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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6시 20분 핸드폰 알람이 울립니다.

'어서 눈 떠. 오늘 하루를 시작해야지.'

핸드폰 알람은 재촉하고 나는 "10분만 더. 아니 5분만 더~"라고 말하지만, 이불속으로 다시 기어들어갈 여유가 없다는 걸 압니다. 기지개를 켜고 멀찌감치 떨어뜨려 놓은 핸드폰을 주섬주섬 찾아 알람을 끄고 108배 도우미 어플을 켜고 108배를 합니다.

아침을 알리는 핸드폰 알람

아침에 우리 가족들 모두 순조롭기를 오늘 하루 내 마음이 평화롭기를 바라며 절을 합니다. 10분 남짓 절을 하고 나면 잠도 깨고 땀도 납니다. 씻고 나오면서 라디오를 켜고 방불을 켜고 남편을 깨웁니다.

남편도 두말없이 일어나 씻고 아이들 먹을 것을 준비합니다. 나갈 준비를 마친 나는 아이들을 깨웁니다. 아침을 여는 가장 중요한 순간입니다. 곤히 잠들어있는 아이를 깨우는 일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익숙해지지가 않습니다. 그래도 깨워야지요. 언젠가부터 나도 모르게 아이들 등짝을 손바닥으로 쓸면서 "아이구. 잘잤다. 이제 일어나자" 합니다.

등을 쓸어주는건 제가 어렸을때 아빠가 밤 늦게 돌아와 자고 있는 저에게 '아빠 들어왔다'며 하던 인사였지요. 아빠 손은 늘 굳은 살과 못이 박혀 있어서 그 까슬까슬한 손바닥으로 등을 천천히 쓸어주면 등이 시원했었는데 제 손바닥은 아빠 손에 비하면 너무 부드럽네요.

어린이집 모습
 어린이집 모습
ⓒ 이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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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우선 일곱 살 먹은 아들 녀석을 들쳐 안고 등을 쓸어 주면서 "일어나자. 우리 아들 잘잤다. 일어나자"고 합니다. 뽀뽀도 하고 다리도 주물럭 거려주고 하면 아들이 제 품에서 한껏 기지개를 켜고 일어납니다. 이제 제법 키가 커서 기지개를 켜는 힘이 대단합니다. 아이 머리 맡에는 어제 골라 놓은 옷이 있습니다. 아이가 눈을 비비며 주섬 주섬 양말을 자기 발에 꿰 넣습니다. 그러면 저는 이제 다섯 살 딸아이를 깨우려 다가갑니다. 긴장합니다.

'아~ 오늘 아침 순조롭기를~' 첫째마냥 들쳐 안아 깨우려고 하지만 안기지 않으려고 몸을 뻣대며 징징거립니다. 느낌이 옵니다.

'아.. 오늘은 쉽지 않겠구나.'  첫 번째 관문입니다.

"나, 이 옷에 그러져 있는 그림이 마음에 안 든단 말이야."

이 정답 없는 수수께끼 놀이는 정말이지 자신이 없습니다. 아빠가 등장할 차례입니다. 아빠는 딸아이 손을 잡고 옷방으로 갑니다.

"준영이가 골라봐." 

그 다음 관문입니다.

"이 양말은 너무 짧아. 목이 긴 양말 줘."

긴 양말이 옷장에 없습니다. 빨래 널어 놓은 곳으로 갑니다. 그렇게 딸과 아빠가 입을 옷으로 실갱이를 하는 동안 저와 아들은 간단히 빵을 먹습니다. 저는 시계를 자꾸 쳐다봅니다. 식탁으로 딸아이가 등장합니다.

"이 빵은 너무 딱딱해" 하며 또 징징합니다. 그럴 수밖에요. 딱딱한 정도는 아니지만 빵이 충분히 식고 남을 시간인 데다가 이제는 정말로 출발해야할 시간입니다. 아빠도 "이제 아빠 더는 못 도와줘" 하는데 살펴보니 남편은 아직 팬티바람입니다.

"너 아침부터 정말 이럴래?"

손에 빵을 쥐고 있는 딸에게 "차에서 먹자" 하며 나가자고 하는데 딸은 뭐가 어쩌구 저쩌구 하며 또 징징거립니다. 딸은 아빠한테 데리고 나오라 하고 저는 아들을 대리고 나가 카시트에 앉히고 차를 뺍니다. 아빠가 딸을 안고 나옵니다. 카시트에 앉히니 안전띠 때문에 답답하다는 둥 불편하다는 둥 계속 징징거립니다. 신경이 점점 날카로와집니다.

딸아이는 급기야 "엄마. 이 빵에 바른 잼 야채잼이라며. 왜 야채맛이 안 나!"하며 우는데 정말 두손 두발 다 들었습니다. 결국 큰 소리를 내고 맙니다.

"야! 손준영! 너 아침부터 정말 이럴래? 아침을 웃으면서 시작하고 싶단 말이야!!!!"

아들도 한마디 보탭니다. "야! 손준영. 너가 자꾸 짜증내니까 나도 짜증나잖아!" 준영이는 이 사람 저사람 뭐라고 하니까 다시 앙 울음을 터트립니다.

그러든 어쩌든 남편은 전철역에 떨궈주고 아이들을 어린이집으로 데리고 갑니다. 시계를 보니 오전 7시 50분. 딸아이는 아침에 울고 싶은 만큼 울고 징징거리고 싶은 만큼 징징거렸는지 아니면 더 이상 비빌 언덕이 없음을 이제는 깨달았는지 늘 하듯 "오늘 좋은 하루 보내" 하며 뽀뽀하고 안아주고 손흔들어주니 쪼르르 어린이집으로 달려들어갑니다. 그렇게 두 아이가 나에게 등을 보이며 들어가다 내가 갔나 안 갔나 살피려고 다시 뒤돌아 손을 흔듭니다. 그런 모습을 볼때면 기분이 묘합니다.

결국 헤어지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아침시간이네요. 조금 서글퍼집니다. 그러나 그런 기분을 길게 붙잡고 있지도 못합니다. 일하는 곳으로 가야하니까요. 하루에서 1부가 마무리 되고 2부를 시작합니다. 가장 긴 2부. 오전 8시 40분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제 아이들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등장하지 않는 것에 감사해야 합니다. 아이가 많이 아프거나 집안에 일이 있으면 2부에서도 아이들은 그리고 집안 일은 어떤 형태로든 계속 등장을 하겠지요.

그래요. 2부에서 엄마로서 아내로서 며느리로서 말고 그냥 나로서 2부 역할을 잘 해내기 위해 아등바등 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합니다. 오후 5시가 넘어 핸드폰이 울립니다. 남편입니다. 3부를 알리는 알람입니다. 남편이 말합니다.

"여보. 집주인한테 전화해봤어?"
"응? 아.....맞다!"

그제서야 휘리리릭 아침 상황으로 기억이 감깁니다.

아래층 할머니! 우리집 보일러관이 너무 낡아서 누수가 된 덕에 아래층 할머니집 천장에 물이 떨어져서 며칠전에 바닥을 뜯고 보일러관을 갈았거든요. 공사한 날 일 마치고 집에 들어가 쌓인 시멘트 먼지 쓸고 닦느라 고생했던 기억이 생생한데 아침에 할머니가 집 문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2층에서 내려오는 나에게 물이 또 샌다면서 집주인에게 연락좀 해보라고 했던 기억이 그제서야 떠올랐습니다.

출근길에 차안에서 남편이 "내가 아침에 전화할 여유가 없을 것 같아. 당신이 해봐" 하길래 "그래. 내가 해볼게"라고 씩씩하게 말해놓고는 정말로 까맣게 잊고 있었네요. 남편과 내가 오늘은 저녁에 약속이 없는 터라 "어린이집에서 퇴근하고 만나자" 하고 전화를 끊습니다. 그리고 바로 집주인한테 전화를 해서 상황을 알립니다.

"토요일에 어린이집 가는 거 어때?"

남편과 함께 육아를 나누어도 버거운 것은 어쩔 수 없다 (자료사진)
 남편과 함께 육아를 나누어도 버거운 것은 어쩔 수 없다 (자료사진)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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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주인은 귀찮고 돈드는 일 때문인지 심기가 불편합니다. 그것까지 신경쓰자니 3부에서 쓸 에너지가 간당간당합니다. 집주인과 나눈 대화는 머릿속에서 지웁니다. 결국 저녁은 밖에서 먹기로 합니다. 일을 하면서 저녁밥을 차려먹는 게 언제쯤 수월해질까요? 집에서 먹는 밥이 좋다는 걸 알면서도 저녁밥은 자주 사먹게 됩니다. 아이들을 어린이집에서 찾아 식당으로 가면서 차안에서 남편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눕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보니 이번주 토요일에 아침 일정이 겹칩니다. 남편은 병원을 가야 하고 나는 어린이집 엄마들과 그림책 모임을 해야 됩니다. 이렇게 일정이 겹치면 서로 예민해집니다. 나는 그럼 토요일에 아이들을 어린이집(시립 어린이집이라서 토요일에도 운영을 합니다)에 맡기자고 하지만 남편은 토요일까지 애들을 어린이집에 보내는 게 못마땅한가 봅니다. 한숨을 쉬더니 결국 자기가 병원을 가지 않겠다고 합니다. 병원을 안 간다는 남편의 말에 내가 울컥합니다. 그런데 서로 날카로와졌을 때 이러쿵 저러쿵 이야기를 하면 이야기가 더 꼬인다는 걸 결혼 8년차 부부는 바로 알아차립니다. 그래서 둘다 입을 다뭅니다.

약간 무거운 분위기에서 밥을 먹고 집에 들어옵니다. 내가 화장실 간 사이 남편이 아이에게 물어봤나봅니다.

"준열아. 토요일에 어린이집 가는거 어때?"

그런데 아들 반응이 좋았나 봅니다. 화장실에서 나오니 "준열이가 어린이집에 가고 싶어하네. 그럼 토요일에 애들 어린이집에 보내보던가" 하며 넌지시 말하네요. 그렇게 문제가 풀립니다. 다행입니다. 남편도 편하게 병원을 다녀오고 나도 그림책 모임을 편하게 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아이들을 씻겨서 내보내면 남편이 아이들을 수건으로 닦아주고 로션을 발라주고 옷을 입혀줍니다.

내가 이부자리를 보고 이것저것 정리하는 동안 남편은 아이들이 만들어달라는 것 도와달라는 것을 거듭니다. 가끔 남편과 저 둘 가운데 한명이 2부에서 에너지를 다 써버리는 통에 집에 와서 먼저 널부러지기도 하고 다른 일로 아예 3부에 등장하지 않을때도 있지요. 때로는 간당간당한 에너지를 딱딱 긁어 쓰느라 날카로와져 아이들에게, 서로에게 생채기를 낼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럴때도 있고 저럴 때도 있다는걸 이제는 좀 알 것 같습니다. 남편이 힘들어하면 내가 좀더 힘을 내고 내가 힘들어하면 남편이 좀더 힘을 내면서 어쨌든 두바퀴로 굴러가야한다는 걸 몸으로 마음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1부와 3부에 잠깐 등장하는 엄마 아빠가 가족이라는 온전함으로 다가오려면 나와 남편이 서로 잘 연결되어 있고 서로 의지할 수 있어야 함을 새삼스럽게 느낍니다.

드디어 대단원의 3부 막을 내리는 순간입니다. 하루가 좋았든 힘들었든 서로에게 고마웠든 서운했든 막을 내릴 때 하는 말은 늘 풍성합니다.

"잘자라, 우리 아들, 딸 엄마 아빠가 많이 많이 사랑해~"

그렇게 잠이 들고 어김없이 핸드폰은 6시 20분 알람을 울리겠지요.


태그:#일하는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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