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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베니아 류블랴나의 여름날 풍경. 조용하고 평화롭다.
 슬로베니아 류블랴나의 여름날 풍경. 조용하고 평화롭다.
ⓒ 서지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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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초여름부터 가을까지 4개월 정도 동유럽을 떠돌았다. 터키의 이스탄불에서 기차를 타고 불가리아 소피아로 입국해 마케도니아·알바니아·몬테네그로·크로아티아·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세르비아·헝가리·슬로베니아까지.

프랑스와 독일·스위스와 영국 등 서유럽보다는 아직은 한국인 여행자가 적은 지역. 그러나, 한 나라에서 꼭 한 명 이상은 한국인 여행자를 만났다. 그때마다 반가웠다. 같은 언어를 쓰고, 유사한 감정 체계를 가진 이들을 오랜만에 본다는 것은 설명하기 힘든 희열 같은 것을 선사했다. 그들도 나와의 짧은 만남이 반가웠는지는 별개의 문제로 두고.

놀라웠던 건 동유럽에서 만난 이들 대부분이 나보다 열댓 살이 어린 친구들이었다는 것. 더욱 놀라운 것은 20대 초반의 여성 단독 여행자가 꽤 많았다는 사실이었다.

참으로 고마웠던 청년들, 그들도 나를 기억할까

내가 스물두어 살이던 1990년대 초반. 그때도 해외여행이 자유롭긴 했다. 그러나 자유화 조치 초반이었고, 방학을 이용해 유럽 배낭여행을 다녀오는 학생들은 극히 드물었다. 요즘은 많은 학생들이 경험한다는 '해외 어학연수' 역시 마찬가지.

잠시 잠깐 그들과 만나 함께 밥을 먹거나 음료수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세월과 세상이 달라졌음이 새삼 실감이 났다. 당시 어린 친구들에게 신세도 여러 번 졌다.

동유럽 도시들은 소박하고 아름답다. 슬로베니아, 알바니아, 마케도니아, 몬테네그로 등이 다 그렇다.
 동유럽 도시들은 소박하고 아름답다. 슬로베니아, 알바니아, 마케도니아, 몬테네그로 등이 다 그렇다.
ⓒ 서지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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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 국제버스터미널에서 만난 대학생 둘. 사촌 간이라는 그들은 스마트폰이나 노트북 컴퓨터는 고사하고 가이드북 하나 없이 '미친 자의 지팡이처럼' 여행하는 나를 걱정하며 한국어로 된 '동유럽 가이드북'을 선뜻 내줬다. 그게 고마워 나는 노천카페에서 맥주를 사고, 거기에 더해 자신들이 묵었던 싸고 깨끗한 숙소까지 데려다주겠다는 친절까지 보였다.

마케도니아의 호수마을 오리드에서 만난 R도 잊을 수 없다. 중국에서 출발해 베트남까지 자전거를 타고 여행한 경험이 있다는 그와는 같은 숙소에서 열흘을 지내며 우정을 쌓았다. 그 기간 동안 그 마을에 머물던 동양인은 우리가 거의 유일했다. 호스텔 주방에서 R이 만들어준 유럽산 쌀로 만든 고기덮밥의 맛은 아직까지도 선명하다. 그와는 한국에 돌아와 두 번을 만났다. 함께 마시는 소주가 달았다.

헝가리 부다페스트역에서 조우한 한국인 자전거 여행자도 내겐 은인이다. 급하게 오스트리아로 전화를 해야 할 상황이었는데, 아무리 살펴도 국제통화가 가능한 공중전화를 찾을 수 없었다. 그는 처음 본 내게 선뜻 자신의 스마트폰을 빌려줬다. 돌아가면 곧 복학할 것이라는 그에게 고마움의 뜻으로 차가운 콜라 하나를 전했다. 깍듯하고 예의 바르게 그걸 받으며 웃던 잘생긴 청년. 보기 좋았다.

슬로베니아 류블랴나에서는 한국서 학군단 장교로 군 의무를 필하고, 군인 당시 모은 돈으로 10대 후반부터의 꿈이었다는 '세계일주 여행'을 떠나온 20대 중반 사내를 만났다. 그는 이미 인도와 아시아 여행을 마쳤고, 유럽을 거쳐 남아메리카를 돌아볼 계획이라고 했다.

그 친구 역시 이탈리아 베니스로 갈 것이라는 내 이야기를 듣고는 직접 전화를 걸어 숙소까지 알아봐주고 저렴하게 베니스를 여행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상냥함을 보였다. 최근 그의 소식을 페이스북을 통해 들었다. 원하던 기업에 취직했단다.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축하의 인사를 남겼음은 물론이다.

용감한 여성 단독 여행자들, 우리 한번 봐야지?

지금까지의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이들은 모두 군대를 마친 남성 여행자. 위험이 닥쳐도 저항할 나름의 힘을 갖췄다고 생각되는. 이제부터는 앞서 언급한 여성 단독여행자들 이야기다. 아직까지는 비교적 '미지의 여행지'라 불리는 발칸반도를 혼자서 종횡무진하고 있었기에 대견하고, 놀라워서 밥 한 끼, 커피 한 잔이라도 사주고 싶었던 용기 있는 한국의 여성들.

터키 이스탄불의 하이데라파샤역. 기차역이라기 보단 예술품에 가까워보인다.
 터키 이스탄불의 하이데라파샤역. 기차역이라기 보단 예술품에 가까워보인다.
ⓒ 홍성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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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리아와 세르비아·루마니아와 폴란드 등 동유럽을 3개월 정도 돌아볼 요량으로 한국을 떠나왔다는 S를 만난 건 터키의 이스탄불이었다. 똘망똘망하게 생긴 여자아이가 게스트하우스 로비에 혼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게 인상적이었다.

학부와 대학원에서 건축을 전공했다는 S는 친구들 대부분이 취업에 목을 매는 상황에서 여유도 만만하게(?) 여행을 결정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아등바등한다고 세상일이 내 마음대로 되겠어요? 그리고, 어차피 취직을 하면 이렇게 긴 여행을 떠나기는 힘들 것 같고…." 요새 젊은이들이 쓰는 단어를 인용하자면 '쏘 쿨(So Cool)'했다.

불가리아 소피아로 떠나는 그녀를 시르케지역까지 배웅한 게 지난 2011년 5월이다. 그로부터 2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예정대로 여행을 마친 S는 한국으로 돌아와 자신의 전공을 살려 한 대기업에 취업했다. 바로 며칠 전 우리는 1년 9개월 만에 만나 함께 스파게티를 먹고 포도주를 마셨다. 얼마나 반가운 지 두 시간을 지치지 않고 수다삼매경에 빠졌다.

마케도니아의 수도 스코페. 목가적인 풍경이다. '가난한 자들의 성녀'로 불리는 테레사 수녀가 여기서 태어났다.
 마케도니아의 수도 스코페. 목가적인 풍경이다. '가난한 자들의 성녀'로 불리는 테레사 수녀가 여기서 태어났다.
ⓒ 홍성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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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명의 독특한 캐릭터를 가진 스물셋 여대생은 마케도니아의 수도 스코페에서 만났다. 아기 같은 순한 얼굴을 가진 P. 나를 만났을 때 이 친구는 만만찮은 어려움에 봉착해 있었다. 네덜란드에서 교환학생 과정을 마치고 귀국 전에 동유럽 몇 개 나라를 돌아보는 중이라던 그녀. 전날 은행 현금지급기를 이용했는데, 그 기계가 자신의 체크카드를 먹어버렸다고 했다.

영업시간이 끝난 후라 어쩔 수 없이 숙소로 돌아왔고, 은행이 문을 여는 시간에 맞춰 카드를 찾으러 갈 텐데 만약 카드가 고장이면 문제가 크지 않은가. 생면부지의 낯선 곳에서 현금이 없다는 건 전쟁터에서 총알이 떨어진 것과 같다. 그런데, 이것 봐라. 얼굴에선 근심과 우려가 전혀 읽히지 않는다.

"그렇게 될 운명이라면 어쩌겠어요. 받아들여야죠."

나는 걱정스러운 마음에 아버지 흉내(?)를 냈다. "카드를 찾건 못 찾건 점심은 아저씨가 살게요. 그리고, 현금이라면 나도 좀 있으니, 한국 부모님 집으로 연락해서 방법을 찾아봅시다." 다행히 스코페 은행의 현금지급기는 P의 카드를 고장내지 않은 채 머금고 있었다. 천운이었다.

어쨌건 약속대로 그녀와 점심을 먹었다. 맛있는 걸로 고르라고 했지만, 굳이 메뉴판을 꼼꼼히 살펴 비싼 음식 주문을 피하던 순진한 학생. 그녀는 복학해서 4학년이 됐다고 한다. 방학이라 고향에 머물다 최근 개학을 맞아 서울로 올라올 것이라는 소식을 페이스북을 통해 알았다. 3월이 가기 전 P와도 맛있는 저녁식사를 함께 할 계획이다. 이번에는 비싼 걸 주문해도 된단다.

연락 주세요... 밥 한 끼 합시다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 거리에서 펼쳐지는 재즈 공연이 흥겨웠다.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 거리에서 펼쳐지는 재즈 공연이 흥겨웠다.
ⓒ 홍성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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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지막 기억 속의 단독 여성여행자. 2011년 8월쯤이었을 게다.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에 3일을 머물렀다. 날씨는 강물에 계란을 삶아도 될 정도로 무더웠고, 아스팔트는 열기를 뿜어내며 녹아내렸다. 베오그라드 시내 중심가는 오르막길이 많다. 돌아다니다 힘들면 땀을 식히려 카페에 들러 차가운 음료수를 마시곤 했다.

그날도 그랬다. 맥도날드가 눈에 띄길래 가벼운 점심식사나 할 겸 들어섰다. 야외 좌석에 자리를 잡았는데 바로 옆 테이블에 얼굴이 뽀얀 여자아이 하나가 볼펜 색깔을 바꿔가며 뭔가를 열심히 메모하고 있었다. 멀리서 봐도 한국어와 중국어·일본어는 구별이 된다. 반가운 마음에 다가가 물었다.

"한국에서 왔어요?"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그녀 역시 혼자서 동부유럽을 여행하고 있었다. 나이는 겨우 스물하나. 세간에 떠도는 농담처럼 이야기하자면 '첫사랑에 실패하지 않았다면 내 딸 또래'인 친구다.

그녀는 자기 학교에 교환학생으로 와서 친해진 세르비아 친구를 기다린단다. 그늘 한 점 없는 눈빛에 또래다운 친절하고 귀여운 말투. 곧 헝가리 부다페스트로 떠나는 기차를 예약한 탓에 30분 남짓밖에 이야기할 수 없다는 게 안타까웠다. 밥이라도 한 끼 먹이고 싶었는데….

그 친구도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왔겠지. 그리고 일상의 생활인이 돼 공부하고, 때론 미래를 고민하며 보통의 한국 학생으로 살고 있을 것이다. 가끔, 아주 가끔 그 여학생이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다. 하긴, 그 나이에 그 정도 용기와 모험심이 있다면 잘 살지 못할 이유는 없을 터.

2011년 무더웠던 8월 초순의 어느 날. 세르비아 베오그라드 칼레메그단 요새 인근 맥도날드에서 친구를 기다리던 연세대학교 여학생, 만약 이 글을 보게 된다면 메일 보내요. 그때 사주지 못한 점심 사줄 테니. 나이야 많이 차이 나지만, 우린 삶 속으로 여행을 '기꺼이' 받아들인 동지 아닙니까.


태그:#배낭여행, #여성 여행자, #발칸반도, #동유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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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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