라 지적한다. 보리와 벼농사 등 2모작을 하는 이곳은 죽산보 건설 이후 물이 차올라 피해가 계속되고 있다는 것.

물이 차오르는 것은 보리농사만이 아니라 벼농사도 힘들게 한다. 모내기며 수확 등을 기계로 해야 하는데, 콤바인 등의 장비가 빠지기 때문에 경작지에 들어갈 수조차 없다는 것이다. 이 지역에서 50년 동안 농사를 지어 왔다는 윤영동(67)씨는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라면서 허탈해했다. 이 지역 4대강 사업을 담당한 익산지방국토관리청 등 10여 곳에 민원을 냈지만 제대로 해결이 되지 않았다며 울분을 토하고 있다.

광주환경운동연합과 언론이 이 지역 침수피해 상황을 지적하고 나서야 익산지방국토청이 원인 조사에 나섰다. 공사 전 이 지역은 침수 피해가 없을 것으로 예상됐고, 침수 방지 시설까지 설치했기 때문에 현재 발생하고 있는 원인에 대해 정밀 조사를 예정하고 있다는 것이 익산지방국토청이 설명이다. 결과가 나오는 데만 1년이 걸린다고 한다.

안개-토종어류 절멸 위기 등 예견된 부작용

전남 나주시 신석리 일대 농민들은 4대강 사업으로 만들어진 영산강 죽산보 때문에 침수 피해를 받았다고 말하고 있다. 영농장비등이 빠져 보리농사는 물론, 벼농사도 못짓게 될 상황에 농민의 가슴이 멍들고 있다.
▲ 속이 타는 농심 전남 나주시 신석리 일대 농민들은 4대강 사업으로 만들어진 영산강 죽산보 때문에 침수 피해를 받았다고 말하고 있다. 영농장비등이 빠져 보리농사는 물론, 벼농사도 못짓게 될 상황에 농민의 가슴이 멍들고 있다.
ⓒ 이철재

관련사진보기


진득근 이장은 "우리가 박사가 아니어도 누가 봐도 뻔한 상황을 300일이나 걸리는지 모르겠다"면서 답답해 했다. 최지현 처장은 "4대강 공사는 속도전으로 밀어붙여놓고, 피해 규명은 거북이걸음"이라면서 행정관청의 늑장 대응을 지적했다. 주민들은 보의 수위를 한 달만 내려 보면 죽산보와 농지침수의 인과관계를 명확하게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보리농사에서 손해를 받은 상황에서 벼농사마저 망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지역 주민에 의하면 4대강 사업 이후 안개도 심해졌다고 한다. 진득근 이장은 "예전에도 안개가 있었지만, 그 때와 비교가 안 된다"면서 "10m 전방도 안보일 정도로 심하다"며 최근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그 때문에 과수원 등에서는 농약을 예전에 10번 치던 것을 15번 정도 치는 상황이 됐다고도 말하고 있다. 4대강 사업의 예상된 부작용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토종어류가 사라지고 외래 어종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등 수중 생태계 변화도 4대강 사업 부작용의 하나다. 충남대 생물과학과 안광국 교수는 영산강의 외래어종 베스를 예로 들면서 "심한 경우 단위 밀도가 10배 증가했다"고 말하고 있다. 2011년 영산강 외래종 비중은 9.7%였으나, 보가 완성된 이후인 지난해에는 22%로 급증했다. 고인 물을 좋아하는 어종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심각한 것은 토종물고기 멸종이 우려된다는 점이다. 안 교수는 "저수지와 같이 밀폐된 공간은 시간이 지나면 토종물고기가 한두 종을 제외하고 거의 사라지게 된다"면서 육식성 어종인 베스의 번성을 그 이유로 들고 있다. 영산강 보 근처에 밀집하고 있는 베스는 시간이 지나면서 상류 등 다른 곳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안 교수의 우려이다.

영산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물을 흐르게 해야 한다는 것이 지역 환경단체 및 전문가의 주장이다. 죽산보, 승촌보 등의 문제와 함께 30여 년 동안 물의 흐름을 막고 있는 영산강 하구언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수질 및 생태계 개선이 어렵다는 것이다. 영산강 하굿둑 인근 주민에 따르면 여름이면 하구호 물이 끓어오른다고 말한다. 하굿둑으로 막혀 생긴 퇴적물에서 거품이 올라온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전남대 지구환경과학부 전승수 교수는 "하구호 밑에는 빈산소층(산소가 부족한 상태)이 형성되고, 어떤 때는 산소가 전혀 없는 상태가 되기도 한다"면서 "(하구호) 퇴적물은 시커멓게 하수구처럼 쌓여 있는 상태"라 말하고 있다. 전 교수는 "퇴적물이 썩고, 산소가 전혀 공급이 안 되니까 생물도 살 수 없다"며 하굿둑으로 인한 심각한 현재 상태를 말해주고 있다. 이는 상류에서 맑은 물을 보내도 하굿둑이 있는 한 수질이 개선되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4대강 해법, '강물은 흘러야 한다'가 원칙이 되어야

1981년 완공된 하굿둑으로 강물이 바다를 만나는 것은 쉽지 않게 됐다. 물의 흐름이 막히자, 영산호는 퇴적물이 썩어 빈산소상태가 되는 등 심각한 수질 상황을 보이고 있다.
▲ 영산강 하굿둑 1981년 완공된 하굿둑으로 강물이 바다를 만나는 것은 쉽지 않게 됐다. 물의 흐름이 막히자, 영산호는 퇴적물이 썩어 빈산소상태가 되는 등 심각한 수질 상황을 보이고 있다.
ⓒ 이철재

관련사진보기


목포환경운동연합 공동의장 도관 스님은 "영산호의 심각한 수질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해수유통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하굿둑의 일부분을 열어서라도 강과 바다가 만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의 지적이다. 방조제로 막혀 수질이 심각해진 시화호에 해수를 유통시켜 수질을 개선한 사례는 영산강 하굿둑 문제에 있어 의미하는 바가 크다.

영산강이 심각해진 것은 '물은 흐른다'라는 자연의 이치를 거슬렀기 때문이다. 4대강 사업으로 만들어진 승촌보, 죽산보와 함께 하굿둑에 대한 근본적 해결 방안이 마련되지 않으면, 영산강은 수질 악화와 생태계 파괴의 또 다른 사례가 될지도 모른다. 최지현 사무처장은 "자연의 이치를 따르는 것이 곧 시민의 혈세를 줄이는 방법"이라 말하고 있다.

SBS <물은 생명이다> 팀들과 지난 2월부터 낙동강, 금강, 영산강 등 4대강 공사 현장을 다녔다. 그곳 모두 공통적으로 침수피해, 생태계 훼손, 수질 악화 등 4대강 사업의 부작용, 즉 예견된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었다. 날이 더 풀리면, 물빛은 지금보다 더 녹색으로 변할 가능성도 높은 상황이었다. 우리는 4대강 사업 부작용에 대한 해법을 이미 알고 있다. '강은 흘러야 한다'는 명제가 바로 그 해법의 시작이 아닐까 한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에도 올립니다.



태그:#영산강, #4대강, #죽산보, #승촌보, #하구둣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강/유/미' 세상을 꿈꿉니다. 강(江)은 흘러야(流) 아름답기(美) 때문입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